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hael Faraday and the Electrical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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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us, Iwan Rhys (2004), Michael Faraday and the Electrical Century. Edited by Jon Agar. Cambridge: Icon Books Ltd.

과학적 런던에서의 성장

런던 거리

마이클 패러데이는 1791년 9월 22일 출생. 아버지 제임스 패러데이는 가난한 대장장이. 패러데이는 어려서 아주 초보적인 교육밖에 못받음(12쪽 인용). 이런 조건에서 패러데이는 일찍부터 생계 보탬이 되어야 했음. 1804년, 패러데이가 13살이 될 때, 서점(just around the corner from Jacob's Well Mews at No 2 Blandford Street)을 운영하는 조지 리보(George Riebau)가 패러데이를 잔심부름꾼으로 고용. 1805년 10월 7일, 심부름꾼으로 일한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제본공 및 서적상이 되는 7년짜리 도제살이 시작. 패러데이는 운이 좋은 편. 좋은 직업의 도제로 들어가는 것은 칭찬받을 일. 게다가 도제 수업료도 안 받았음. 패러데이가 심부름꾼으로 'faithful service'를 보여줬기 때문. 도제 시절 좋은 평가.

당시 서점의 역할은? 17세기 이래, 급진 정치 주창자들의 네트워크를 이어주는 중요한 회합 장소. 선동 팜플렛이나 포르노의 암시장. 10대의 패러데이도 런던의 급진적 암흑(?) 세계 알게 되었을 것. 그중 일부는 과학을 사회적 정의와 정치적 해방을 위한 투쟁의 강력한 무기로 생각. 성인이 된 패러데이는 그런 길로 가진 않았음.

패러데이는 서점에서 과학을 접하고 과학에 반함. Jane Marcet's Conversations in Chemistry, electrical treatises in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Jane Marcet의 책은 화학의 기초와 함께 Davy 소개.

19세기초 책들은 보통 제본되지 않은 상태로 구매. 그것을 제본하여 묶는 일이 패러데이의 일. 그는 분명 그 책들을 읽을 기회 아주 잘 활용해서, 열광적이고 마구잡이식 독서를 했음. 나중에 틴달(John Tyndall)에게 얘기하길, 자기는 백과사전뿐 아니라 아라비안 나이트도 쉽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 교차-검토된(cross-examined) 주장이면 뭐든 믿을 준비가 되어 있음.

혼자서 실험 기구 제작해서 실험도 시작. 특히 정전기 실험.

과학적 런던

영국 수많은 여러 수준의 과학 강연 기관. 떠돌이 과학 강사. 그리고 여러 수준의 과학 학회들 존재. 맨 위에는 왕립학회, 그다음엔 1799년에 설립된 왕립연구소. 모든 계층에게 과학 전파하겠다는 목표. 그러나 그 목표는 사실 힘듦. 그 아래에도 크고 작은 기관들...

강사들은 여러 기관들을 돌면서 강의. 런던에서 성공하면 지방 순회 공연. 지방에서 성공하여 런던으로 상경하는 경우도. 나중에 왕립학회 회원이자 왕립연구소 화학교수가 된 윌리엄 토마스 브란드도 이런 강사중 매우 성공한 케이스.

강연 주제는? 의학, 화학, 전기. 기준은? 유용성 & 재미

과학으로의 첫 걸음

홀로 책 보며 전기, 금속학 등 실험.

강연은? 아무리 싼 강연이라도 패러데이에겐 비쌈. William Walker의 천문학 강의 참석한 기록은 남아 있음. 강연에 대해 아주 좋은 평. 1810년 John Tatum의 강연 코스 참석하게 됨 (패러데이 형의 돈과 서점 사장님의 친분으로). 강연료는? 강연당 1실링. 그의 강연은 자연철학의 기초와 함께 최근 발견들 소개해줌. 또한 새로운 클럽으로 인도.

Tatum의 집에서 열리는 City Philosophical Society의 매주 수요일 저녁 모임 참석. 아마도 1810년 경부터 정식으로 참석한 듯. 1812년 경에는 정식 회원 MCPS를 얻기 위해 노력. 노력이 성공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몇 년 후 회원이 됨.

패러데이의 자기 향상, 자조 노력 : City Philosophical Society에서 만난 Benjamin Abbott과의 서신 교환. 서신 교환은 제본공 도제살이가 끝날 무렵이었던 1812년 7월에서 시작. 비슷한 마음의 친구와의 정기적인 편지 쓰기는 자신을 표현하고 생각을 분명하고 경제적으로 표현하는 데 도움. 패러데이는 Abbott을 sounding board로 이용한 셈. 1809년에 읽은 Issac Watt의 The Improvement of the Mind라는 책에는, 자기수양법의 일환으로 그러한 편지쓰기를 권장하고 있었다.

도제살이가 끝날 무렵, 패러데이는 초조. 제본공으로서의 미래에 끌리지 않음. 그가 원한 것은 과학. 왕립학회 회장 조지프 뱅크스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_-;; 휘갈겨 쓴 'no answer'를 답장으로 받음 -_-;;;;

기회가 찾아옴. 서점의 단골 고객이자 왕립연구소 회원이었던 윌리엄 댄스(William Dance)가 패러데이의 관심과 열망을 알고 왕립연구소의 험프리 데이비 강연 티켓 몇 장을 구해 줌. (아마 4장일 듯) 사실 패러데이의 환경에서 당시 과학계의 슈퍼스타였던 험프리 데이비의 강연을 직접 듣는 것은 불가능했던 일. 패러데이는 열심히 강연 참석하여 정성들여 노트 작성.

도제살이를 끝낸 21살의 패러데이는 journeyman 제본공으로 Henri de la Roche과 일하게 됨. 그러나 몇 달 뒤, 그는 왕립연구소 험프리 데이비 경의 연구실 조수가 됨. 어떻게 해냈을까? 데이비에게 강연 노트의 제본 카피 하나를 데이비에게 보내면서, 일자리를 요청했던 것. (야심이 보이는 구절)

철학자의 도제살이

있고 싶은 멋진 장소

엄청난 여행

전자기 회전

왕립학회회원 F.R.S.

급진적 전기

위험한 과학

Fyne Court의 마법사

전기적 우주

갈바닉 의학

왕립 연구소 과학

관중의 갈채 받기

자기 구축(self-fashioning)

과학 수행하기

과학의 경계 긋기

디스플레이의 문화

전기적 세속 세계

윌리엄 스터전(Sturgeon)과 영국 전기학회

쇼의 전기

효용

위대한 실험가

실험적 세계

유도

더 나아간 실험 연구

공간의 역선

전기의 세기

갈라진 세계

전자기적 우주

상업 전기

마지막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