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1969 5절
5. 범례, 공약불가능성, 그리고 혁명
방금 논의한 내용은 이 책의 한 가지 측면을 분명히 하기 위한 기초가 된다. 그 측면이란 연이은 [경쟁]이론들 사이의 선택에 대해 논쟁하는 과학자들에게 공약불가능성과 그것의 함축에 대해 내가 논의한 바이다. 책의 X장과 XII장에서 나는 그런 논쟁의 당사자들은 양쪽이 의존하고 있는 어떤 실험적 혹은 관찰적 상황들을 다르게 보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런 상황들을 논의하는 어휘들은 대부분 동일한 용어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들은 일부 용어들을 다른 방식으로 자연에 연관시키고 있음에 틀림없고, 그들의 의사소통은 불가피하게 부분적일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한 이론이 다른 것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그 논쟁에서 증명될 수 없다. 그 대신 나는 각 분파가 설득을 통해 다른 편을 전향시키도록 애써야한다고 주장했다. 오직 철학자들만이 내 주장들 중 이 부분의 취지를 심각하게 잘못 해석했다. 상당히 많은 철학자들은 내가 다음과 같이 믿고 있다고 보았다. 즉, 공약불가능한 이론들의 옹호자들은 서로 간의 의사소통을 전혀 할 수가 없고, 그 결과 이론 선택을 둘러싼 논쟁에서 의지할 만한 어떤 좋은 이유(good reasons)도 없으며, 그 대신 이론 선택은 궁극적으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이유들에 의해서 이루어짐이 틀림없고, 실제로 이루어진 결정은 어떤 신비한 통각과 같은 것의 결과라는 것이다. 책의 어느 다른 부분보다도 이런 왜곡된 해석을 낳은 문장들 때문에 나는 비합리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먼저, 증명에 대해서 내가 언급한 것을 살펴보자. 내가 주장해온 요점은 간단한 것이며, 과학철학에서 오랫동안 친숙했던 것이다. 이론 선택을 둘러싼 논쟁은 논리적이거나 수학적인 증명과 완전히 닮은 방식으로 묘사될 수 없다. 증명에서는 추론의 전제들과 규칙들이 처음부터 명기된다. 만일 결론에 대해 불일치가 발생하면, 뒤이은 논쟁의 당사자들은 각 단계들을 하나씩 되짚어가면서 각 단계를 사전의 규정(prior stipulation)과 대조하여 확인한다. 그런 과정의 종국에는 그 중 누군가가 잘못을 저질렀고, 이미 받아들인 규칙을 위배했음을 시인해야 한다. 그렇게 인정하고 나면, 그는 의지할 곳이 없어지고, 상대방의 증명은 강력한 것이 된다. 그 대신, 만약 양쪽이 규정된 규칙들의 의미나 적용에 관해 의견을 달리하고, 그래서 이전의 의견일치는 증명을 위해 충분한 근거를 제공하지 못함을 알게 되면, 그 논쟁은 불가피하게 과학혁명동안 벌어지는 논쟁의 형태로 지속된다. 그런 논쟁은 전제에 관한 것이며, 그래서 증명 가능성의 서막으로서 설득에 의지하게 된다. 비교적 친숙한 이 명제에 관한 어떤 것도 설득을 위한 좋은 이유가 없다거나, 또는 그런 이유가 한 집단에 대해 궁극적으로 결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함축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러한 선택의 이유가 과학철학자들이 통상 열거해온 목록과 다름을 뜻하지도 않는다.
그 목록은 정확성, 단순성, 다산성 등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론 선택이 증명이 아니라는] 그 명제가 시사하는 바는 그런 이유들이 가치로서 작용하며, 그래서 그것을 존중하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도,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그것을 달리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이론들의 상대적인 다산성에 관해 의견을 달리한다면, 혹은 그것에는 일치하지만 이론을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다산성과 (예컨대) 범위의 상대적 중요성에 관해 의견이 다르다면, 어느 쪽도 잘못했다고 할 수가 없다. 어느 한 쪽이 비과학적인 것도 아니다. 이론 선택을 위한 중립적인 알고리듬, 즉 적절히 적용된다면 집단에 속한 각 개인을 동일한 결론으로 이끌어가는 체계적인 의사결정 절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효과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은 개별 구성원이라기보다는 전문가 공동체이다. 왜 과학이 지금과 같이 발전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각 개인이 특정한 선택을 하게 된 세세한 이력과 개성을 (물론 이 주제는 엄청나게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낱낱히 풀어볼 필요는 없다. 대신, 일련의 공유된 가치들이 전문가 공동체가 공유하는 특정한 경험들과 상호작용하여 어떻게 그 집단의 구성원 대부분이 결국에는 한 벌의 논증들을 다른 것들보다 더 결정적이라고 여기게 되는지를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