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nology and Democracy, 1800-1860
Hugo A. Meier, "Technology and Democracy, 1800-1860," Mississippi Valley Historical Review 43 1957: 618-640.
이 글은 미국의 민주주의 이념과 미국적 기술(응용과학)의 빠른 발전 사이에 상당한 상호영향이 있었음을 당대의 지식인들의 증언을 빌어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미국은 당시 급속도의 기술발전을 보였으며, 유럽에 비해 극단적인 사회문제를 겪지 않았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미국의 지식인들은 대부분 ‘기술 발전이 사회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증진시킬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를 가졌으며, 이를 근거로 기술 발전을 정당화하려는 태도를 보였다고 저자는 주장하며, 그들의 의견에 일견 동조하고 있는 듯하다.
1807년, Fulton은 공화주의가 ― 공화국의 방어와 확장의 도구로서의 ― 기술에 의해 도움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기술의 진보가 (공화주의에 내장된) 평등과 자유 사상의 산물로 생각한 이들도 상당했다.
실용적 과학관과 민주주의 및 공공선
미국 지식인들은 유럽과학의 사색적인 성격을 비판하면서, 과학의 실용성을 강조했다. 그들은 과학이 민중을 위해 봉사해야 하며, 그 능력에 의해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실용적 과학관에 대해 유럽인들은 과학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를 했지만, 미국의 지식인들은 프랭클린(피뢰침 등 발명)을 강조하면서 화학 등이 실생활에 응용될 필요가 있다고 반박하였으며 오히려 유럽과학의 무용성을 비난했다.
당시 프랑스의 Alexis de Tocqueville은 미국을 방문한 후, 미국의 평등과 자유 이념이 미국의 실용적 과학관을 촉진했으며, 미국의 높은 사회유동성은 미국의 빠른 기술진보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그는 미국의 (최대다수를 위한 최대) “선(good)”과 “상품(goods)”이 동의어로 쓰인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당시 미국의 대량생산 및 발명가의 확산이 미국의 공공선 추구 이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시사했다.
(박람회 등에서 명확하게 비교되었듯이) 당시 미국은 소수의 사치품보다 다수의 복지에 관심을 보인 유일한 나라였다. Horace Greely는 당시 미국의 분위기에 대해 “우리는 산업과 기술의 위대한 귀결들을 보편화(universalize)시키고, 일반적인 소유(common possesion)가 가능하도록 만들며, 상류사회의 삶의 방식을 민주화(democrize)시켰다”고 표현했다.
노동과 기계의 관계
미국의 기계제 공장은 유렵에 비해 (내외적으로)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기계가 노동의 신성함을 훼손한다는 비관론자들의 비판(노동자의 위상이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낙관론자들은 기계를 제작하는 발명가와 공학자의 위상이 높아진다는 반론을 펼쳤다. 이러한 배경에서, 미국의 기술평론가들은 발명가, 기술자들의 전문성을 정당화하고 그들의 위상을 높이 평가했다. 한 기술평론가는 “옛질서를 대신해, 복지에 기여한 것에 따라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면서 발명가들을 사회의 리더로 추켜세우기도 했다.
경제적 기회의 공평성
발명과 기계의 도입은 “경제적 기회의 공평성”이라는 민주주의의 교의와 조화로운가?
낙관론자에게 기계의 도입은 노동기회의 제공을 의미했다. 그러나, 실제로 꼭 그렇지는 않았다. 미국에서도 기계의 도입으로 인한 실업, 폭동 등의 사회적 문제가 존재했으며, 유럽의 지식인들은 기술진보에 따른 과잉생산, 실업, 소수 자본가의 권력독점 등의 문제를 접하거나 예상하면서 기술진보에 대한 비관적인 시각이 팽배했다. Owen의 시각은 상당히 흥미로운데, 그는 유럽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과잉생산 문제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면서도, “미국에서는 (유럽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오히려 더 많은 기계의 수입을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의 Knight의 낙관적인 견해가 미국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는 기계에 대한 반대는 무지의 소산이라고 말했다. 그를 옹호한 미국의 서평에 의하면, 문제는 기계가 아니라 정치제도, 불평등한 법, 세금제도와 같은 것들인데, 미국에는 그러한 문제가 없으므로 기계도입으로 인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미국인들은 기술에 대한 낙관론이 팽배했다. 어떤 유럽인은 이러한 미국인들의 기술에 대한 낙관적 태도가 미국의 번영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보기도 했다. 한편, 이러한 기술에 대한 낙관론은 미국 내 팽배한 진보에 대한 낙관론의 핵심 요소였다.
물질주의(유물론)에 대한 우려
미국인들의 기술에 대한 낙관과 열망이 과도한 물질주의로 이어질 것에 대한 우려가 존재했다. 그러나 낙관론자들은 이러한 우려에 대해, 과거와 같은 잣대로 현재를 평가하는 것이 문제라면서, (하찮은) 요리에 이용되는 화학일지라도 옛 ‘철학자의 돌’만큼이나 철학적이라고 반박했다. 이들은 더 나아가, 기계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자유와 여가를 제공해주며, 과학적 발견이란 신의 작품을 이해하게 해주는 활동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일한 맥락에서, 이들은 기술이 미신타파의 무기가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편, 물질주의에 대한 또다른 문제제기(지적영역)로서, 노동의 분업과 탈숙련화에 의해 인간의 정신활동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낙관론자들은 지식과 계몽은 기계의 개선과 인공적인 힘의 사용에 비례한다고 반박했다. (물론 비숙련노동 증가는 현실로 존재했고, 개선책을 찾는 노력도 있었음)
마지막으로, 미적 관점에 대한 문제제기도 존재했다. 미국인들이 물질적 풍요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미적 관심이 절하되었다는 제기이다. 토크빌은 미국인들이 생산속도, 비용, 다수의 구매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 미적인 고려가 다분히 생략하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디자인이 단순한 것이 사실이나 미적인 고려가 생략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형태는 목적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고 하면서, 그들은 미적가치를 절하한 것이 아니라 변화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뉴욕 수정궁 박람회는 그들의 새로운 미적 개념을 선보인 자리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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