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적, 인지적, 사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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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라우든 지음, 정동욱 옮김, 인식적, 인지적, 사회적. 원문 : Larry Laudan, "The Epistemic, the Cognitive, and the Social", in Science, Values, and Objectivity, eds. Peter Machamer and Gereon Wolters (University of Pittsburgh Press, 2004), pp. 14-23.

과학의 중요한 판단 기준들은 참/거짓을 판단하는 인식적 기준들을 넘어섬. 라우든은 이를 “인지적(cognitive)”이라고 칭하고자 하며, 이것이 사회적 가치와는 구별된다고 주장함.

본문

인식적, 인지적, 사회적

래리 라우든(Larry Laudan) 지음, 정동욱 옮김


이 장에서 나는 과학철학자들이 충분한 검토는커녕 거의 신경도 쓰지 않았던 문제인 과학철학과 인식론 사이의 관계에 주의를 돌리고자 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간주하는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이 관계에 대한 이해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과학철학자이든, 보다 전통적인 부류의 철학자이든, 과학철학이 일종의 응용 인식론이라고, 즉 과학철학은 분석적 인식론의 범주와 도구를 과학이라 불리는 활동을 이해하는 데 사용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1968년 시드니 모르겐베서(Sidney Morgenbesser)가 “과학철학은 과학적 사례들을 활용한 인식론이다.”라고 조롱했을 때(Morgenbesser 1967, xvi),[1] 내가 믿기에 그는 이러한 상식을 말했을 뿐이었다. (물론 과학철학에는 응용 인식론이라기보다 응용 형이상학으로 보이는 또다른 측면 — 전통적으로 과학 “기초론”이라 불리는 — 도 있는데, 이 주제는 여기서 검토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무해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특히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철학의 기원에 대한 이러한 방식은 무해하지 않다. 반대로, 그것을 기본적으로 사례를 이용해 가르치는 인식론으로 생각함으로써 과학이 이해될 수 있다는 생각은 인식론자의 오만일 뿐 아니라, 과학철학 내의 특정한 한 접근법, 특히 인식적 실재론이 맞다는 것을 전제하는 동시에 적어도 실재론 이상의 탁월한 실적을 기록한 다양한 다른 과학철학의 적절성을 부정하고 있다. 게다가, 과학철학을 응용 인식론으로 보는 관점은 건전한 과학에서 사용되는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평가 전략들의 대다수를 비합리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만든다.

나는 과학철학이 (배타적으로든 주된 것으로든) 인식적 활동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과학이 오로지 인식적 활동인 것도 아니고 주로 인식적 활동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상호 연관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다소 우회적인 길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우선 과학철학이 인식론에 환원될 수 있다는 논제의 익숙하고 특수한 사례에 집중해 볼 것이다. 나는 과학철학을 합리적 재구성으로 본 관점, 특히 1930년대와 1940년대의 한스 라이헨바흐(그리고 다소 약한 정도로는 루돌프 카르납)에 의해 개진된 생각을 검토할 것이다. 나는 라이헨바흐식 재구성이 (흔히 생각되는 것과 같은)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에피소드에 대한 폭넓은 사례 연구가 아니라, 오히려 실제 과학에서 어떤 부분을 재구성할 수 있고 어떤 부분은 재구성할 수 없는지에 대한 엄격한 제약조건들에 의존한다는 것을 보일 것이다. 나는 이 제약조건들이 인식론의 도구들이 가진 극심한 제약으로 인한 것임을 보일 것이다.

여기서 첫 번째로 확립하고자 하는 첫 번째 요점은 (가장 쉬운 일이기도 한데) 라이헨바흐가 합리적 재구성을 임의의 주어진 과학적 사건에서 인식적으로 중요한 특징들을 규정하는 도구로 보았다는 것이다. 이는 오직 매우 약화되고 특이한 의미에서만 합리적 재구성이며, 이 점은 내가 이에 대해 지적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점이다. 『경험과 예측』의 첫 장에서 라이헨바흐가 생각했듯이, 합리적 재구성이란 그 사건의 요소들이 어떻게 또는 얼마나 탐구자의 목표를 추동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과학적 사건의 세부사항을 치우려는 시도가 아니다. 라이헨바흐가 합리적 재구성에 관해 얘기할 때 머릿속에 품었던 것은 도구적 합리성과 같은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에게 그 문구에서 ‘합리적’이라는 용어가 싣고 있는 것은 순수히 인식적인 것이다. 그는 임의의 실제 사건에서 합리적 재구성에 적절히 포함된 오직 그 특징만이 문제가 되는 사건에서 평가 중인 이론 혹은 가설의 참 또는 거짓과 관련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반복하자면, 라이헨바흐에게 합리적 재구성은 순전히 그리고 단순히 인식적 재구성이었다. 가설의 진위를 결정하는 일과 무관한 활동이나 원리가 관련된 사례의 경우, 그러한 활동과 원리는 그 사례의 소위 합리적 재구성에서는 적절한 자리를 찾지 못한다. 똑같은 요점이 라이헨바흐의 자주 언급되지만 제대로 이해되지는 못한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의 구분에도 적용된다. 이러한 이분법은 그에게 한 연구자의 탐구에서 나타나는 시기적 단계의 구분이 아니라 당신이 역사책에서 볼 수도 있는 사건에 대한 기술적으로는(descriptively) 풍부하지만 철학적으로는 무관한 이야기와 그에게 그 사건의 합리적 재구성을 구성할 순전히 인식적인 이야기 사이의 구분을 말할 뿐이다. 라이헨바흐에게 정당화의 맥락은 문제가 되는 이론에 대한 인식적 평가에 필요한 그러한 모든 요소들과 오직 그러한 요소들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즉 비인식적인 모든 것은, 발견의 맥락과 관련되어 있고, 그에 대한 심화된 탐구는 심리학자나 인류학자에게 맡겨진다. 그 사건에서 철학자의 관심은 인식적 검열을 통과한 그러한 요소들에만 엄격히 제한되었다.

자 이제, 만약 과학철학이 응용 인식론이라는 생각을 당신이 지지한다면, 당신은 과학철학의 일이 사건 자체라기보다 사건의 합리적 (이제 인식적인 것으로 이해된) 재구성을 가지고 하는 작업이라 여기는 라이헨바흐의 생각에서 어떠한 이상한 점도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 게다가 당신은 이렇게 덧붙일지도 모른다. 인간 활동에 대한 모든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설명은 감당 가능한 분석 단위를 갖기 위해 실제 세계의 지독한, 와글와글대는 혼란을 단순화하고 이상화해야 한다고 말이다. 단순화가 유용한 목적을 제공하는 한, 나는 단순화를, 심지어 과도한 단순화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수상한 점은 과학 활동을 추동하는 대부분이, 가장 합리적으로 보이는 과학 활동에서조차, 엄격한 의미에서는 아무런 인식적 정당화를 갖지 못한 고려로서 라이헨바흐를 비롯해 과학철학을 응용 인식론으로 생각하는 다른 많은 이들이 보기에 과학의 합리적 재구성에서 배제되어야만 하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이 장의 뒷부분은 이 주장을 공략할 것이다. 나는 과학자들에 의해 사용된 많은, 거의 대부분의,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론 평가 원리들이, 그들 자신에 의하면 합리적이고 적절할지라도, 인식적 이유(rationale) 또는 토대를 전혀 갖지 못함을 보일 것이다.

나는 내가 선택했을 만한 많은 사례들 중에 일군의 사례에 집중할 것이다. 나의 핵심 논증은 과학자들이 이론을 평가할 때 그것의 범위와 일반성에 대해 묻는 빈도와 지속성에 의존할 것이다. 몇몇 익숙하고 중요한 이론 평가의 어림 규칙들(rules of thumb)은 그러한 고려를 거론한다.

  1. 1960년대 말, 라카토슈는 런던 정경 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진행한 세미나에서 비슷한 관찰을 많이 했다.

참고문헌

  • Kitcher, P. 1933. Advancement of Scienc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 Laudan, L. 1981. A Confutation of Convergent Realism. Philosophy of Science. 48:19-49.
  • Morgenbesser, S., ed. 1967. Philosophy of Science Today. New York: Basic Books.
  • Reichenbach, H. 1938. Experience and Prediction: An Analysis of the Foundations and the Structure of Knowledge. Chicago, IL: University of Chicago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