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ormative Uttera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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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L. Austin, “Performative Utterances,” in Philosophical Papers, 3rd edition, eds. J. O. Urmson and G. J. Warnock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79), pp. 233-252.

우리는 T/F 외에 말하는 것이 있다. 철학자들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철학자들은 사실을 기술하는 발화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러면서 T/F가 확정되지 않는 발화는 nonsense로 간주되곤 했다. 그러나 첫째, T/F는 아니지만 nonsense도 아닌 종류가 분명히 있다. 둘째, 기술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뭔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기 위한 목적의 진술이 있다. 이러한 노선의 사람들은 “언어의 다른 사용들”이라는 슬로건을 채택하면서, 과거의 접근방식에 대해 “기술주의적 오류”로 불렀다.

언어는 다양한 사용방식이 있지만, 무한한 종류의 사용 방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수행적 발화의 특징

여기서는 그중 한 가지 사용방식에 대해 검토. 진술처럼 보이는 발화로, 문법적으로 진술로 분류되겠지만 무의지하지도 않으면서 T/F도 아닌 그런 발화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진술은 ‘doing something not merely saying something’하고 있다. 예컨대,

  1. 결혼식에서 “I do” -> 결혼식 묘사가 아닌 결혼식 참가 수행 중
  2. 발을 밟은 다음에 “I apologize” -> 사과에 대한 묘사가 아닌 사과를 하는 중
  3. “나는 이 배를 Queen Elizabeth로 명한다” -> 명명식 묘사가 아닌 명명을 하는 중
  4. “나는 내일 비가 올거라는 데 6펜스 건다” -> 내기 묘사가 아닌 내기를 하는 중

수행적 발화는 내적 심적 행위(inward spiritual act)의 묘사? 그렇게 간주한다면, 위증의 문제 생김. 아마도 이런 전략을 진지하게 몰고 가는 것은 문제일 것. (뒤에서도 다시 한 번 반대 논증함. 인사할 때 모자를 들어올리는 것을 가지고, 그 행위가 인사를 묘사한다고 말하진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이 인사를 묘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상하다.)

수행적 발화의 적절성/부적절성 평가

수행적 발화도 T/F를 가지는 사실을 함축하기도. 하지만 그 함축된 사실들의 모음이 그 발화와 같은 것은 아님. 수행적 발화는 T/F 아니지만, 실패할 수는 있음. 즉 적절/부적절할 수 있음.

수행적 발화가 적절하려면, (A1) 어떤 발화를 통해 발동할 수 있는 관습적 절차가 있어야 한다. (A2) 그 절차를 발동하고자 하는 상황이 그 특정한 절차를 발동하는 데 적절해야 한다. 이것이 어겨지면 그 발화는 불발(misfire)되어 무효화된다. 예컨대 결혼식장으로 간주될 수 없는 곳에서의 발화는 결혼식을 수행할 수 없다.

한편 발화가 잘못되는 다른 종류도 있음. 어떤 의도가 없음에도 그런 의도를 수행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발화를 할 경우, 그것은 절차의 남용, 즉 위선임. 그러나 이는 불발은 아님. 예: 지키지 않을/지킬 수 없는 약속 (허언), 맘에 없는 축하 (공치사).

그 외에도 범주화는 잘 안되지만 부적절한 것으로 판정할 수 있는 발화들이 다수 있음. (강요 속에서 이루어진 발화, 농담, 연극 등)

수행적 발화와 진술적 발화의 구분의 모호성

수행적 발화의 표준적인 형태는 1인칭 단수 능동태 현재형이거나 2인칭 수동태 현재형으로 볼 수 있다. "Shut the Door"와 같은 비표준적인 형태의 수행적 발화는 "I order you to shut the door"와 같은 표준적인 형태로 바꾸어 그것이 수행적 발화임을 명시화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수행적 발화의 표준적 형태와 명시적 수행적 동사의 목록을 가진다면, 모든 수행적 발화를 명시적인 수행적 발화로 환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암묵적인 수행적 발화를 명시적인 수행적 발화로 환원할 때 정확한 동사를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말의 톤이나 제스처, 그리고 발화의 맥락 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그런데 "I'm sorry"와 같은 문장을 명시적인 형태인 "I apologize .."로 바꾼다면, 원래의 의미를 정확히 옮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I'm sorry"는 화자의 감정상태를 진술하는 동시에, 사과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수행적 발화와 진술 및 보고 사이에는 명확한 선을 긋기 어렵다. 이는 아래와 같이 더욱 확장될 수 있다.

진술도 적절성/부적절성과 관련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진술을 할 때, 그것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함의하거나 전제해야 하는데, 이러한 함의나 전제는 그 발화의 진위보다는 적절성/부적절성의 문제와 깊이 관련된다. 예컨대 "프랑스의 현재 왕은 대머리이다"와 같은 진술은 현재 왕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지만, 그런 왕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 진술은 거짓이라기보다는 부적절하다. 위의 기준에 따르면 "불발"에 의한 "무효"에 가깝다. 또 다른 예로, "그 고양이는 매트 위에 있지만, 나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라는 진술도 참/거짓이기에 앞서 부적절한데, 위의 기준에 따르면 "위선"에 가깝다. 우리는 진술을 할 때, "I warn ...", "I order ..."와 같이 "I state ..."라는 진술하기의 행위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즉 진술은 넓은 의미의 수행적 발화의 일종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 규정은 진술과 관련한 몇 가지 역설을 푸는 데 도움을 준다.(예: "프랑스의 현재 왕은 대머리이다.")

거꾸로 수행적 발화는 적절성/부적절성뿐 아니라, T/F와 유사한 good/bad, jusfied/unjustifies, sound/unsound를 평가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예컨대 "나는 그 황소가 곧 공격할 것이라고 너에게 경고한다"라는 수행적 발화의 경우, 만약 그 황소가 곧 공격하지 않는다면 그 경고는 무효나 위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거짓이거나 틀린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심판의 판정이나, 배심원의 선고도 분명 수행적인 발화이지만, 동시에 사실과의 연결성을 지닌다. 즉 T/F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평가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여전히 T/F는 아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진술 중에서도 T/F로 딱 잘라 평가할 수 있는 진술은 흔하지 않다. T/F는 단지 발화와 사실 사이의 연관을 평가하는 일반적인 이름으로 보아야 더 적당할 것이다.

결론

요컨대, T/F 평가를 하느냐, 적절성/부적절성 평가를 하느냐는 진술과 수행적 발화를 구획하는 특징이 될 수 없다. 모든 발화는 수행적 발화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그 정도는 다르지만 T/F 평가와 적절성/부적절성 평가를 모두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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