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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장. 회의적 의심 === | === 4장. 회의적 의심 === | ||
* 『논고』(I.iii.6)에서는 귀납의 문제가 인과적 추론의 문제와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 반면, 『이해력』 4장에서는 | * 4장의 논의 순서 : [1부] (20) 관념들의 관계 vs. 사실의 문제의 구분. (21) 그런데 (직접적으로 겪지 않은) 사실의 문제에 대한 믿음 또는 확신은 무엇에 의존하는가? (22) 사실의 문제에 관한 모든 추론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기초한다. 그런데 그러한 인과적 추론의 근거는 어디서 얻는가? (22-27) 원인과 결과는 이성에 의해서는 발견될 수 없고 경험에 의해서만 발견될 수 있다. 27문단까지는 계속 선험적으로는 원인만 가지고 결과를 추론할 수 없다는 점 반복적으로 논증. [2부] ∏(Pa<sub>i</sub> → Qa<sub>i</sub>)로부터 (∀x)(Px → Qx) 유도되는 것 분명하고, 그러한 추리는 분명 정당. 그러나 그러한 "추리(inference)"는 "추론(reasoning)"에 의해 행해진 것이 아니다. 그 추론이라면 논증적 추론이거나 개연적 추론 중 하나일 것. 그런데 논증적 추론일 수는 없고, 개연적 추론이라면 인과관계에 관한 추론. 이는 순환. (32) ∏(Pa<sub>i</sub> → Qa<sub>i</sub>)로부터 (∀x)(Px → Qx)의 추리. "이런 추리의 본성은 무엇인가? 경험적이라고 답하면, 선결문에 요구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추리들은 미래는 과거와 유사할 것이고, 유사한 힘들은 유사한 감각적 성질들과 결합되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그 근거로 삼기 때문이다." | ||
*『논고』(I.iii.6)에서는 귀납의 문제가 인과적 추론의 문제와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 반면, 『이해력』 4장에서는 특히 2부에서 경험적 추론의 문제 일반을 다루고 있음. | |||
* 인과 개념을 우리가 가지고 있고, 인과적 추론을 우리가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당히 분명히 밝히고 있음. 흄의 의심 대상이 인과 개념이나 인과적 추론 자체가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 * 인과 개념을 우리가 가지고 있고, 인과적 추론을 우리가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당히 분명히 밝히고 있음. 흄의 의심 대상이 인과 개념이나 인과적 추론 자체가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 ||
*번역서는 "reasoning"을 "추론"으로, "inference"를 "추리"로 번역하고 있다. 흄은 두 단어를 아주 정교하진 않더라도 구분되는 뉘앙스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번역어를 사용한 것을 적절해 보인다. reasoning은 논리적인 숙고에 의존하는 반면, inference는 자동적이다. reasoning은 관념의 내용만을 이용하지만, inference는 관념의 강도(?)에 의존. 『논고』에 따르면, 인상의 반복만으로 reasoning은 새로운 뭔가(특히 필연적 연관 같은 것)를 낳지 못하지만, 인상의 반복은 하나의 인상으로부터 다른 하나로의 inference를 산출한다. 필연적 연관이란 바로 이러한 inference에 의존! | |||
*다만 probable reasoning은 inference와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흄에게 확실하게 구별되는 것은 causal inference가 demonstrative reasoning이 아니란 것이며, 그래서인지 흄은 causaul reasoning이란 용어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논고』의 번역본에서 "inference"를 "추정"으로 번역했는데, 그보다는 "추리"가 훨씬 낫다.) | |||
=== 5장. 회의적 해결 === | === 5장. 회의적 해결 === | ||
* 인과적/경험적/귀납적 추론의 기반에 이성이 아니라 습관이 있다고 제안하고, 그것이 우리의 추론에 대한 설명을 제공할 거라 낙관적으로 기대. | * 인과적/경험적/귀납적 추론의 기반에 이성이 아니라 습관이 있다고 제안하고, 그것이 우리의 추론에 대한 설명을 제공할 거라 낙관적으로 기대. | ||
*원인의 결과를 이성적으로 또는 이해함으로써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 여러 차례 강조 : 우리는 돌이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확신함에도 불구하고, 돌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한 적은 없는 셈! 따라서 이를 이해를 못한 채 본능적, 습관적으로 확신한다고 말하는 것! | |||
* 2부에서는 습관을 통한 설명은 연합주의 심리학에 기대어 설명을 시도함. 흥미로운 점 : (1) 연합주의 심리학 및 상상력에 기댄 설명을 습관에 의거한 설명 뒤로 빼고 있음. 이는 『논고』의 순서와 반대. (2) 자신의 심리학적 설명의 가설적 성격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독자들에게 관심있는 사람만 읽으라고 권고하고, 다른 독자들은 읽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얘기함. | * 2부에서는 습관을 통한 설명은 연합주의 심리학에 기대어 설명을 시도함. 흥미로운 점 : (1) 연합주의 심리학 및 상상력에 기댄 설명을 습관에 의거한 설명 뒤로 빼고 있음. 이는 『논고』의 순서와 반대. (2) 자신의 심리학적 설명의 가설적 성격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독자들에게 관심있는 사람만 읽으라고 권고하고, 다른 독자들은 읽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얘기함. | ||
*"picture"를 "사진"으로 번역한 곳이 있는데(88쪽 등), 18세기는 사진이 발명되기 전이므로 "그림"으로 번역했어야 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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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25일 (수) 11:50 기준 최신판
데이비드 흄 지음, 김혜숙 옮김, 『인간의 이해력에 관한 탐구』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밀리컨[1]에 따르면, 흄의 『이해력』은 단지 『논고』의 대중적 버전이 아니다. 『이해력』은 이성주의 또는 합리주의 철학에 대한 비판과 대안 제시라는 『논고』의 목표를 공유하지만, 그와 비교할 때 『이해력』은 아래와 같은 주된 차이를 보인다.
- 귀납의 문제가 인과적 추론의 문제라기보다 경험적 추론 자체의 문제로 재서술됨(4-5장).
- 연합주의 심리학의 내용이 대폭 축소되고(3장), 그에 대한 자신감도 줄어듬(5장). 왜? (1) 합리주의 철학 비판이라는 목적에 비추어 불필요한 공격의 여지 줄이고 (2) 연합주의 심리학의 발전 가능성은 인정하되 그 미성숙함 인정하여, 연합주의 심리학의 완성된 체계 제시하고자 하는 목표는 포기?
- 공간과 시간 관념에 대한 해명 삭제. 왜? (1) 너무 난해.
- 종교 문제를 직접 다룸(10, 11장). 사실 종교는 흄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였음. 합리주의 철학 비판도 당시 종교 비판의 중요한 도구였음. 왜냐하면, 합리주의 철학의 내용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기독교를 뒷받침하는 기능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
챕터별
4장. 회의적 의심
- 4장의 논의 순서 : [1부] (20) 관념들의 관계 vs. 사실의 문제의 구분. (21) 그런데 (직접적으로 겪지 않은) 사실의 문제에 대한 믿음 또는 확신은 무엇에 의존하는가? (22) 사실의 문제에 관한 모든 추론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기초한다. 그런데 그러한 인과적 추론의 근거는 어디서 얻는가? (22-27) 원인과 결과는 이성에 의해서는 발견될 수 없고 경험에 의해서만 발견될 수 있다. 27문단까지는 계속 선험적으로는 원인만 가지고 결과를 추론할 수 없다는 점 반복적으로 논증. [2부] ∏(Pai → Qai)로부터 (∀x)(Px → Qx) 유도되는 것 분명하고, 그러한 추리는 분명 정당. 그러나 그러한 "추리(inference)"는 "추론(reasoning)"에 의해 행해진 것이 아니다. 그 추론이라면 논증적 추론이거나 개연적 추론 중 하나일 것. 그런데 논증적 추론일 수는 없고, 개연적 추론이라면 인과관계에 관한 추론. 이는 순환. (32) ∏(Pai → Qai)로부터 (∀x)(Px → Qx)의 추리. "이런 추리의 본성은 무엇인가? 경험적이라고 답하면, 선결문에 요구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추리들은 미래는 과거와 유사할 것이고, 유사한 힘들은 유사한 감각적 성질들과 결합되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그 근거로 삼기 때문이다."
- 『논고』(I.iii.6)에서는 귀납의 문제가 인과적 추론의 문제와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 반면, 『이해력』 4장에서는 특히 2부에서 경험적 추론의 문제 일반을 다루고 있음.
- 인과 개념을 우리가 가지고 있고, 인과적 추론을 우리가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당히 분명히 밝히고 있음. 흄의 의심 대상이 인과 개념이나 인과적 추론 자체가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 번역서는 "reasoning"을 "추론"으로, "inference"를 "추리"로 번역하고 있다. 흄은 두 단어를 아주 정교하진 않더라도 구분되는 뉘앙스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번역어를 사용한 것을 적절해 보인다. reasoning은 논리적인 숙고에 의존하는 반면, inference는 자동적이다. reasoning은 관념의 내용만을 이용하지만, inference는 관념의 강도(?)에 의존. 『논고』에 따르면, 인상의 반복만으로 reasoning은 새로운 뭔가(특히 필연적 연관 같은 것)를 낳지 못하지만, 인상의 반복은 하나의 인상으로부터 다른 하나로의 inference를 산출한다. 필연적 연관이란 바로 이러한 inference에 의존!
- 다만 probable reasoning은 inference와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흄에게 확실하게 구별되는 것은 causal inference가 demonstrative reasoning이 아니란 것이며, 그래서인지 흄은 causaul reasoning이란 용어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논고』의 번역본에서 "inference"를 "추정"으로 번역했는데, 그보다는 "추리"가 훨씬 낫다.)
5장. 회의적 해결
- 인과적/경험적/귀납적 추론의 기반에 이성이 아니라 습관이 있다고 제안하고, 그것이 우리의 추론에 대한 설명을 제공할 거라 낙관적으로 기대.
- 원인의 결과를 이성적으로 또는 이해함으로써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 여러 차례 강조 : 우리는 돌이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확신함에도 불구하고, 돌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한 적은 없는 셈! 따라서 이를 이해를 못한 채 본능적, 습관적으로 확신한다고 말하는 것!
- 2부에서는 습관을 통한 설명은 연합주의 심리학에 기대어 설명을 시도함. 흥미로운 점 : (1) 연합주의 심리학 및 상상력에 기댄 설명을 습관에 의거한 설명 뒤로 빼고 있음. 이는 『논고』의 순서와 반대. (2) 자신의 심리학적 설명의 가설적 성격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독자들에게 관심있는 사람만 읽으라고 권고하고, 다른 독자들은 읽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얘기함.
- "picture"를 "사진"으로 번역한 곳이 있는데(88쪽 등), 18세기는 사진이 발명되기 전이므로 "그림"으로 번역했어야 함.
주
- ↑ Peter Millican, "The Context, Aims, and Structure of Hume’s First Enquiry", in Reading Hume on Human Understanding: Essays on the First Enquiry, ed. Peter Millican (Oxford University Press, 2002), pp. 27-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