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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문화 개념의 기원 ====
==== 2. 문화 개념의 기원 ====
인류학적 문화 개념은 19세기 사상에서 여러 출처를 가지고 있다. 정통적인 정의는 Edward Bennett Tylor의 1871년 저서 "원시 문화"에서 인용한 것이다:<blockquote>문화 또는 문명은 넓은 민족지적 의미에서,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 관습,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인간이 획득한 기타 능력과 습관을 포함하는 복잡한 전체이다. (Tylor, 1871, 1)</blockquote>이 자주 인용되는 구절을 이해하려면 이론적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먼저 이 정의가 '문화'가 아닌 '문화 또는 문명'의 정의임을 주목하라. 영미권 인류학에서 '문화'와 '문명'은 종종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이 사용법은 20세기 초까지 지속되었다 (예: Kroeber, 1917; Sapir, 1924). Tylor의 프로젝트는 19세기 인류학의 전형적인 예였다. 그의 과학적 목표는 인간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 틀은 역사적이고 진화론적이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다윈주의는 아니었다). 그는 인간 집단이 거쳐야 할 단계를 상정했다. 인간 공동체 간의 차이는 일부가 낮은 단계의 문화 또는 문명에 머물러 있다는 것으로 설명되었다. 다른 인간 집단을 비교하고 그들의 위치를 식별하기 위해, Tylor는 공유된 특성과 잔존물을 살폈다. 예를 들어, 애니미즘은 전 세계적으로 식별될 수 있는 특성으로, Tylor는 이를 원시적 형태의 종교로 지정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 같은 집단은 그들의 종교가 이 특성을 보여준다는 이유로 더 낮은 단계에 배치되었다.
인류학적 문화 개념은 19세기 사상에서 여러 출처를 가지고 있다. 정통적인 정의는 Edward Bennett Tylor의 1871년 저서 "원시 문화"에서 인용한 것이다:
 
{{인용|문화 또는 문명은 넓은 민족지적 의미에서,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 관습,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인간이 획득한 기타 능력과 습관을 포함하는 복잡한 전체이다. (Tylor, 1871, 1)}}
 
이 자주 인용되는 구절을 이해하려면 이론적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먼저 이 정의가 '문화'가 아닌 '문화 또는 문명'의 정의임을 주목하라. 영미권 인류학에서 '문화'와 '문명'은 종종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이 사용법은 20세기 초까지 지속되었다 (예: Kroeber, 1917; Sapir, 1924). Tylor의 프로젝트는 19세기 인류학의 전형적인 예였다. 그의 과학적 목표는 인간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 틀은 역사적이고 진화론적이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다윈주의는 아니었다). 그는 인간 집단이 거쳐야 할 단계를 상정했다. 인간 공동체 간의 차이는 일부가 낮은 단계의 문화 또는 문명에 머물러 있다는 것으로 설명되었다. 다른 인간 집단을 비교하고 그들의 위치를 식별하기 위해, Tylor는 공유된 특성과 잔존물을 살폈다. 예를 들어, 애니미즘은 전 세계적으로 식별될 수 있는 특성으로, Tylor는 이를 원시적 형태의 종교로 지정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 같은 집단은 그들의 종교가 이 특성을 보여준다는 이유로 더 낮은 단계에 배치되었다.


Tylor의 사용법에서, 문화는 Émile Durkheim의 사회적 사실 및 집합적 의식과 달랐다. Tylor에게 문화는 전 세계적이고 역사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특성들의 집합이었다. 확산과 역사적 발달 단계를 통한 유사성과 차이점은 이러한 특성의 분포를 설명했다. 즉, 문화는 설명되어야 할 현상이었지, 이론적 가설이 아니었다. 반면, Durkheim은 특정 개인의 신념과는 별개의 사고 패턴의 존재를 상정했다. 이러한 사회적 사실은 Tylor의 문명이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설명력을 가졌다. 사회는 종교 의식에서 표현될 수 있으며, 사회 구조는 자살률과 같은 의도적 행동 패턴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는 그것들이 개인 행위자에 대한 사실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론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했다 (Durkheim [1912] 1915, [1895] 1938). 사회적 사실은 사물로 취급되기 때문에, 환원주의 및 사회 구조와 의도적 행동 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Durkheim에게는 Tylor에게는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제기되었다.
Tylor의 사용법에서, 문화는 Émile Durkheim의 사회적 사실 및 집합적 의식과 달랐다. Tylor에게 문화는 전 세계적이고 역사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특성들의 집합이었다. 확산과 역사적 발달 단계를 통한 유사성과 차이점은 이러한 특성의 분포를 설명했다. 즉, 문화는 설명되어야 할 현상이었지, 이론적 가설이 아니었다. 반면, Durkheim은 특정 개인의 신념과는 별개의 사고 패턴의 존재를 상정했다. 이러한 사회적 사실은 Tylor의 문명이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설명력을 가졌다. 사회는 종교 의식에서 표현될 수 있으며, 사회 구조는 자살률과 같은 의도적 행동 패턴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는 그것들이 개인 행위자에 대한 사실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론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했다 (Durkheim [1912] 1915, [1895] 1938). 사회적 사실은 사물로 취급되기 때문에, 환원주의 및 사회 구조와 의도적 행동 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Durkheim에게는 Tylor에게는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제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