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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쿤 | 토머스 쿤 지음, 김명자, 홍성욱 옮김, {{책|[[과학혁명의 구조]]}} 제4판 (까치, 2013), 2장. | ||
== 정상과학과 패러다임의 정의 == | == 정상과학과 패러다임의 정의 == |
2023년 9월 18일 (월) 15:50 기준 최신판
토머스 쿤 지음, 김명자, 홍성욱 옮김, 『과학혁명의 구조』 제4판 (까치, 2013), 2장.
정상과학과 패러다임의 정의
“이 책에서 ‘정상과학(normal science)’은 과거에 있었던 하나 이상의 과학적 성취에 확고히 기반을 둔 연구 활동을 뜻하는데, 여기서의 성취는 더 나아간 실천의 토대를 제공하는 것으로 특정 과학자 공동체가 한동안 인정한 것을 말한다.”(73쪽) 오늘날 그러한 성취는 대부분 교과서 형태로 학습되지만, 이러한 교과서가 널리 퍼지기 전에는 과학 분야의 유명한 고전들이 교재와 비슷한 역할을 담당했었다. 이러한 “저작들은 일정 기간 한 연구 분야의 적법한 문제와 방법을 다음 세대 학자들에게 암묵적으로 정의해주는 역할을 했다. 이들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두 가지 본질적인 특징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 특징은 무엇일까?] 그들의 성취는 경쟁적인 과학 활동 방식으로부터 그룹을 떼어내 영속적인 옹호자 그룹으로 끌어당길 정도로 전례 없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 성취는 재정의된 연구자 그룹이 풀어야 할 온갖 문제들을 남겨둘 만큼 개방적이었다. 이 두 가지 특징을 지닌 성취를 이제부터 ‘패러다임(paradigm)’이라 부를 텐데, 이 용어는 ‘정상과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73-74쪽)
“이 용어를 선택함으로써 나[쿤]는 실제 과학 활동의 몇몇 인정된 사례들 ─ 법칙, 이론, 응용, 기기법 등을 모두 포함하는 사례들 ─ 이 그로부터 어떤 일관된 과학 연구 전통이 나타나는 모델을 제공한다는 점을 시사하고자 한다.”(74쪽) 그렇다면, 어떤 것이 정상과학의 예가 될 수 있을까?
“... 패러다임에 대한 공부는 과학도가 훗날 과학 활동을 수행할 특정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이 한 과학 커뮤니티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과학도는 거기에서 바로 그 확고한 모델로부터 그들 분야의 기초를 익혔던 사람들과 합류하게 되므로, 이후에 계속되는 그의 활동에서 기본 개념에 대한 노골적인 의견 충돌이 빚어지는 일은 드물 것이다. 그들의 연구가 공유된 패러다임에 근거하는 사람들은 과학 활동에 대한 동일한 규칙과 표준을 지키게 된다. 그러한 약속과 그것이 조성하는 분명한 의견 일치는 정상과학, 즉 한 연구 전통의 출현과 지속에 불가결의 요소가 된다.”(74쪽)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공유된 패러다임은 개념, 법칙, 이론, 관점이라기보다 “구체적인 과학적 성취”(74쪽)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뉴턴 역학의 패러다임은 뉴턴의 세 가지 운동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보다는 『프린키피아』라고 해야 더 맞을 것이다. 이러한 강조에도 불구하고, 쿤의 『구조』를 읽은 많은 사람들이 패러다임을 어떤 세계관이나 법칙으로 착각한다. 과학자들의 정합적인 연구 전통을 만들어주는 것이 어떤 법칙과 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성취라고 쿤이 주장한 이유는 나중에 5장에서 더 살펴보도록 하고, 여기서는 일단 패러다임이 있는 연구 형태와 패러다임이 없는 연구 형태가 구분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만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패러다임 없는 연구의 사례
『구조』에서는 어떤 사례를 들고 있는가? 우선 광학의 사례를 살펴보고 있다. 오늘날의 교과서에서 “빛은 광자, 즉 파동과 입자의 특성을 함께 나타내는 양자역학적 실체”로 얘기되고, 연구도 그에 따라서 진행된다. 그러나 이는 20세기 초 플랑크, 아인슈타인 등의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서 형성된 특성화이고, 그 이전에는 빛은 공간을 가득 채운 어떤 매질의 횡파라고 가르쳐졌다. 이는 19세기 초 영과 프레넬의 저서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 전에는? 18세기 내내 빛은 뉴턴의 『광학』에 의해 입자로 간주되었다. 실제로 당시 물리학자는 빛이 때리는 압력에 대한 증거를 찾기 위해 애썼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한 이행은 성숙된 과학의 일반적인 발달 방식이다. 그러나 뉴턴의 연구 이전에는 그러한 방식의 발달이 나타나지 않았다. 고대부터 17세기 말까지 빛의 본질에 대해 널리 수용된 단일한 견해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여러 학파가 난립해 있었다. 각 학파들은 자신의 견해를 특정한 형이상학과 관련시켰으며, 각각의 패러다임적 관찰로서 각각의 이론이 가장 잘 설명해낼 수 있는 광학 현상의 일부분을 강조했다. 대신 그밖의 관찰은 예외적으로 취급되거나, 앞으로 더 연구할 중요한 문제로 남겨두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과학자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과학자에서 빼버리면, 현재의 과학자들도 과학자에서 빠질 위험이 있다. (왜? 만약 미래의 과학자들이 현대의 과학자들을 본다면) 그럼에도 그들은 현대의 과학자들과 무언가 다르다. 어떤 점이 다른가? “당연시할 수 있는 공유된 믿음이 아무것도 없었던 까닭에, 모든 물리광학의 저자는 저마다 기초부터 새롭게 그의 분야를 개척해야 하는 것으로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 그로부터 나온 책 속의 대화는 통상적으로 자연을 향한 것 못지않게 다른 학파의 학자들에게 향했다.”(77쪽) 각 저자는 다른 학파의 근본 원리를 공격하고, 자신의 원리를 내세우고 정당화해야 한다. 이런 모습은 오늘날 어디서 자주 관찰되는가? 바로 철학이다. 그리고 사회과학도 이런 모습을 어느 정도 띠고 있다. 반면 오늘날 자연과학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견해를 펼치지 않는다.
『구조』에 소개된 또 다른 사례는 18세기 초반의 전기 연구이다. 당시에는 적어도 세 학파가 공존했다. 프랭클린과 그의 직계 후계자들의 연구를 통해서 공유된 패러다임이 제공되기 전까지, 세 학파는 저마다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서로를 압도하지 못했다. 왜 합의는 어려운가? 왜 패러다임이 없는 상태에서의 사실 수집 활동만으로는 합의에 이르기 어려운가? 베이컨이 예시한 자연사는 그 한계를 잘 보여준다. 베이컨의 자연사는 유사하지 않은 것을 유사한 것으로 기록하거나, 정작 (나중에) 중요한 것으로 밝혀질 것은 기록하지 않거나, 잘못된 보고를 걸러내지 못한다. 즉 “자연사는 그 어느 것도, 선택이나 평가 그리고 비판을 가능케 해주는 이론적 방법론적 믿음의 (최소한 암묵적인) 집합 없이는 해석해낼 수가 없다.” [history란 단어의 용법에 대해서 잠시 설명할 필요가 있음. history는 보통 기록의 의미를 가짐] 그러한 믿음의 집합은 개인마다, 시대마다 다를 것이다. 따라서 사람마다 같은 현상을 두고 다르게 기술하고 다르게 해석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신기한 것은 그러한 다양성이 점차 사라진다는 것이다.
전기 연구의 경우, 1740년대에 발명된 라이덴 병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프랭클린은 바로 이 라이덴 병의 이상한 능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현상을 분간해내고 설명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그의 이론을 패러다임으로 승격시킬 수 있었다.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그 이론이 그 경쟁 상대들보다 더 좋아 보여야 하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이 직면할 수 있는 모든 사실을 다 설명해야 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결코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83쪽)
한 이론이 그것을 신봉했던 소학파에게 했던 역할을, 이제 프랭클린의 패러다임이 이후 전기학자들 전체에게 하게 되는데, 이 패러다임의 수용으로 전기 연구의 성과와 능률은 엄청나게 증진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이에 대한 쿤의 설명은 3장과 4장에 또 등장하지만, 일단 84쪽에도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패러다임은 어떤 실험이 해볼 만한 가치가 있으며, 어떤 것이 가치가 없는지를 가려주었다. 또 논쟁의 종결이 근본적인 부분에 대한 끊임없는 되풀이를 종식시키고, 길을 바로잡았다는 자신감은 보다 정밀하고 난해한 부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도록 사기를 진작시킨 덕에, 패러다임은 그 일을 매우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이로써, “사실 수집과 이론의 명료화는 둘 다 방향이 뚜렷한 활동으로 변모되었다.”(84쪽)
패러다임 수용에 따른 변화
패러다임이 없는 연구에서 패러다임에 근거한 연구로 변모하면서, 그 연구 그룹에는 몇 가지 특징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첫째, “새로운 패러다임은 그 분야의 새롭고 보다 확고한 정의를 내포한다.”(85쪽) 패러다임을 수용하지 않은 낡은 이론을 고수하는 사람은 소외되고, 패러다임을 수용한 이들의 잘 정의된 전문 분야가 형성된다. 전문 학술지의 발간, 학회의 결성, 교과 과정 내 특별한 위치에 대한 주장 등이 이러한 변화의 징표가 된다.
둘째, 연구 결과를 전달하는 보고서가 보다 간단하고 전문적인 형태로 변화한다. 즉 제1원리에 대한 어려운 정당화가 더 이상 필요 없어졌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교과서의 저자들에게 맡기고, 연구자는 교과서가 끝나는 부분에서 연구를 시작하여, 그 분야의 미묘하고 난해한 부분에만 전적으로 몰두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연구 결과는 책이 아니라 논문의 형태로 발표된다.
셋째, 패러다임이 있는 분야는 그 연구 결과가 일반인에게 이해되지 않는 장벽이 생긴다. 천문학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랬었고, 역학은 중세에 난해해져서, 17세기 초에 잠시 일반인도 알 수 있게 바뀌었다가 다시 난해해졌다. 전기 연구는 18세기 중반 이후에, 다른 물리과학 분야들은 19세기 들어 그렇게 되었다. 최근에는 사회과학도 그러한 장벽이 생기고 있다. 각 분야의 학자들 사이의 간극이 점점 넓어지는 것은 분명 걱정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그 간극이 넓어지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고대 이래 전기 연구는 계속 점진적으로 변화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는 일정한 기울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18세기 초 40년 동안 전기 연구자들은 16세기보다 전기 현상에 대해 훨씬 풍부한 정보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1740년 이후 반 세기 동안, 전기 현상의 항목 수에 덧붙여진 새로운 현상은 몇 종류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세기의 마지막 30여 년 동안 쓰여진 캐번디시, 쿨롱, 볼타의 전기학 저술은 그레이, 뒤 페 그리고 심지어는 프랭클린의 것들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데, 쿤은 그 차이가 18세기 초와 16세기의 차이보다도 훨씬 큰 것 같다고 말한다. 도대체 어떤 차이가 발생했다는 것인가?
1740년에서 1780년 사이의 어느 시점에선가 전기학자들은 역사상 최초로 그들 분야의 기초 원리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시점으로부터 그들은 보다 구체적이고 난해한 문제들로 밀고 나갔으며, 점차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저술보다는 다른 전기학자들에게 공표하는 논문 형식으로 그들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게 되었다. 즉 그들은 전체 그룹의 연구를 안내할 수 있는 패러다임을 얻어낸 것이다. 사후 관점을 제외하고, 한 분야를 명백하게 과학이라고 선언할 만한 다른 기준은 찾기 힘들 것이다.
요컨대 쿤은 패러다임이 있고 없고에 따라 어떤 의미 부여를 하는가? 패러다임이 있을 때 더 효율적이고 난해한 연구가 가능하다. 그리고 패러다임의 획득은 성숙한 과학의 징표이다.
토론거리
- 패러다임의 유무에 따른 과학 연구의 전형적인 차이를 요약해보자.
- 패러다임에 기반한 연구가 패러다임이 없는 연구보다 좋다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