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m-less Epistemology?
- 서지사항: Laudan, Larry (1990), "Aim-less Epistemology?" SHPS 21: 315-322.
- 발제문 첨부파일: media:발제문_Aim-lessEpistemology_과학철학의자연화.hwp
본 논문은 시겔(Siegel)의 비판에 대한 라우든의 답변이다. 시겔은 (a) 도구적 합리성이 ‘인식적’ 문제에 맞지 않으며, (b) (라우든이 말한) 목적평가의 수단이 인식론의 가치론으로 부적당하다는 비판을 했다. 특히 시겔은 인식적 합리성이 도구적 합리성과 완전히 다르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과연 그러한가?
라우든이 보기에, 시겔은 (1) 도구적 합리성의 자원을 과소평가하고 있고, (2) 따라서 인식적 합리성이 도구적 합리성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3) 메타인식론이 직면한 핵심문제에 맞서지 못하고 있다. 이제부터 하나씩 따져보도록 하자.
도구적 합리성이란 무엇인가?
규범적 자연주의의 핵심은 과학적 탐구의 방법론적 규칙을, 목표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방법(규칙)이 행위자의 목표실현에 이바지할 경우, 그 방법은 정당화될 수 있고 또한 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합리적인 일이 된다. 즉, 규범적 자연주의는 ‘도구적 합리성’을 전제하고 있다.
‘도구적 합리성’의 개념은 행위 이론, 합리성 이론 등에서 이미 많이 얘기되었던 것인데, 그들의 관점에 의하면 “어떠한 행위(방법)는 그것이 우리의 목표를 증진시킬 것이라고 믿을 근거를 가질 때 정당화되거나 합리적인 것으로 인정된다.” 규범적 자연주의에서 새롭다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과학적 탐구의 방법론적 규칙(rule)이나 격언(maxim)들도 도구적 합리성의 관점으로 다룰 수 있다고 본 것에 있다.
인식적 합리성과 도구적 합리성
시겔은 목적/수단의 분석을 넘어서는 ‘방법론적 규칙의 인식론적 특성’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방법론적 규칙에 대한 정당화는 인식론적 원리들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시겔이 언급한 인식론적 원리의 예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어떠한 방법론적 규칙은 그것에 따른 실험이 참된(타당한) 귀결을 이끌어낼 가능성을 최대화하는 한 정당화된다.”
그런데, 이러한 원리는 라우든이 주장하는 목적/수단의 합리성과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인다. 시겔 스스로가, 방법론적 규칙을 “참된 결과를 산출”하고자 하는 목표를 실현할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인식적 합리성은 도구적 합리성의 하나일 뿐이며, 인식적 합리성과 다른 도구적 합리성들과의 차이는 목적의 차이 뿐이다. 그런데, 목적에 따라 수단이 달라지는 것은, 도구적 합리성에서 이미 전제하고 있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Q1) 인식적 목표가 다른 실용적 목표들과 다름 이상의 특별한 면이 있다면?
'잘못된 믿음' 또는 '잘못된 목표'의 문제
시겔은 “어떠한 행동이 우리의 목표를 증진시킬 것이라는 믿음은 그 행동이 합리적이기 위한 필요조건이다”라는 라우든을 비롯한 도구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제기를 한다.
- ‘특정 행동이 목표를 증진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잘못되었다면, 그 믿음에 기초한 행동은 합리적인가?
- 어떠한 목표를 증진시킬 수 있는 행동이라 믿더라도, (부도덕성 등과 같은 이유에 의해) 그 목표를 유지하지 않을 좋은 근거가 있을 수 있다.
라우든은 위의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 지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을 하기보다는, 시겔이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혼동했다고 비판하면서, 자신을 반박하려면 “행위자가 어떠한 행위가 자신의 목적을 증진시킬 것이라 믿지 않았음에도, 그 행위가 명백히 합리적인” 사례를 들어야 한다고 답한다.
(Q2) 위의 ①, ②의 상황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Case by case인가? 추가적인 일반적인 원리를 동원하여 설명할 방법은 없는가?
‘비도구적 증거’의 문제
시겔은 “방법론적 규칙의 도구적 효율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규칙과 목표 사이의 도구적 관계를 생각하기 위한 좋은 근거를 제공하는 비도구적 증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시겔의 의도를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 ‘어떠한 방법이 지금까지 목표를 증진시켜왔다’는 증거와 ‘그 방법이 그 목표를 증진시킬 것’이라는 믿음 사이의 관계는 도구적 관계로 포섭되지 않는 명백한 인식적인 관계이며, 따라서 도구적 합리성이 성립하기 위해서라도 비도구적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라우든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99% 신뢰도를 위한 증거와 95% 신뢰도를 위한 증거는 모두 다르다면서, “목표에 따라 필요한 증거가 다르다”고 답한다. 이어서 라우든은 시겔이 ‘참이라는 (단일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목적에 따른 다른 증거의 가능성을 못보고 있는 것이라며 시겔을 비판한다.
즉, 라우든에 따르면, 모든 증거는 (목표에 상대적인) 도구적 증거이고, 모든 좋은 근거는 도구적 근거이다. (Q3) 라우든의 비판은 궁색해보인다. ‘어떠한 방법이 목표를 95% 신뢰도로 증진시킬 것’이라는 믿음과 그 믿음을 위한 증거 사이에는 여전히 전통적인 인식적인 관계가 성립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결론을 대신하여
라우든은 시겔과 같은 전통적인 인식론자들이 ‘진리’와 같은 “과학의 목표로는 부적당한” 실재론적 목표를 고수하면서, 현재 메타인식론이 직면한 문제를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있음을 개탄한다. 즉, 그들의 목표를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는지, 그 실현 여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그들 스스로가 전혀 근거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라우든은 자신의 규범적 자연주의의 틀에서, 실재론적 인식론자들의 프로젝트는 비합리적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과연, 실재론자들은 라우든을 반박할 수 있겠는가? 라우든은 “반박하고 싶다면 근거를 대라”며 자신의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