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서스와 진화론자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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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거기서 나는 인간 사이에서의 전쟁・약탈・대학살이 동물들 사이에서는 초식동물에 대한 육식동물의 공격과 약한 동물에 대한 힘센 동물의 공격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다. 기아, 가뭄, 홍수, 그리고 겨울폭풍들은 사람에게보다 동물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동물은 인간보다 두 배 내지 천 배의 번식 능력을 갖고 있지만 항상 존재하는 연례적 파괴 또한 몇 배는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는 내게 번뜩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인용|거기서 나는 인간 사이에서의 전쟁・약탈・대학살이 동물들 사이에서는 초식동물에 대한 육식동물의 공격과 약한 동물에 대한 힘센 동물의 공격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다. 기아, 가뭄, 홍수, 그리고 겨울폭풍들은 사람에게보다 동물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동물은 인간보다 두 배 내지 천 배의 번식 능력을 갖고 있지만 항상 존재하는 연례적 파괴 또한 몇 배는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는 내게 번뜩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 월러스의 이후의 견해들은 생물학과 사회 이론에 대한 맬서스의 영향의 부정적인 면을 보여줄 수도 있다. 인간과 종의 기원에 관한 월러스의 관심이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의 공동 발견으로 이끌었지만 인간의 완성 가능성에 대한 그의 믿음은 그로 하여금 최적자 생존이 전적으로 충분하다는 것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였다. 그는 인간의 두뇌와 미적・도덕적 능력들에 관해 예외를 두게 되었고 점점 더 자연을 초월하는 어떤 힘에 의한 인간 욕구의 예견으로 기울게 되었다. 그는 효용의 원리가 인간의 진화에 대한 적절한 설명임을 이미 거부하였으므로 더 나가가서 맬서스에게서 그것이 기원했음을 거부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881년 월러스는 다윈에게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이 그에게 맬서스의 법칙이 인간의 진화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음을 확신시켜주었다고 편지했다. 조지는 자연의 풍요로움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데 인간이 실패한 것 때문에 자연이 비난받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월러스의 생각으로는 자발적인 협동과 개혁이 사회변혁의 메커니즘으로서 경쟁을 대체했다. 그는 맬서스의 이론이 {{"|그것에 의존해서 뒷받침되고 있는 광대한 사회적・정치적 문제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데에서 조지와 의견을 같이하게 되었다. 그는 『진보와 빈곤』이 {{"|아담 스미스에 의해 한 세기 전에 이루어진 것과 동등한 진보를 정치과학과 사회과학에서 이룩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조지는 {{"|자신의 세대에서 가장 강력한 사회주의적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주장할 만하다}}고 이야기 되었다. 1898년 『경이의 세기』를 쓸 때쯤에는 미래사회에 대한 월러스의 사회주의적 희망들이 그로 하여금 사회적 경쟁을 완전히 거부하게 하였고 어떤 메커니즘도 규정되지 않은 채 필연적인 지보에 대한 신념을 갖게 했다. 말년에 와서 월러스가 {{"|자연은 잔인한가?}}라는 물음을 다시 생각하고 고통의 목적과 한계를 논의하게 되었을 때 그는 동물세계에서의 맬서스적 경쟁을 인간의 진보에 대한 비맬서스적 견해와 양립시키는 교묘한 방법을 제공해주었다. 그의 해결은 그 단순함에 있어 거의 데카르트적이었다. 동물은 인간보다 고통을 아주 적게 느끼거나 거의 느끼지 않으며 실제로 문명화되지 않은 종족들은 문명화된 종족보다 (고통을) 적게 느낀다는 것이었다.
... 월러스의 이후의 견해들은 생물학과 사회 이론에 대한 맬서스의 영향의 부정적인 면을 보여줄 수도 있다. 인간과 종의 기원에 관한 월러스의 관심이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의 공동 발견으로 이끌었지만 인간의 완성 가능성에 대한 그의 믿음은 그로 하여금 최적자 생존이 전적으로 충분하다는 것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였다. 그는 인간의 두뇌와 미적・도덕적 능력들에 관해 예외를 두게 되었고 점점 더 자연을 초월하는 어떤 힘에 의한 인간 욕구의 예견으로 기울게 되었다. 그는 효용의 원리가 인간의 진화에 대한 적절한 설명임을 이미 거부하였으므로 더 나가가서 맬서스에게서 그것이 기원했음을 거부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881년 월러스는 다윈에게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이 그에게 맬서스의 법칙이 인간의 진화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음을 확신시켜주었다고 편지했다. 조지는 자연의 풍요로움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데 인간이 실패한 것 때문에 자연이 비난받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월러스의 생각으로는 자발적인 협동과 개혁이 사회변혁의 메커니즘으로서 경쟁을 대체했다. 그는 맬서스의 이론이 {{"|그것에 의존해서 뒷받침되고 있는 광대한 사회적・정치적 문제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데에서 조지와 의견을 같이하게 되었다. 그는 『진보와 빈곤』이 {{"|아담 스미스에 의해 한 세기 전에 이루어진 것과 동등한 진보를 정치과학과 사회과학에서 이룩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조지는 {{"|자신의 세대에서 가장 강력한 사회주의적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주장할 만하다}}고 이야기 되었다. 1898년 『경이의 세기』를 쓸 때쯤에는 미래사회에 대한 월러스의 사회주의적 희망들이 그로 하여금 사회적 경쟁을 완전히 거부하게 하였고 어떤 메커니즘도 규정되지 않은 채 필연적인 진보에 대한 신념을 갖게 했다. 말년에 와서 월러스가 {{"|자연은 잔인한가?}}라는 물음을 다시 생각하고 고통의 목적과 한계를 논의하게 되었을 때 그는 동물세계에서의 맬서스적 경쟁을 인간의 진보에 대한 비맬서스적 견해와 양립시키는 교묘한 방법을 제공해주었다. 그의 해결은 그 단순함에 있어 거의 데카르트적이었다. 동물은 인간보다 고통을 아주 적게 느끼거나 거의 느끼지 않으며 실제로 문명화되지 않은 종족들은 문명화된 종족보다 (고통을) 적게 느낀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