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els and Archety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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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M. (1962). Models and Archetypes. Models and Metaphors.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219-243.

요약

과학에서 "모형 사용"이라고 하는 말의 여러 뜻을 구분하고 정리하는 글.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모형을 떠올려 보면, 어떤 대상(존재하는 대상이든 상상의 대상이든)에 대한 보통 3차원 미니어쳐를 가리킴. "the standard cases are three-dimensional miniatures, more or less "true to scale," of some existing or imagined material object." 모형에 의해 묘사되는 대상은 그 모형의 원본이라고 불릴 수 있음.

한편 "모형"은 특정한 디자인 양식을 대표하는 뜻(옷 디자이너의 "올해 봄 모델", 1959 model Ford)이나 어떤 모범 사례(a model husband, a model solution of an equation)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의미에서의 모형은 이 글에서 다루지 않겠다. (분명 전자의 "모형"과 후자의 "모형"은 매우 다르지만, 내가 보기에 둘은 매우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주인을 대리하는 의미로서의 대표가 오히려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은 인식론적인 대상에서나 정치적인 대상에서나 일반적인 일. 우리말에서의 "대표"라는 말의 뉘앙스를 보거나 영어의 "representative"의 뉘앙스를 보더라도 그러한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실제로 좋은 "대리물"는 전체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곤 한다. 좋은 모형은 따라해야할 모범이 된다. 물론 모든 대리물이 그런 역할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스케일 모형 (pp. 220-221)

모형의 표준적인 용례를 약간 확장하면 스케일 모형. 원본의 유관한 차원(공간이든 시간이든)의 상대적 비를 보존한 대상. slow motion experiment도 포함. 스케일 모형은 다음과 같은 특징 가짐

  1. 스케일 모형은 언제나 무언가의 모형이다. A scale model is always a model of something. 따라서 스케일 모형은 관계적이며, 비대칭적이다. If A is a scale model of B, B is not a scale model of A.
  2. 스케일 모형은 어떤 목적에 의해 제작된다. 예컨대 배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계가 어떻게 작동할지, 원본의 구성요소들이 어떤 법칙에 의해 상호작용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제작된다. 극단적인 경우 애호가들에게 그 자체의 재미를 위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3. 스케일 모형은 그것이 대표하는 실제 혹은 상상속 대상의 표상이다. A scale model is a representation of the real or imaginary thing for which it stands. 모형에서 직접적으로 표현된 속성을 통해 원본의 속성을 "읽어내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
  4. 따라서 표상을 위해 모형의 어떤 특징은 유관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은 반면 어떤 다른 특징은 유관하고 필수적이다. "some features of the model are irrelevant or unimportant, while others are pertinent and essential, to the representaion in question." 완벽하게 충실한 모형 같은 건 없다. "There is no such thing as a perfectly faithful model." 오직 어떤 면에서 충실하지 않음으로써, 모형은 원본을 표상할 수 있다. "only by being unfaithful in some respect can a model represent its original" (원본과 다르지 않다면 뭐하러 모형을 만들겠는가? 그냥 원본을 보지. 음... 원본이 구하기 힘들어서, 원본이 너무 비싸서 대신 모형을 사용할 수도 있고, 이 경우는 모형이 원본보다 싸다는 장점이 있다. 원본이 너무 작아서, 원본이 너무 빨리 썩어서, 우리는 크고 썩지 않는 식물 모형을 만든다. 원본이 너무 작아 아예 볼 수가 없는 경우, 우리는 가상의 원자 모형을 만들어서 이러저런 추측을 하는 데 사용한다. 원본이 사람이라서 조작하거나 실험하는 데 부담이 있을 경우, 우리는 사회 모형을 만들어서 이러저런 추측을 하는 데 사용한다.)
  5. 해석 관행(conventions of interpretation)은 비율 불변성과 함께 속성들의 부분적 동일성에 의존한다. 스케일 모형을 만들 때, 우리는 한편으로는 원본의 일부 속성들을 재생산함으로써 원본을 모방하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원본의 유관한 크기 사이의 상대적 비를 보존하고자 한다. 퍼스(Peirce)의 용어사용에 따르면, 모형은 상징(icon) -- 원본의 관심있는 특징을 말 그대로 구현하고 있는 -- 이다. "In Peirce's terminology, the model is an icon, literally embodying the features of interest in the original." 스케일 모형은, 말하자면, "이것이 원본이 작동하는 방식이야"라고 말한다. It says, as it were: "This is how the original is." (이는 매우 중요. 표상의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할 때, 단지 기호는 사회적 약속에 의해 자의적으로 어떤 대상을 지시하지만, 모형은, 아이콘은, 그렇지 않다. 아이콘은 자신이 지시하는 대상의 일부 속성을 가지거나 속성 사이의 관계를 보존한다. 대상을 자의적으로 지시하는 대리물은 모형이 아니다. 그것은 기호일 뿐이다.)

목적 재정리 : "원본"의 선택된 특징을, 상대적으로 조작가능하거나 접근가능한 구현체를 통해, 재생산하는 것. "In making scale models, our purpose is to reproduce, in a relatively manipulable or accessible embodiment, selected features of the "original"."

약점 : 스케일의 변화는 왜곡을 초래하기 마련. 살아있는 조직 대신 대체물질을 채워넣게 되고, 크기의 변화는 원본의 factors 사이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너무 작은 우라늄 폭탄 모형은 폭발하지 않을 것이고, 너무 큰 집파리 모형은 날지 못할 것이다. 스케일 모형으로부터 원본으로의 추론은 매우 조심스러우며, 부가적인 정당화와 보정을 필요로 한다.

유비 모형(analogue model) (pp. 222-223)

경제 시스템에 대한 수력학적 모형처럼 매체의 변화(change of medium)와 관련된 모형으로, 유비 모형은 원본의 구조나 관계망을 어떤 새로운 매체 내에서 가능한 충실하게 재생산하기 위해 고안된 물질적 대상, 시스템 혹은 과정이다. "An analogue model is some material object, system, or process designed to reproduce as faithfully as possible in some new medium the structure or web of relationships in an original."

스케일 모형과 유비 모형의 차이는? 해석 방식의 차이. 스케일 모형은 원본의 기하학적 특성을 모방하고 재생산한다. 반면 유비 모형은 원본의 구조를 재생산한다는 보다 추상적인 목표에 의해 가이드된다. "making of analogue models is guided by the more abstract aim of reproducing the structure of the original." (스케일 모형은 원본의 속성, 특히 기하학적 속성을 재생산하고 유비 모형은 구조만 재생산한다? 혹자는 스케일 모형은 원본의 속성과, 유비 모형은 관계와 관련된다고 말. 또 다른 혹자는 속성과 속성 사이의 관계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 따라서 유비 모형은 모형이 구현하고 있는 "관계"와 원본이 구현하고 있는 "관계" 사이의 일대일 대응을 보여줄 것이다. (예컨대, 모형의 속성 a, b, c에 대해 aRb, bR'c라면, 원본의 속성 x, y, z에 대해 xRy, yR'z가 있어서, 모형의 R와 R'이 원본의 R과 R'에 일대일 대응을 이룬다.) 따라서 모형에 적용되는 용어를 진리치가 보존되는 방식으로 번역하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a는 x로, b는 y로, c는 z로) 유비 모형의 지배 원리는 수학자들이 "동형성(isomorphism)"이라 부르는 것이고, 유비 모형은 스케일 모형에서 처럼 (그렇지만 보다 추상적인 의미에서) 그 원본의 상징(icon)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런데 구조의 동일성은 내용물의 광범위한 다양성 허용하므로,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 유비 모형 가능. 이는 유비 모형의 강점이자 위험요소. 스케일 모형에서 얘기되던 왜곡된 모형으로부터의 추론의 위험성이 유비 모형에서는 한층 악화됨. 따라서 유비 모형의 모든 과학적 사용에서는 독립적인 입증이 요구된다. 유비 모형은 그럴듯한 가설을 제공해주지만, 증명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Any would-be scientific use of an analogue model demands independent confirmation. Analogue models furnish plausible hypotheses, not proof."

"수학적 모형" (pp. 223-226)

블랙은 이를 별로 모형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모양인지 따옴표를 붙여서 쓰고 있다. 사회과학자들이 "model"이라는 많이 쓰고 있지만, 이는 대부분 "이론"이나 "수학적 취급(mathematical treatment)"으로 대체될 수 있음. 하지만 (이를 "모형"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적어도 세 가지 제안이 있다. (1) 원래의 영역이 수학적 이론의 주제인 집합, 함수와 같은 추상적인 영역 위로 투사된다(projected). 그래서 사회적 힘들이 수학적 존재자들 사이의 관계에 의해 "모형화"된다고 얘기될 수 있다. (2) 원본보다 단순하고 추상적이라는 의미에서의 "모형" (3) 수학적 방정식이 사회적 시스템이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지칭하는, 그러한 에테르틱한 유비 모형(ethereal analgue model)이 될 수 있다는 제안도 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제안은 블랙이 보기에 착각이다. 블랙이 보기에 수학적 방정식은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아래는 그가 생각하는 "수학적 모형" 사용 절차. 그런데 블랙은 logstic function을 도입 과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 (아래의 예는 인구 변화를 얘기할 때 사용되는 logistic function)

  1. 유관한 변수 설정: 특정 시점의 인구, 출생율, 사망율, 유입율, 유출율 등 (현 세대의 인구 N과 성장율 b와 d 고려)
  2. 선택된 변수 사이의 관계를 고려하는 경험적 가설 설정: any 짧은 기간 내의 출생자수와 사망자수는 시간과 초기 인구수에 비례 (delta N = (b-d)N delta t. 따라서 delta N=rN delta t. 단 r=b-d. 그러나 인구수 늘어날수록 삶의 질 저하. 그러나 실제로 인구증가는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음. 그래서 일정한 한계 K를 도입하여 K에 근접할 수록 인구증가율이 떨어지도록 (1-N/K) 인자를 추가하여 delta N = rN(1-N/K) delta t 만듦)
  3. 공식화 및 조작을 위해 단순화: 인구변화를 연속적인 것처럼 취급. 경험 자료와 일치하는 가장 단순한 미분 방정식 도입 (dN=rN(1-N/K)dt)
  4. 방정식 풀기, 혹은 푸는 데 실패할 경우, 수학적 시스템의 전체적인(global) 특성 연구: "logistic function" 산출. (이 경우 r 값에 따른 function N(t)의 전체 전체 모양새를 관찰. r이 일정값보다 작은 경우 S자 곡선으로 K에 수렴하는 모양. r이 일정값보다 크면 상당히 다른 그림) 대체로 이러한 수학적 방정식은 기껏해야 "그럴듯한 topology", 즉 질적인 결론(최대, 최소 등)만 제공.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원래의 자료는 정확한 양적 관계보다는 서열적 관계만 제공. "수학적 모형"에서는 제공된 서열을 토대로 임의로(?) 값 부여. 이런 상황이 "수학적 모형"에 의한 결론 중 질적인 결론만 의미있는 것으로 수용하도록 만들기도 함.
  5. 원래 영역에서의 시험가능한 귀결로 외삽 (예측의 형태는? 고립된 개체군은 초기 개체수에 상관없이 극한값을 향해가는 경향이 있다.)
  6. 처음에 단순화를 위해 부과했던 여러 (비현실적인) 제약들을 차차 제거함으로써 이론의 일반성을 늘릴 수 있음. (유입율, 유출율도 고려하거나 ... 등등)

이러한 과정의 장점은? 경험적 탐구 영역에 수학적 분석을 도입함으로써 얻는 것들: 예를 들면, 관계를 정식화하는 데 있어서의 정밀성, 수학적 계산을 통한 추론의 편이성, 밝혀진 구조에 대한 직관적인 파악(예컨대, "로지스틱 함수") 등이 이에 해당.

그러나 위험성 있음: (1) 수학적 분석의 편이를 위해서는 정확성을 훼손하고 엄청난 단순화를 필요로 하는 경우 많음 (수학을 이용하면 가정에 따른 정확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지만 그것을 경험적 입증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2) 수학적 취급은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혹시 원한다면, 자료에 부합하는 kinds of function을 보여줌으로써 순수 수학이 form of an explanation을 제공한다고는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과적 설명은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수학적 모형"은 이론적 모형과 다르다.

(로지스틱 함수는 무엇을 설명해주는가? 우리는 인구의 동학을 알고 싶다. 인구가 늘어도 삶의 질이 전과 같다고 한다면, 각 개체는 대체로 일정한 간격마다 몇 배수의 자식을 나을 것이고 일정한 간격에서 죽는다. 이것을 원리로 dN = (b-d)N dt 라고 하는 식을 세울 수 있다. 인구의 문제를 잘 알려진 미분 혹은 차분 방정식의 문제로 돌림으로써, 우리는 그 방정식을 풀어보면 N=N0e(b-d)t로 N이 지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식으로 증가하지 않는다. 왜?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그렇다면 환경이 허용하는 최대 인구가 있을 것이다. 그 값을 K라 두고, K에 근접할수록 인구증가율이 감소하도록 (더 나아가 K를 넘어서면 인구가 감소하도록) 하는 요소를 집어넣어 보자. 그래서 (1-N/K)를 원래 식에 곱하면 그 목적이 간단하게 달성된다. 그래서 만들어진 dN=rN(1-N/K)dt를 풀어보면 N이 초기값에 상관없이 실제로 K로 수렴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N이 K에 수렴하는 것은 그 가정에 이미 들어 있는 것으로, 수학을 이용해 뭔가를 새롭게 얻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럼에도 얻는 것은....)

(수학적 모형이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 모형과 거의 Peter Machamer, Michael Silberstein반대 개념. 그러니까 "수학적 모형"은 실제 상황과 대응될 수 있는 수학적 함수, 방정식 등을 의미하는 반면, "논리적 모형"은 어떤 형식적 혹은 수학적 체계의 "해석" 혹은 "실현"을 의미. 그럼에도 이것들이 모두 공유하고 있는 것은 "모형"이란 부차적이란 점. 우리는 모형을 통해 원래의 관심 대상을 다른 영역, 혹은 다른 방식으로 재생산. 스케일 모형이나 유비 모형은 관심 대상을 다른 물질로 재생산. 수학적 모형은 실제 대상을 추상적인 수학적인 체계로 재생산. 논리적 모형은 추상적인 논리적 대상을 구체적인 실제 상황이나 가상적 상황으로 재생산.)

이론적 모형 (pp. 226-)

그 모범 사례로 맥스웰이 전(자)기장을 상상 속의 압축불가능한 유체의 속성으로 표상한 것을 들 수 있다.

"따라서 과학의 효과적인 연구에서 첫 번째 과정은 과거의 탐구 결과를 우리의 정신이 그것을 쥐어잡을 수 있을 수 있는 형태로 단순화하여 환원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 단순화의 결과는 순수 수학적인 공식의 형태일 수도 있고 물리적 가설의 형태일 수도 있다. 첫 번째 경우, 우리는 설명해야 할 현상을 시야에서 완전히 잃게 된다. 게다가 주어진 법칙의 귀결을 찾아내더라도, 우리는 주제와 관련된 보다 확장된 시각을 절대로 얻을 수 없다. 반대로, 물리적 가설을 채택할 경우, 우리는 오직 매개체를 통해서만 그 현상을 봄으로써, 사실에 눈멀게 되거나 부분적 설명에 의해 굳어진 가정에 경솔해지기 쉽다. 따라서 우리는 개념을 빌려주는 물리 과학에 기반한 어떤 이론에도 구속받지 않고서도 매 단계마다 우리의 정신이 분명한 물리적 개념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해주는 탐구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 그래서 분석적 미묘함을 추구하다가 주제를 제쳐두는 과오를 저지르지도 않으면서, 선호하는 가설에 이끌려 진리를 넘어서지도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The Scientific Papers of James Clerk Maxwell, Cambridge University Press, 1890, I, 155-156.)

"모든 것을 상상의 유체의 운동이라는 순수히 기하학적인 생각으로 돌림으로써, 나는 일반성과 정확성을 얻는 동시에 현상의 원인을 설명하는 체하는 미성숙한 이론으로부터 발생하는 위험을 피하고자 했다. ... 여기서 ... 다루는 실체(substance)는 실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되는 가설적인 유체도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상상속 속성들들의 집합일 뿐으로, 대수적인 기호만 사용하는 것에 비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알기 쉽고 물리적 문제에 보다 적용가능한 방식으로, 순수 수학의 특정한 정리를 정립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I, 159-160.)

순수 수학과 물리적 가설 사이의 trade-off가 있음을 깨닫고서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하는 맥스웰의 정신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맥스웰의 강조점 : (1)"물리적 문제에 적용가능하면서", "우리에게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정확하고 "명료한 물리적 개념"을 잡아야 한다는 것. (2) "미성숙한 이론"과 절연해야 한다는 것 (3) 그의 탐구에서 불러내어진 유체는 "상상적" 성격을 띤다는 것. 이 말만 보면, "유체는 나중에 만들어질 대수적 방정식에 의해 보다 정확하게 표현될 수학적 관계를 포착하기 위한 보조기억(mnemonic) 장치로서만 기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다 이전에는 그보다 강한 존재론적인 commitment를 가졌던 것 같다. "원거리력에 관한 논문에서, 그는 모든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놀라운 매체"를 얘기했고, 더이상 그는 패러데이의 역선을 "순수 기하학적인 개념"으로 보지 않았다." (II, 322) 그리고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그것(역선)들은 "단지 수학적 추상으로만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그것들은 로프나 아니면 우리의 근육의 그것처럼, 매체가 장력을 발휘하고 있는 방향이다." (II, 323) 나중에 순수 기하학적이 된 매체는 원래는 매우 실재적이었었다.

맥스웰의 동시대인이었던 윌리엄 톰슨은 빛 에테르에 대해 실재론적인 입장. 아래는 1904년 출판된 볼티모어 강연에 담긴 그의 주장.

"우리가 빛 에테르를 이상적인 방식처럼(as an ideal way of putting the thing) 간주해야 한다는 얘기는 더이상 들을 가치가 없다. 우리와 저 먼 별 사이에는 진짜 물질이 있으며, 그 빛은 그 물질의 진짜 운동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난 믿는다. ... 우리는 어떤 종류의 특정한 물질에 대해 아는 것보다도 빛 에테르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그것의 탄성에 대해 알고 있으며, 우리는 빛의 속도가 항상 일정하다는 것에 대해 알고 있다. ... 빛 에테르는 극도로 단순한 실체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그것의 궁극적인 속성으로 압축불가능성을 가진 물질이라고 상상할 수 있으며, to have a definite rigidity for vibrations in times less than a certain limit, and yet to have the absolutely yielding character that we recognize in wax-like bodies when the force is continued for a sufficient time." (William Thomson, Baltimore Lectures, London, 1904), pp. 8-12.)

이는 에테르를 heuristic convenience로 다루었던 맥스웰과 사뭇 다른 입장. 둘의 차이는 "~처럼" 보는 것과 "~인 것으로" 보는 것 사이의 차이. 전자는 직유나 유비 추론과 관련되어 있는 반면, 후자는 은유에서 전형적인 동일시를 필요로 하고 있음. The difference is between thinking of the electrical field as if it were filled with a material medium, and thinking of it as being such a medium. One approach uses a detached comparison reminiscent (암시하는) of simile (직유) and argument from analogy (유비); the other requires an identification (동일시) typical of metaphor (은유).

(1) "as if"식 사고에서는, willing suspension(매달림) of ontological unbelief 존재. 대신 설명력 사라짐. 모형은 단지 heuristic fiction. (2) 반대로 "as being" 식 사고로 존재적 진술의 위험을 감수하면, 설명력을 얻을 수 있는 반면 신화에 의한 자기기만의 위험에 노출된다.

모형의 존재적 사용(existential use of models)은 물리학 이론가들을 특징짓는 practice처럼 보인다. 켈빈의 "투박한 기계적 모형(rude mechanical models)", 원자에 대한 러더퍼드의 태양계 모형, 보어 모형 등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 물리학자들이 스스로에 대해, 단지 예쁘게 입힌 수학 공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원자를 그것이 존재하는 대로(as it is) 묘사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결론을 피하기 어렵다. 이론적 모형을 사용하면서, 그들은 두 영역에 중립적인 위치에서 둘을 비교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적용 영역에 대해 생각하는 데 모형에 적합한 언어를 사용했다. 즉, 그들은 유비를 가지고(by) 작업한 것이 아니라, 기저에 놓인 유비를 통해서(through and by means) 작업한 것이다. 그들의 모형은 설명에 도움이 되거나(expository) 발견에 도움이 되는(heuristic) 장치 이상으로 간주되었다. we can hardly avoid concluding that these physicists conceived themselves to be describing the atom as it is, and not merely offering mathematical formulas in fancy dress. In using theoretical models, they were not comparing two domains from a position neutral to both. They used language appropriate to the model in thinking about the domain of application: they worked not by analogy, but through and by means of an underlying analogy. Their models were conceived to be more than expository or heuristic devices." (p. 229)

스케일/유비 모형 vs. 이론적 모형 : 건축가의 모형은 단지 "가설적"이며, 상상의 유비 모형은 일반적으로 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반면 이론적 모형은 (실재로 취급되든 허구로 취급되든) 문자 그대로 제작되지 않는다. 이 방법의 핵심은 특정한 방식으로 말하는 데 있다. "theoretical models (whether treated as real or fictitious) are not literally constructed: the heart of the method consists in talking in a certain way."

이런 점에서 이론적 모형의 핵심은 새로운 언어 도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대상을 표상하는 언어가 바뀌면 그동안 (좋은) 묘사로 간주되었던 것 또한 바뀌게 되고, 추가적인 탐구가 요청되게 된다는 점 간과하면 안 됨. "이론적 모형의 사용은 익숙한 이론에서 제안된 새로운 언어 또는 방언(특수한 언어, dialect)을 새로운 영역에 확장하여 도입하는 데 있다는 말 그럴듯하다. 그러나 이 제안은 새로운 관용어구는 언제나 어떤 특정한 대상이나 시스템(모형 그 자체)의 묘사라는 점을 간과한다. 표현과 표상 방식에 변화가 생긴다면, 특정한 대상이나 시스템의 묘사로 간주되었던 것 또한 변화하게 되고, 결국 추가적인 탐구를 필요로 하게 된다."

이론적 모형는 꼭 제작될 필요가 없다. 묘사(describe)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묘사의 자유는 그 자신의 의무를 가진다. 이론적 모형의 발명가는 그 모형 대상의 우연적이고 무관한 속성에 현혹되어선 안 된다. 그러나 그에겐 실제 제작을 시도할 때 부과되는 제약들이 없다. 자기-일관성에 대한 기초적인 요구조차도, 독립적인 시험이 가능하지 않다면, 미묘하게 위배될 수 있다. 그래서 모형의 실재성으로 의미하는 것은 불가사의한 것이 된다."

이론적 모형은 기술될 뿐 제작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모형"이라는 말의 의미는 앞서 검토했던 의미와 연속적이다. 이론적 모형 사용을 위한 조건을 다음과 같이 살펴보면 금방 분명해질 것이다.

  1. 일부 사실과 규칙성이 확립되어 있는 원래의 탐구 영역(original field of investigation)이 있음.
  2. 주어진 사실이나 규칙성을 설명하거나, 원래 영역에 적용되는 기초 용어(basic terms)을 이해하거나, 원래의 주요 지식과 추측을 확장하거나 그것을 지금까지 분리되어 있던 다른 지식체와 연결시킬 필요성이 느껴짐.
  3. 상대적으로 문제가 없거나, 보다 익숙하거나, 혹은 보다 조직화되어 있던 2차 영역에 속한 어떤 존재자(대상, 물질, 메커니즘, 시스템, 구조)를 묘사한다.
  4. 2차 영역에 관한 진술을 그에 대응되는 원래 영역에 관한 진술로 번역하기 위한, 명시적 혹은 암묵적 상관 규칙이 사용 가능함.
  5. 2차 영역에서 만들어진 가정으로부터의 추론이 상관 규칙을 통해 번역되고, 이후 1차 영역의 알려진 혹은 예측된 자료에 비추어 독립적으로 검토된다.

"묘사된 모형"과 원래 영역 사이의 관계는 유비 모형과 그 원본 사이의 관계와 같다. 전체 과정을 이해하는 열쇠는 구조의 동형성으로, 잘 될 경우, 이는 2차 영역에 관해 만들어진 주장이 원래의 관심 영역에 대한 통찰을 낳도록 해준다.

이론적 모형은 일종의 "우회로(go round about, detour)". 이런 게 왜 필요? 정말 필요? 신비화와 개념적 혼동의 위험은? 모형을 통한 우회를 허용할 경우, 철학적 우화나 알레고리와 같은 것들도 진리를 찾기 위한 합리적인 방법으로 수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분명한 것은, 이 방법이 성과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점이다. 하나의 예로, dissecting any rectangle into a set of unequal squares 라는 수학 문제를 푸는 데, 전기 회로 모형 매우 유용했음. the resources of a well-mastered theory of electrical networks became applicable to the original geometrical problem. "The discovery of this electrical analogy," our authors say, "was important to us because it linked our problem with an established theory. We could now borrow from the theory of electrical networks and obtain formulas for the currents ... and the sizes of the corresponding component squares." (Martin Gardner (ed.), "Mathematical Games," Scientific American, CXCIX (Nov 1958), 136-142, esp. 138. (문제와 전기회로 모형을 이용한 풀이법에 대해 알고 싶다면 http://www.squaring.net/sq/tws.html )

모형의 장점 1 : 잘 알려진 혹은 익숙한 영역의 지식과 추론 능력 활용할 수 있다는 점. 위의 사례는 모형의 덕목이 그림이나 시각화와 꼭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 알려줌. 전기회로는 사각형에 비해 오히려 시각화 안 됨. 중요한 것은 전기회로의 속성들이 관심 영역의 속성들보다 잘 알려져 있다는 점임. 성공적인 모형 사용을 위해서 우리는 보통 그 모형의 능력에 대한 직관적인 파악(intuitive grasp) 필요. 따라서 우리가 모형을 가지고 자유롭게 추론을 할 수 있는 한, 그림 가능성은 중요치 않다.

모형은 적용 시스템보다 "익숙한" 영역에 속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익숙함"이란 잘-확립되고 철저하게 파헤쳐진 이론에 속한다는 의미이지, 상식적 경험의 영역에 속한다는 뜻 아님. 모형은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만 안다면, 난해한 영역에 있어도 상관 없음. 유망한 모형이란 1차적인 탐구 영역에서 신선한 가설과 추측을 제안할 수 있을만큼 풍부한 함축을 가진 모형이다. 모형의 "직관적인 파악"이란 그러한 함축을 능숙하게 다루는 능력(ready control), 모형의 한 측면에서 다른 측면으로 자유롭게 넘나드는 능력을 의미하며, 모형이 문자그대로 보일 수 있느냐 또는 상상 가능하느냐와는 거의 상관이 없다.

이론적 모형 사용에 대한 반대와 그에 대한 블랙의 재반론

이처럼 이론적 모형의 사용을 옹호하는 근거도 있지만, 이론적 모형의 사용에 반대하는 강력한 근거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반대자는 삐에르 뒤앙(Pierre Duhem)이다. 그의 근거는 이러한 모형 사용이 엄격한 논리를 헤친다는 것.

"프랑스나 독일의 물리학자는, 두 도체 사이의 공간에서, 굵기를 가지거나 실존하지 않는 추상적인 역선을 마음에 품는 반면, 영국의 물리학자는 이 선들에 물질적 특성을 부여하고 그 굵기에 경화 고무로 채워진 튜브의 치수를 부여한다. 이성을 통해서만 생각할 수 있는 이상적인 힘 대신, 그는 두 도체의 표면 양 끝에 단단하게 부착되어 잡아 늘일 경우 수축과 동시에 팽창하고자 하는,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한 다발의 고무줄을 생각할 것이다. 두 도선이 서로 접근할 때, 그는 고무줄도 서로 가까워지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는 그들 각각이 다발로 묶여 커지는 것을 본다. 이는 패러데이에 의해 고안된 유명한 정전기 작용 모형으로 맥스웰을 비롯한 전체 영국 학계에서 천재적인 작업으로 존경받는 것이다." (Pierre Duhem, The Aim and Structure of Physical Theory, trans. Philip P. Wiener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4), p. 70.)
"그[영국의 물리학자]에게 이론이란 설명도 합리적 분류도 아니며, 이 법칙들의 모형으로, 이성의 만족이 아닌 상상력의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진 모형이다. 따라서 그것은 논리의 영역에서 벗어난다." (Duhem, p. 81) 만약 그가 모형이 유용하다고 믿었다면, 그가 당대 영국 학자들의 작업에서 싫어했던 "차이, 비정합성(those disparities, those incoherencies)"를 마지못하게나마 용인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유용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

아주 이상한 점은, 뒤앙이 "물리적 유비의 사용"은 "무한하게 가치있는" 동시에 인정받을 만한 "발견의 방법"으로 칭송한다는 점이다. 유비에 대한 승인과 모형에 대한 반대를 어떻게 화해? 뒤앙은 유비를 사용하는 데에서 그것의 모든 상상력을 추방함으로써 둘을 화해. 유비에 의해 관계를 맺게 될 두 영역은 사전에 "추상적인 시스템"으로 정식화되었어야 하며, (두 영역 사이의) "정확한 대응"은 "최고로 엄격한 논리학자를 놀라게 할 수 있는" 어떤 것과도 관련이 없다. (Duhem, pp. 96-97)

뒤앙에 대한 블랙의 반론 : 과학적 탐구의 많은 부분이 "엄격한 논리"를 위배한다면, 진리는 그 엄격함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다. (엄격한 논리는 과학적 탐구의 당연시될 최우선 가치가 아닐 수 있음) 과학적 상상력을 훈련하는 데 체계화되고 잘-정돈된 논리적 체계의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연구를 억누르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물리학 이론이 정합성과 명료함을 결여하고 있다는 뒤앙의 주장은 진지하게 수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이 바로 그 이론의 결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극단적인 뒤앙의 입장에 비해 온건한 브레이스웨이트(R. B. Braithwaite)는 모형의 이점 인정. 모형을 통한 방식이 이론이 표상되는 기호의 언어나 다른 형태로 명시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데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피하게 해준다는 것. 다시 말해, 브레이스웨이트에게 과학 이론의 이상적인 형태는 가설연역 체계로(이는 뒤앙이나 마찬가지), 모형은 "그 이론"의 대용품으로만 사용.

브레이스웨이트에 대한 블랙의 반론 : 브레이스웨이트는 모형 사용 주의할 것 주장. 그러나 블랙이 보기에 연역 체계 사용도 주의해야 하기는 마찬가지. 핵심적인 문제는 모형 사용이 연역 체계의 대체품 혹은 임시대역인지 아니면 그 나름의 기준과 원리를 가진 합리적인 방법인지이다. 모형 사용이 심리학에 속한 것인지 과학적 탐구의 논리에 속한 것인지 하는 것이다. 블랙은 주장하기를, 모형은 때때로 연구의 부수현상이 아니라, 과학적 탐구에 독특하고(distinctive) 대체불가능한 역할을 수행한다. 다시 말해, 모형은 수학적 공식의 창피한 임시대역이 아니다. "I have been arguing that models are sometimes not epiphenomena of research, but play a distinctive and irreplaceable part in scientific investigation: models are not disreputable understudies for mathematical formulas." (p. 236)

블랙의 논증: 모형은 수학적 공식의 임시대역이 아니다

과학에서 모형의 문제를 은유의 문제로 돌려서 생각. "은유는 번역이 가능한가?"의 문제. 블랙의 답은 "번역 불가능하다". 그래서 과학에서의 모형도 대체 불가능하다. 아래는 그 논증의 자세한 버전.

허튼(E. H. Hutten)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이러저러한 이유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로 직접적이고 완전한 기술(묘사 description)을 할 수 없을 때, 모형을 사용하게 된다. 보통, 언어가 우리에게 쓸모없어질 때, 우리는 비유와 은유로 우회한다. 모형은 보다 일반적인 종류의 은유로서 기능한다." (E. H. Hutten, "The Role of Models in Physics," British Journal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 4 (1953-1954), 289.)

모형을 이용하는 방법의 자율성에 관한 핵심적인 질문은 은유의 번역가능성에 관한 고대의 논쟁과 나란히 놓여질 수 있다. 모형을 단지 crutch(목발)로 보는 사람은 은유를 단지 장식으로 간주하는 사람과 같다. 그러나 "하나를 말하면서 다른 것을 의미하는" 오래된 (은유의) 공식으로 적절하게 기술될 수 없는, 강력하고 대체불가능한 은유 사용법이 분명히 존재한다.

기억할 만한 은유는 두 분리된 영역 사이에, 한쪽에 직접적으로 적합한 언어를 다른 쪽을 보는 렌즈로 사용함으로써, 인지적 감정적 관계를 맺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은유적 표현에 얽힌 함축, 제안, 가치들은 관심 대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해준다. 그로 인해 확장된 의미, 즉 애초에 분리된 영역들 사이에 만들어진 관계는 사전에 예기될 수도 없으며 사후에도 산문적인 문장(prose)으로 바꾸어 쓰여질 수 없다. 우리는 그 은유에 주석을 달 수는 있지만, 그 은유 자체는 설명과 대체문장을 필요로 하지도 요청하지도 않는다. "The extended meanings that results, the relations between initially disparate realms created, can neither be antecedently predicted nor subsequently paraphrased in prose. We can comment upon the metaphor, but the metaphor itself neither needs nor invites explanation and paraphrase." 은유적 사고는 통찰을 얻는 독특한 방식(distinctive mode)으로, 평이한 사고의 장식적인 대용품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다.

모형도 이러한 은유와 마찬가지. (추상적인 공식화 이후에 만들어진 모형 외에) 과학의 기억할 만한 모형들은 "추측 도구(speculative instruments)"로, 상대적으로 잘 조직된 영역의 함의를 끌어옴으로써, 분리된 분야들을 결혼시켜주며, (다른 결혼과 마찬가지로) 그 결혼의 결과는 예측불가능하다. 한 특정한 모형의 사용은, 그밖에는 충분히 알려진 영역에 대한 부자연스럽고 인공적인 기술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간과되었을 점을 인지시키고 상대적인 강조점을 옮겨주는 데 도움을 준다. 요컨대, 새로운 연관을 보게 해준다.

남은 가능한 반론 : 모형이 그런 방식으로 유용하다는 점 인정하더라도, 그것의 합리성에 대해서는 유보적 입장 취하기. 여전히 과학적 탐구가 은유적 언어를 (필연적으로) 요청하는지에 대해 의문스럽다. 모형이 그것을 사용하지 않은 경우 얻지 못했을 통찰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단지 심리학의 문제 아닌가? 최종적으로 만들어지는 이론의 내용은 수학적 방정식 및 대응규칙으로 완전하게 적법하게 표현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블랙의 재반론 : 많은 사람들은 모형을 형식적 이론이라는 최종 산물에 이르는 중간과정으로만 보고 있다. 그러나 모형은 발견과정에서의 유용성이라는 (실용적) 기준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최종 산물로서 적용대상과의 동형성이라는 (인식적) 기준으로 합리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아래는 그 디테일.

블랙이 보기에 이러한 논자들은 모형과 최종적으로 만들어지는 형식적 이론 사이의 관계를 인과적인 것으로 다루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모형은 과학자들을 연역 체계에 이르게 해주는 사실상의(de facto) 고안물에 불과하다. 블랙은 이러한 관점에 대해 반대. 성공적인 모형은 적용 영역과 동형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모형을 사용하는 합리적 근거가 있다. "We have seen that the successful model must be isomorphic with its domain of application. So there is a rational basis for using the model." 모형이 기술된 언어를 새로운 영역에 맞는 방식으로 확장함으로써, 우리는 양쪽 분야에 공통된 구조가 존재한다는 희망을 걸 수 있다. 그 희망이 이루어진다면, 유비적 전이의 객관적 근거가 만들어진 것이 될 것이다. "In stretching the language by which the model is described in such a way as to fit the new domain, we pin our hopes upon the existence of a common structure in both fields. If the hope is fulfilled, there will have been an objective ground for the analogical transfer."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탐구 방식이 이론적 근거(rationale)를 가질 때, 즉 우리가 하는 것을 정당화해주는 이유를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동시에 그것의 분명한 평가와 비판을 허용할 때, 우리는 그 탐구 방식을 합리적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모형과 적용 영역 사이에 추정된 동형성은 그러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동시에 비판적 판단의 기준을 제공한다. 우리는 주어진 모형과 그것의 적용 대상 사이의 동형성의 정도를 확인함으로써 그 모형의 타당성을 판가름할 수 있다. 모형을 좋거나 나쁜 것으로 평가함으로써, 우리는 발견에서의 유용성에 대한 순전히 실용적인 시험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적어도 원리적으로는, 모형의 "맞음(fit)"의 "정도(goodness)"를 결정할 수 있다.

과학의 모형과 (통상적인) 은유 사이의 관계 재정리

이론적 모형의 사용은 어휘의 유비적 전이를 필요로 하는 은유의 사용을 닮았다. 은유와 모형-제작은 새로운 관계를 드러낸다. 둘 모두는 낡은 병에 새로운 내용을 붓는다. 그러나 은유는 대체로 상식적인 함축을 가지고 작동한다. 반면 과학적 모형의 제작자는, 만약 그가 대수적 공식 위에 매력적인 그림을 붙이는 것 이상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잘 짜여진 과학적 이론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모형의 자원의 체계적인 복잡성과 유비적 전개를 위한 능력은 필수적이다.

툴민이 말하길

보다 진전된 질문을 제안하여 우리가 시작한 현상 너머로 우리를 데려다 주고, 실험적으로 산출력 있는 것으로 밝혀질 가설들을 정식화해주게끔 해주는 것은 사실 좋은 모형의 훌륭한 덕목이다. ... 분명히 좋은 모형을 단순한 은유 이상의 무언가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암시(suggestiveness)와 체계적 활용가능성(deployability)이다. (The Philosophy of Science, pp. 38-39.)

근본 은유(root metaphors), 원형(archetypes)

스테판 페퍼(Stephen C. Pepper)는 "근본 은유"라는 개념 제안.

방법이란 원리적으로 다음과 같다: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그 이해를 위한 단서를 찾는다. 그는 어떤 상식적 사실의 영역에 정착하여 그것을 가지고 다른 영역들을 이해할 수 없는지 애쓴다. 그러면 그 원래의 영역은 그의 기초 유비 혹은 근본 은유가 된다.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한 이 영역의 특징을 묘사하거나, 원한다면, 그것의 구조를 식별한다. 그것의 구조적 특징의 목록은 설명과 묘사를 위한 그의 기본 개념이 된다. 우리는 그것들을 범주의 집합으로 부른다. ... 그는 모든 사실들을 이 범주를 통해 해석하는 데 착수한다. (그 결과로) 그는 그 범주를 평가하고 조정할 수 있으며, 그래서 범주의 집합은 보통 변화하고 발전한다. 기초 유비 또는 근본 은유는 통상 (그리고 아마도 적어도 일부는 필연적으로) 상식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것들이 무제한적인 영역의 가설들에 적합한 것으로 증명되기 위해서는 범주 집합에 엄청난 발전과 개량이 필요하다. 어떤 근본 은유는 다른 것에 비해 산출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확장과 조정에서 더 많은 능력을 가진다. 생존자는 상대적으로 적합한 세계 이론을 만들어낸다. (World Hypotheses, pp. 91-92.)

지배적인 개념 체계를 유비적 확장을 통해 새로운 적용 영역을 기술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많은 이론 작업에서 전형적인 것 같다.

어떤 탐구 영역이든, 그것에 구조를 부여할 우선적인 개념이 없는 한, 탐구자에게 미발달의 (blank, elusive, tantalizing confusion) 영역으로 보일 것이다. 우리의 흔한 우회로는, 다소 조심스럽게, 새로운 상황의 희미한 양상과 나란히 놓일 수 있는 대상을 찾아, 덜 알려진 영역을 해명하는 데 더 잘 알려진 것을 사용하고, 붙잡기 어려운 것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을 통해 검토하는 것이다. 이러한 유비적 절차는 많은 지적 분야의 특징처럼 보인다. "그것의 본성은 무엇인가"는 흔히 "그것은 무엇과 같은가?"와 같다. 우리는 어떤 것의 본성을 직유와 은유로 기술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반복되는 형상의 운반자는, 분석될 경우, 흔히 암시적인 유비의 속성으로 밝혀지곤 한다. 우리는 우리가 기술하는 대상을 그 유비를 통해 보고 있다. (M. H. Abraham, The Mirror and the Lamp, pp. 31-32.)

어떤 개념 체계는 유비적으로 사용되지만, 특정한 설명 대상이나 설명 모형이 문제시되진 않는다. 블랙은 이를 "개념적 원형" 혹은 짧게 "원형(archetypes)"이라 부른다. "궁극적인 준거틀(ultimate frames of reference)" 또는 "궁극적인 가정"도 이와 비슷한 말.

원형이라는 말로, 나(블랙)는 관념의 체계적인 저장소를 의미하는데,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유비적 확장을 통해, 그 관념이 즉각적으로 문자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어떤 영역을 묘사하게 된다. (쿤의 모범사례나 패러다임 개념과 유사)

과학자들의 작업에서 원형의 영향은 심대하다. 그들이 자신의 작업에 "모형"이나 "은유", "유비"와 같은 말을 부정하더라도, 많은 경우 우리는 그들이 사용한 유비의 원천을 찾을 수 있고 그 영향을 관찰할 수 있다. Kurt Lewin이라는 심리학자는 물리학 이론에 고유한 어휘들을 심리학에 사용했는데(예: "장", "벡터", "위상-공간", "긴장, 장력(tension)", "힘", "경계, "유체성" 등등), 이는 원형의 징후를 보여준다. Lewin의 제자들은 실제로 스승의 원형을 이용해 경험적 탐구.

만약 어떤 원형이 충분한 결실을 맺었다면, 우리는 논리학자와 수학자들이 결국 그 수확을 정돈할 것이라고 자신할지 모른다. 원형이나 모형을 통한 우회로 대신 고도로 정돈된 논리를 이용해 중요한 지점까지 갈 수 있는 고속도로를 만들 수 있는 능력있는 기술자가 항상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적 혼란(jungle)을 청소하는 것 또 하나의 존경받을만한 일이다. 아마도 모든 과학은 은유로 시작해 대수로 끝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은유 없이는 어떤 대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래된 의심. 상존하는 심각한 위험 : 원형이 형이상학적으로 사용되어, 그 귀결이 영원히 경험적 반증으로부터 절연될 수 있다는 점. 원형이 더욱 더 설득력 있을수록, 그것이 자기-증명의 신화가 될 위험도 더욱 커진다. 그러나 좋은 원형은 경험의 요구를 산출할 것이다. 그것이 작동하는 동안은 그렇게 엄격할 필요는 없다. (상상력이 엄격한 구속 때문에 어리둥절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과학과 인문학

과학과 인문학 모두 상상력에 강하게 의존. 동일한 원형이 여러 분야에서 역할할 수도 있음. 사회학자들의 사고 패턴이 소설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도 있음. 과학자의 가정과 숨은 원형을 탐구하기 위해, 우리는 문학 비평과 같은 영역에서 배울 게 있일지 모른다. 과학적 모형과 원형을 이해하는 것이 과학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될 때,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간극이 부분적으로 채워질 것이다. ... 과학적 사고에서 상상력 강조한 것은 부분적으로 그것이 너무 무시되어 왔기 때문이기도. 과학은 인문학이나 문학과 마찬가지로 상상력의 작업(an affiair of the imagination)이다.

평가

블랙은 맥스웰에 대해 약간 실수한 듯. 맥스웰이 에테르에 대한 모형을 as if로 다룬 것은 사실이지만, 에테르 자체를 as if로 다룬 것은 아닌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