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aracter of Scientific Change
Shapere, Dudley, "The Character of Scientific Change, in Scientific Discovery, Logic, and Rationality.
I. 지식과 믿음의 변화에 따라 변하지 않는 전제[(1)형이상학, (2)방법 (3)추론 규칙 (4)메타과학적 개념들]가 있다고 가정하는 입장을 거부. 역사를 볼 때, 과학적 변화는 사실적 믿음의 변경 이상임! 절대적 전제가 있다는 입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상대주의로 빠지지 않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II. 지식의 기준, 지식을 얻는 방법, 문제의 종류, 가능한 해답의 범위, 해답 수용의 기준 모두 과학적 믿음과 연결되어 있어서, 믿음이 변함에 따라 변해감. ‘기준’이 믿음에 의존한다고 해서 ‘기준’이 (구체적인) 믿음을 함축하는 것은 아님. 메타과학적 개념을 적용하는 ‘기준’은 “합리적인 되먹임 메커니즘”에 의해 과학적 개념과 연결되어 있어서 과학적 내용의 변경과 함께 그 자체도 변경 가능. 즉 방법, 규칙, 기준 등은 자신이 적용을 통해 만들어진 믿음에 의해 변경 가능. 두 시기의 모든 것이 다르지만, 둘 사이에 추적될 수 있는 ‘합리적 진화’의 연쇄고리가 있을 수 있음. 그 진화를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함. 모든 것이 바뀐다고 연결가능성, 비교가능성, 진보의 가능성이 모두 사라지는 것음 아님. (한 사례로 물질 개념의 고대부터 양자역학까지의 진화를 보면, 목적, 방법, 용어 모두 세계에 대한 믿음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 믿음의 변화와 함께 변화해 왔음을 알 수 있음.)
III. 무엇이 관찰가능한지의 세부사항은 물리적 지식의 현 상태에 의존. 그리고 그 지식은 탐구 방법, 탐구 범위 규정. 즉 메타과학이 과학과 구별 불가능. 그러나 여전히 ‘관찰가능성’의 세부 내용은 달라지더라도 ‘관찰가능성’ 자체는 언제나 과학의 필수 요건으로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QCD의 사례를 볼 때, 꼭 그런 것은 아님. 관찰가능성은 중요하지만, 다른 모든 것보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아님(그래서 관찰가능성을 어기려면 다른 기준들에 비추어 매우 좋은 이론이어야 함). 사실 관찰가능성의 우선성 역시 ‘합리성’, ‘직관성’ ‘계시성’ 등과의 역사적 경쟁의 결과로 승인된 것으로, 앞으로 그 중요성은 변화 가능함. 물론 변하지 않을 수도 있음. 현재 우리는 관찰가능성의 지위가 변할 것이라 의심할 만한 구체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음. 변화가능성이 미래에 언젠가 변할 것임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또한 ‘일반적인 종류의 고려’들은 명시적이면서 애매하지 않은 방법의 집합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음. 탐구의 과정은 부분적으로 불분명하면서 애매하거나 심지어는 비일관적인 개념을 적용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음. 이는 메타과학적 개념들도 마찬가지. 그 명료화는 개념분석을 통해서뿐 아니라 세계의 작동방식에 대한 믿음에도 의존. 따라서 그 명료화의 방향은 열려있음. 즉 관찰가능성의 요건과 그 중요성을 인정하더라도, 과학철학자는 정확한 규칙을 마련하지 못함.
IV. V. V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