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lamos Laboratory 50th Anniversary atricles
Los Alamos Laboratory 50th Anniversary atricles(#1-#24) [1]
맨하탄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폭탄개발 완료 시점까지의 상세한 서술.
로스 알라모스의 실험실은 2차 세계 대전 중반에 설립. 과학적 무기를 제공하기 위함이었으며, 전쟁 이전 또는 중에 유럽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미국으로 이민해 온 것이 기반이 될 수 있었음. 그들은 사이클로트론이나 입자 가속기 등에 관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원자폭탄 개발의 핵심적인 이론을 가지고 있었으며, 실제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942년 여름, 오펜하이머가 이론 물리학자 여름 학회 개최. 원자폭탄 개발 논의 시작.
그 이후, 오펜하이머와 존 메리는 여러 지역에 산개해있는 연구들 관리. 그러나 보안의 어려움 때문에 한 곳에 집적시키기로 함.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로스 알라모스 실험실.
핵무기 프로젝트의 감독에 Gloves 장군 임명. 프로젝트 명칭 'The Manhattan District'로 개명. 대규모 실험실 짓기로 결정. 독단적이긴 했지만, 효과적이었음. 과학자인 오펜하이머와 함께 계획 입안. 지리적 조건을 조사하여 결국 로스 알라모스 결정.
최초로 연쇄반응을 보였던(증명은 다른 사람이 했음) 엔리코 페르미가 미국으로 이민. 연쇄반응 이론은 원자폭탄의 원리이기도 하면서, 플루토늄 생산의 원리이기도 함. 따라서 그는 프로젝트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
Ranch School을 주거공간으로 사용. 또한 많은 건물들 지음.
Groves는 과학자들에게 제복을 입히는 등 군사적인 성격 강조. (시간이 지나면 약간 옅어짐. 예를 들어 Military Laboratory는 후에 academic outpost로 바뀜)
짧은 시간 내에 원자폭탄을 만들어야 하는 임무. 고용된 과학자와 기술자의 수 증가. 군사적인 시스템으로 굴러감.
보안상 bomb 대신 gadget라는 용어를 사용.
1943년 봄. 첫 번째 핵무기의 연구를 시작. 관리 위원회 구성.
핵무기 제작에 Gun type 도입. 핵물질을 임계질량 이하의 두 개로 나눈 다음 빠른 속도로 서로 충돌시켜 임계질량을 초과하게 만들어 기폭시키는 방식.
우라늄-235 vs 플루토늄
1943년 7월. 첫 번째 플루토늄이 로스 알라모스에 도착.
계산기(컴퓨터)의 도입. 엄청난 양의 계산이 필요했기 때문. (전쟁 상황이 계산기 발명에 영향 주었을 것)
1943년 10월, Special Engineering Detachment(SED) 조직. (파인만 글에 있었던 부대) 군대에 징병된 고급인력 활용책이었으며, 로스 알라모스의 인원이 부족하기도 했기 때문.
우라늄-235 vs 플루토늄-240 => Trinity(플루토늄) 테스트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