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서스와 진화론자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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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영 지음, 권오형, 김영식 옮김, {{장|[[맬서스와 진화론자들 : 생물학 이론과 사회 이론의 공통된 맥락]]}}, 김영식 편, 『과학과 근대사회』 (서울: 창비, 1989), 205-245쪽. 원문 : Robert Young, {{"|Malthus and Evolutionists: The Common Context of Biological and Social Theory}}, ''Past and Present'' 43 (1969), 109-145; reprinted in Robert Young, ''[http://www.psychoanalysis-and-therapy.com/human_nature/darwinmet/dar.html Darwin's Metaphor: Nature's Place in Victorian Cultur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5), pp. 23-55.
로버트 영 지음, 권오형, 김영식 옮김, {{장|[[맬서스와 진화론자들 : 생물학 이론과 사회 이론의 공통된 맥락]]}}, 김영식 편, 『과학과 근대사회』 (서울: 창비, 1989), 205-245쪽. 원문 : Robert Young, {{"|Malthus and Evolutionists: The Common Context of Biological and Social Theory}}, ''Past and Present'' 43 (1969), 109-145; reprinted in Robert Young, ''[http://www.psychoanalysis-and-therapy.com/human_nature/darwinmet/dar.html Darwin's Metaphor: Nature's Place in Victorian Cultur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5), pp.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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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에 기록된 두 번째 언급도 역시 효과의 정도에 있어 동물과 인간을 대조시키고 있다. 그 이론에 대한 월러스의 입장을 보여주는 고전적 출처는 그의 자서전에 나타나 있는데 그것은 맬서스의 이론을 상기한 것이 자기 자신의 가설의 형성에 결정적인 경험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1903년에 기록된 두 번째 언급도 역시 효과의 정도에 있어 동물과 인간을 대조시키고 있다. 그 이론에 대한 월러스의 입장을 보여주는 고전적 출처는 그의 자서전에 나타나 있는데 그것은 맬서스의 이론을 상기한 것이 자기 자신의 가설의 형성에 결정적인 경험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3년 후(처음 읽은 지 64년 후)에 월러스는 맬서스의 『인구론』 6판을 다시 읽고 그가 기억하기에 그에게 가장 감명 ㄹㄲㄲ깊었던 장들에 대한 회고를 남겼다. 그것은 2권에서의 자연법칙에 관한 구절이나 개선 가능성에 대한 비난들이나 {{'|도덕적 절제}}의 작용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1권의 3장에서 12장, 특히 3장에서 8장까지의 누적적 효과였다. ... 그것은 짐승 같은 생활, 병, 허약, 열악한 음식, 어린아이를 돌볼 능력의 결핍, 부족한 자원 기아, 유아살해, 전쟁, 학살, 약탈, 노예제도, 추위, 배고픔, 질병, 전염병, 역병, 그리고 낙태에 관한 자세한 언급이었다. 월러스는 계속해서 특히 그에게 충격을 주었던 구절을 열거하고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3년 후(처음 읽은 지 64년 후)에 월러스는 맬서스의 『인구론』 6판을 다시 읽고 그가 기억하기에 그에게 가장 감명 깊었던 장들에 대한 회고를 남겼다. 그것은 2권에서의 자연법칙에 관한 구절이나 개선 가능성에 대한 비난들이나 {{'|도덕적 절제}}의 작용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1권의 3장에서 12장, 특히 3장에서 8장까지의 누적적 효과였다. ... 그것은 짐승 같은 생활, 병, 허약, 열악한 음식, 어린아이를 돌볼 능력의 결핍, 부족한 자원 기아, 유아살해, 전쟁, 학살, 약탈, 노예제도, 추위, 배고픔, 질병, 전염병, 역병, 그리고 낙태에 관한 자세한 언급이었다. 월러스는 계속해서 특히 그에게 충격을 주었던 구절을 열거하고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인용|거기서 나는 인간 사이에서의 전쟁・약탈・대학살이 동물들 사이에서는 초식동물에 대한 육식동물의 공격과 약한 동물에 대한 힘센 동물의 공격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다. 기아, 가뭄, 홍수, 그리고 겨울폭풍들은 사람에게보다 동물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동물은 인간보다 두 배 내지 천 배의 번식 능력을 갖고 있지만 항상 존재하는 연례적 파괴 또한 몇 배는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는 내게 번뜩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인용|거기서 나는 인간 사이에서의 전쟁・약탈・대학살이 동물들 사이에서는 초식동물에 대한 육식동물의 공격과 약한 동물에 대한 힘센 동물의 공격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다. 기아, 가뭄, 홍수, 그리고 겨울폭풍들은 사람에게보다 동물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동물은 인간보다 두 배 내지 천 배의 번식 능력을 갖고 있지만 항상 존재하는 연례적 파괴 또한 몇 배는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는 내게 번뜩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 월러스의 이후의 견해들은 생물학과 사회 이론에 대한 맬서스의 영향의 부정적인 면을 보여줄 수도 있다. 인간과 종의 기원에 관한 월러스의 관심이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의 공동 발견으로 이끌었지만 인간의 완성 가능성에 대한 그의 믿음은 그로 하여금 최적자 생존이 전적으로 충분하다는 것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였다. 그는 인간의 두뇌와 미적・도덕적 능력들에 관해 예외를 두게 되었고 점점 더 자연을 초월하는 어떤 힘에 의한 인간 욕구의 예견으로 기울게 되었다. 그는 효용의 원리가 인간의 진화에 대한 적절한 설명임을 이미 거부하였으므로 더 나가가서 맬서스에게서 그것이 기원했음을 거부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881년 월러스는 다윈에게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이 그에게 맬서스의 법칙이 인간의 진화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음을 확신시켜주었다고 편지했다. 조지는 자연의 풍요로움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데 인간이 실패한 것 때문에 자연이 비난받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월러스의 생각으로는 자발적인 협동과 개혁이 사회변혁의 메커니즘으로서 경쟁을 대체했다. 그는 맬서스의 이론이 {{"|그것에 의존해서 뒷받침되고 있는 광대한 사회적・정치적 문제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데에서 조지와 의견을 같이하게 되었다. 그는 『진보와 빈곤』이 {{"|아담 스미스에 의해 한 세기 전에 이루어진 것과 동등한 진보를 정치과학과 사회과학에서 이룩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조지는 {{"|자신의 세대에서 가장 강력한 사회주의적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주장할 만하다}}고 이야기 되었다. 1898년 『경이의 세기』를 쓸 때쯤에는 미래사회에 대한 월러스의 사회주의적 희망들이 그로 하여금 사회적 경쟁을 완전히 거부하게 하였고 어떤 메커니즘도 규정되지 않은 채 필연적인 지보에 대한 신념을 갖게 했다. 말년에 와서 월러스가 {{"|자연은 잔인한가?}}라는 물음을 다시 생각하고 고통의 목적과 한계를 논의하게 되었을 때 그는 동물세계에서의 맬서스적 경쟁을 인간의 진보에 대한 비맬서스적 견해와 양립시키는 교묘한 방법을 제공해주었다. 그의 해결은 그 단순함에 있어 거의 데카르트적이었다. 동물은 인간보다 고통을 아주 적게 느끼거나 거의 느끼지 않으며 실제로 문명화되지 않은 종족들은 문명화된 종족보다 (고통을) 적게 느낀다는 것이었다.
... 월러스의 이후의 견해들은 생물학과 사회 이론에 대한 맬서스의 영향의 부정적인 면을 보여줄 수도 있다. 인간과 종의 기원에 관한 월러스의 관심이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의 공동 발견으로 이끌었지만 인간의 완성 가능성에 대한 그의 믿음은 그로 하여금 최적자 생존이 전적으로 충분하다는 것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였다. 그는 인간의 두뇌와 미적・도덕적 능력들에 관해 예외를 두게 되었고 점점 더 자연을 초월하는 어떤 힘에 의한 인간 욕구의 예견으로 기울게 되었다. 그는 효용의 원리가 인간의 진화에 대한 적절한 설명임을 이미 거부하였으므로 더 나가가서 맬서스에게서 그것이 기원했음을 거부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881년 월러스는 다윈에게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이 그에게 맬서스의 법칙이 인간의 진화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음을 확신시켜주었다고 편지했다. 조지는 자연의 풍요로움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데 인간이 실패한 것 때문에 자연이 비난받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월러스의 생각으로는 자발적인 협동과 개혁이 사회변혁의 메커니즘으로서 경쟁을 대체했다. 그는 맬서스의 이론이 {{"|그것에 의존해서 뒷받침되고 있는 광대한 사회적・정치적 문제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데에서 조지와 의견을 같이하게 되었다. 그는 『진보와 빈곤』이 {{"|아담 스미스에 의해 한 세기 전에 이루어진 것과 동등한 진보를 정치과학과 사회과학에서 이룩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조지는 {{"|자신의 세대에서 가장 강력한 사회주의적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주장할 만하다}}고 이야기 되었다. 1898년 『경이의 세기』를 쓸 때쯤에는 미래사회에 대한 월러스의 사회주의적 희망들이 그로 하여금 사회적 경쟁을 완전히 거부하게 하였고 어떤 메커니즘도 규정되지 않은 채 필연적인 진보에 대한 신념을 갖게 했다. 말년에 와서 월러스가 {{"|자연은 잔인한가?}}라는 물음을 다시 생각하고 고통의 목적과 한계를 논의하게 되었을 때 그는 동물세계에서의 맬서스적 경쟁을 인간의 진보에 대한 비맬서스적 견해와 양립시키는 교묘한 방법을 제공해주었다. 그의 해결은 그 단순함에 있어 거의 데카르트적이었다. 동물은 인간보다 고통을 아주 적게 느끼거나 거의 느끼지 않으며 실제로 문명화되지 않은 종족들은 문명화된 종족보다 (고통을) 적게 느낀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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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펜서는 ... 신념에 가득찬 라마르크주의자가 되었다. 스펜서의 해석의 핵심은 인구의 압력이 아니라 진보 자체였다. 스펜서는 자연이 본래 진보적 경향을 가진다는 점에서 라마르크와 의견이 일치했다. 그는 라마르크의 이론을 임의로 뜯어고쳐서 이러한 진보 메커니즘을 습득된 형질의 유전이라고 생각했다. ...  
... 스펜서는 ... 신념에 가득찬 라마르크주의자가 되었다. 스펜서의 해석의 핵심은 인구의 압력이 아니라 진보 자체였다. 스펜서는 자연이 본래 진보적 경향을 가진다는 점에서 라마르크와 의견이 일치했다. 그는 라마르크의 이론을 임의로 뜯어고쳐서 이러한 진보 메커니즘을 습득된 형질의 유전이라고 생각했다. ...  


1886년에 스펜서는, 비록 그 자신이 획득형질의 유전을 계속하여 믿는다고 크게 비판을 받아왔지만, 월러스도 인간의 진화 메커니즘으로서 최적자 생존을 버렸고 다윈도 후기 저작에서 동물들의 진화에 있어서 자연선택 이외의 메커니즘들에 대해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다윈은 정신과 사회에 가까워질수록 획득형질의 유전을 적용하였던 것이다. 스펜서는 1887년에 따로 출판된 책의 서문에서 그가 생물학 이론에서 획득형질의 유전에 그렇게 끈질기게 집착하나 이유는 그것이 심리학, 윤리학 그리고 사회학에 대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러써 그는 {{장|유기체의 진화의 요소들}}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쓰게 되었다. 그는 맬서스적인 요소가 더 단순한 종류의 정신 현상에 작용할지도 모른다고 인정하였으나, 그에게는 용불용(use and disuse)이 인간과 사회의 발전에 주된 요인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사회 전체가 우리가 보는 것처럼 그렇게 빨리 진보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고 그는 지적하였다. 맬서스 모델에서의 진보는 너무 간접적이고 너무 느렸던 것이다. 확고한 진화적 진보에 대한 스펜서 특유의 낙관적인 신념은 맬서스를 응용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맬서스로 하여금 『인구론』의 논쟁적인 초판을 쓰도록 유도했던 이론들을 상기시켜준다. 스펜서의 자유방임적 낙관주의는 맬서스보다 루소, 콩도르세, 고드윈과 훨씬 가까웠다. 물론 스펜서도 투쟁의 역할을 인정했지만 그것은 진보의 빛을 받고 있었다. 이것이 자연의 에너지의 진정한 근원임에 틀립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스펜서의 진화이론은 부정적인 예였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반맬서스적이었던 것이다. ...
1886년에 스펜서는, 비록 그 자신이 획득형질의 유전을 계속하여 믿는다고 크게 비판을 받아왔지만, 월러스도 인간의 진화 메커니즘으로서 최적자 생존을 버렸고 다윈도 후기 저작에서 동물들의 진화에 있어서 자연선택 이외의 메커니즘들에 대해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다윈은 정신과 사회에 가까워질수록 획득형질의 유전을 적용하였던 것이다. 스펜서는 1887년에 따로 출판된 책의 서문에서 그가 생물학 이론에서 획득형질의 유전에 그렇게 끈질기게 집착하나 이유는 그것이 심리학, 윤리학 그리고 사회학에 대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그는 {{장|유기체의 진화의 요소들}}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쓰게 되었다. 그는 맬서스적인 요소가 더 단순한 종류의 정신 현상에 작용할지도 모른다고 인정하였으나, 그에게는 용불용(use and disuse)이 인간과 사회의 발전에 주된 요인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사회 전체가 우리가 보는 것처럼 그렇게 빨리 진보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고 그는 지적하였다. 맬서스 모델에서의 진보는 너무 간접적이고 너무 느렸던 것이다. 확고한 진화적 진보에 대한 스펜서 특유의 낙관적인 신념은 맬서스를 응용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맬서스로 하여금 『인구론』의 논쟁적인 초판을 쓰도록 유도했던 이론들을 상기시켜준다. 스펜서의 자유방임적 낙관주의는 맬서스보다 루소, 콩도르세, 고드윈과 훨씬 가까웠다. 물론 스펜서도 투쟁의 역할을 인정했지만 그것은 진보의 빛을 받고 있었다. 이것이 자연의 에너지의 진정한 근원임에 틀립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스펜서의 진화이론은 부정적인 예였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반맬서스적이었던 것이다. ...


===VIII. 사회주의 : 다윈과 맬서스의 분리 ===
===VIII. 사회주의 : 다윈과 맬서스의 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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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레이즈 스테판, [[인종과 젠더: 과학에서 유비의 역할]]
*낸시 레이즈 스테판, [[인종과 젠더: 과학에서 유비의 역할]]
*피터 보울러, [[진화론의 사회적 함의들]]
*피터 보울러, [[진화론의 사회적 함의들]]
*[[맬서스와 진화론]] (이 글의 요약)


[[분류:과학사]]
[[분류:과학사]]
[[분류:진화론]]
[[분류:진화론]]
[[분류:로버트 영(Robert Young)]]
[[분류:로버트 영(Robert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