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raday, Wheatstone and Electrical Engineering

Bowers, Brian (1985), "Faraday, Wheatstone and Electrical Engineering", in David Gooding and Frank A. J. L. James (eds.), Faraday Rediscovered: Essays on the Life and Work of Michael Faraday, 1791-1867, London: Macmillan, 163-174.

전기공학의 기초는 Michael Farady의 발견. 그는 전동기, 발전기, 변압기 등 전기 공학의 근본이 되는 장치들의 과학적 기초 제공. 그러나 전기 공학이 그러한 기초로부터 자연스럽게 당연한 과정으로 나오는 것은 아님. 과학적 발견의 실용적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매개자 필요. 패러데이와 전기 공학 사이에는 찰스 휘트스톤이 중요한 역할.

순수과학자과 응용과학자로 간단히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패러데이가 보다 순수 과학쪽이라면, 휘트스톤은 보다 응용 과학에 기움.

둘의 관계는 세 층위에서 작동 : (1) 패러데이는 휘트스톤의 발견을 교양있는 대중들에게 demonstrate하는 일을 많은 부분 맡았음. (2) 종종 그들은 공동으로 연구를 수행했음. (3) 휘트스톤은 패러데이의 발견에 대한 실용적인 응용물을 만들었음.

둘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음. 서로 편지보다는 아예 같이 일했기 때문. 즉 남은 사료가 별로 없음.

휘트스톤

사석에서는 말 잘하면서, 공석에서는 부끄러움 많이 탐. 어떻게 킹스 칼리지 실험 철학 교수가 되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 아마도 교수 자리 청탁을 받고 수락하는 형태로 임명된 듯.

1802년 Gloucester에서 출생. 1806년 가족 런던으로 이사. 그의 아버지는 음향기구 제작자이자 플루트와 플래젤렛 가르침. 그의 삼촌도 음악 파는 일. 휘트스톤은 삼촌 밑에서 도제. 그러나 그는 사업보다 어떻게 악기가 작동하는지 연구하는 쪽에 관심. 특히 막대나 현을 통해 소리가 전파되는 현상에 매혹. (1821년 1822년 신기한 전시회) 1822년 3월, 4월의 전시회에서는, 두당 5실링씩 요금을 받고 1시간짜리 오케스트라 공연을 들려줌.

콘서트를 각 집으로 전달하고, 의회의 토론을 집에서도 들을 수 있게 하는 꿈. 즉 원거리로 음악, 소리,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에 관심.

휘트스톤의 초기 음향학 연구들은 왕립연구소의 흥미로운 금요일 저녁 강연에 제공. 음악의 물리학 및 음향기구의 작동은 강연의 재밌는 주제였음. 휘트스톤가 제공한 재료를 가지고 패러데이가 극장에서 강연. 1828년 2월 15일 시작된 둘의 조인트 강연 시리즈는 20년간 지속됨. 46년 유명한 강연 "Thoughts on Ray-vibrations"도 포함.

전기의 본성, 속도, 전달에 관한 연구

휘트스톤의 초기 전기 연구에서는 실용적 응용에 대한 고려가 많지 않았던 듯.

스파크... 운동?

1833년 3월 1일, 패러데이의 왕립연구소의 강연에서, 휘트스톤은 스파크를 연구하는 동기 개괄적으로 전개. 스파크가 통과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가? 만약 그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면, 하나의 전기 유체인지 둘의 전기 유체인지, 어느 방향인지 결정할 수 있을 것. ==> 회전 거울을 통해 스파크의 속도 측정.

1834년 실험 결과 발표. 288000 miles/s로 추정.

휘트스톤은 스파크를 한쪽 극에서 다른 쪽 극으로 흐르는 전기 유체로 간주. 이는 스파크를 연소의 일종으로 보는 입장에 반대.

(휘트스톤은 패러데이의 정전기 방전 스파크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스트로보스코프 개발했다는 얘기가 다른 책에는 중요하게 나오기도.)

전신

전기의 속도.. 전기의 응용 가능성은 순수 연구에서 그를 멀어지게 함.

휘트스톤은 자침의 움직임이 긴 도선을 통해서도 전달되는 회로 설계. 어떻게 성공? 1830년대 중반, 옴의 논문 "Die Galvanische kette mathematisch Bearbeitet" 읽었는데, 그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전신 장치가 만족스럽게 작동하려면, 장치의 임피던스가 적어도 도선의 임피던스와 비교될 만한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수신기의 코일에 가는 도선을 아주 많이 감음으로써 성공.

같은 시기, 쿠크(Cooke)라는 사람도 실용적인 전신 연구. 그의 코일은 두꺼운 데다 낮은 임피던스 가짐. 그래서 신호 에너지가 송신기와 수신기 사이를 이어주는 도선에서 다 소모되어 버림. 방과 방 사이 정도에선 작동했지만 1마일도 못감. 쿠크는 패러데이를 비롯한 과학자(men of science)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그들은 조언을 해주지 못함. 결국 1837년 2월에 만난 휘트스톤에게서 적절한 도움을 받게 되고, 그해 함께 첫 실용적인 전신 특허 냈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첫 번째 공학적인 전기 응용. 그러나 휘트스톤은 전신의 상업적 개척에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반면, 쿠크는 상업적 가능성을 개척하였고, 새로이 개발된 철도 시스템이 전신을 이용한 빠른 통신을 필요로 할 것으로 정확히 인식했다. 그래서 1838년, 패딩턴(Paddington)에서 서부 드레이턴(West Drayton)까지의 새 대 서부 철도를 따라, 첫 상업적 전신이 개설된다.

발전기와 전동기

처음에 전신에는 전지가 사용. 그러나 전지는 비싼 데다가 잦은 교체 필요.

1831년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는 전지에 의존하지 않는 전류의 가능성 제공. 첫 전자기 유도 성성기, 마그네토(magneto)는 Pixii의 1832년 기계. 30년대 내내 유사한 기계들 만들어짐.

쿠크와 휘트스톤도 전신 발명을 위한 초기 실험에서 발전기 이용 시도했으나 실패. 1837년 7월 4일 어머니한테 보내는 편지 : ""전자기"라 불리는 기계가 갈바니 전지를 대체할 수 없는지 노력하고 있다." 당시에는 실패했지만, 몇 년 이내에, 휘트스톤은 그의 전신에 마그네토(magneto)를 사용하게 됨.

그는 마그네토를 실용적인 발전기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 그는 1866년 self-excited generator의 독립 발명가 중 한 명. Simens와 상호 도움 및 경합.

전신의 또 다른 문제는 문자나 숫자를 표현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 수천 대의 휘트스톤의 'ABC' 전신기 만들어짐. 바늘이 문자를 가리키게끔 만들어져서 그렇게 이름 붙여짐.

또 전신기에는 작은 전동기가 들어있었는데, 휘트스톤은 이를 더 좋은 전동기로 개량하고 싶어했음. 그중 하나는 conventional, 나머지 세 개는 eccentric. 그는 또 선형 전동기도 만듦. (이 기계는 그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높은 전류를 필요로 했는데, 그것을 작동시키는 데 왕립연구소의 대형 배터리 사용됨)

휘트스톤은 전동기가 전신 이외의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날을 꿈꿈. 1843년 전기 측정에 관한 왕립 학회 논문에서, 그는 변항기(rheostat)를 묘사하면서, 만약 전동기가 유용한 파워소스가 된다면 이 변항기가 그 속도를 조절하는 데 쓰일 수 있을 거라고 소개.

그의 모든 전동기 작업이 성공하진 않음. 1840년 탤벗의 '전기분해 기체 엔진' 특허. 싱글-실린더 증기기관과 비슷하게 생겨서, 세로 실린더의 피스톤은 크랭크에 의해 플라이휠과 연결. 그러나 증기 파이프 없음. 대신 4개의 도선이 실린더에 연결, 둘은 아래에 둘은 위에. 휘트스톤은 이 기계의 제조와 시험. 그러나 안전 문제 ...

패러데이와의 전기 연구

1830년대 말, 패러데이와 휘트스톤은 여러 전기들의 동일성 연구를 하고 있었음. 특히 둘은 열전기 실험과 전기물고기의 전기 실험에서 연결.

그들의 연구 : 열전기도 회로가 끊어질 때 스파크를 발생시키는가?

1837년 4월 미국의 헨리와 Bache 런던 방문. 4월 22일 킹스 칼리지에서 헨리, 휘트스톤, 다니엘 모여서 돌아가면서 역할 교대하면서 실험. 헨리의 차례에서 성공. 어떤 조정을 했길래 실험이 성공했을까? 이틀 뒤 24일에는 패러데이도 참석했는데, 그때의 기록에 힌트가 있는데, 아마도 연철심 때문인 듯!

패러데이, 휘트스톤, 다니엘과 그[헨리]가 모여서 열전지(thermopile)로부터 전기 스파키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 돌아가면서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제 헨리의 차례가 됐다. 그는 성공했다: 연철 하나의 둘레를 한방향으로 감싼 긴 도선의 효과에 대한 그의 발견의 도움을 요청해서 말이다. 패러데이는 소년처럼 날뛰면서 소리쳤다 : "미국인 실험(Yankee experiment)에 만세(hurrah)."

결론

패러데이는 전기공학자들에게 가장 존경 받는 인물. 전기공학자들은 그를 그들 직업의 설립자로 간주해 옴. 현재 전기공학자 협회에서 주는 가장 영예로운 상은 패러데이 메달이며, 가장 유명한 연례 행사는 패러데이 강연이다. 그러나 패러데의 연구의 실용적 가능성을 개척하면서 공학적 문제들의 푼 휘트스톤은 패러데이와 전기공학 사이의 가장 중요한 고리였다. (사실 본문에는 휘트스톤이 가장 중요한 인물인지에 대한 증거는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