밀 대 휴얼 논쟁
휴얼의 가설-연역주의
- Peter Achinstein, Science Rules: A Historical Introduction to Scientific Methods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04), pp. 130-132를 번역 또는 요약함(편의를 위해 군데군데 문장을 빼거나 더하거나 문장을 고침. 엄밀한 번역이 아님!).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 1794-1866)은 영국의 과학자이자 과학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이다. 광물학과 조수에 관한 연구를 했던 그는 1840년 ≪귀납 과학의 역사(The History of Inductive Sciences)≫와 ≪귀납 과학의 철학(The Philosophy of Inductive Sciences)≫이라는 책을 발표했으며, 1841년부터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의 학장을 역임했다.
휴얼은 “귀납 과학”이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그가 제시한 과학 방법론은 “귀납주의”보다는 “가설-연역주의(hypothetico-deductivism)”에 가까웠다. 그는 가설 발견의 단계와 가설 시험의 단계를 구분했다. 발견의 단계에서, “과학은 사실에 대한 익숙한 관찰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휴얼에 따르면, 관찰 사실로부터 가설이 만들어지려면 “현상이 아닌 정신에서 비롯된 모종의 일반적인 착상(conception)이 도입된다”. 휴얼은 이를 사실들의 “총괄(colligation)”이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케플러는 티코의 화성 관측 자료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그는 현상에서 비롯되지 않은 아이디어,즉 관측 지점들이 타원 위에 있다는 아이디어를 도입했다. 휴얼은 이를 “발명” 또는 “추측”이라고도 불렀다. 사실은 그 가설의 참을 보장해주지 않는데, 왜냐하면 인간의 정신은 동일한 자료에 대해서도 그것을 총괄할 수 있는 가설을 여럿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설의 진위를 추론하려면 두 번째 단계, 즉 시험의 단계가 필요하다.
시험의 단계에서, 휴얼은 가설의 참을 추론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이 조건들은 추론의 질을 비교하는 방식으로도 사용될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이 조건들을 더 잘 만족하는 추론일수록 더 좋은 추론이 된다. 첫째, 가설은 이미 관찰된 현상을 설명할 뿐 아니라 아직 관찰되지 않은 것도 예측해야 한다. 둘째, 가설은 “가설의 형성 과정에서 고려된 것과는 다른 종류의” 현상을 설명/예측해야 한다. 휴얼은 이를 “통섭적 귀납(consilience of induction)”이라고 불렀다. 그는 뉴턴의 보편 중력 법칙을 사례로 이용했는데, 그 법칙은 그 전까지 서로 연관이 없었던 케플러의 세 가지 법칙을 모두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셋째, 이론(가설들의 집합)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발전해야 한다. 휴얼은 가설이 보통 가설들의 집합, 또는 체계, 또는 이론의 일부라는 점과 그 집합의 일원들이 한꺼번에 짜여지지 않고 시간에 따라 추가되거나 수정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래서 어떤 이론은 이 과정에서 더 단순하고, 더 통일적이고, 더 정합적인 이론이 된다. 휴얼이 보기에, 그러한 이론은 참이라고 추론될 수 있다. 거짓인 이론에서는 그 반대의 일(더 복잡해지거나, 덜 통섭되거나, 정합성이 약화되는)이 진행될 것이며, 대체로 그러한 이론들은 원래의 이론과는 잘 어울리지 않더라도 개별적인 문제만을 풀기 위해 고안된 임시 방편의(ad hoc) 가설을 도입하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이론의 정합성이 높아져야 한다는 이 생각을 휴얼은 “정합성” 조건이라고 불렀다.
빛의 파동 이론은 휴얼의 주된 사례였다. 그에 따르면, 발견의 단계에서 물리학자의 정신은 관찰된 현상에 ‘에테르’라는 매질에서의 파동이라는 아이디어를 부과했다(“총괄”). 또한 시험 단계에서 파동 이론은 경쟁 이론이었던 입자 이론보다 자신이 제시한 세 가지 조건을 훨씬 더 잘 만족시켰다. 파동 이론은 이론이 처음 도입될 때 고려되었던 현상들(복굴절, 간섭 무늬 등)뿐 아니라 가설의 구성 과정에서 고려되지 않았던 현상들(편광 등)도 예측해냈으며, 결국에는 서로 무관해 보이던 광학 현상들에 통일성을 제공했다. 또한 휴얼은 파동 이론의 정합성과 단순성이 점점 높아진 다양한 사례들을 지적한 반면, 입자 이론의 전개 과정에서는 그 반대의 일이 나타났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휴얼이 제시한 세 가지 조건의 만족은 파동 이론이 참이라는 추론을 정당화해줄 수 있을까? 19세기 중반 휴얼과 논쟁을 벌였던 존 스튜어트 밀은 부정적인 답변을 제시한다.
밀의 귀납주의와 휴얼과의 논쟁
- Peter Achinstein, Science Rules: A Historical Introduction to Scientific Methods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04), pp. 133-136을 번역 또는 요약함(편의를 위해 군데군데 문장을 빼거나 더하거나 문장을 고침. 엄밀한 번역이 아님!).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1843년 ≪논리학 체계(A System of Logic)≫를 발표했다. 대학 교재로도 대중서로도 인기를 끈 이 책은 여러 차례 개정되어 8판까지 출판되었다. 초판부터 밀은 휴얼에 비판적이었다. 그는 “총괄”에 대한 휴얼의 주장, 특히 (귀납의 과정에서) 관찰된 현상에서 비롯되지 않은 착상을 정신이 도입한다는 주장을 거부했다. 밀에 따르면, “케플러는 그의 착상을 사실에 부과한 것이 아니라 사실 속에서 그것을 보았다.” 화성에 대한 티코 브라헤의 관찰로부터, 케플러는 (수학적 계산을 이용해) 모든 관측 지점들이 타원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일 뿐이다. 밀에게, 이는 관찰 사실들의 요약(summary)일 뿐, 휴얼식의 “추측”이나 “발명”이 아니었으며, 심지어 귀납 추론도 아니었다. 밀에게 귀납 추론은, 어떤 집합에 속하는 모든 관찰이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그 집합의 모든 일원이 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얻는 추론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밀에 따르면, 케플러가 수행한 유일한 귀납 추론은 화성의 모든 관측 지점들이 타원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로부터 (과거든 현재든, 관찰되었든 관찰되지 않았든) 화성의 모든 지점들도 타원 위에 놓여 있다는 주장으로의 추론이었다.
귀납적으로 추론된 명제 중에서, 밀은 A의 종류에 해당하는 사건이 항상 B의 종류에 해당하는 사건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를 조건적인 관계와 무조건적인 관계, 두 가지로 구분했다. 조건적인 경우에는 이러한 사건의 선후 관계가 (바뀔 수도 있는) 어떤 우연적인 사실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뉴올리언스의 여름이 항상 덥다는 사실은 (바뀔 수도 있는) 지구의 조건에 의존하는 관계이다. 반면 뉴턴의 중력 법칙은 무조건적인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즉 그 법칙은 무슨 일이 벌어지든 성립한다. 밀은 사건의 종류들 사이의 무조건적인 관계를 표현하는 일반화를 “인과 법칙”이라고 부른다. 밀은 어떤 일반화가 진정으로 인과적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방법은 실험을 필요로 한다. 그에 따르면, 실험이 없는 관찰은 “연쇄와 공존을 주장할 수 있지만, 인과는 증명할 수 없다.”
한 종류의 사건 또는 현상이 다른 종류의 사건 또는 현상과 항상 연결되어 있는 것을 관찰했다고 가정하자. 우리는 여기에 인과 관계가 존재하는지 알고 싶다. 밀은 일치법과 차이법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힘이 가해진 물체가 언제나 가속된다는 것을 관찰했다고 하자. “일치법”은 다양한 종류의 (즉 질량, 크기, 모양, 위치 등이 서로 다른) 물체에 힘을 가함으로써 인과를 시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 사이에서 유일한 공통점은 그 모든 물체에 힘이 가해졌다는 것뿐이므로, 만약 이 모든 경우에 가속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힘이 가속을 일으킨다고 추론할 수 있다. 반면 “차이법”은 한 그룹에는 힘이 가해지고 다른 그룹에는 힘이 가해지지 않은 것 말고는 유관한 차이가 없는 두 그룹의 물체를 통해 인과를 시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 앞의 그룹이 가속된 반면 뒤의 그룹은 가속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힘이 가속을 일으킨다고 추론할 수 있다.
밀은 이를 포함해 그가 제시한 몇몇 방법들이 과학의 인과 법칙을 귀납적으로 추론하는데 필요한 핵심적인 것들로 간주했다. 비록 밀과 뉴턴은 모두 귀납적이며, 둘 모두 귀납적 일반화뿐 아니라 원인으로의 추론을 강조했지만, 밀은 원인으로의 추론이 어떻게 작동할 것인지를 보이는 데 있어 뉴턴을 능가했다.
밀은 가설-연역주의의 단순한 형태도 휴얼적인 형태도 거부했다. 그는 빛의 파동 이론의 중심 가설을 빛 에테르가 존재한다는 주장으로 간주했다. 단순한 가설-연역주의에 따르면, 이 주장과 파동 이론의 다른 가정을 결합하여 빛의 직진, 반사, 굴절, 회절 등의 알려진 현상들을 도출할 수 있다면, 에테르가 존재한다는 추론이 허용된다. 휴얼의 버전에서는 (1) 그 이론이 처음 이론을 제안할 때 고려된 현상과 다른 종류의 현상들을 산출하고(통섭[consilience]), (2) 이론이 갈수록 정합적으로 발전한다고 할 때, 그러한 추론이 허용된다. 밀의 반론은 단순하고 강력하다. 알려진 현상들을 도출할 수 있으면서 적어도 파동 이론만큼 통섭적이고 정합적이지만 파동 이론과는 양립불가능한 이론이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우리는 파동 이론의 참 또는 개연성을 추론할 수 없게 된다. 밀의 견해에 따르면, 이러한 추론을 위해서는 파동 이론이 휴얼이 제시한 조건들(통섭과 정합성)을 만족한다는 것뿐 아니라 그 이외의 가설은 그러한 조건을 만족 수 없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밀이 주장하기를, 19세기의 물리학자들이 그러한 이론을 생각할 수 없었다는 것은 그러한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증이 될 수 없다. (실제로 밀의 말은 맞는 것으로 밝혀졌다. 20세기 초 발전한 빛의 양자 이론이 바로 그러한 이론이었다. 밀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19세기 물리학자들의 정신은 그러한 이론을 “상상하기에 부적합”했다.)
가설-연역주의와 반대로, 밀은 여러 가설과 다양한 계산이 관련된 경우 “연역법”을 옹호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대포를 어떤 각도로 쏠 때 가장 멀리 날아갈지를 알고 싶다고 가정하자. 밀의 “연역법”의 첫 번째 단계에서는 여기에 작용하는 원인과 법칙들(대포알을 쏘는 힘과 관련된 원인들, 중력, 뉴턴의 운동 법칙들)을 결정하기 위해 귀납을 사용한다. “연역법”의 두 번째 단계는 경험적으로 시험될 수 있는 결론을 연역적으로 추론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귀납적으로 얻어낸 힘과 법칙들로부터 우리는 최대 거리가 45도에서 산출된다는 것을 도출한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도출된 결론의 진위를 결정하기 위해 경험적인 시험과 관찰이 이루어진다(대포를 다양한 각도에서 발사하고 최대 거리가 나오는 각도가 45도인지 확인한다).
밀에 따르면, 휴얼과 다른 가설-연역론자들이 생략한 것은 첫 번째의 귀납적 단계이다. 그들은 귀납적으로 얻을 수 없는 가설에서 시작하여 그 귀결들을 도출하고서, 만약 귀결들이 참이면, 그 가설이 참이거나 개연적이라고 주장한다. 밀이 말하길, 다른 가설이 동일한 결과를 산출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는 잘못된 추론이다. 밀과 휴얼의 근본적 차이는 다음과 같다. 휴얼은 가설들이 알려진 현상들을 산출하고 더불어 통섭과 정합성을 만족한다면, 우리는 그것의 참을 추론할 수 있다. 밀은 이를 거부하는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와 양립불가능한 다른 가설도 그런 조건을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휴얼은 그의 조건을 만족하면 그러한 다른 가설이 존재하기 매우 어려워진다고 대응할 것이다. 밀은 왜 그런지 보여달라고 말할 것이다. 휴얼은 그냥 그렇다고 주장한다. 밀과 휴얼은 한 가지 중요한 점에 동의한다. 즉 그들은 일반적 가설의 참이나 개연성으로의 귀납 추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둘다 그러한 추론이 모두 오류라는 포퍼의 주장을 거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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