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중립적 과학의 대안 찾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56 바이트 추가됨 ,  2025년 12월 25일 (목) 15:20
잔글
잔글 (→‎본문)
잔글 (→‎본문)
7번째 줄: 7번째 줄:




정동욱 ([https://sophia.gnu.ac.kr 경상국립대학교 철학과])
정동욱 ([mailto:zolaist@gnu.ac.kr zolaist@gnu.ac.kr])
 
[https://sophia.gnu.ac.kr 경상국립대학교 철학과]
 




24번째 줄: 27번째 줄:
===2. 가치중립성 이념의 두 가지 대안===
===2. 가치중립성 이념의 두 가지 대안===


====1)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
====2.1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은 과학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다. 여성주의 과학 비판가들은 다양한 사례 연구들을 통해 잘 확립된 듯 보이는 과학의 연구들에 침투한 남성중심적 가치들을 폭로해 왔다. 헬렌 론지노(Helen E. Longino 1990), 케이틀린 오크룰릭(Kathleen Okruhlik 1998) 등의 여성주의 과학철학자들은 이러한 사례연구들에 기반하여, 과학자 공동체는 더 많은 가치를 포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논증을 펼쳤다.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은 과학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다. 여성주의 과학 비판가들은 다양한 사례 연구들을 통해 잘 확립된 듯 보이는 과학의 연구들에 침투한 남성중심적 가치들을 폭로해 왔다. 헬렌 론지노(Helen E. Longino 1990), 케이틀린 오크룰릭(Kathleen Okruhlik 1998) 등의 여성주의 과학철학자들은 이러한 사례연구들에 기반하여, 과학자 공동체는 더 많은 가치를 포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논증을 펼쳤다.
42번째 줄: 45번째 줄:
둘째,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은 대안가설들 사이의 평가와 선택이 과학의 내적 과정에 의해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다소 낙관적인 가정에 기대고 있다. 상호 비판 및 배경가정에 대한 급진적 대안 제시를 통해 더 나은 과학이 가능하다는 기획은 비판적 소통이 생산적일 수 있을 때에나 바람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염두에 둔 론지노는 비판적 소통의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론간 공약불가능성을 부정했다. 또한 론지노는 비판적 소통이 항상 생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를 위한 네 가지 규범적 조건으로 비판의 공공성, 공유된 기준, 공동체의 응답, 지적 권위의 평등을 제시했다(Longino (1990), Ch. 4). 그러나 이러한 론지노의 기획은 여전히 낙관적인 바람이 될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론지노가 권장하는 심층적인 배경가정에 대한 의심은 과학에서의 시험과 평가를 더욱 어려운 문제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토머스 쿤(Thomas S. Kuhn)이 지적하듯, 분명한 시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명확한 규칙이 있어야 하지만,<ref>쿤 (2013), 4장과 9장을 참고할 것. 4장에서는 패러다임이 명확한 규칙을 제공해주는 경우를 묘사하는 반면, 9장에서는 패러다임 사이의 싸움으로 명확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를 묘사하고 있다.</ref> 론지노는 그동안 시험의 기반이 되어온 암묵적 규칙을 의심해 보라고 권하기 때문이다. 시험의 기반이 되어 온 규칙이 정당화되지 않는 가정에 불과하다고 의심할 때, 우리는 그 의심을 어디에 기대어 시험할 수 있을까? 이는 과학적/사회적 논쟁거리가 되었던 진화심리학의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진화심리학과 관련된 논쟁이 그토록 오래 지속된 이유는 해당 이론의 배경가정이 수면 아래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가정을 투명하게 공개한 이후에도 손쉽게 평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은 대안가설들 사이의 평가와 선택이 과학의 내적 과정에 의해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다소 낙관적인 가정에 기대고 있다. 상호 비판 및 배경가정에 대한 급진적 대안 제시를 통해 더 나은 과학이 가능하다는 기획은 비판적 소통이 생산적일 수 있을 때에나 바람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염두에 둔 론지노는 비판적 소통의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론간 공약불가능성을 부정했다. 또한 론지노는 비판적 소통이 항상 생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를 위한 네 가지 규범적 조건으로 비판의 공공성, 공유된 기준, 공동체의 응답, 지적 권위의 평등을 제시했다(Longino (1990), Ch. 4). 그러나 이러한 론지노의 기획은 여전히 낙관적인 바람이 될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론지노가 권장하는 심층적인 배경가정에 대한 의심은 과학에서의 시험과 평가를 더욱 어려운 문제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토머스 쿤(Thomas S. Kuhn)이 지적하듯, 분명한 시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명확한 규칙이 있어야 하지만,<ref>쿤 (2013), 4장과 9장을 참고할 것. 4장에서는 패러다임이 명확한 규칙을 제공해주는 경우를 묘사하는 반면, 9장에서는 패러다임 사이의 싸움으로 명확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를 묘사하고 있다.</ref> 론지노는 그동안 시험의 기반이 되어온 암묵적 규칙을 의심해 보라고 권하기 때문이다. 시험의 기반이 되어 온 규칙이 정당화되지 않는 가정에 불과하다고 의심할 때, 우리는 그 의심을 어디에 기대어 시험할 수 있을까? 이는 과학적/사회적 논쟁거리가 되었던 진화심리학의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진화심리학과 관련된 논쟁이 그토록 오래 지속된 이유는 해당 이론의 배경가정이 수면 아래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가정을 투명하게 공개한 이후에도 손쉽게 평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2)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
====2.2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은 과학자가 과학자로서 수행하는 과학적 추론에서 가치를 명시적으로 고려할 것을 주문한다. 이를 옹호하는 대표적인 논증은 헤더 더글러스가 러드너의 논증을 복원하여 공론화한 ‘귀납적 위험’(inductive risk) 논증으로, 이 논증은 우리가 어딘가에 활용할 정보를 선별할 때 그 정보의 오류 가능성뿐 아니라 오류에 따른 위험의 크기도 고려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점에 주목한다(Rudner 1953; Douglas 2009). 최근 천현득(2024, 178-179쪽)이 재정식화한 러드너의 논증은 다음과 같다.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은 과학자가 과학자로서 수행하는 과학적 추론에서 가치를 명시적으로 고려할 것을 주문한다. 이를 옹호하는 대표적인 논증은 헤더 더글러스가 러드너의 논증을 복원하여 공론화한 ‘귀납적 위험’(inductive risk) 논증으로, 이 논증은 우리가 어딘가에 활용할 정보를 선별할 때 그 정보의 오류 가능성뿐 아니라 오류에 따른 위험의 크기도 고려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점에 주목한다(Rudner 1953; Douglas 2009). 최근 천현득(2024, 178-179쪽)이 재정식화한 러드너의 논증은 다음과 같다.  
59번째 줄: 62번째 줄:
둘째, 귀납적 위험 논증은 사실 판단에 가치 판단이 포함되어 있음을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사실 판단이 가치 판단으로 대체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에 대한 수용/거부에 대한 판단을 위해 가치를 명시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표자인 더글러스조차도 가치에 대한 고려는 사실 판단에 간접적으로만 개입해야 한다는 단서를 단다. 즉, “가치는 오직 불확실성의 현 수준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이유로만, 혹은 증거가 어떤 선택을 뒷받침하는 데 충분하다는 판단을 하는 이유로만 이용되어야지, 선택지들 자체를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이유로 이용돼선 안 된다.”(Douglas 2009, p. 97)
둘째, 귀납적 위험 논증은 사실 판단에 가치 판단이 포함되어 있음을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사실 판단이 가치 판단으로 대체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에 대한 수용/거부에 대한 판단을 위해 가치를 명시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표자인 더글러스조차도 가치에 대한 고려는 사실 판단에 간접적으로만 개입해야 한다는 단서를 단다. 즉, “가치는 오직 불확실성의 현 수준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이유로만, 혹은 증거가 어떤 선택을 뒷받침하는 데 충분하다는 판단을 하는 이유로만 이용되어야지, 선택지들 자체를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이유로 이용돼선 안 된다.”(Douglas 2009, p. 97)


====3) 두 이념 사이의 긴장====
====2.3 두 이념 사이의 긴장====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은 과학자 공동체에게 더 많은 가치를 포용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주문하고,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은 과학자의 과학적 판단 과정에서 가치를 명시적으로 고려할 것을 주문한다. 과학의 가치중립성 이념을 비판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두 이념은 자주 함께 등장한다.<ref>천현득(2024)도 과학의 가치중립성 이상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보이기 위해 더글러스나 해브스타드의 책임 논변에 이어 롤린과 인테만의 가치풍부화(value enrichment) 비판을 소개하고 있다(특히, 182-183쪽). 소개된 책임 논변과 가치풍부화 비판을 정식화한 것이 이 논문에서는 ‘가치지향적 과학’과 ‘가치포용적 과학’으로 표현되고 있다. </ref> 그러나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이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과 자연스럽게 결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둘의 결합은 다소 위험한 귀결을 낳기까지 한다.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은 과학자 공동체에게 더 많은 가치를 포용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주문하고,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은 과학자의 과학적 판단 과정에서 가치를 명시적으로 고려할 것을 주문한다. 과학의 가치중립성 이념을 비판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두 이념은 자주 함께 등장한다.<ref>천현득(2024)도 과학의 가치중립성 이상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보이기 위해 더글러스나 해브스타드의 책임 논변에 이어 롤린과 인테만의 가치풍부화(value enrichment) 비판을 소개하고 있다(특히, 182-183쪽). 소개된 책임 논변과 가치풍부화 비판을 정식화한 것이 이 논문에서는 ‘가치지향적 과학’과 ‘가치포용적 과학’으로 표현되고 있다. </ref> 그러나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이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과 자연스럽게 결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둘의 결합은 다소 위험한 귀결을 낳기까지 한다.  
75번째 줄: 78번째 줄:
===3. 과학의 규범적 이념의 조건===
===3. 과학의 규범적 이념의 조건===


====1) 직업 윤리로서의 과학의 규범적 이념====
====3.1 직업 윤리로서의 과학의 규범적 이념====


나는 과학의 규범적 이념은 과학의 사회적 역할에 의존하여 정해져야 한다고 전제한다. 이런 전제를 가정하면, 과학은 당연히 가치지향적이라는 게 따라나오겠지만, 과학의 내용도 가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곧바로 따라나오진 않는다. 과학의 내용이 가치중립적이도록 규제함으로써 과학이 수행해야 할 사회적 역할을 더 잘 할 가능성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자 개인이 가설의 수용/거부와 관련된 의사결정을 할 때 가치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해서, 과학의 내용이 가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따라나오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과학이라는 제도의 다양한 규범과 보상 체계가 과학자 개인의 가치 판단에서 사회적 가치를 덜 고려하는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도 가능하며, 만약 그러한 방향이 바람직하고 현실적이라면 과학은 가치중립적인 규범적 이념도 가질 수 있다. 즉 과학의 과학의 규범적 이념은 개인 수준이 아닌 집단 수준에서 모색되어야 하고, 그 내용은 과학의 사회적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제도적 규범들을 통해 드러날 텐데, 그 제도적 규범의 내용이 반드시 가치지향성을 담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는 과학의 규범적 이념은 과학의 사회적 역할에 의존하여 정해져야 한다고 전제한다. 이런 전제를 가정하면, 과학은 당연히 가치지향적이라는 게 따라나오겠지만, 과학의 내용도 가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곧바로 따라나오진 않는다. 과학의 내용이 가치중립적이도록 규제함으로써 과학이 수행해야 할 사회적 역할을 더 잘 할 가능성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자 개인이 가설의 수용/거부와 관련된 의사결정을 할 때 가치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해서, 과학의 내용이 가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따라나오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과학이라는 제도의 다양한 규범과 보상 체계가 과학자 개인의 가치 판단에서 사회적 가치를 덜 고려하는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도 가능하며, 만약 그러한 방향이 바람직하고 현실적이라면 과학은 가치중립적인 규범적 이념도 가질 수 있다. 즉 과학의 과학의 규범적 이념은 개인 수준이 아닌 집단 수준에서 모색되어야 하고, 그 내용은 과학의 사회적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제도적 규범들을 통해 드러날 텐데, 그 제도적 규범의 내용이 반드시 가치지향성을 담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83번째 줄: 86번째 줄:
과학의 내부 규범 또는 직업 윤리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고민한다면, 일반적인 귀납적 위험 논증으로부터 “사회적 영향을 고려하여 가설 수용을 위한 증거 수준을 조정하라”는 구체적인 규칙은 따라나오지 않을 수 있다. 귀납적 위험 논증은 지나치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과학의 구체적인 내부 규범을 설정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며, 규칙은 개별적인 사안보다 그 규칙의 준수에 따른 장기적인 귀결을 고려하여 정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과학적 추론에서 가치나 사회적 영향은 원칙적으로 고려하지 말라”는 규칙이 장기적으로 좋은 사회적 영향을 낳는다면, 그런 규칙도 채택될 수 있다. 이에 대한 검토를 위해 과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재점검할 필요가 있는데, 아래에서는 그에 대한 완전한 답을 제공하기보다는, 단지 과학이 사회 전체를 위한 정보 제공자 역할뿐 아니라 중재자 역할도 담당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과학의 내부 규범 또는 직업 윤리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고민한다면, 일반적인 귀납적 위험 논증으로부터 “사회적 영향을 고려하여 가설 수용을 위한 증거 수준을 조정하라”는 구체적인 규칙은 따라나오지 않을 수 있다. 귀납적 위험 논증은 지나치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과학의 구체적인 내부 규범을 설정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며, 규칙은 개별적인 사안보다 그 규칙의 준수에 따른 장기적인 귀결을 고려하여 정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과학적 추론에서 가치나 사회적 영향은 원칙적으로 고려하지 말라”는 규칙이 장기적으로 좋은 사회적 영향을 낳는다면, 그런 규칙도 채택될 수 있다. 이에 대한 검토를 위해 과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재점검할 필요가 있는데, 아래에서는 그에 대한 완전한 답을 제공하기보다는, 단지 과학이 사회 전체를 위한 정보 제공자 역할뿐 아니라 중재자 역할도 담당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2) 과학의 새로운 사회적 역할과 귀납적 위험 논증의 한계====
====3.2 과학의 새로운 사회적 역할과 귀납적 위험 논증의 한계====
[[파일:가로-세로 착시.png|대체글=가로-세로 착시|섬네일|그림 1. 가로-세로 착시]]
[[파일:가로-세로 착시.png|대체글=가로-세로 착시|섬네일|그림 1. 가로-세로 착시]]
사회 속에서 과학이 담당하는 역할을 이해하기 앞서, 개인 내부에서 지각이 담당하는 역할을 생각해보자. 단순화하여 이해할 때, 개인의 감각-행위 과정은 감각 입력 → 지각 판단 → 행위 판단 → 행위 출력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위험은 지각 판단 과정에서도 행위 판단 과정에서도 고려될 수 있는데, 우리가 경험하는 다양한 착시들은 지각 판단 결과물에도 위험이 반영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예컨대, 그림 1의 가로선과 세로선은 길이가 같지만, 우리는 세로선을 가로선보다 길게 인식한다. 이러한 가로-세로 착시는 위험한 높은 곳에 올라가는 행동을 예방하는 적응의 산물로 설명될 수 있다(전중환 2019, 52-53쪽). 다시 말해, 인간의 지각 부서는 위험을 고려하여 그에 알맞은 형태의 지각 판단을 행위 판단 부서에 넘기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안전’한 행동을 요구하는 맥락에서 이렇게 위험을 고려한 지각 판단 결과물은 이후 안전한 행동을 산출하는 데 매우 효율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특화돼버린 지각에는 댓가가 따른다. 다른 목적의 행위 맥락에서는 이렇게 자동화된 지각 판단을 바로 잡는 데 수고가 들 것이기 때문이다. 위험과 전혀 관련이 없는 추상적 평면 도형의 문제를 다루는 맥락에서조차 인간은 자신의 눈으로는 두 선분의 길이를 동일하게 볼 수 없기 때문에, ‘자’와 같은 도구를 사용해야만 착시를 ‘극복’할 수 있다.  
사회 속에서 과학이 담당하는 역할을 이해하기 앞서, 개인 내부에서 지각이 담당하는 역할을 생각해보자. 단순화하여 이해할 때, 개인의 감각-행위 과정은 감각 입력 → 지각 판단 → 행위 판단 → 행위 출력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위험은 지각 판단 과정에서도 행위 판단 과정에서도 고려될 수 있는데, 우리가 경험하는 다양한 착시들은 지각 판단 결과물에도 위험이 반영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예컨대, 그림 1의 가로선과 세로선은 길이가 같지만, 우리는 세로선을 가로선보다 길게 인식한다. 이러한 가로-세로 착시는 위험한 높은 곳에 올라가는 행동을 예방하는 적응의 산물로 설명될 수 있다(전중환 2019, 52-53쪽). 다시 말해, 인간의 지각 부서는 위험을 고려하여 그에 알맞은 형태의 지각 판단을 행위 판단 부서에 넘기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안전’한 행동을 요구하는 맥락에서 이렇게 위험을 고려한 지각 판단 결과물은 이후 안전한 행동을 산출하는 데 매우 효율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특화돼버린 지각에는 댓가가 따른다. 다른 목적의 행위 맥락에서는 이렇게 자동화된 지각 판단을 바로 잡는 데 수고가 들 것이기 때문이다. 위험과 전혀 관련이 없는 추상적 평면 도형의 문제를 다루는 맥락에서조차 인간은 자신의 눈으로는 두 선분의 길이를 동일하게 볼 수 없기 때문에, ‘자’와 같은 도구를 사용해야만 착시를 ‘극복’할 수 있다.  
97번째 줄: 100번째 줄:
이러한 문제를 염두에 두고서 슈뢰더(Schroeder 2017)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과학자가 자신의 증거 기준을 민주적 가치, 즉 사회의 다수가 추구하는 가치에 정렬(align)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슈뢰더는 이러한 가치 정렬이 과학자의 정치적 권리를 빼앗는다는 부담을 가지지만, 그 부담은 대중의 정치적 자율성과 의사결정 능력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더 큰 장점을 통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과학을 전체 사회를 위한 도구로 보는 관점으로, 그는 과학자에게 일종의 공무원과 같은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러한 역할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염두에 두고서 슈뢰더(Schroeder 2017)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과학자가 자신의 증거 기준을 민주적 가치, 즉 사회의 다수가 추구하는 가치에 정렬(align)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슈뢰더는 이러한 가치 정렬이 과학자의 정치적 권리를 빼앗는다는 부담을 가지지만, 그 부담은 대중의 정치적 자율성과 의사결정 능력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더 큰 장점을 통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과학을 전체 사회를 위한 도구로 보는 관점으로, 그는 과학자에게 일종의 공무원과 같은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러한 역할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3) 가치중립성 이념으로 회귀할 것인가?====
====3.3 가치중립성 이념으로 회귀할 것인가?====


과학이 특정한 목적과 맥락에 특화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뿐 아니라, 다양한 맥락에서 활용될 수 있는 범용 정보의 제공자이자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의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 대한 강조는 가치중립성을 과학의 규범적 이념으로 채택하자는 제안으로 보일 수 있다. 물론 앞의 논의는 귀납적 위험 논증에 기초한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을 약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가치중립적 과학의 이념으로 회귀하자는 의도는 아니다.  
과학이 특정한 목적과 맥락에 특화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뿐 아니라, 다양한 맥락에서 활용될 수 있는 범용 정보의 제공자이자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의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 대한 강조는 가치중립성을 과학의 규범적 이념으로 채택하자는 제안으로 보일 수 있다. 물론 앞의 논의는 귀납적 위험 논증에 기초한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을 약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가치중립적 과학의 이념으로 회귀하자는 의도는 아니다.  
128번째 줄: 131번째 줄:
이러한 비판과 대응은 이미 지나간 옛날 얘기가 아니다. 진화심리학자 전중환은 2019년 저서 『진화한 마음』에서 진화심리학에 대한 오해가 여전하다며, “흔한 오해들”이라는 제목의 한 장을 통째로 할애하여 위와 같은 변호를 길게 서술하는 한편, 각 장 말미에도 유사한 변호의 말을 적어두었다. 그렇다면 대략 50년이 되도록 비판가들은 정치적 악용 가능성에 기초하여 진화심리학의 내용을 비판하고, 진화심리학자들은 오해를 받고 있다며 억울해 하는 상황이 지속되어 왔다는 것인데, 우리는 여기서 어떤 흥미로운 사실과 교훈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이러한 비판과 대응은 이미 지나간 옛날 얘기가 아니다. 진화심리학자 전중환은 2019년 저서 『진화한 마음』에서 진화심리학에 대한 오해가 여전하다며, “흔한 오해들”이라는 제목의 한 장을 통째로 할애하여 위와 같은 변호를 길게 서술하는 한편, 각 장 말미에도 유사한 변호의 말을 적어두었다. 그렇다면 대략 50년이 되도록 비판가들은 정치적 악용 가능성에 기초하여 진화심리학의 내용을 비판하고, 진화심리학자들은 오해를 받고 있다며 억울해 하는 상황이 지속되어 왔다는 것인데, 우리는 여기서 어떤 흥미로운 사실과 교훈을 발견할 수 있을까?  


==== 1) 상이한 접근법의 공존과 상호작용 ====
==== 4.1 상이한 접근법의 공존과 상호작용 ====
랠런드와 브라운에 따르면, 진화심리학은 현재 인간 행동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법 중 가장 많은 연구자를 보유하고 활발히 연구가 이루어지는 접근법이다(랠런드와 브라운 2014, 371-375쪽).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보편적 특성만을 설명하겠다는 소박한 목표에서 출발했고, 100만년이 넘는 플라이스토세를 거치며 진화된 심리 기제는 최근 1만년 사이에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 가정했다. 또한 인간의 심리 기제는 범용 프로그램이기보다 특수 목적 프로그램일 거라 가정했는데, 이러한 가정들은 연구의 초점을 단순화시키는 동시에 풍부한 연구 질문들을 낳으며 진화심리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 가정들은 제대로 정당화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쉽게 반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랠런드와 브라운에 따르면, 진화심리학은 현재 인간 행동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법 중 가장 많은 연구자를 보유하고 활발히 연구가 이루어지는 접근법이다(랠런드와 브라운 2014, 371-375쪽).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보편적 특성만을 설명하겠다는 소박한 목표에서 출발했고, 100만년이 넘는 플라이스토세를 거치며 진화된 심리 기제는 최근 1만년 사이에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 가정했다. 또한 인간의 심리 기제는 범용 프로그램이기보다 특수 목적 프로그램일 거라 가정했는데, 이러한 가정들은 연구의 초점을 단순화시키는 동시에 풍부한 연구 질문들을 낳으며 진화심리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 가정들은 제대로 정당화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쉽게 반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136번째 줄: 139번째 줄:


다른 종과의 신중한 비교 연구도 진화심리학에 다양한 제동을 걸어주었다. 첫째, 진화심리학의 비판가들은 다양한 생물 종마다 짝짓기 전략이 상이함을 보여주는 발견들에 주목했다. 많은 포유류들이 “수컷은 경쟁하고 암컷이 신중하게 선택한다”는 모델을 따르긴 했지만, 반대의 전략을 가진 종들도 존재했다. 물론 이러한 발견은 트리버스의 부모 투자 가설을 곧장 반박해주진 못한다. 왜냐하면 반대 전략을 가진 종들은 대부분 수컷의 부모 투자가 상대적으로 큰 종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 발견들은 부모 투자 가설만으로는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단순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둘째, 많은 비판가들은 인간만의 독특한 조건들을 강조함으로써, 젠더 유사성 가설의 설득력을 높였다. 예컨대, 세라 허디는 랑구르 원숭이에 대한 연구에서 암컷의 전략을 발견한 것처럼, 다른 포유류나 영장류와는 다른 인간의 특이한 조건에 주목하며 여성과 아기 및 다른 가족 사이의 전략이 공진화했음을 발견했다. 예컨대 인간만의 가혹한 양육 부담은 인간 사회에서 자주 발생하는 여성의 영아 유기를 설명하며, 남성과 친족의 공동 육아 전략의 진화를 설명한다. 그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도 종간 비교 연구를 통해, 인간의 생물학적 이형성(남녀의 크기 및 형태 차이) 수준은 큰 편이 아니며, 인간은 남녀 모두 짝 선택 과정에서 경쟁적이면서 신중한 특이한 종임을 드러냈다. 인간의 부모 투자 또한 포유류 중에서 드물게 양성이 공유하며, 이례적인 장기적 짝짓기 관계 및 협동 양육 모두 공통된 진화적 원인을 가지거나 상호 관련된 것으로 간주됐다.<ref>여성주의 진화심리학자들에 의한 발견들은 최근 연구결과들을 종합한 리뷰(Wilson, Miller & Crouse 2017)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 하지만 위버(Weaver 2017)는 여성주의적 진화심리학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며, 더욱 근본적인 비판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ref> 아기를 귀엽게 보는 인간의 보편적 성향은 여성 외의 친족 구성원들이 육아에 동참하는 형태의 적응이 일어났음을 시사했다. 이러한 발견들은 생물학적 적응과 문화적 적응, 유전자–문화 공진화가 얽혀 있음을 시사함으로써, 진화심리학의 고전적 가정들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다른 종과의 신중한 비교 연구도 진화심리학에 다양한 제동을 걸어주었다. 첫째, 진화심리학의 비판가들은 다양한 생물 종마다 짝짓기 전략이 상이함을 보여주는 발견들에 주목했다. 많은 포유류들이 “수컷은 경쟁하고 암컷이 신중하게 선택한다”는 모델을 따르긴 했지만, 반대의 전략을 가진 종들도 존재했다. 물론 이러한 발견은 트리버스의 부모 투자 가설을 곧장 반박해주진 못한다. 왜냐하면 반대 전략을 가진 종들은 대부분 수컷의 부모 투자가 상대적으로 큰 종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 발견들은 부모 투자 가설만으로는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단순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둘째, 많은 비판가들은 인간만의 독특한 조건들을 강조함으로써, 젠더 유사성 가설의 설득력을 높였다. 예컨대, 세라 허디는 랑구르 원숭이에 대한 연구에서 암컷의 전략을 발견한 것처럼, 다른 포유류나 영장류와는 다른 인간의 특이한 조건에 주목하며 여성과 아기 및 다른 가족 사이의 전략이 공진화했음을 발견했다. 예컨대 인간만의 가혹한 양육 부담은 인간 사회에서 자주 발생하는 여성의 영아 유기를 설명하며, 남성과 친족의 공동 육아 전략의 진화를 설명한다. 그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도 종간 비교 연구를 통해, 인간의 생물학적 이형성(남녀의 크기 및 형태 차이) 수준은 큰 편이 아니며, 인간은 남녀 모두 짝 선택 과정에서 경쟁적이면서 신중한 특이한 종임을 드러냈다. 인간의 부모 투자 또한 포유류 중에서 드물게 양성이 공유하며, 이례적인 장기적 짝짓기 관계 및 협동 양육 모두 공통된 진화적 원인을 가지거나 상호 관련된 것으로 간주됐다.<ref>여성주의 진화심리학자들에 의한 발견들은 최근 연구결과들을 종합한 리뷰(Wilson, Miller & Crouse 2017)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 하지만 위버(Weaver 2017)는 여성주의적 진화심리학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며, 더욱 근본적인 비판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ref> 아기를 귀엽게 보는 인간의 보편적 성향은 여성 외의 친족 구성원들이 육아에 동참하는 형태의 적응이 일어났음을 시사했다. 이러한 발견들은 생물학적 적응과 문화적 적응, 유전자–문화 공진화가 얽혀 있음을 시사함으로써, 진화심리학의 고전적 가정들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2) 과장된 불일치와 점진적 일치====
====4.2 과장된 불일치와 점진적 일치====


진화심리학자들은 앞서 살펴본 다양한 비판들에 대해 진화심리학 자체에 대한 비판이기보다 진화심리학의 연구 프로그램 내에서 포용될 수 있는 다양성과 유연성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는 진화심리학의 자연스러운 발전이라기보다 다양한 비판에 대한 점진적 수용 과정이자, 고전적 가정들의 약화 과정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또한 비판가들의 주장들도 점차 진화심리학과 양립가능한 방식으로 체계화되는 모습을 띠고 있다. 즉, 겉보기에 평행선을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양측의 논쟁 과정에서, 서로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앞서 살펴본 다양한 비판들에 대해 진화심리학 자체에 대한 비판이기보다 진화심리학의 연구 프로그램 내에서 포용될 수 있는 다양성과 유연성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는 진화심리학의 자연스러운 발전이라기보다 다양한 비판에 대한 점진적 수용 과정이자, 고전적 가정들의 약화 과정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또한 비판가들의 주장들도 점차 진화심리학과 양립가능한 방식으로 체계화되는 모습을 띠고 있다. 즉, 겉보기에 평행선을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양측의 논쟁 과정에서, 서로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145번째 줄: 148번째 줄:


이러한 점진적 일치는 ‘인간 본성’ 개념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나타난다. 문화진화론에 우호적인 팀 르윈스(Tim Lewens)는 진화심리학의 악영향을 우려하여 ‘인간 본성’ 개념을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본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고정 불변성이나 규범성을 연상시킴에 따라 윤리적 토론에서 혼란을 일으키고, 특정 인종이나 성에 대한 전형적 사고를 강화한다는 것이다(르윈스 2016, 7장, 특히 296쪽). 반면 진화심리학에 우호적인 에두아르 마셔리(Edouard Machery 2008)는 ‘인간 본성’ 개념을 단지 진화적으로 보편화된 인간 특성들의 집합으로 정의함으로써, 규범적 성격이나 고정 불변성에 대한 함축을 ‘본성’ 개념에서 빼면 된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 본성’ 개념의 찬반 양측의 내용적 차이가 과거<ref>‘인간 본성’을 둘러싼 과거의 논쟁은 에드워드 윌슨(Wilson 1978)과 데이비드 헐(Hull 1986)의 논쟁을 참고하라. 윌슨은 1978년 ''On Human Nature''라는 책을 출판하여 선천적인 인간 본성을 통해 사회 현상을 설명한 반면, 헐(David Hull)은 1986년 “On Human Nature”라는 논문에서 인간 본성이란 없다고 주장했다.</ref>에 비해 현저히 작아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진적 일치는 ‘인간 본성’ 개념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나타난다. 문화진화론에 우호적인 팀 르윈스(Tim Lewens)는 진화심리학의 악영향을 우려하여 ‘인간 본성’ 개념을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본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고정 불변성이나 규범성을 연상시킴에 따라 윤리적 토론에서 혼란을 일으키고, 특정 인종이나 성에 대한 전형적 사고를 강화한다는 것이다(르윈스 2016, 7장, 특히 296쪽). 반면 진화심리학에 우호적인 에두아르 마셔리(Edouard Machery 2008)는 ‘인간 본성’ 개념을 단지 진화적으로 보편화된 인간 특성들의 집합으로 정의함으로써, 규범적 성격이나 고정 불변성에 대한 함축을 ‘본성’ 개념에서 빼면 된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 본성’ 개념의 찬반 양측의 내용적 차이가 과거<ref>‘인간 본성’을 둘러싼 과거의 논쟁은 에드워드 윌슨(Wilson 1978)과 데이비드 헐(Hull 1986)의 논쟁을 참고하라. 윌슨은 1978년 ''On Human Nature''라는 책을 출판하여 선천적인 인간 본성을 통해 사회 현상을 설명한 반면, 헐(David Hull)은 1986년 “On Human Nature”라는 논문에서 인간 본성이란 없다고 주장했다.</ref>에 비해 현저히 작아졌다는 것이다.  
====3) 가치포용적 객관성과 방법적 제안====
====4.3 가치포용적 객관성과 방법적 제안====


진화심리학 논쟁의 사례는 문제 영역을 공유하면서도 대립하는 다양한 접근법들이 오랜 기간 합의 없이도 각자의 목표와 가정에 기초한 연구를 통해 경쟁하며 생산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각각의 접근법은 연구자들이 추구하는 상이한 가치들과 결부되어 있으며, 이는 상이한 목표와 가정에 기초한 연구를 이끈다. 서로의 목표나 가정은 쉽게 반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오류의 폭로는 대부분 결정적일 수 없다.
진화심리학 논쟁의 사례는 문제 영역을 공유하면서도 대립하는 다양한 접근법들이 오랜 기간 합의 없이도 각자의 목표와 가정에 기초한 연구를 통해 경쟁하며 생산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각각의 접근법은 연구자들이 추구하는 상이한 가치들과 결부되어 있으며, 이는 상이한 목표와 가정에 기초한 연구를 이끈다. 서로의 목표나 가정은 쉽게 반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오류의 폭로는 대부분 결정적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