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eria of Confirmation and Acceptability
Carl G. Hempel, "Criteria of Confirmation and Acceptability"
이 글에서 헴펠은 증거의 입증 강도를 좌우하는 여러 가지 특징에 대해 살펴 본다.
첫째, 입증의 강도는 증거의 양과 다양성과 정확성이 증가할수록 커진다. 단, 증거의 양이 증가할수록 일반적으로 입증도의 증가율은 떨어진다. 또한 다양한 증거는 가설(S)의 다양한 하위 가설들(S1, S2, S3...)을 뒷받침해주거나, 다양한 조건의 무관함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단일한 종류의 증거보다 더 좋은 증거를 제공한다.
둘째, 가설은 "새로운" 시험보다 가설을 구성할 때 이미 알고 있던 자료에 의해 더 약하게 입증되는 것 같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4개의 스펙트럼선 자료를 이용해 만든 발머의 가설이 만들어내는 예측이 35개의 스펙트럼선을 모두 만족한 경우(예측)와 만약 35개의 스펙트럼선을 모두 이용해 신중하게 똑같은 가설을 얻은 가상의 경우(설명)를 비교해보자. 유한한 점이 주어지면 그 점을 지나는 곡선은 어떻게든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으므로, 그렇게 만들어낸 가설이 35개의 스펙트럼선과 일치한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설은 제멋대로 꾸며진 가설이 아니라 "기막힌 단순성"을 지닌 가설이라는 점에 의해 우리의 확신을 강화시켜줄 것이라는 대응이 가능하다. 게다가 논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입증의 강도는 오직의 가설과 자료에만 의존해야 한다. 가설과 자료의 순서는 순전히 역사 문제이기 때문에 가설의 입증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 이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셋째, 다른 증거에 의해 잘 확립된 이론에 의해 도출되는 가설은 이론적 뒷받침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즉 기존 이론에 의해 도출될 수 있는 가설은 수용되기 쉽고, 기존 이론과 충돌하는 새로운 가설은 수용되기 불리하다. 그러나 이 원리는 자칫하면 기존 이론을 뒤집을 새로운 가설이나 발견으로부터 기존 이론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조심해서 적용해야 한다.
넷째, 단순한 가설을 복잡한 가설보다 선호할만하다는 의견이 많지만, 단순성을 어떻게 비교하는 명확한 기준을 정하는 일과 단순한 가설이 더 믿을만하다는 것을 정당화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코멘트
헴펠은 "인식적으로 참신한 자료"가 "이미 알고 있던 자료"보다 더 나은 증거를 제공한다는 주장을 검토하면서, 일종의 미결정성 논변과 기적 논변을 끌어들인다. 즉 첫째, 이미 알고 있던 자료를 만족하는 가설은 아무렇게나 혹은 무한히 만들 수 있다(미결정성 논변). 만약 자료를 만족하는 가설이 유일하게 만들어진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나, 헴펠은 유한한 점을 지나는 곡선이 아무렇게나 (무한히)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빗대고 있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만들어낼 수 있는 그 수많은 곡선 중 진정 참된 곡선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 하나의 요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결정성 논변은 기존 자료뿐 아니라 새로운 예측의 입증력에 대해서도 똑같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어차피 새로운 예측을 통해 추가적으로 일치를 확인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전히 35개라는 유한한 수의 일치이기 때문에, 우리는 총 35개의 점을 통과할 수 있는 곡선을 여전히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으며, 그 수많은 곡선들 중에서 하필 발머의 곡선을 취할 이유는 어디에 있겠는가?
둘째, 그렇게 만들어진 가설의 귀결이 그 자료와 일치한다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고 말한다(기적 논변). 놀라움이 왜 중요할까? 어떤 가설이 자료와 일치하는 것이 놀랍지 않더라도 그 자료와 일치할 수 있는 가설이 단 하나밖에 나올 수 없다면, 그 가설은 그 자료로부터 분명 뒷받침될 것이다. 즉 놀라움을 전제로 하는 것은 일단 가설의 미결정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똑같은 미결정적인 상황이라 하더라도, 4개의 자료로 만든 가설의 새로운 예측이 성공한 것은 우리에게 놀라움을 주지만, 35개의 자료로 만든 가설이 그 자료와 일치한다는 것은 놀라움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가설은 원래부터 그 자료와 일치하도록 잘 설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후자의 가설은 그 가설이 참이든 거짓이든 자료와 일치할 것이었다. 그러나 전자의 가설이 추가적인 31개의 예측과 일치한 것은 그 가설이 참이어서거나 엄청난 우연의 일치로밖에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우연의 일치라는 가능성을 배제한다면, 그 예측은 결국 그 가설이 참이라는 증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35개의 자료를 이용해 만들어진 가설이 그 35개의 자료와 일치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런 식의 논변을 만들어낼 수 없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가상의 발머가 35개의 자료를 이용해 가설을 신중하게 만들어내는 과정을 상상해보자. 우리는 그가 35개의 자료를 엑셀에 집어넣고 어떤 형태의 함수를 사용할지 선택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그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다양한 가설을 아무렇게나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식의 상상은 정말 이론 미결정성이 보여주고자 하는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그는 원래 수많은 가설을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어쩌면 가장 단순한, 혹은 설명력 있는, 혹은 그럴듯한 가설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경우 후자의 고려, 단순성이나 설명력에 대한 고려가 입증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발머의 사례는 매우 특이한 경우라서, 단순성에 대한 고려밖에 불가능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다양한 이론적인 고려들이 가설의 선택에서 제약조건으로 작용하곤 한다. 예를 들어,
그러나 가상의 발머는 다른 식으로 가설을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그는 35개 모두가 아닌 일부의 자료를 만족하는 가설을 세운 후, 그 가설이 다른 자료들도 만족하는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을 수도 있다. 그는 분명 35개의 자료를 모두 알고 있었지만, 실제 가설 구성 과정에는 그중 일부만 사용되고, 나머지는 가설의 추가적인 시험을 위해 사용된 것이다. 아마 시행착오가 있었을지 모르며, 결국 그는 35개의 자료를 모두 만족시키는 가설을 찾아내어 발표를 했을 것이다. 만약 이런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면, 가상의 발머는 실제 발머와 인식적 차이가 없게 된다. 물론 가상의 발머가 만들어낸 가설이 35개의 자료를 설명하는 것은 여전히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자료를 설명하는 데 성공할 때까지 가설을 수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정을 살펴보면, 가상의 발머가 일부의 자료를 이용해 만들어낸 가설이 나머지 자료와도 모조리 일치하는 것을 확인한 순간 그는 상당히 놀랐을 수도 있다. 즉 실제 발머와 가상의 발머가 만들어낸 가설이 35개의 자료에 의해 다른 정도의 입증을 받는다고 한다면 이상한 주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