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tellectual Setting and Aims of the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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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A. J. Rogers, "The Intellectual Setting and Aims of the Essay", in CCLE, 1-32.
주의할 점
- 글에서 Essay(인간지성론)와 Essays(자연법론) 주의하여 구분하여 읽을 것
- Christ Church는 옥스퍼드 대학의 한 칼리지
로크(1632-1704)
인간지성론은 로크가 57세였던 1689년에 출판됐으며, 원고 집필은 1683년부터의 네덜란드 망명 시절에 이루어졌지만, 그 기획은 그 20년 정도 전에 시작됐음. "Epistle to the Reader"에 그 출발점에 대한 얘기가 나옴. 당시 로크가 참석한 모임에서 합의되지 않는 어떤 문제에 봉착해 "자연에 대한 탐구에 착수하기 앞서 우리 자신의 능력에 검토하고 우리의 지성이 어떤 대상을 다루는 데 적합한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깨달음. 당시 원래 논의 주제는 "도덕과 계시 종교"였고, 모임은 1671년 2월쯤, 섀프츠베리 백작의 집에서 있었음. 당시 모임을 위해 로크가 준비했던 원고가 존재하는지는 불확실하지만, 1671년에 쓰여진 두 가지 원고(원고 A & 원고 B)가 남아있음.
시기 구분 : 옥스퍼드 시절(1649-1656-1667)과 런던 섀프츠베리가 시절(1667-1675)
- 로크는 Christ Church에 입학(1649). 라틴, 논리학, 아리스토텔레스에 익숙해짐.
- 당시 데카르트, 홉스 등은 커리큘럼에 없었지만, tutor들이 자율적으로, 광범위하게 가르쳤음. 로크 역시 이를 접함.
- 베이컨 프로그램(자연 지식 → 유용성)의 선구자, 보일, 윌킨스(크롬웰의 여동생과 결혼) 등이 옥스퍼드에서 활동 중. 로크는 보일의 화학 수업 들음. 그러나 왕정복고와 함께 1660년 보일 등의 옥스퍼드 그룹은 런던으로 옮겨 왕립학회 창설. 그래서 이들과는 나중에야 재회.
- 강사 시절 논리학, 수사학, 도덕철학 강의함. 그러나 로크의 주된 관심은 의학과 화학.
- 대학 시절 세 가지 주된 지적 힘 : (1) 베이컨, (2) 데카르트 &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들 (3) 아리스토텔레스
- 런던 섀프츠베리가(1667-1675)에서는 무슨 일? 정치 문제 비서, 아들의 신부감 찾기, lord chancellor(상원의장 겸 대법원장)의 공무원,
- 런던에서 의사, 왕립학회 회원으로서의 활동 및 친교(1668), 시드남(Sydenham), 보일과 재회하며 함께 화학 연구
데카르트의 영향
- 늦어도 1659년 데카르트 읽음.
- 자연에 대한 대안적 관점에 흥미. 즉 인식론보다 자연과학 자체에 관심(『성찰』보다는 『철학의 원리』)
- 저자에 따르면, 로크는 데카르트처럼 회의주의에 대한 관심에서 '철학'을 하게 된 것이 아님.
- 로크는 데카르트의 대안적 자연관에 흥미를 보였지만, 『원리』를 가득 채운 세계에 대한 사변적, 가설적 설명들에 불만 → 데카르트의 방법론, 독단주의 비판 → 이것이 로크의 경험적 인식론의 핵심을 이룸.
- 데카르트와의 핵심적인 차이 : (1) 목적 : 확실한 토대에 기초한 철학 vs. 잠정적, 오류가능성 인정. 확실성의 영역 감소. (2) 방법 : 순수 이성을 통한 지식 도달 vs. 그것으로는 불가능 (3) 데카르트식 심신이원론은 분명 거부.
- 데카르트의 영향 : (1) "관념"이라는 용어 (2) 삼단논법의 거부 (3) 직관, 명석판명한(clear and distinct) 관념이 진리의 최선의 기준이라는 생각 (4) 기계적 세계관. 단 원래의 기계적 세계관보다는 느슨해짐. 특히 뉴턴의 만유인력은 물체에 영향을 주는 것이 (접촉) 충격뿐이라는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줌(자유와 기계적 세계 사이의 화해 여지 마련해줌. 우리가 알 수 없는 상호작용, 영향의 방식 있을 수 있다!). 또한 화학과 의학의 당시 실천 역시 자연이 기계적일 뿐이라는 생각 의심하게 해줌(우리는 왜 숨을 쉬는가?, 왜 공기를 폐에 넣어줘야 하는가? 공기는 혈액과 만나면 무슨 일이 생기는가? 등의 질문은 기계론적으로 답하기 매우 힘들었음).
보일의 영향
- 로크는 Sthael의 수업에 대해 불만. 증거 부족!
- 로크는 보일과 함께 당시 화학의 최전선에서 연구 중이었음(호흡의 본성에 대해 연구) → 1684년에 보일이 책 출판함.
- 보일의 신학
- 보일을 비롯한 베이컨주의자들의 공통된 분위기 : 가설만으로는 안 되고, 관찰과 실험을 통해 엄격하게 시험되어야!
- 왕립학회의 모토 : "Nullius in. Verba" Nothing in words!
- Natural History : 추측에 오염되지 않은 세심한 관찰과 실험에 대한 충실한 기록(faithful records)!
- 물질의 본성과 성질 : 1,2차 성질의 구분(특히 'primary', 'secondary' 용어 도입).
- 1차 성질에 대한 학문으로서의 기계적 철학, 단 그것은 "신의 창조의 오직 일부일 뿐"이고 잠정적(가설적)!
- "로크의 인식론이 메커니즘의 참을 전제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의 인간지성론에 펼치는 철학과 그의 전반적인 믿음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오해한 것"(p. 22)
- 증거보다 더 나가는 주장 금물 : 공기펌프가 진정한 진공을 만들어냈느냐에 대해 확정적 답변 X. 개연성에 만족하기.
자연법론(Essays on the Law of Nature)
- 1663년 로크는 Christ Church의 Senior Censor로 뽑힘.
- 이때 일련의 강의를 해야 했는데 그 원고가 『자연법론』
- 이 원고에는 두 draft 및 인간지성론의 핵심 주장의 개요 또는 정확한 문장 그대로가 담겨있음(그럼에도 아직 인간지성론의 기획은 아님)
- W. Von Leyden에 따르면, 이는 『인간지성론』의 첫 초고!
- 자연법을 본유적으로 알 수 없다는 주장의 예 : 이성과 감각경험의 협동해야만 지식 산출!
- 신이 존재한다는 지식의 경우, 경험을 통해 얻은 세계의 모습이 우연을 통해서는 산출될 수 없다는 논증을 통해 형성
Draft A와 B
- 1671년 런던에서의 모임 당시, 위의 믿음들 장착 중이었음.
- 그럼에도 draft의 작성 시점에야 로크는 『인간지성론』이 될 원고를 드디어 쓰게 된 것임.
- A(얇은, 사적 용도) vs. B(두꺼운, 회람 용도) vs. Essay (B의 5배, 같은 주제 영역)
- Draft B에 빠진 내용 : 1,2차 성질의 구분, 개인 정체성, 관념의 연합, 4권의 지식의 모든 영역에 대한 관심, 지식의 본성과 범위
- 아마도 4권은 1,2,3권의 논증을 통해 도달하게 될 결론이라, 1671년 당시에는 분명치 않았을 것.
- 그런데 왜 출판 지연? 너무 바빠서
1671-1683까지의 바쁜 시절
- 섀프츠베리의 비서로서 여러 일로 정치로 엄청 바쁨
- 계속 책의 형태로 출판 염두에 둔 흔적 있음.
-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에 익숙해지고 우호적이 됨.
- 정치 이론에 대한 관심 : 지적 탐구를 통한 자연법의 발견 능력
- 신에 제정한 자연법, 인간의 지성을 통해 알 수 있는 자연법, 그러나 약간의 지적 한계 → 관용의 인식론(어쩌면 essay가 큰 틀에서 이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 이것이 그의 정치이론과 인식론의 관계를 맺어줄 수 있음.
- 관용의 인식론이 그의 의도였다고 말하면 과한 것일 수 있으나, 그것을 통해 그의 철학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을지도.
네덜란드 망명 시절(1683-)
- 열심히 글을 쓸 수 있게 됨! (글을 쓰느라 바빠서 반역에 가담하지 못했다는 말까지 믿을 필요는 없지만)
기타
- 가상디의 영향? Aaron(1971)은 로크가 가상디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 그러나 꼭 직접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음. 비슷한 전제로부터 비슷한 결론이 나오는 논증의 힘 때문일 수도.
- 뉴턴의 영향은? Essay 완성된 후에야 프린키피아 출판. 아마도 로크는 프린키피아의 1688 리뷰의 저자일 듯.
- "Epistle to the Reader" 과학자와 구분되는 자신(철학자)의 역할 겸손하게 제시 : therapeutic! nonsense의 제거!
- 볼테르의 평가 : natural history of the human soul (특히 2권)
- 두 가지 목적의 긴장 : therapeutic vs. Baconian. 저자가 보기에 이 긴장은 위계적. 베이컨식 자연사를 위해 관념의 명료성 필요! → 그 결론으로서 지식의 한계 인정할 것! → 적어도 이것만은 우리가 로크로부터 수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