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과학혁명의 지적, 사회적 의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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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천문학은 심오한 원리를 다룬다기보다는 “현상을 구제하기” 위한 도구적인 학문으로 여겨졌다. 등속원운동이 천상계의 본성이라는 관념은 대부분의 천체의 운동에 잘 부합했지만 예외가 없었던 건 아니다. [[행성들의 문제#행성의 겉보기 운동|‘떠돌이별’인 오행성은 ‘항성(고정된 별)’과 달리 이동 속도가 변하고 방향도 바뀌는 등 등속원운동에서 벗어난 운동을 한다는 점]]에서 큰 골칫거리였다. 천문학은 이런 행성의 복잡한 운동을 기술하는 데에 목표를 둔 특화된 학문이었는데, 그 기초는 고대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마련했다. 그는 [[행성들의 문제#주전원과 주원|주전원(epicycle)]], [[행성들의 문제#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이심(eccentric), 등각속도점(equant)과 같은 기법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하여 행성의 운행을 설명하는 천체모델을 고안했다]]. 아울러 이 모델은 중세 및 르네상스기를 거치면서 관측데이터에 더 잘 부합하는 형태로 조금씩 개량되었다.
전통적으로 천문학은 심오한 원리를 다룬다기보다는 “현상을 구제하기” 위한 도구적인 학문으로 여겨졌다. 등속원운동이 천상계의 본성이라는 관념은 대부분의 천체의 운동에 잘 부합했지만 예외가 없었던 건 아니다. [[행성들의 문제#행성의 겉보기 운동|‘떠돌이별’인 오행성은 ‘항성(고정된 별)’과 달리 이동 속도가 변하고 방향도 바뀌는 등 등속원운동에서 벗어난 운동을 한다는 점]]에서 큰 골칫거리였다. 천문학은 이런 행성의 복잡한 운동을 기술하는 데에 목표를 둔 특화된 학문이었는데, 그 기초는 고대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마련했다. 그는 [[행성들의 문제#주전원과 주원|주전원(epicycle)]], [[행성들의 문제#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이심(eccentric), 등각속도점(equant)과 같은 기법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하여 행성의 운행을 설명하는 천체모델을 고안했다]]. 아울러 이 모델은 중세 및 르네상스기를 거치면서 관측데이터에 더 잘 부합하는 형태로 조금씩 개량되었다.


정확성을 기하려면 더 많은 주전원을 더 정교한 방식으로 조합해야 했는데, 이러다보니 천체모델은 갈수록 복잡해졌다.<ref>이러한 주장은 깅거리치 등의 연구에 의해 역사학계에서 수용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할 것. Owen Gingerich, {{"|{{"|Crisis}} versus Aesthetic in the Copernican Revolution}}, ''The Eye of Heaven: Ptolemy, Copernicus, Kepler'' (AIP, 1993), pp. 193-204.</ref> 코페르니쿠스는 이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진정 천체의 운행이 이렇듯 복잡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일까? 차라리 태양과 지구의 위치를 바꾸고 지구에 운동을 부여하는 게 더 나아보였다. 이렇게 하면 기존 우주체계가 지니는 복잡성 중 많은 부분이 해소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중심설이 지니는 몇 가지 장점을 적극 설파했다. 실제로 태양중심설은 행성의 역행운동이나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조화|내행성의 최대이각]] 같은 현상을 지구중심설에 비해 훨씬 간단하게 해명할 수 있었다.  
정확성을 기하려면 더 많은 주전원을 더 정교한 방식으로 조합해야 했는데, 이러다보니 천체모델은 갈수록 복잡해졌다.<ref>이러한 주장은 깅거리치 등의 연구에 의해 역사학계에서 수용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할 것. Owen Gingerich, {{"|{{"|Crisis}} versus Aesthetic in the Copernican Revolution}}, ''The Eye of Heaven: Ptolemy, Copernicus, Kepler'' (AIP, 1993), pp. 193-204. 정동욱, 정원호, [[위기 없는 혁명]]</ref> 코페르니쿠스는 이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진정 천체의 운행이 이렇듯 복잡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일까? 차라리 태양과 지구의 위치를 바꾸고 지구에 운동을 부여하는 게 더 나아보였다. 이렇게 하면 기존 우주체계가 지니는 복잡성 중 많은 부분이 해소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중심설이 지니는 몇 가지 장점을 적극 설파했다. 실제로 태양중심설은 행성의 역행운동이나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조화|내행성의 최대이각]] 같은 현상을 지구중심설에 비해 훨씬 간단하게 해명할 수 있었다.  


[[그림:역행운동의 설명방식.jpg|frame|center|역행운동의 설명방식 : 프톨레마이오스(왼쪽)와 코페르니쿠스(오른쪽)]]
[[그림:역행운동의 설명방식.jpg|frame|center|역행운동의 설명방식 : 프톨레마이오스(왼쪽)와 코페르니쿠스(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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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머스 쿤, [[코페르니쿠스 혁명]]
* 토머스 쿤, [[코페르니쿠스 혁명]]
*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 정동욱, 정원호, [[위기 없는 혁명]]
* Peter Dear, [[Jesuit Mathematical Science and the Reconstruction of Experience in the Early Seventeenth Century]]
* Peter Dear, [[Jesuit Mathematical Science and the Reconstruction of Experience in the Early Seventeenth Century]]
* Steven Shapin, [[The Scientific Revolution]]
* Steven Shapin, [[The Scientific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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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혁명에 대한 최근 논의]]
* [[과학혁명에 대한 최근 논의]]
* [[과학혁명과 경험]]
* [[과학혁명과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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