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서스와 진화론자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2 바이트 추가됨 ,  2024년 5월 21일 (화)
49번째 줄: 49번째 줄:
===IV. 찰머스 : 심판자로서의 신 ===
===IV. 찰머스 : 심판자로서의 신 ===


비록 원래의 신정론(神正論, thedcy: 악의 존재를 신의 섭리라고 하는 주장-역자)이 계속 작용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긴 하지만, 맬서스는 『인구론』 제2판에서 자연신학에 관한 장들을 삭제했다. 또한 자기가 저자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분량을 여러 배로 늘렸으며 부제를 바꾸었다. 1판의 부제는 ‘고드윈 씨, 콩도르세 씨, 그리고 다른 저자들의 생각에 대한 비판과 함께, 미래 사회의 개선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서의’ 인구의 원리였다. 2판(1803)은 “인구가 낳는 해악을 미래에 제거 또는 완화시킬 전망에 대한 탐구와 함께 인간의 행복에 대한 인구의 과거와 현재의 효과들에 관한 견해”를 언급했다. 맬서스는 인간과 사회의 완성 가능성에 관한 생각에서 인구의 원리의 효과에 관한 자료의 집적과 인구에 대한 새로운 제한—악이나 불행으로 취급되지 않는—으로 관심을 옮겼다. 그는 결혼의 ‘도덕적 절제’라는 요소를 포함시킴으로써 1판의 가혹한 결론을 완화했다. 자연신학의 제외가 그렇듯이 1판과 2판 사이의 구분은 완전하지 않았다. 아내와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때까지 결혼을 도덕적으로 또는 신중하게 절제해야 한다는 원칙은 1판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강조되지는 않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맬서스가 2판을 “새로운 저작”이라고 구별한 것은 타당했다. 2판과 그 이후의 판에서의 또다른 중요한 변화는 『인구론』의 개인적·논쟁적 소론으로서의 성격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고드원과 콩도르세에 대한 비판들은 남아 있었으나, 1789년의 『인구론』에서 부차적이었던 빈민구제법에 대한 공격이 완성 가능성에 대한 공격을 대체했다. ‘도덕적 절제’의 원칙과 공공자선에 대한 비판은 맬서스에 대한 아주 다른 해석—이신론(deism)에 기초한 페일리의 조화된 자연관 대신 신을 준엄한 구약성서의 심판관으로 보는 칼뱅주의의 해석으로 바꾼—의 원천을 제공했다.  
비록 원래의 신정론(神正論, theodicy: 악의 존재를 신의 섭리라고 하는 주장-역자)이 계속 작용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긴 하지만, 맬서스는 『인구론』 제2판에서 자연신학에 관한 장들을 삭제했다. 또한 자기가 저자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분량을 여러 배로 늘렸으며 부제를 바꾸었다. 1판의 부제는 ‘고드윈 씨, 콩도르세 씨, 그리고 다른 저자들의 생각에 대한 비판과 함께, 미래 사회의 개선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서의’ 인구의 원리였다. 2판(1803)은 “인구가 낳는 해악을 미래에 제거 또는 완화시킬 전망에 대한 탐구와 함께 인간의 행복에 대한 인구의 과거와 현재의 효과들에 관한 견해”를 언급했다. 맬서스는 인간과 사회의 완성 가능성에 관한 생각에서 인구의 원리의 효과에 관한 자료의 집적과 인구에 대한 새로운 제한—악이나 불행으로 취급되지 않는—으로 관심을 옮겼다. 그는 결혼의 ‘도덕적 절제’라는 요소를 포함시킴으로써 1판의 가혹한 결론을 완화했다. 자연신학의 제외가 그렇듯이 1판과 2판 사이의 구분은 완전하지 않았다. 아내와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때까지 결혼을 도덕적으로 또는 신중하게 절제해야 한다는 원칙은 1판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강조되지는 않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맬서스가 2판을 “새로운 저작”이라고 구별한 것은 타당했다. 2판과 그 이후의 판에서의 또다른 중요한 변화는 『인구론』의 개인적·논쟁적 소론으로서의 성격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고드원과 콩도르세에 대한 비판들은 남아 있었으나, 1789년의 『인구론』에서 부차적이었던 빈민구제법에 대한 공격이 완성 가능성에 대한 공격을 대체했다. ‘도덕적 절제’의 원칙과 공공자선에 대한 비판은 맬서스에 대한 아주 다른 해석—이신론(deism)에 기초한 페일리의 조화된 자연관 대신 신을 준엄한 구약성서의 심판관으로 보는 칼뱅주의의 해석으로 바꾼—의 원천을 제공했다.  


… [맬서스의 법칙에 심취해 있던 에딘버러 대학의 신학부 교수] 찰머스(Chalmers)는 종교적 교리와 자유방임경제 이론의 통합을 그의 필생의 작업으로 보았다. 그의 저술들은 자연신학, 정치경제학 그리고 지질학을 포함했다(당시로선 유별난 결합이 아니었다). 『정치경제학』(1832)에서 그는 “대중의 정당한 경제적 상태는 그들의 정당한 도덕적 상태에 기인하고, 인격은 편안함의 원천이며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적어도 1808년부터 그는 맬서스의 이론에 근거하여 특히 국가의 자선행위를 반대하고 있었다. 그는 국가의 자선행위가 개인의 성실성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자선행위가 보다 많아질수록 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서 그것을 탕진하리라는 것이었다. 그는 구체적 예들이 없었어도 맬서스의 이론이 자신에게 확신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처럼 명백히 역설적인 공론이 가장 성공적인 예증들에 의해서 그렇게 잘 뒷받침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 [맬서스의 법칙에 심취해 있던 에딘버러 대학의 신학부 교수] 찰머스(Chalmers)는 종교적 교리와 자유방임경제 이론의 통합을 그의 필생의 작업으로 보았다. 그의 저술들은 자연신학, 정치경제학 그리고 지질학을 포함했다(당시로선 유별난 결합이 아니었다). 『정치경제학』(1832)에서 그는 “대중의 정당한 경제적 상태는 그들의 정당한 도덕적 상태에 기인하고, 인격은 편안함의 원천이며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적어도 1808년부터 그는 맬서스의 이론에 근거하여 특히 국가의 자선행위를 반대하고 있었다. 그는 국가의 자선행위가 개인의 성실성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자선행위가 보다 많아질수록 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서 그것을 탕진하리라는 것이었다. 그는 구체적 예들이 없었어도 맬서스의 이론이 자신에게 확신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처럼 명백히 역설적인 공론이 가장 성공적인 예증들에 의해서 그렇게 잘 뒷받침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