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 철학의 지적 배경"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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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수많은 의심을 거친 후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제1원리를 이끌어냈다. 즉 내가 무언가를 잘못 보든, 꿈을 꾸든, 악마에게 기만당했든, 내가 지금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며, 생각을 하는 주체인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데카르트는 수많은 의심 끝에 명징한 지식 하나를 찾아낸 것이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탐색 과정을 ‘방법적 회의’라고도 부르는데, 왜냐하면 그는 회의주의를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에 반대하기 위해 ‘회의’, 즉 의심이라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많은 의심을 거친 후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제1원리를 이끌어냈다. 즉 내가 무언가를 잘못 보든, 꿈을 꾸든, 악마에게 기만당했든, 내가 지금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며, 생각을 하는 주체인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데카르트는 수많은 의심 끝에 명징한 지식 하나를 찾아낸 것이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탐색 과정을 ‘방법적 회의’라고도 부르는데, 왜냐하면 그는 회의주의를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에 반대하기 위해 ‘회의’, 즉 의심이라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무리 확실한 지식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토대로 도대체 어떤 중요한 지식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현대인들의 눈에는 다소 무모한 일처럼 보이지만, 데카르트는 그로부터 세계의 작동을 설명할 수 있는 자연법칙을 도출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데카르트는 우선 나의 존재로부터 완전한 신의 존재를 도출한 후, 신의 완전성으로부터 세 가지 자연법칙을 도출했다. 그의 제1법칙에 따르면, 물체는 다른 물체와 충돌하지 않는 한 동일한 운동 상태를 유지한다. 제2법칙에 따르면, 충돌에 의해 각 물체의 운동이 변하더라도, 우주 전체의 운동량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된다. 제3법칙에 따르면, 물체의 기본적인 운동은 직선 방향의 운동이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이 법칙들은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세계를 창조한 신이 완전하기에 그의 작업이 결코 변할 수 없다는 점으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된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무리 확실한 지식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토대로 도대체 어떤 중요한 지식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현대인들의 눈에는 다소 무모한 일처럼 보이지만, 데카르트는 그로부터 세계의 작동을 설명할 수 있는 자연법칙을 도출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데카르트는 우선 나의 존재로부터 완전한 신의 존재를 도출한 후, 신의 완전성으로부터 세 가지 자연법칙을 도출했다. 그의 제1법칙에 따르면, 물체는 다른 물체와 충돌하지 않는 한 동일한 운동 상태를 유지한다. 제2법칙에 따르면, 물체의 기본적인 운동은 직선 방향의 운동이다. 제3법칙에 따르면, 충돌에 의해 각 물체의 운동이 변하더라도, 우주 전체의 운동량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된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이 법칙들은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세계를 창조한 신이 완전하기에 그의 작업이 결코 변할 수 없다는 점으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된 것이었다.<ref>"우리는 자기 자신에 있어서 불변한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최대로 지속적이며 불변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는 것도 신이 가지고 있는 완전성임을 알고 있다. … 따라서 신은 … 물질을 창조할 때의 바로 그 방식과 방법에 따라 물질을 보존하기 때문에 그가 항상 동일한 양의 운동을 물질 속에 보존한다." 데카르트 지음, 원석영 옮김, 『철학의 원리』 (아카넷, 2002), 97-98쪽, 2부 36절에서.</ref>


오늘날 많은 철학자들은 데카르트가 내세운 제1원리의 명징성에 대해 의심하며, 제1원리로부터 세 가지 자연법칙을 도출하는 추론의 타당성에 대해서도 의심한다. 또한 데카르트 본인도 세계의 구체적인 작동을 파악하려면 자연법칙뿐 아니라 관찰과 실험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러한 점들은 데카르트가 내세운 연역적 지식 탐구 프로그램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가 제안한 자연법칙은 대단히 성공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데카르트가 이성적 추론으로만 도출했다고 주장한 세 가지 법칙은 모두 근대 물리학의 근본 법칙으로 수용되었는데, 오늘날 그의 제1법칙과 제3법칙은 함께 묶여서 직선 관성의 법칙이라 불리고, 제2법칙은 운동량 보존 법칙이라 불린다.
오늘날 많은 철학자들은 데카르트가 내세운 제1원리의 명징성에 대해 의심하며, 제1원리로부터 세 가지 자연법칙을 도출하는 추론의 타당성에 대해서도 의심한다. 또한 데카르트 본인도 세계의 구체적인 작동을 파악하려면 자연법칙뿐 아니라 관찰과 실험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러한 점들은 데카르트가 내세운 연역적 지식 탐구 프로그램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가 제안한 자연법칙은 대단히 성공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데카르트가 이성적 추론으로만 도출했다고 주장한 세 가지 법칙은 모두 근대 물리학의 근본 법칙으로 수용되었는데, 오늘날 그의 제1법칙과 제2법칙은 함께 묶여서 직선 관성의 법칙이라 불리고, 제3법칙은 운동량 보존 법칙이라 불린다.


그렇다면 데카르트의 자연법칙의 내용은 어디서 온 것일까? 과학사학자들은 그의 새로운 자연법칙이 우주 체계를 둘러싼 당시의 논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데카르트의 자연법칙의 내용은 어디서 온 것일까? 과학사학자들은 그의 새로운 자연법칙이 우주 체계를 둘러싼 당시의 논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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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
== 결론 ==


데카르트의 자연법칙이 그의 명시적인 전제들로부터만 추론됐다는 그의 얘기는 분명 과장이지만, 그 자연법칙을 발견하고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이성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첫째, 그의 자연법칙은 경험적 사실을 무시한 채 오직 무한 우주론에 어울리는 원리를 찾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둘째, 그의 자연법칙과 경험적 사실이 맺는 관계는 너무나 복잡했기에, 그는 이성에만 호소하는 독특한 정당화 논변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
데카르트의 자연법칙이 그의 명시적인 전제들로부터만 추론됐다는 그의 얘기는 분명 과장이지만, 그 자연법칙을 발견하고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이성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의 사고실험과 이성적 추론은 그가 감각 경험에 기초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상식적 세계관을 극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그는 색깔, 무게 등의 대상의 관찰된 성질을 물체의 진짜 성질로 착각하지 말 것을 당부했는데, 그는 “지구가 구성될 때 신이 물체 속에 어떤 무게를 넣지 않았다고 가정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모든 물체의 부분들이 지구의 중심을 향하여 정확히 끌리고 있는가?”와 같은 문제를 풀어야 했던 것이다. 세계의 진상은 "정신을 감각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야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진 데카르트의 과학은 경험을 통대 반증될 수 없는 독단적인 과학이 될 위험이 있었다.
 
== 주석 ==
<references />


== 관련 항목 ==
== 관련 항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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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머스 쿤, [[코페르니쿠스 혁명/아리스토텔레스 사상과 2구체 우주#아리스토텔레스적 플레넘]]
* 토머스 쿤, [[코페르니쿠스 혁명/아리스토텔레스 사상과 2구체 우주#아리스토텔레스적 플레넘]]
* 토머스 쿤, [[코페르니쿠스 혁명/새로운 우주]]
* 토머스 쿤, [[코페르니쿠스 혁명/새로운 우주]]
[[분류:철학]]
[[분류:과학사]]
[[분류:과학사]]
[[분류:과학철학]]
[[분류:과학철학]]
[[분류:데카르트]]
[[분류:데카르트]]
[[분류:천문학 혁명]]
[[분류:천문학 혁명]]
[[분류:근대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