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 철학의 지적 배경
데카르트의 방법과 자연법칙
데카르트가 살던 17세기 유럽 사회는 지적 위기 상태였다. 옛 지식의 권위가 무너진 상황에서 유럽의 지식인들은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회의주의자들은 인간이 무언가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데카르트는 유클리드 기하학처럼 의심할 수 없는 명징한 제1원리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된 지식들의 체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그러나 제1원리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데카르트는 일단 “적어도 나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은 확실하게 믿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무언가를 잘못 볼 수 있으며, 심지어 우리의 생생한 경험이 어쩌면 꿈일 수도 있다며 걱정했다. 다음으로 데카르트는 “2+2=4”처럼 순수 이성에만 의존하는 지식의 확실성에 대해서도 검토했으나, 그는 신이나 악마가 나에게 엉뚱한 생각을 집어넣었을 수 있다며 걱정했다.
이러한 수많은 의심을 거친 후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제1원리를 이끌어냈다. 즉 내가 무언가를 잘못 보든, 꿈을 꾸든, 악마에게 기만당했든, 내가 지금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며, 생각을 하는 주체인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데카르트는 수많은 의심 끝에 명징한 지식 하나를 찾아낸 것이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탐색 과정을 ‘방법적 회의’라고도 부르는데, 왜냐하면 그는 회의주의를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에 반대하기 위해 ‘회의’, 즉 의심이라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무리 확실한 지식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토대로 도대체 어떤 중요한 지식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현대인들의 눈에는 다소 무모한 일처럼 보이지만, 데카르트는 그로부터 세계의 작동을 설명할 수 있는 자연법칙을 도출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데카르트는 우선 나의 존재로부터 완전한 신의 존재를 도출한 후, 신의 완전성으로부터 세 가지 자연법칙을 도출했다. 그의 제1법칙에 따르면, 물체는 다른 물체와 충돌하지 않는 한 동일한 운동 상태를 유지한다. 제2법칙에 따르면, 물체의 기본적인 운동은 직선 방향의 운동이다. 제3법칙에 따르면, 충돌에 의해 각 물체의 운동이 변하더라도, 우주 전체의 운동량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된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이 법칙들은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세계를 창조한 신이 완전하기에 그의 작업이 결코 변할 수 없다는 점으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된 것이었다.
오늘날 많은 철학자들은 데카르트가 내세운 제1원리의 명징성에 대해 의심하며, 제1원리로부터 세 가지 자연법칙을 도출하는 추론의 타당성에 대해서도 의심한다. 또한 데카르트 본인도 세계의 구체적인 작동을 파악하려면 자연법칙뿐 아니라 관찰과 실험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러한 점들은 데카르트가 내세운 연역적 지식 탐구 프로그램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가 제안한 자연법칙은 대단히 성공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데카르트가 이성적 추론으로만 도출했다고 주장한 세 가지 법칙은 모두 근대 물리학의 근본 법칙으로 수용되었는데, 오늘날 그의 제1법칙과 제3법칙은 함께 묶여서 직선 관성의 법칙이라 불리고, 제2법칙은 운동량 보존 법칙이라 불린다.
그렇다면 데카르트의 자연법칙의 내용은 어디서 온 것일까? 과학사학자들은 그의 새로운 자연법칙이 우주 체계를 둘러싼 당시의 논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우주론과 데카르트의 자연법칙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 체계에서 지구는 유한한 우주의 중심이었다. 그의 체계에서 우주의 중심 방향은 ‘아래’로 정의되고, 우주의 변방 방향은 ‘위’로 정의되었는데, 달 아래의 지상계에서 무거운 물체는 아래로 움직이고, 가벼운 물체는 위로 움직이는 성질을 가졌다. 반면 달 위의 천상계는 우주의 중심을 기준으로 영원한 원운동을 했다. 태양을 포함한 일곱 행성은 각각의 행성 천구에 박힌 채 지구 주위를 돌았고, 별들은 가장 바깥에 위치한 항성 천구에 박혀 하루에 한 바퀴씩 회전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공간이란 물체가 차지하고 있는 크기일 뿐이기에, 물질 없이는 공간인 진공은 존재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의 우주는 물질이 끝나는 항성 천구에서 끝이 났다.
1543년 제안된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는 태양과 지구의 자리를 바꾸어 지구를 행성의 일원으로 규정함으로써 지상계-천상계의 구분을 폐기한 점을 제외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와 흡사했다. 지구를 비롯한 행성들은 각각의 행성 천구에 박힌 채 우주의 중심에 위치한 태양 주위를 돌았다. 별들은 가장 바깥에 위치한 항성 천구에 박혀 있었으며, 항성 천구는 우주의 한계를 규정했다. 다만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에서는 항성 천구가 가만히 정지해 있는 반면,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씩 자전했다. 또한 지구가 공전할 경우 관측되어야 할 별들의 연주시차가 관측되지 않음에 따라, 코페르니쿠스는 항성 천구의 크기를 엄청나게 키웠을 뿐이었다. 별들이 너무 멀리 있기에 별들의 연주시차가 관측 불가능할 정도로 작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체계에서 항성 천구가 담당하는 역할은 축소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 체계에서 항성 천구는 하루에 한 바퀴씩 회전하며 별의 일주 운동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우주의 중심을 정의해 주었다. 그는 무거운 물체가 우주의 중심을 향해 저절로 움직인다고 가정했는데, 그는 이를 통해 지상의 무거운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다. 반면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에서는 별의 일주 운동이 지구의 자전을 통해 설명되기 때문에, 별의 일주 운동을 설명하는 데는 별들이 아주 먼 곳에 가만히 정지해 있기만 하면 되었으며 태양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없었다. 또한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에서는 지상의 무거운 물체가 우주의 중심인 태양이 아니라 움직이는 지구를 향해 떨어지기 때문에, 이를 설명하는 데에도 우주의 중심은 정의될 필요가 없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에서는 별들이 엄청나게 멀리 있어야 한다는 점과 항성 천구의 역할이 거의 없다는 점에 주목한 코페르니쿠스주의자들은 무한 우주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1576년 토머스 딕스의 우주 체계에 따르면, 행성들은 우주의 중심에 위치한 태양 주위를 돌지만, 별들은 항성 천구에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우주 공간에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딕스의 우주 체계는 모순적이었다. 왜냐하면 무한한 우주 공간에서 유일한 중심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1584년 조르다노 브루노는 중심이 없는 무한 우주를 도입함으로써 딕스의 모순을 해결했다. 그에게 태양은 무한한 진공으로 이루어진 우주 공간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별들 중 하나에 불과했으며, 다른 별들 중 일부에는 지구와 같은 행성들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로써 지구뿐 아니라 태양계 전체도 무한한 우주 속의 작은 점으로 둔갑했다. 이 무한 우주에는 특별한 위치가 없으며, 모든 공간의 물체들은 보편적인 법칙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무한 우주에서 지켜져야 할 법칙을 고안했다. 그는 하나의 입자가 무한한 진공 속에서 어떻게 움직일지를 물었다. 무한한 진공은 중심도 없고 ‘위’와 ‘아래’ 같은 방향성도 없는 공간이기에 진공 속의 입자가 자연히 움직여야 할 방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외부의 영향이 없는 입자는 정지해 있거나 원래의 운동 방향으로 직선으로 일정하게 운동해야만 한다. 그러나 자연에서 모든 물체는 끊임없이 속도와 방향을 바꾸는데, 데카르트는 이러한 변화가 다른 물체들과의 충돌에 의해서만 야기된다고 생각했다. 데카르트는 입자들의 충돌에 의해 결국엔 무한한 공간에 여러 개의 소용돌이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다른 영향이 없을 경우 각 입자는 직선을 따라 똑바로 진행해 소용돌이를 벗어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입자는 자신의 바깥쪽 입자들과 계속 충돌하면서 방향이 꺾이면서 결국 모종의 중심을 도는 소용돌이를 따라 계속 움직이게 된다.
데카르트에게 각각의 소용돌이는 각각의 태양계를 구성했다. 각 소용돌이의 중심에는 원심적 경향이 작은 가벼운 입자들이 모여 엄청나게 빠르게 회전했다. 이 입자들의 빠른 회전 운동은 중심에서 사방으로 전달되는 지속적인 진동을 만들어낸다. 그 진동은 소용돌이의 중심인 태양, 즉 별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보다 큰 입자들이 모인 덩어리들은 소용돌이를 따라 움직이는 궤도 운동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별을 도는 행성이었다. 데카르트는 각 행성 주변에도 작은 소용돌이가 생긴다고 가정했는데, 이러한 작은 소용돌이 내에서의 입자 간 충돌은 달을 공전시키고, 물체를 지구로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다. 또한 매우 무겁고 빠른 물체는 소용돌이에 의해 가두어지지 못하기에 이 소용돌이에서 저 소용돌이로 건너다닐 수 있는데, 이 물체는 바로 혜성이다.
결론
데카르트의 자연법칙이 그의 명시적인 전제들로부터만 추론됐다는 그의 얘기는 분명 과장이지만, 그 자연법칙을 발견하고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이성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첫째, 그의 자연법칙은 경험적 사실을 무시한 채 오직 무한 우주론에 어울리는 원리를 찾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둘째, 그의 자연법칙과 경험적 사실이 맺는 관계는 너무나 복잡했기에, 그는 이성에만 호소하는 독특한 정당화 논변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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