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유지관리
- 데이비드 에저턴, "유지관리", in 데이비드 에저턴 지음, 정동욱, 박민아 옮김,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 석탄, 자전거, 콘돔으로 보는 20세기 기술사》 (휴먼사이언스, 2015), 4장.
유지관리(maintenance)의 역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을 준다. 이는 표준적인 경제 항목들을 재고하게 해주며, 일과 생산의 역사에서 중요한 측면들을 다시 검토할 수 있도록 해준다. 모든 사물들(things)은 유지관리 및 수리보수 등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유지관리는 공학의 주된 분야에서는 무시당해 왔다. 이는 ‘사물을 다루는 것에 대한 일상적 이해’와 ‘역사에 대한 공식적인 이해’ 사이의 차이에 기인한다. 사실 일상 문화에서 유지관리는 잘 알려져 있다(e.g., 바느질, 컴퓨터 관리). 경우에 따라 유지관리비는 생산비보다 많이 나가기도 한다(e.g., 군사장비). 더 나아가 유지관리와 수리는 변화를 초래하기도 하며, 이는 리모델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유지관리와 수리는 얼마나 중요한가?
유지관리의 문제가 가시화되는 대표적인 경우는 유지관리 기술이 부족할 때이다(예: 가난한 나라의 경우, 트렉터 수명 단축을 비롯해 각종 자산의 활용도 저하). 유지관리의 규모나 실체가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그 비용이 경제 통계의 독자적인 항목으로 책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예컨대 유지관리비는 구입비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예: 예비 부품은 구입할 때 그냥 주기도 한다). 그러나 캐나다와 같이 유지관리비가 따로 책정된 경우를 분석해 보면, 그 비용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으며, 그 비용의 변화는 다른 항목의 비용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지관리 비용과 시간의 절약은 직접 비용뿐 아니라 자본과 투자 비용에도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
유지관리
장소의 측면에서, 발명이 이루어지는 곳보다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이 더 많으며,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보다는 사용이 이루어지는 곳이 더 많다. 그런데 사용이 이루어지는 곳과 유지관리가 이루어지는 곳은 엇비슷하다(발명<생산<사용≒유지관리). 즉 유지관리 및 수리는 매우 광범위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대체로 유지관리의 영역은 소규모 기술 인력들의 영역으로, 대규모 (생산) 시스템의 변두리에 위치하며 시스템과 일정정도 독립되어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공식적인 경제에는 잘 잡히지 않지만, 유지관리 및 수리 활동의 규모는 엄청나다(예: 바느질, 세탁, 자동차 자가 수리).
한편 유지관리의 기술과 비용과 그 변화에 따라 여러 흥미로운 귀결이 나타나기도 한다. 항공, 철도, 선박의 경우, 이들이 경제적인 교통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게 된 데에는 유지관리비의 절감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한편, 부유한 나라의 경우, 토스터와 같은 제품은 신상품 구입비가 제품 구입비보다 더 싸지면서 수리 기사들이 사라졌다. 어떤 가전제품은 사용기간 내내 유지관리를 (기름칠조차) 할 필요가 없는 경우도 생겼으며, 때로 어떤 제품들은 유지관리가 집중되거나 통제되기도 했다(e.g., 승인된 수리점에서만 수리 가능한 자동차). 또 유지관리 및 수리비가 제품 구입비보다 싼 곳에서는 물건의 수명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부유한 나라에서 사용하던 많은 중고품은 가난한 나라로 수출된다.
대량생산과 자동차 유지관리 기술
자동차는 유지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시대와 맥락에 따른 변화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예컨대 19세기 말 처음 등장했던 전기 자동차와 휘발유 자동차 사이의 경쟁에서 유지관리라는 요소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즉 유지관리를 하는 데,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기존의 수리 기술과 시설을 사용할 수 있었던 휘발유 자동차는 전기 자동차에 비해 유리한 위치를 점유할 수 있었는데, 이에는 자가-수리(do-it-yourself) 문화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한편 20세기 초 포드사는 모델-T 포드의 호환가능한 부품을 수리와 교체가 용이하다는 근거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포드의 계획이 온전히 실현되지는 않았는데, 예컨대 포드는 유지관리 및 수리 절차를 표준화하여 매뉴얼을 제작 배포했지만, 포드 사용자는 자동차를 불법 수리, 개조, 튜닝하여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곤 했다. 즉 수리 작업은 대량생산과 온전히 융화되지 않았다.
아프리카의 가나는 매우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준다. 가나에는 1970년대 수리공(fitter)들이 밀집한 매거진(magazine)이 생겨났다(1971년에는 6000여 명, 1980년대에는 4만여 명이 밀집). 이들은 해머나 짝 잃은 스패너 등의 무척이나 열악한 도구로 자동차를 수리했다. 사실 온전한 관점에서 그들의 도구와 기술로 자동차를 (원상태로) 유지관리한다고 하는 일은 불가능했으며, 실제로 유지관리 기술의 부족으로 자동차는 성능이 저하되었지만, 매일마다의 수리(daily repair)를 통해 일정한 평형상태가 유지되었다. 이로써 자동차는 영원히 사용될 수 있게 되었고, 아무도 새 차를 구입하지 않았다. 즉 이곳의 자동차는 투자 및 감가상각의 경제학이 적용되지 않게 되었으며, 단지 유지관리비만 들 뿐이었다.
이 과정에서 가나의 수리공들은 매우 고급의 현지화된 지식(localized knowledge)을 획득하게 되었는데, 엔진 작동에 대한 완전한 지식뿐 아니라, 제한된 조건 속에서 어떻게 하면 오래된 장치를 영원히 유지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그들만의” 지식까지도 획득했다. 이는 기술의 열대지방화(tropicalization)라는 말로도 표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아메리카에서는 creolization이 벌어졌듯이).
유지관리와 대형 산업
때로 공장자동화는 유지관리 비용을 증가시키기도 했는데, 이러한 유지관리 비용은 공장자동화의 제약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일례로 자동 운반 기계(transfer machine)이 도입되자, 오히려 감독과 수리비용이 증가했으며, 특히 시스템 다운을 대비해 오히려 작업 라인은 전보다 유연한 방식으로 변화했다.
대체로 수리 절차는 합리화되기가 어렵다. 따라서 유지관리 및 수리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철도의 유지관리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는데, 영국의 철도 민영화 이후 경영 합리화를 이유로 유지관리 분야가 붕괴되면서 중대한 유지관리 작업이 장기간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었고, 이는 대형사고로 이어졌다.
항공
항공 산업의 유지관리 비용은 엄청나게 비쌌다. 1920년대 이후 항공이 경제적인 교통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엔진유지비 감소 때문이다(이는 정기정밀진단간격(TBO)의 급속한 감소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이는 엔진 설계 개선 덕도 있지만, 더 중요하게는 한 종류의 엔진을 오래 사용하면서 엔진 자체와 유지관리에 필요한 지식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복잡한 대상을 제작하거나 유지관리하는 최선의 방법은 처음부터 알려져 있는 것이 아니며 계산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복잡한 대상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다루면서 우리는 그에 대해 점차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즉 함을 통한 학습 또는 사용을 통한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전투함과 폭격기
범선에서 유지관리 및 보수 작업은 일상에 가깝다. 선원은 수리공이기도 하다. 배의 종류가 바뀌면서 유지관리의 강도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배에서 유지관리 및 보수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예컨대 어떤 배의 수명은 끊임없는 수리와 (때론 대규모) 개조를 통해 100년 가까이 되기도 한다(예: 1982년 아르헨티나와 영국 사이에서 벌어졌던 포클랜드 전쟁은 닳고 닳은 고물배들 사이의 전투로 유명하다).
B-52 폭격기는 1952년에 생산되기 시작해 1962년에 생산이 중단되었지만, 여러 용도로 개조되어 2040년까지 사용될 예정이다(e.g., 우주비행 훈련기). 1960년경에 생산된 KC-135 연료 공급기는 보잉 707 여객기로 개조되어 여전히 잘 사용되고 있다. 1920년대 생산 중단된 범선들도 개조된 후 크루즈선으로 재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오랜 수명에 대한 믿음은 2003년 콩코드 여객기 사용 중단 당시의 반응에서도 읽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무한한 삶을 살 수 있는 비행기인 콩코드의 요절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유지관리에서 생산과 혁신으로
때로 유지관리는 중대한 리모델링을 뜻하기도 한다. 수리점에서 시작하여 부품을 생산하다가 완제품까지 생산하는 것으로 나아간 사례는 꽤 많다(e.g., 일본의 자전거, 라디오 산업. cf., 인도의 자동차 수리소). 때로 일시적인 제품 수입 감소는 수리 산업의 생산 산업으로의 확장을 촉진하기도 한다(e.g., 전시 군사무기 산업, 가나의 자동차 산업, 남아메리카의 전기 산업).
엔지니어와 사회의 유지관리
전문 엔지니어들은 자신을 수리공과 차별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들은 하찮은 수리공과 달리 혁신, 설계, 창조와 관련되며, 따라서 미래와 연결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엔지니어에 대한 오해를 초래한다. 실제로 엔지니어의 절반 이상은 유지관리 분야에 종사한다. 사물(thing)이 많아질수록, 그것을 보살필 엔지니어도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공학이 창조와 발명보다 유지관리에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정부 엔지니어의 사례에서도 드러난다(e.g., 프랑스의 정부 엔지니어 → 테크노크라트). 이들은 국가의 혁신보다는 유지관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프랑스의 지스카르(Giscard), 미국의 후버(Hoover), 최근 중국의 많은 고위 관료들 모두 엔지니어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