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중립적 과학의 대안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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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욱, "가치중립적 과학의 대안 찾기 : 진화심리학 논쟁을 중심으로", 『과학철학』, 28권 3호 (2025), 123-153쪽. 이곳에 올려진 버전은 학술지 인쇄 버전과 본문은 거의 일치하지만 각주 방식 등에서 차이가 있다는 점에 주의할 것.

본문

가치중립적 과학의 대안 찾기 : 진화심리학 논쟁을 중심으로[1]


정동욱 (경상국립대학교 철학과)


초록. 가치포용적 과학과 가치지향적 과학은 과학의 가치중립성 이념을 비판하며 등장한 두 가지 대안이다. 가치포용적 과학은 다양성을 통한 객관성을 강조하는 반면, 가치지향적 과학은 책임을 통한 정당성을 강조한다. 이 논문에서 나는 가치포용적 과학과 가치지향적 과학이 서로 긴장 관계에 있다는 점과 귀납적 위험 논증만으로는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을 옹호할 수 없음을 보였으며, 현대 다원주의 사회에서 과학이 담당하는 사회적 역할에 주목하여 나는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을 옹호했다. 가치포용적 과학은 경쟁하는 이론들 사이에 합의를 이끌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으나, 나는 진화심리학 논쟁의 역사를 사례로 오랜 기간 합의 없이도 가치포용적 과학이 객관성을 증진할 수 있음을 보였다.

1. 들어가며

과학은 사실에 대해 얘기할 뿐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말이 맞다면 과학은 본질적으로 가치중립적일 것이다. 과학의 임무는 세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일 뿐, 정보의 활용은 과학의 임무가 아니며, 따라서 그 정보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고려(가치 판단)는 과학과 무관하다.

그러나 많은 연구자들은 과학의 가치중립성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과학과 가치의 관계를 다룬 여러 역사적, 철학적 연구들에 따르면, 그동안 과학은 사회적 가치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 왔으며, 과학에서 사회적 가치의 영향을 차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2] 그렇지만 어떤 목표가 비현실적이라는 전제로부터 그 목표를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이 바로 따라나오지는 않는다. 더 좋은 대안적 이념이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과학의 가치중립성에 ‘다가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일부 연구자들은 가치중립적 과학의 이념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옹호하고 있다. 크게 두 가지 대안이 제시된 바 있는데, 하나는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이고, 다른 하나는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이다. 가치포용적 과학은 다양성을 통한 객관성을 강조하는 반면, 가치지향적 과학은 책임을 통한 정당성을 강조한다.

이 논문에서 나는 두 가지 대안적 이념 사이에 갈등의 소지가 있음을 밝히고, 과학의 사회적 역할에 비추어 가치지향적 과학보다는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을 옹호하려고 한다.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은 경쟁 이론 사이의 합의를 이끌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으나, 나는 진화심리학 논쟁의 역사를 사례로 오랜 기간 합의 없이도 가치포용적 과학이 객관성을 증진할 수 있음을 보일 것이며,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제안할 것이다.

2. 가치중립성 이념의 두 가지 대안

1)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은 과학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다. 여성주의 과학 비판가들은 다양한 사례 연구들을 통해 잘 확립된 듯 보이는 과학의 연구들에 침투한 남성중심적 가치들을 폭로해 왔다. 헬렌 론지노(Helen E. Longino 1990), 케이틀린 오크룰릭(Kathleen Okruhlik 1998) 등의 여성주의 과학철학자들은 이러한 사례연구들에 기반하여, 과학자 공동체는 더 많은 가치를 포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논증을 펼쳤다.

그들에 따르면, 과학자 개인 또는 공동체의 사회적 가치는 암묵적인 배경가정의 형태로 침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증거와 가설 사이의 관련성은 배경가정에 의존하며(Longino 1990, Ch. 4), 과학자의 가설 생성 과정 역시 배경가정에 의존한다(Okruhlik 1998). 만약 과학자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특정한 배경가정을 선호하는 단일한 사회적 가치의 영향 하에 있다면, 가설의 시험은 동일한 배경가정에 기반한 유사한 대안 가설들과의 비교 평가에 그칠 것이고, 증거는 가설을 잘 뒷받침하는 것처럼 간주되기 쉬우며, 특정한 가치의 영향으로 선호될 뿐인 배경가정은 비판적으로 평가받지 못한다. 따라서 과학의 객관성을 추구한다면, 즉 과학을 특정한 가치에 의한 주관적 선호로부터 벗어나게 하고자 한다면,[3] 과학자 공동체는 다양한 가치들을 포용하고 그에 기반한 대안가설들이 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그동안 과학의 은밀한 규칙으로 작동하던 숨겨진 배경가정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론지노와 오크룰릭 등이 주로 해결하고자 한 과학의 문제점은 특정 가치에 의한 은밀한 독재였고, 이에 대한 핵심적인 해결책은 다양한 가치의 포용이었다. 모렐(Morell 1993a; 1993b)이 보여주는 1970-80년대 영장류학의 변화는 가치포용적 과학이 어떻게 더 객관적인 과학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트리메이트”라 불리는 세 명의 영장류학자, 즉 제인 구달, 비루테 갈디카스, 다이앤 포시가 등장하기 전까지, 영장류학계는 대부분 남성 과학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트리메이트의 성공 이후 1970-80년대 여성 영장류학자의 수가 급증했는데, 이와 함께 영장류학의 초점과 내용도 변화했다. 예컨대 초창기 영장류 연구에서 관심을 끈 주제는 수컷들 사이의 위계 다툼이었지만, 여성 영장류학자가 전체의 52%를 차지한 1980년대 중반이 되자, 대부분의 영장류 종들이 모계사회라는 것이 밝혀졌다. 영장류 집단의 정체성은 모계를 통해 유지되고 수컷들은 이 집단에서 저 집단으로 옮겨다녔음에도, 초창기 남성 영장류학자들은 이를 보지 못했다. 나중에 어빈 드보어(Irven DeVore)는 “현장에 있었을 때 내가 보지 못한 것은 짝이 없는 수컷이 무리들 사이에서 이동한다는 것이었다.”라고 고백했다(Morell 1993b, p. 428).

수컷과 암컷에 대한 이미지도 변화했다. 여성 영장류학자들이 증가하기 전까지, 수컷은 능동적이고 경쟁적인 반면, 암컷은 성적으로 수동적이고, 무리를 지배하는 수컷들에게 주어지는 성적인 포상처럼 간주됐었고, 그에 반하는 증거들은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곤 했다. 드보어의 제자이기도 했던 세라 블래퍼 허디(Sarah Blaffer Hrdy)는 1970년대 대학원생 시절 인도 랑구르 원숭이 무리에서 관찰된 수컷에 의한 새끼 살해에 대해 “암컷의 관점에서” 연구하여, 암컷들이 새끼의 살해를 막기 위한 방책으로 난교 전략을 발전시켰다는 발견을 했다.[4]

이러한 영장류학의 변화는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을 잘 충족한다. 과학자 공동체가 남성 과학자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동안, 그들이 인간 사회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과 가치는 영장류 사회가 부계사회이며, 암컷이 수동적이라는 배경가정을 통해 연구자들의 관찰과 가설 생성 및 평가에 은밀한 영향을 주었고, 그 배경가정에 반하는 증거들을 간과하거나 그 배경가정에 부합하는 가설만을 추구하고 선택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 진출이 증가하고 성평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대에 영장류학 연구에 들어온 여성들은 기존의 가설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다른 남성 연구자들이 보지 못한 것들을 보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암컷의 관점에서” 가설을 세우고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그동안 수면 아래 숨어 있던 배경가정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일이었고, 그 덕분에 영장류학의 암묵적 배경가정들은이비판적으로 검토되고, 다른 종류의 배경가정에 기초한 대안적 가설들이 제안되고 시험됨으로써, 영장류학은 새로운 수준의 객관성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은 과학의 객관성이라는 목표를 포기하는 상대주의적 관점과 거리를 두면서, 과학자에게 자신의 가치에 따른 편향(bias)을 배제하라는 순진한 경험주의자들의 비현실적인 조언과도 거리를 둔다(Okruhlik 1998). 오히려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은 과학자들에게 각자의 사회적 맥락에 기초한 고민들을 과학적인 문제의식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것을 주문한다. 여기서도 허디는 이러한 이념을 잘 구현한 사례로 보일 수 있다. 허디는 『어머니의 탄생』의 머리말에서 “아기가 신뢰하는 인물을 찾아 애착을 형성하는 유전 프로그램을 갖는다”는 존 볼비의 “애착 이론”이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자신감 있는 아이를 기르길 원하면서도 자신의 일과 삶을 갖길 원하는 어머니들에게 새로운 딜레마들을 열어놓았다”면서(허디 2010, 13쪽), “나는 나쁜 어머니이기 때문에 양가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성공은 내 아이의 감정을 희생시킨 대가인가?”(허디 2010, 15쪽)라는 개인적 질문에 답하기 위해 모성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에 뛰어들었다고 고백한다. 물론 이러한 동기에 기초한 그의 연구 결과가 자동적으로 참이거나 더 객관적인 견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새로운 견해들을 통해 기존의 견해들을 재검토할 수 있게 된 영장류학계는 전보다 객관적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에 주의해야 한다. 첫째, 가치가 과학의 특정한 믿음을 필연적으로 산출하는 것은 아니다. 가치는 과학적 믿음과 증거적 관계를 맺지 않는다. 사회적 가치는 믿음에 인과적 영향을 줄 뿐, 명시적 이론 평가 과정에 포함되지 않는다. 비판적 검토의 대상이 되는 것은 가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영향을 받은 암묵적 배경가정으로, 배경가정은 규범적 명제라기보다 사실적 명제에 해당한다.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은 더 많은 가치를 포용함으로써, 사실적 믿음에 대한 비판적 검토 기회를 깊은 수준까지 극대화시키겠다는 기획일 뿐, 가치들 사이의 상호 평가를 하고 과학자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 논의하자는 기획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가치포용적 과학에서도 가치와 사실의 구분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은 과학 이론에 영향을 주는 가치를 최대한 투명하게 드러내지만, 가치 판단은 유보하는 모델에 가깝다. 즉 과학의 내용에 어떤 배경가정이 전제되어 있는지 공론화하고, 그것이 자연과 인간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 어떤 기회와 제약으로 작용하는지 평가하는 게 과학자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을 이렇게 이해하고 나면,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은 가치중립적 과학이라는 목표를 위한 수단처럼 이해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론지노는 ‘객관성’이라는 개념을 개인들의 자의적이거나 주관적인 기준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공동체 수준의 절차적, 사회적 방법으로 정의하기 때문이다(Longino 1990, Ch. 4). 이에 따르면, 개인 수준의 가치중립성 이념은 포기하되, 공동체 수준의 가치중립성은 다가가야 할 목표로서 고수된다.

둘째,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은 대안가설들 사이의 평가와 선택이 과학의 내적 과정에 의해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다소 낙관적인 가정에 기대고 있다. 상호 비판 및 배경가정에 대한 급진적 대안 제시를 통해 더 나은 과학이 가능하다는 기획은 비판적 소통이 생산적일 수 있을 때에나 바람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염두에 둔 론지노는 비판적 소통의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론간 공약불가능성을 부정했다. 또한 론지노는 비판적 소통이 항상 생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를 위한 네 가지 규범적 조건으로 비판의 공공성, 공유된 기준, 공동체의 응답, 지적 권위의 평등을 제시했다(Longino (1990), Ch. 4). 그러나 이러한 론지노의 기획은 여전히 낙관적인 바람이 될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론지노가 권장하는 심층적인 배경가정에 대한 의심은 과학에서의 시험과 평가를 더욱 어려운 문제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토머스 쿤(Thomas S. Kuhn)이 지적하듯, 분명한 시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명확한 규칙이 있어야 하지만,[5] 론지노는 그동안 시험의 기반이 되어온 암묵적 규칙을 의심해 보라고 권하기 때문이다. 시험의 기반이 되어 온 규칙이 정당화되지 않는 가정에 불과하다고 의심할 때, 우리는 그 의심을 어디에 기대어 시험할 수 있을까? 이는 과학적/사회적 논쟁거리가 되었던 진화심리학의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진화심리학과 관련된 논쟁이 그토록 오래 지속된 이유는 해당 이론의 배경가정이 수면 아래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가정을 투명하게 공개한 이후에도 손쉽게 평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2)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은 과학자가 과학자로서 수행하는 과학적 추론에서 가치를 명시적으로 고려할 것을 주문한다. 이를 옹호하는 대표적인 논증은 헤더 더글러스가 러드너의 논증을 복원하여 공론화한 ‘귀납적 위험’(inductive risk) 논증으로, 이 논증은 우리가 어딘가에 활용할 정보를 선별할 때 그 정보의 오류 가능성뿐 아니라 오류에 따른 위험의 크기도 고려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점에 주목한다(Rudner 1953; Douglas 2009). 최근 천현득(2024, 178-179쪽)이 재정식화한 러드너의 논증은 다음과 같다.

  • (IR-R1) 과학자의 임무는 어떠한 가설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것이다.
  • (IR-R2) 어떠한 가설을 수용하거나 거부하기 위해서는 (유의 수준이나 신뢰 구간을 선택하는 등) 주어진 증거가 충분히 강한지 또는 입증도가 충분히 높은지 판단해야 한다.
  • (IR-R3) 증거가 가설을 수용하거나 거부하기 위해 충분한지에 관한 판단은 가설을 잘못 수용하거나 기각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실수인지에 따라서 결정된다. 잘못될 가능성이 있을 때 얼마만큼의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것인지에 비추어서, 증거가 충분한지를 결정해야 한다.
  • (IR-R4) 따라서, 가설을 수용하거나 기각하는 과학자의 판단은 (윤리적인 의미에서) 가치 판단이다.

사실 러드너의 논증은 원자폭탄 개발 및 투하 직후 “과학자도 자신의 연구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자각한 과학자들의 증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 물론 당시 대부분의 논의는 연구 주제 선택의 문제에 집중되긴 했지만, 러드너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이 단지 연구 주제 선택과 같은 연구 외부의 문제뿐만 아니라 가설 수용/거부의 선택과 같은 연구 내부의 문제에도 적용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러드너와 더글러스의 귀납적 위험 논증은 개발 중인 신약의 안전성에 대한 평가 상황을 고려할 때 잘 이해된다. 일반적으로 “신약이 안전하다”라는 가설이 참이 아님에도 잘못 수용할 경우 발생하는 위험은 “허리띠에 결함이 없다”라는 가설을 잘못 수용할 경우 발생하는 위험보다 대체로 크게 평가되며, 따라서 전자의 가설을 수용하기 위한 증거의 수준 또는 문턱은 후자의 가설을 수용하기 위한 증거의 수준보다 높아야 한다(Rudner 1953, p. 2).

가치지향적 이념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귀납적 위험 논증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점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첫째, 귀납적 위험 논증은 가치의 명시적 고려를 요구한다. 가치는 뒷문을 통해서 과학에 은밀하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앞문을 통해 들어올 수 있고, 또 그렇게 들어와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과학자의 고유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의 일부이며, 책임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일에 따른 영향을 고려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둘째, 귀납적 위험 논증은 사실 판단에 가치 판단이 포함되어 있음을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사실 판단이 가치 판단으로 대체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에 대한 수용/거부에 대한 판단을 위해 가치를 명시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표자인 더글러스조차도 가치에 대한 고려는 사실 판단에 간접적으로만 개입해야 한다는 단서를 단다. 즉, “가치는 오직 불확실성의 현 수준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이유로만, 혹은 증거가 어떤 선택을 뒷받침하는 데 충분하다는 판단을 하는 이유로만 이용되어야지, 선택지들 자체를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이유로 이용돼선 안 된다.”(Douglas 2009, p. 97)

3) 두 이념 사이의 긴장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은 과학자 공동체에게 더 많은 가치를 포용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주문하고,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은 과학자의 과학적 판단 과정에서 가치를 명시적으로 고려할 것을 주문한다. 과학의 가치중립성 이념을 비판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두 이념은 자주 함께 등장한다.[6] 그러나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이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과 자연스럽게 결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둘의 결합은 다소 위험한 귀결을 낳기까지 한다.

물론 가치지향적 과학과 가치포용적 과학은 서로 잘 연결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예컨대 여성주의적 지향을 가진 학자가 영장류학계에 들어왔을 때, 그는 왜 “여성은 수동적”이라는 기존의 가정을 의심하고 새로운 대안가설을 추구하기로 마음 먹게 되었을까? 그러한 동기는 그저 가치와 사실 사이의 미스테리한 관계에 의한 무의식적인 영향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의식적인 고려를 통한 동기부여도 가능하다. 그는 기존 가설을 잘못 수용했을 때의 악영향의 크기를 고려하여 그 이면의 배경가정을 의심하고 대안적 가설을 추구할 동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 하에서, 가치지향적 과학은 개별 과학자들의 다원주의적 ‘추구’를 정당화해주는 매개자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과학자는 가설을 잘못 수용했을 때의 악영향을 고려하여 가설 수용을 위한 증거의 수준을 조정한다”라는 사실은 1970년대 사회생물학 논쟁 당사자들의 진술에서도 확인된다. 사회생물학에 대한 대표적 비판가였던 리처드 르원틴(Richard Lewontin)은 “잘못된 과학이론은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으므로, 과학은 가능한 한 정확하지 않으면 안 된다.”(랠런드와 브라운 2014, 130쪽)라며 사회생물학을 수용하기 위한 증거 수준을 높이 설정한 반면, 『사회생물학』의 저자인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은 “나를 비판하는 자들의 사회적·문화적 모델은 명백한 오류를 지적받지만 않으면 참으로 추정되는 반면, 사회생물학의 가설은 완벽한 증거자료를 제시하지 않으면 거짓으로 추정된다.”(랠런드와 브라운 2014, 145쪽)라며 당시 사회생물학 수용을 위한 증거의 수준이 지나치게 높았던 점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러한 진술들은 당시 개별 과학자들의 이론 평가 과정에서 귀납적 위험에 대한 고려가, 바람직하든 그렇지 않든, 정말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며, 일부 과학자들에게 이러한 고려는 대안적 가설들을 추구할 수 있는 출발점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가치포용적 과학 공동체의 다원주의적 추구 과정에 개별 과학자들의 가치지향적 고려가 유의미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가치지향적 과학은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을 전적으로 수용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가치포용적 과학은 귀납적 위험 논증의 IR-R3, 즉 “증거가 가설을 수용하거나 거부하기 위해 충분한지에 관한 판단은 가설을 잘못 수용하거나 기각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실수인지에 따라서 결정된다.”를 개별 과학자들의 판단 과정에 대한 사실로서는 수용하더라도, 공동체의 규범으로는 거부하기 때문이다.[7] 오히려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 하에서 IR-R3은 공동체가 서로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과학자들 사이의 상호 비판을 통해 궁극적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된다. 예컨대 과학자 A가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와 어울리는 어떤 가설 h를 증거 e를 통해 수용하고 있는 반면, 그와 대립하는 가치를 지향하는 과학자 B는 증거 e가 가설 h를 수용하는 데 불충분하다고 생각하여 h를 거부하고 있다고 해보자. 즉 서로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두 과학자 A와 B는 가설을 수용하기에 충분한 증거의 수준을 달리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은 이 상황을 허용하긴 하지만, 론지노식 절차적, 사회적 객관성을 목표로 추구하는 한, 이 상황을 규범적으로는 개선되어야 할 과도기로서만 허용할 수 있다. 따라서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은 과학자들에게 서로의 배경가정을 투명하게 공론화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서로의 가치에 의존하지 않는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할 것을 주문할 것이다.

이는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과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을 단순 결합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지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은 과학자들에게 각자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다양한 대안가설을 “추구”할 것을 주문하는 반면,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은 과학자들에게 각 가설을 “수용”하기 위한 증거의 수준을 각자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조정할 것을 주문한다. 상이한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은 가설을 잘못 수용하거나 거부했을 때 발생할 문제에 대한 위험의 크기를 달리 부여한다는 뜻이고, 이는 마치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는 가설에 대해서는 수용을 위한 증거의 문턱을 낮추고,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가설에 대해서는 수용을 위한 증거의 문턱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예컨대 “인간의 활동에 의해 기후가 변화하고 있다”라는 가설 h를 고려해보자. 기후변화의 위험을 크게 고려하는 사람은 기후변화 가설 h를 수용하기 위한 증거의 문턱을 낮추는 반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각종 규제에 따른 경제 둔화를 걱정하는 사람은 가설 h를 수용하기 위한 증거의 문턱을 높이며 기후변화를 계속 부정하거나 의심할 수 있다. 이는 가치의 간접적 개입이라도 그 개입의 정도가 지나칠 경우 직접적 개입과 비슷한 효과를 충분히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각자의 가치를 고려한 증거 수준 조정은 각자의 입장에서 정의로운 일일 수 있겠지만, 사실 판단의 문제를 가치 판단의 문제로 둔갑시킬 위험이 있다. 이는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이 극복하고자 하는 상황이지 추구하는 이상이 아니며, 심지어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을 옹호하는 학자들도 이러한 상황을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3. 과학의 규범적 이념의 조건

1) 직업 윤리로서의 과학의 규범적 이념

나는 과학의 규범적 이념은 과학의 사회적 역할에 의존하여 정해져야 한다고 전제한다. 이런 전제를 가정하면, 과학은 당연히 가치지향적이라는 게 따라나오겠지만, 과학의 내용도 가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곧바로 따라나오진 않는다. 과학의 내용이 가치중립적이도록 규제함으로써 과학이 수행해야 할 사회적 역할을 더 잘 할 가능성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자 개인이 가설의 수용/거부와 관련된 의사결정을 할 때 가치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해서, 과학의 내용이 가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따라나오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과학이라는 제도의 다양한 규범과 보상 체계가 과학자 개인의 가치 판단에서 사회적 가치를 덜 고려하는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도 가능하며, 만약 그러한 방향이 바람직하고 현실적이라면 과학은 가치중립적인 규범적 이념도 가질 수 있다. 즉 과학의 과학의 규범적 이념은 개인 수준이 아닌 집단 수준에서 모색되어야 하고, 그 내용은 과학의 사회적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제도적 규범들을 통해 드러날 텐데, 그 제도적 규범의 내용이 반드시 가치지향성을 담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사회의 다양한 전문가 집단은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인도하는 별도의 내부 규범으로서의 직업 윤리를 가지고 있다. 일례로 변호사법 제26조는 “변호사 또는 변호사이었던 자는 그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비밀유지 의무에 따르면, 의뢰인이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고백한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변호사는 그 사실을 외부에 공개하거나 신고할 수 없다. 이러한 의무는 사회의 통상적인 윤리(“범죄를 알게 되면 신고해야 한다”)와 충돌함에도 직업적, 제도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변호사가 의뢰인의 비밀을 누설할 수 있다면, 의뢰인은 변호사에게 솔직히 사실을 말하지 않게 되고, 그 결과 변호사는 제대로 된 변호를 하지 못하며, 재판 과정에서 진실이 왜곡될 가능성이 커진다. 즉, 변호사의 비밀유지는 “범죄자를 돕기 위한 도덕적 면죄부”가 아니라, 사법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또한 이는 개인의 즉각적인 도덕 판단보다는 제도의 장기적 귀결을 우선시하는 규칙이라 할 수 있다.

과학의 내부 규범 또는 직업 윤리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고민한다면, 일반적인 귀납적 위험 논증으로부터 “사회적 영향을 고려하여 가설 수용을 위한 증거 수준을 조정하라”는 구체적인 규칙은 따라나오지 않을 수 있다. 귀납적 위험 논증은 지나치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과학의 구체적인 내부 규범을 설정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며, 규칙은 개별적인 사안보다 그 규칙의 준수에 따른 장기적인 귀결을 고려하여 정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과학적 추론에서 가치나 사회적 영향은 원칙적으로 고려하지 말라”는 규칙이 장기적으로 좋은 사회적 영향을 낳는다면, 그런 규칙도 채택될 수 있다. 이에 대한 검토를 위해 과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재점검할 필요가 있는데, 아래에서는 그에 대한 완전한 답을 제공하기보다는, 단지 과학이 사회 전체를 위한 정보 제공자 역할뿐 아니라 중재자 역할도 담당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2) 과학의 새로운 사회적 역할과 귀납적 위험 논증의 한계

가로-세로 착시
그림 1. 가로-세로 착시

사회 속에서 과학이 담당하는 역할을 이해하기 앞서, 개인 내부에서 지각이 담당하는 역할을 생각해보자. 단순화하여 이해할 때, 개인의 감각-행위 과정은 감각 입력 → 지각 판단 → 행위 판단 → 행위 출력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위험은 지각 판단 과정에서도 행위 판단 과정에서도 고려될 수 있는데, 우리가 경험하는 다양한 착시들은 지각 판단 결과물에도 위험이 반영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예컨대, 그림 1의 가로선과 세로선은 길이가 같지만, 우리는 세로선을 가로선보다 길게 인식한다. 이러한 가로-세로 착시는 위험한 높은 곳에 올라가는 행동을 예방하는 적응의 산물로 설명될 수 있다(전중환 2019, 52-53쪽). 다시 말해, 인간의 지각 부서는 위험을 고려하여 그에 알맞은 형태의 지각 판단을 행위 판단 부서에 넘기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안전’한 행동을 요구하는 맥락에서 이렇게 위험을 고려한 지각 판단 결과물은 이후 안전한 행동을 산출하는 데 매우 효율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특화돼버린 지각에는 댓가가 따른다. 다른 목적의 행위 맥락에서는 이렇게 자동화된 지각 판단을 바로 잡는 데 수고가 들 것이기 때문이다. 위험과 전혀 관련이 없는 추상적 평면 도형의 문제를 다루는 맥락에서조차 인간은 자신의 눈으로는 두 선분의 길이를 동일하게 볼 수 없기 때문에, ‘자’와 같은 도구를 사용해야만 착시를 ‘극복’할 수 있다.

요컨대, 특정한 행위 맥락에 특화된 지각 판단은 그 맥락에서는 유용하고 빠르지만, 그 지각 판단은 여러 맥락에서 써먹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인간의 인지 모듈들은 거의 자동적으로 작동하는데, 이는 숙고와는 거리가 멀다. 숙고는 오히려 특화된 인지 모듈의 결과물들이 서로 충돌하거나 다른 예측 결과와 충돌하여 ‘갈등’이 발생할 때 이루어진다. 숙고는 내적 갈등 해결을 위한 절차로, 이 과정에서 각 인지 모듈의 작동 원리를 재고하기도 한다. 자동화된 지각 판단도 일종의 과학으로 비유될 수 있지만, 갈등 해결을 위한 내적 숙고 과정도 과학에 비유될 수 있다. 그러나 귀납적 위험 논증에서 과학은 전자의 과학만을 고려한다.

이러한 개인 수준의 분석은 사회적 분업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 독성학의 목적이 주로 독성 예방에 있다고 해보자. 그러면 귀납적 위험 논증은 어떤 물질에 대해 “독성이 있다”는 가설을 수용하는 데 매우 낮은 수준의 증거만을 요구할 것이며, 그 낮은 기준만 넘어서면 독성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이 정보는 그 물질의 사용을 금지시키는 결정에 활용될 것이다. 독성학자가 제공한 “독성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라는 정보는 사실에 대한 판단처럼 표현되긴 했지만, 사실 그 진술은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라는 공동체의 행위 판단과 같은 의미였던 셈이었다. 따라서 만약 그 정보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려고 하면, 예컨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사용하려고 하면 실패하기 쉽다. 그는 그 정보 생산의 맥락을 벗어나서 잘못 활용한 것이다. 그에게는 살인 목적에게 맞게 생산된 정보가 필요하거나, 보다 ‘맥락중립적’인 정보가 필요하다.

물론 많은 다른 과학적 정보들도 그것이 만들어진 특정한 맥락이 있고, 그 맥락에만 특화된 종류의 정보를 산출하고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대단히 성공적인 과학적 정보들은 그것이 처음 만들어진 맥락을 넘어서까지 활용됨으로써 그 진가를 인정받곤 한다. 이러한 교차맥락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정보를 산출하는 것은 느리고 불편한 숙고를 요구할 것이다. 때로는 그러한 범용 정보를 만드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해서, 맥락들 사이의 전환 규칙을 만들거나, 교류와 중재를 위한 불완전한 교역지대를 만들어야 할 수도 있다. 그 교역지대가 ‘가치중립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치지향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사회적 차원의 지각 부서라 할 수 있는 과학이 특화된 목적과 맥락을 벗어나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기대하고, 다양한 맥락 사이의 교류와 중재를 원한다면,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은 완화되어야 한다.

현대 사회가 다양한 가치를 허용하는 다원주의적 사회라는 점은 이러한 논지를 더욱 강화한다. 특정한 가치에 특화된 과학적 판단은 하나의 목적과 가치를 지향하는 유기적인 사회에 부합할 것이다. 그 유기적 사회에서 과학적 판단은 모두가 공유하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봉사하는 파이프라인의 일부를 담당하게 되며, 그 목적에 적합한 형태의 과학적 판단을 파이프라인의 다음 주자에게 넘겨주면 된다. 그러나 구성원들이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다원주의적 사회에서 과학은 하나의 가치를 위한 효율적인 부품처럼 봉사하는 역할뿐 아니라, 여러 가치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도 맡아야 한다. 단일 가치 지향적 과학은 이러한 갈등 중재 역할에 적합하지 않다.[8]

이러한 문제를 염두에 두고서 슈뢰더(Schroeder 2017)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과학자가 자신의 증거 기준을 민주적 가치, 즉 사회의 다수가 추구하는 가치에 정렬(align)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슈뢰더는 이러한 가치 정렬이 과학자의 정치적 권리를 빼앗는다는 부담을 가지지만, 그 부담은 대중의 정치적 자율성과 의사결정 능력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더 큰 장점을 통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과학을 전체 사회를 위한 도구로 보는 관점으로, 그는 과학자에게 일종의 공무원과 같은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러한 역할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3) 가치중립성 이념으로 회귀할 것인가?

과학이 특정한 목적과 맥락에 특화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뿐 아니라, 다양한 맥락에서 활용될 수 있는 범용 정보의 제공자이자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의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 대한 강조는 가치중립성을 과학의 규범적 이념으로 채택하자는 제안으로 보일 수 있다. 물론 앞의 논의는 귀납적 위험 논증에 기초한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을 약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가치중립적 과학의 이념으로 회귀하자는 의도는 아니다.

가치중립성 이념은 지금 현재 과학이란 게임의 일부 암묵적 규칙들을 지탱하는 이념이기도 하다. 현재 과학자 공동체에서도 상이한 가치를 추구하는 과학자들이 자신의 가치관이나 이해관계로부터 추동된 연구를 시작하고, 특정한 사실 판단을 그러한 가치관이나 이해관계에 비추어 “선호”하는 것을 금지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공식적인 논문과 학술적 토론에서는 그것을 오직 사실의 문제처럼 다루도록 규제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학자는 어떤 이론을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식으로 논문을 쓰지 않으며, “나는 성평등을 추구하기 때문에, 남녀 사이에 이러저러한 생물학적 성차가 있다는 것을 사실로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라는 식의 논증을 전개할 수는 없다.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이러한 과학의 암묵적 규칙 자체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럼에도 이러한 가치중립성 이념에 대한 강조는 다양한 문제들이 있다.

첫째, 가치중립적 이념을 표방하더라도 가치가 과학에 침투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가치중립적 게임 규칙에서도 가치가 침투하는 다양한 뒷문이 있기 때문이다. 증거에 기초한 객관적 평가만 한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주류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아 논의선상에 오르지 못한 대상은 평가도 받지 못한다. 또한 동일하게 증거에만 기초하여 논문을 평가한다고 할 때에도 공식적인 평가 항목에는 없는 요소들이 학문적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이는 비주류 입장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둘째, 가치중립성 이념에 대한 표방은 과학의 뒷문으로 침투한 가치를 숨기는 전략으로 악용될 수 있다. 진화심리학 논쟁에서 가치중립성 이념은 상대편의 가치적재성을 비난하고, 자신은 사실만을 말한다는 변명으로 사용되곤 했다. 그런데 이런 방식에서 가치적재성을 비난받은 당사자들은 대체로 억울함을 호소하게 되고, 양 진영 사이의 대화는 생산적이기보다 서로의 감정만을 상하게 한다.

셋째, 사실만을 다루고 있다는 말만으로는 상대를 설득할 수 없다. 가치에 의존한 증거 수준 조정도 뒷문을 통해 일어날 수 있다. 상대의 주장을 수용하는 데 필요한 증거의 수준을 (무의식적으로) 높인 후 증거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이 언제나 가능하다. 자신이 상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증거 부족 때문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가치가 자신의 사실적 믿음에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을 진심으로 수용하기도 어려운데, 왜냐하면 자신은 그러지 않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치중립적 과학에 대한 대안적인 이념은 위의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이념이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나는 보다 적극적인 가치포용적 과학의 이념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때 가치포용적 과학에 대한 논의에서 그동안 다소 간과되었던 부분을 좀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

첫째, 가치 자체는 평가 대상이 아니다. 가치적재성은 비난거리가 아니며, 숨은 동기를 밝히는 것은 과학자로서 해야 할 역할이 아니다. 이러한 역발상은 논쟁 당사자들 사이의 비생산적인 비난과 감정소모를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론지노가 얘기했듯이, 과학자는 가치 그 자체보다는 배경가정과 방법론을 투명하게 끄집어내고 토론에 부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판은 음모론이나 인신공격의 형태가 아니라 논증 비판의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 그 뒤에는 게임의 절차를 신뢰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게임의 결과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둘째, 과학자들 사이의 합의는 생각보다 어렵다. 과학의 역사에는 합의 없이 오랫동안 논쟁이 지속된 경우가 많이 있다. 장하석은 『물은 H2O인가?』를 통해 1800년대 상이한 목표와 가정에 기초한 원자화학의 여러 체계들이 수 십년 동안 공존하며 경쟁한 과정을 그려낸 바 있는데, 그는 각 체계들이 서로 대체불가능한 저마다의 장점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쉽게 승복하지 않았고, 결국 여러 체계들의 공존과 상호작용이 이후의 합의 도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장하석 2021). 즉, 게임의 결과에 승복하긴 쉽지 않으며 쉽게 승복해도 안 된다. 사실 너무 쉽게 승복하면 가치포용적 과학의 장점은 발휘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논쟁의 종결이나 합의를 통해 과학의 객관성을 찾기보다 논쟁이 종결되지 않는 경우에서도 과학의 객관성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9]

이에 대한 더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 진화심리학, 더 넓게는 인간 행동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을 둘러싼 논쟁을 사례로 살펴볼 것이다.

4. 진화심리학 논쟁과 가치포용적 과학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공통된 심리적 메커니즘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고 규명하려는 기획으로, 1970-80년대 단순하고 흥미로운 가정들과 쉽고 간편한 실험방법들이 정립된 이후, 다량의 연구 결과를 산출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한 연구 분야이다.[10] 진화심리학은 현대의 여러 문화 집단에 걸쳐 공통적인 특성을 뽑아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으로 간주한 뒤, 그것을 과거 플라이스토세의 자연 및 사회 환경에서의 적응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때 그들은 과거 석기시대 환경에서 자연선택된 것은 행동 그 자체가 아니라 행동을 형성하는 심리 기제라고 강조하는데, 이는 일종의 특수 목적 프로그램처럼 이해될 수 있다. 특정한 상황에서 받은 입력으로부터 행동을 산출하는 프로그램으로, 우리는 과거 환경에서 번식에 성공한 조상의 다양한 정교한 프로그램들을 물려받은 셈이다. 다만, 우리가 물려받은 프로그램들은 과거의 환경에 대한 적응 결과일 뿐이기 때문에, 급변한 현대 사회에서는 적응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진화심리학의 주요 연구 주제중 하나는 남녀의 짝짓기 전략 차이에 관한 설명이다(전중환 2019, 7장). 1972년 트리버스는 동물에 대한 전형적인 관찰 결과를 토대로 부모 투자 이론을 세우는데, 이에 따르면 자녀에 많이 투자하는 성(주로 암컷)은 신중하게 선택하는 쪽이 되고, 적게 투자하는 성(주로 수컷)은 선택받기 위해 자기들끼리 경쟁한다. 또한 인간의 경우 남녀 사이에는 평생 남길 수 있는 자식의 수에 큰 차이가 있는데, 그 수가 적은 쪽(여성)은 장기간의 임신, 출산, 수유, 양육에 드는 자원을 함께 투자할 능력과 의향이 있는 남성을 적더라도 신중하게 고르는 전략이 좋은 전략인 반면, 그 수가 많은 쪽(남성)은 되도록 생식 능력이 높은 신체적 특성을 갖춘 여성과 되도록 많이 관계를 맺는 것이 좋은 전략이 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러한 남녀간의 성차가 인간의 보편적인 특성임을 교차문화적인 증거를 통해 뒷받침하는 동시에, 실제로 존재하는 보다 다양한 모습을 유연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남녀의 장기 성 전략과 단기 성 전략을 구분하여 분석하는 등 짝짓기 프로그램의 세부사항을 정교하게 다듬고 있다(버스 2012, 4-6장. 전중환 2019, 8-11장).

그러나 진화심리학의 이러한 설명들은 남성은 여성의 외모만 따지는 바람둥이고, 여성은 남성의 재력만 따진다는 성차별적 편견에 기초한 반증불가능한 이야기로, 과학의 이름으로 우리의 고정관념을 정당화하고 있을 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11] 마리 루티(Mari Ruti)의 책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 진화심리학이 퍼뜨리는 젠더 불평등』(2017)은 진화심리학의 언어가 “남성과 여성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라는 메시지를 퍼뜨림으로써, 직장에서의 임금격차와 돌봄노동의 여성화 등을 남녀 각각의 자연스러운 성향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결과로 묘사함으로써, 현존 질서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12] 또한 많은 비판가들은 진화심리학이 남녀 간의 성차를 고정 불변의 본성처럼 다루면서, 문화에 따른 가변성과 유연성을 소홀히 다루고 있다고 비판했다.[13]

이러한 비판에 대한 진화심리학자들의 전형적인 답변은 다음과 같다(오카샤 2017, 207-211쪽. 전중환 2019, 3장). 진화심리학은 단순한 편견에 기초한 그저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교차문화적 증거를 통해 과학의 증거적 기준을 충족하여 발견된 사실이다. 남녀의 전형적인 성차가 진화적 적응이라는 주장은 환경이나 문화적 영향을 무시한 유전자 결정론이 아니며, 성차별주의에 대한 정당화도 아니다. 진화심리학이 발견한 사실들은 도덕적 함의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어떠한 목적으로도, 즉 성평등을 앞당기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 또한 정치적 올바름에 기초한 진화심리학 비판들은 오히려 탐구의 자유를 훼손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과 대응은 이미 지나간 옛날 얘기가 아니다. 진화심리학자 전중환은 2019년 저서 『진화한 마음』에서 진화심리학에 대한 오해가 여전하다며, “흔한 오해들”이라는 제목의 한 장을 통째로 할애하여 위와 같은 변호를 길게 서술하는 한편, 각 장 말미에도 유사한 변호의 말을 적어두었다. 그렇다면 대략 50년이 되도록 비판가들은 정치적 악용 가능성에 기초하여 진화심리학의 내용을 비판하고, 진화심리학자들은 오해를 받고 있다며 억울해 하는 상황이 지속되어 왔다는 것인데, 우리는 여기서 어떤 흥미로운 사실과 교훈을 발견할 수 있을까?

1) 상이한 접근법의 공존과 상호작용

랠런드와 브라운에 따르면, 진화심리학은 현재 인간 행동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법 중 가장 많은 연구자를 보유하고 활발히 연구가 이루어지는 접근법이다(랠런드와 브라운 2014, 371-375쪽).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보편적 특성만을 설명하겠다는 소박한 목표에서 출발했고, 100만년이 넘는 플라이스토세를 거치며 진화된 심리 기제는 최근 1만년 사이에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 가정했다. 또한 인간의 심리 기제는 범용 프로그램이기보다 특수 목적 프로그램일 거라 가정했는데, 이러한 가정들은 연구의 초점을 단순화시키는 동시에 풍부한 연구 질문들을 낳으며 진화심리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 가정들은 제대로 정당화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쉽게 반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행히 인간 행동을 진화론적으로 탐구하는 분야는 진화심리학만이 아니다. 랠런드와 브라운(2014)의 분석에 따르면, 진화심리학, 인간행동생태학, 문화진화론,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은 모두 인간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진화론적 접근법을 취하지만, 각각 상이한 목표와 가정 위에 서 있다. 예컨대, 진화심리학은 인간이 해결해야 할 다양한 문제마다의 해결책으로 진화한 특수한 심리 기제들을 세부적으로 규명하는 데 주목하는 반면, 문화진화론은 인간의 대부분의 특성들이 인간의 모방 및 학습이라는 일반적 심리 기제에 따른 문화적 진화의 결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문화가 인간의 굳어진 유전자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만 가변적이라 생각하는 반면, 문화진화론자들은 인간의 문화가 유전자의 제약을 벗어나 상당히 큰 가변성을 가질 거라 생각한다. 한편 진화심리학자들은 우리가 대체로 석기시대의 유전자를 가지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자들은 최근의 문화적 변화에 따른 유전자의 진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연구한다. 그들의 대표적 연구인 젖당 흡수 유전자의 출현 빈도와 낙농업의 역사 사이의 강력한 관련성을 보여주는 연구는 우리가 여전히 석기시대의 유전자를 가지고 살고 있다는 가정을 약화시키는 데 성공했다.[14]

따라서 성차의 고정 불변성을 강조하는 진화심리학에 거부감을 가지거나 진화심리학의 악용 가능성을 걱정하는 연구자들은, 문화진화론이나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의 접근법을 암묵적이거나 명시적으로 취하면서, 진화심리학적 주장들에 대한 경험적 반론들을 만들어내곤 했다. 첫째, 비판적 연구자들은 인간의 성차가 대부분 작다는 점에 주목했다. 심리학자 재닛 하이드(Hyde 2005)는 각종 심리 변수에 대한 연구들을 종합한 메타 연구를 통해 ‘젠더 유사성 가설’을 제시했는데, 이에 따르면 조사된 성차들의 3/4은 작거나 매우 작았다.[15] 둘째, 비판적 연구자들은 성차가 있더라도 문화적으로 가변적이라는 증거를 찾아내고, 알려진 성차에 대한 환경적, 문화적 설명을 제안했다. 이러한 문화적 요인을 시사하는 증거들과 대안적 설명들과의 경쟁은 진화심리학의 발견들에 대한 보다 엄격한 시험대를 제공하며, 현재까지 합의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어디인지를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셋째, 비판적 연구자들은 성차 연구의 개념적, 방법론적 약점을 분석했다. 예컨대 파인(2017, 특히 5장)은 “남성은 위험 감수자이고, 여성은 위험 회피자”라는 진화심리학적 주장이 도박과 관련된 질문지를 통해 여러 차례 입증되긴 했지만, 다양한 위험 맥락을 도입하면 그러한 주장이 잘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그러한 연구가 “위험 감수가 단일 차원의 성격 특징”이라는 개념적 가정에 기반해 있다고 진단했다.

다른 종과의 신중한 비교 연구도 진화심리학에 다양한 제동을 걸어주었다. 첫째, 진화심리학의 비판가들은 다양한 생물 종마다 짝짓기 전략이 상이함을 보여주는 발견들에 주목했다. 많은 포유류들이 “수컷은 경쟁하고 암컷이 신중하게 선택한다”는 모델을 따르긴 했지만, 반대의 전략을 가진 종들도 존재했다. 물론 이러한 발견은 트리버스의 부모 투자 가설을 곧장 반박해주진 못한다. 왜냐하면 반대 전략을 가진 종들은 대부분 수컷의 부모 투자가 상대적으로 큰 종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 발견들은 부모 투자 가설만으로는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단순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둘째, 많은 비판가들은 인간만의 독특한 조건들을 강조함으로써, 젠더 유사성 가설의 설득력을 높였다. 예컨대, 세라 허디는 랑구르 원숭이에 대한 연구에서 암컷의 전략을 발견한 것처럼, 다른 포유류나 영장류와는 다른 인간의 특이한 조건에 주목하며 여성과 아기 및 다른 가족 사이의 전략이 공진화했음을 발견했다. 예컨대 인간만의 가혹한 양육 부담은 인간 사회에서 자주 발생하는 여성의 영아 유기를 설명하며, 남성과 친족의 공동 육아 전략의 진화를 설명한다. 그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도 종간 비교 연구를 통해, 인간의 생물학적 이형성(남녀의 크기 및 형태 차이) 수준은 큰 편이 아니며, 인간은 남녀 모두 짝 선택 과정에서 경쟁적이면서 신중한 특이한 종임을 드러냈다. 인간의 부모 투자 또한 포유류 중에서 드물게 양성이 공유하며, 이례적인 장기적 짝짓기 관계 및 협동 양육 모두 공통된 진화적 원인을 가지거나 상호 관련된 것으로 간주됐다.[16] 아기를 귀엽게 보는 인간의 보편적 성향은 여성 외의 친족 구성원들이 육아에 동참하는 형태의 적응이 일어났음을 시사했다. 이러한 발견들은 생물학적 적응과 문화적 적응, 유전자–문화 공진화가 얽혀 있음을 시사함으로써, 진화심리학의 고전적 가정들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2) 과장된 불일치와 점진적 일치

진화심리학자들은 앞서 살펴본 다양한 비판들에 대해 진화심리학 자체에 대한 비판이기보다 진화심리학의 연구 프로그램 내에서 포용될 수 있는 다양성과 유연성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는 진화심리학의 자연스러운 발전이라기보다 다양한 비판에 대한 점진적 수용 과정이자, 고전적 가정들의 약화 과정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또한 비판가들의 주장들도 점차 진화심리학과 양립가능한 방식으로 체계화되는 모습을 띠고 있다. 즉, 겉보기에 평행선을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양측의 논쟁 과정에서, 서로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진화심리학은 여전히 인간의 성차를 적응적 “본성”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그들의 세부 자료는 처음부터 그렇게 강한 주장이 아니었다. 예컨대 대표적인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David Buss)는 “여성은 남성보다 재정적 전망을 더 중시하고, 남성은 신체적 매력을 더 중시한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대규모 배우자 선택 연구에서 상위 네 가지 기준은 남녀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① 상호매력, ② 의지할 만한 성격, ③ 정서적 안정, ④ 호감 가는 성향이었다. “재정적 전망은 여성들이 꼽은 배우자의 조건 목록에서 12위(남성의 경우 13위)를 차지했으며, 미모는 남성들이 꼽은 배우자의 조건에서 10위(여성의 경우 13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버스 자신도 배우자 선택에서 개인의 성별보다 거주지가 더 큰 설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인정했다(랠런드와 브라운 2014, 230쪽). 반대로 ‘젠더 유사성 가설’을 제안한 하이드(Hyde 2005)의 연구도 젠더 사이의 차이들이 대체로 크지 않음을 주장할 뿐, 범문화적으로 일관된 차이들이 존재한다는 것까지 부정하진 않는다. 이러한 결과들로부터 우리는 짝짓기와 관련된 성차가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합의하면서도, 그 성차가 그다지 크지 않으며 문화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에도 합의할 수 있다. 이는 진화심리학을 둘러싼 불일치가 과장된 것일 수 있음을 암시하며, 현상 수준의 합의는 좀더 폭넓게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물론 현상 수준에서의 합의가 가능하다고 해서 그에 대한 설명에서도 합의가 바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설명과 관련해서도 상당한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허디의 모성 연구는 다른 진화심리학 연구와 마찬가지로 트리버스의 ‘부모 투자’ 이론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으며,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자들도 자신들의 수학적 모델 구성 과정에서 진화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차용한다. 한편 본성의 제약을 강조하는 진화심리학과 문화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문화진화론은 초창기에는 서로 강경하게 대립하는 접근법이었으나, 현재는 본성의 제약과 문화의 자율성의 ‘정도’에 대한 이견 정도로 상당히 좁혀졌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다른 연구 결과들을 수용하면서 심리 기제의 고정 불변성보다는 유연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동시에, 문화의 역할을 강조하는 학자들 역시 문화적 요소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너무 복잡해 그것들을 원하는 대로 변경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점진적 일치는 ‘인간 본성’ 개념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나타난다. 문화진화론에 우호적인 팀 르윈스(Tim Lewens)는 진화심리학의 악영향을 우려하여 ‘인간 본성’ 개념을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본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고정 불변성이나 규범성을 연상시킴에 따라 윤리적 토론에서 혼란을 일으키고, 특정 인종이나 성에 대한 전형적 사고를 강화한다는 것이다(르윈스 2016, 7장, 특히 296쪽). 반면 진화심리학에 우호적인 에두아르 마셔리(Edouard Machery 2008)는 ‘인간 본성’ 개념을 단지 진화적으로 보편화된 인간 특성들의 집합으로 정의함으로써, 규범적 성격이나 고정 불변성에 대한 함축을 ‘본성’ 개념에서 빼면 된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 본성’ 개념의 찬반 양측의 내용적 차이가 과거[17]에 비해 현저히 작아졌다는 것이다.

3) 가치포용적 객관성과 방법적 제안

진화심리학 논쟁의 사례는 문제 영역을 공유하면서도 대립하는 다양한 접근법들이 오랜 기간 합의 없이도 각자의 목표와 가정에 기초한 연구를 통해 경쟁하며 생산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각각의 접근법은 연구자들이 추구하는 상이한 가치들과 결부되어 있으며, 이는 상이한 목표와 가정에 기초한 연구를 이끈다. 서로의 목표나 가정은 쉽게 반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오류의 폭로는 대부분 결정적일 수 없다.

다양한 접근법의 공존과 상호작용에서 얻어지는 객관성은 합의로부터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다른 객관성은 상이한 목표와 가정으로부터 얻은 연구 결과들이 가지는 의미를 확대해석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데서 나온다. 즉, 비판은 상대의 오류를 폭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전제를 명료화하고 각각의 접근법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결론의 한계를 명확히 함으로써, 객관성을 증진하고 오해와 갈등을 방지한다.

진화심리학 논쟁의 역사에서 볼 때, 이러한 접근은 특히 절실하다. 진화심리학과 비판가 사이의 오랜 논쟁은 결과적으로 생산적이었음이 드러났음에도, 그 과정은 지나치게 소모적이었다. 그동안 여성주의적 비판은 진화심리학의 숨겨진 가치를 폭로하는 방식이 많았고, 반대로 진화심리학자들은 그것은 오해라며 “우리는 사실에 대해서만 다룰 뿐이다”라고 방어했지만, 이러한 폭로와 방어의 악순환은 갈등을 증폭시키고 대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다. 보다 생산적인 대화를 위해, 가치 자체는 평가 대상이 아니며, 가치적재성 자체는 비난거리가 아니라는 점과 함께, “사실만을 말한다”는 대응 역시 효과적인 대응이 될 수 없다는 점에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7. 결론

가치포용적 과학과 가치지향적 과학은 과학의 가치중립성 이념을 비판하며 등장한 두 가지 대안이다. 가치포용적 과학은 다양성을 통한 객관성을 강조하는 반면, 가치지향적 과학은 책임을 통한 정당성을 강조한다. 두 이념은 가치중립적 과학에 반대한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함께 결합되기 어려운 요소들을 가지고 있으며, 함부로 결합할 경우 바람직하지 않은 귀결을 낳을 위험이 있다.

한편 귀납적 위험 논증은 가치지향적 과학을 뒷받침하기에 지나치게 일반적인 논증이다. 가치지향적 과학의 이념을 옹호하려면 과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며, 가치지향적 과학의 규칙이 그러한 역할을 장기적으로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지에 대한 논증이 필요한데, 귀납적 위험 논증은 그러한 논증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은 다양한 맥락에서 활용될 정보를 제공하고 중재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이러한 과학의 사회적 역할을 고려할 때 가치지향적 과학은 과학의 규범적 이념으로서 부적절하며, 가치중립적 과학의 여러 약점들은 가치포용적 과학으로 해결 가능하다. 물론 가치포용적 과학은 경쟁하는 이론들 사이에 합의를 이끌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으나, 나는 진화심리학 논쟁의 역사를 사례를 통해 오랜 기간 합의 없이도 가치포용적 과학이 객관성을 증진할 수 있음을 보였다.

  1. 이 논문의 주요 아이디어들은 한국과학철학회 2024년 정기 학술대회와 경상국립대학교 여성연구소 2025년 10월 연구발표회에서 발표된 바 있다. 논문을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준 논평자들과 익명의 심사자 여러분께 고마움을 전한다.
  2. 앞으로 별다른 수식어 없이 등장하는 ‘가치’는 모두 사회적 가치를 의미한다. 즉 어떤 행위자가 어떤 대상이나 사안에 대해 부여하는 (도덕적, 정치적, 경제적) 중요성을 의미한다. 과학과 가치의 관계에 대해 다루는 여러 문헌의 관례상 사회적 가치에서 인식적 또는 인지적 가치들을 제외된다. 예컨대 정확성, 단순성, 정합성, 넓은 적용범위, 다산성 등의 가치는 사회적 가치로 취급되지 않는다. 가치의 구분법과 관련된 논의로는 Laudan (2004), Douglas (2013), Steel (2010)을 참고할 수 있다.
  3. ‘객관성’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론지노가 강조한 바 있다(Longino 1990, p. 62). 론지노는 추가적으로 절차적·사회적 객관성 개념을 제시하고 옹호하지만(Longino 1990, Ch. 4), 비주관성으로서의 객관성을 포기했다고 보긴 어렵다.
  4.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다음을 참고하라. 허디 (2010), 73-78쪽.
  5. 쿤 (2013), 4장과 9장을 참고할 것. 4장에서는 패러다임이 명확한 규칙을 제공해주는 경우를 묘사하는 반면, 9장에서는 패러다임 사이의 싸움으로 명확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를 묘사하고 있다.
  6. 천현득(2024)도 과학의 가치중립성 이상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보이기 위해 더글러스나 해브스타드의 책임 논변에 이어 롤린과 인테만의 가치풍부화(value enrichment) 비판을 소개하고 있다(특히, 182-183쪽). 소개된 책임 논변과 가치풍부화 비판을 정식화한 것이 이 논문에서는 ‘가치지향적 과학’과 ‘가치포용적 과학’으로 표현되고 있다.
  7. 한 심사자는 가치포용적 과학의 지지자들이 IR-R3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의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지적하면서, 지지자들의 생각을 인용할 필요가 있다고 적절히 지적했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가치포용적 과학의 지지자들이 실제로 IR-R3를 거부했는지에 대해 조사하기보다는, 가치포용적 과학이 론지노식 절차적, 사회적 객관성을 목표로 추구할 경우에 IR-R3를 극복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음을 이론적으로 논증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가치포용적 과학의 지지자들에 대한 상세한 조사는 추후 연구의 과제로 삼도록 하겠다.
  8. 홀만과 윌호트(Holman and Wilholt 2022)의 “새로운 구획 문제(The New Demarcation Problem)”도 가치 충돌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과학자가 어떻게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에서 출발한다. 힉스(Hicks 2014)도 비슷한 상황에서 어떤 방식의 가치 개입이 적절한지를 묻고 있으나, 나는 힉스의 답변에 동의하지 않는다.
  9. 이러한 아이디어 역시 장하석의 능동적 다원주의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이 지나치게 합의와 종결에만 관심을 두었다고 비판한다(장하석 2021, pp. 599-600).
  10. 진화심리학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는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버스(2012)와 전중환(2019)은 진화심리학의 연구 성과들을 모은 표준적인 교과서이며, Downes(2014)는 진화심리학의 기본 가정들과 방법론에 대한 철학적 검토를 담고 있다. 랠런드와 브라운(2014)은 진화심리학을 인간 행동에 대한 다양한 진화론적 접근법들의 맥락 속에서 비교하고 있다.
  11. 진화심리학에 대한 널리 알려진 비판과 다음 단락의 진화심리학자들의 표준적 대응은 과학철학 개설서인 오카샤의 『과학철학』(2017, 207-211쪽)에서 과학의 가치적재성을 둘러싼 논쟁의 대표 사례로 소개되었다.
  12. 루티의 책은 진화심리학에 대한 전형적인 비판과 우려를 담고 있으나, 진화심리학의 과학적 내용과 방법론에 대한 분석은 치밀하지 못하며, 전문적인 연구들보다 대중화된 진화심리학에 대한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약점이 있다.
  13. 진화심리학에 대한 더 전문적인 비판은 Downes (2024)와 Fehr & Meynell (2024)를 참고하라.
  14. 랠런드와 브라운 (2014), 7장을 참고할 것.
  15. 파인(2017), 4장(특히 116-117쪽)은 하이드의 ‘젠더 유사성 가설’과 함께 남녀의 심리가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다는 주장을 소개하고 있다.
  16. 여성주의 진화심리학자들에 의한 발견들은 최근 연구결과들을 종합한 리뷰(Wilson, Miller & Crouse 2017)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 하지만 위버(Weaver 2017)는 여성주의적 진화심리학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며, 더욱 근본적인 비판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17. ‘인간 본성’을 둘러싼 과거의 논쟁은 에드워드 윌슨(Wilson 1978)과 데이비드 헐(Hull 1986)의 논쟁을 참고하라. 윌슨은 1978년 On Human Nature라는 책을 출판하여 선천적인 인간 본성을 통해 사회 현상을 설명한 반면, 헐(David Hull)은 1986년 “On Human Nature”라는 논문에서 인간 본성이란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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