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의 구조/산소의 발견" 문서와 "과학의 철학적 이해 2016년 2학기 기말고사 학생 답안" 문서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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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쿤, {{책|[[과학혁명의 구조]]}} 6장 “[[이상 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 중에서 발췌.
==1번==


... 산소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만약 둘 중 하나라면, 프리스틀리인가 라부아지에인가? 어느 경우이거나 산소는 언제 발견되었는가?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형태의 질문은 마찬가지로 제기될 것이다. 우선권과 발견 시기에 대한 판정으로서, 어떤 대답이 나오더라도 우리에겐 별 문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해답을 얻어내려는 시도는 찾고 있는 종류의 대답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발견의 본질을 밝혀줄 것이다. 발견이란 거기에 대해서 적절하게 질문이 제기되는 그런 유형의 과정이 아니다. 그런 물음을 묻게 된다는 사실은 발견에 매우 근본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과학의 이미지에서 좀 벗어난 증상이 된다. 산소의 실례를 다시 한번 보자. 프리스틀리가 산소를 발견했다는 주장은 후에 특이한 종으로 인식되기에 이른 기체를 먼저 분리해냈다는 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프리스틀리가 얻은 시료는 순수하지가 못했다. 만일 불순한 산소를 얻은 것이 그것을 발견해낸 것이라면, 대기 중의 공기를 병에 담았던 사람은 모두 산소를 발견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만일 프리스틀리가 발견자라면 그 발견은 언제 이루어진 것일까? 1774년에 그는 자기가 얻은 기체를 그가 이미 알고 있던 종인 아산화질소라고 생각했다. 1775년에는 그 기체를 플로지스톤이 빠진 공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아직 산소는 아니었고 플로지스톤 화학자에게는 심지어 전혀 예기치 못한 종류의 기체였다. 라부아지에의 주장은 보다 강점을 지시기는 하지만 여기서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만일 우리가 프리스틀리의 공로를 거부한다면, 마찬가지로 라부아지에가 그 기체를 "온전한 공기 자체"라고 보았던 1775년의 연구를 들어서 그에게 영예를 돌릴 수도 없다. 아마도 우리는 라부아지에가 단순히 그 기체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기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던 1776년과 1777년의 연구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판정조차도 의심의 여지는 있는데, 왜냐하면 1777년과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 라부아지에는 산소를 원자적 "산성의 원리"라고 주장했고 산소기체는 그 "원리"가 칼로릭, 즉 열소와 결합할 때에만 생성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1777년에도 산소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성의 원리라는 개념은 화학에서 1810년까지 소멸되지 않았고 칼로릭 개념은 1860년대까지 남아 있었다. 산소는 이들 연대들의 어느 시기보다 일찍이 표준적 화학물질로 자리잡았다.
=== (1) ===


산소의 발견과 같은 사건들을 분석하는 데에는 분명히 새로운 용어와 개념이 요구된다. 의심의 여지 없이, "산소가 발견되었다"라는 글귀는, 본다는 것에 대한 우리의 통상적인 관념과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것도 일회적인 단순 행위라고 암시함으로써 오해를 유발한다. 이것이 바로, 보거나 만지는 것처럼 발견하는 것도 똑 떨어지게 한 사람 손으로 어느 순간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쉽사리 생각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발견을 한 순간의 일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며, 한 사람에 의한 것으로 돌리는 것도 흔히 마찬가지이다. 셸레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1774년 이전에는 산소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해도 무방하며, 아마도 1777년쯤 또는 그 직후에 산소가 발견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한계 또는 그 비슷한 여러 한계 내에서 발견의 시기를 잡으려는 시도는 어쩔 수없이 임의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 까닭은 새로운 종류의 현상을 발견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복합적인 사건으로서, 무언가가 있다는 것과 그것이 무엇인가를 다 확인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만일 산소가 우리에게 플로지스톤 빠진 공기였다면, 언제 발견했는지는 모르는 채로라도 주저없이 프리스틀리가 그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관찰과 개념화, 사실과 이론으로의 동화, 두 가지가 서로 발견 과정에 밀접하게 얽혀 있다면 발견은 하나의 진행 과정이며 시간이 소요되어야만 한다. 관련되는 개념적 범주가 모두 미리 갖추어진 경우, 즉 현상이 새로운 유형이 아닌 경우에 한해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과 그것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일이 함께 즉각적으로 한순간에 일어날 수 있다.  
* 장하석의 다원주의는 모든 실천체계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기준을 만족하는 실천체계들만을 허용한다. 그러나 화학 혁명 또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대한 논의에서 보았듯이, 자유롭게 경우 각 개인들은 서로 다른 허용 기준을 가지고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 또한 당사자들의 판단은 역사학자나 철학자의 판단과도 일치할 필요가 없다. 이 점을 고려하여, 다원주의가 상대주의나 권위주의로 빠지지 않기 위한 방법을 검토하라.


이제 발견에서는 개념적 동화라는 확장된 ...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자. 그러면 발견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포함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해서는 아직 보편적인 해답이 제시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산소의 경우에 대답은 ‘그렇다’가 틀림없다. 라부아지에가 1777년부터 줄곧 그의 논문에서 공표한 내용은 산소의 발견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연소에 관한 산소 이론이었다. 그 이론은 매우 광범위하기 화학의 계통적 재구성에서의 쐐기가 되었던 까닭에 보통 화학혁명이라고 불린다. ... [그러나] 산소의 발견 자체는 화학 이론 변화의 원인이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라부아지에는 새로운 기체를 발견하기 훨씬 이전부터 플로지스톤 이론에 무언가 잘못이 있으며, 연소 중인 물체가 대기중의 어떤 성분을 흡수한다는 두 가지 사실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 그는 이미 1772년에 프랑스 아카데미의 원장에게 기탁한 봉인된 노트에 그러한 기록을 남긴 바 있었다. 산소에 대한 연구가 기여한 것은 무언가가 잘못된 것 같다는 라부아지에의 초기의 느낌에 훨씬 더 구체적인 형태와 구조를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라부아지에에게 그가 발견하도록 이미 마련되어 있던 것 — 연소가 대기로부터 제거시키는 물질의 본질 — 을 일러주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렇게 미리 인지했던 것은 라부아지에가 프리스틀리와 같은 실험을 하면서도 프리스틀리는 볼 수 없었던 기체를 볼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요인이었음에 틀림없다. 바꾸어 말하면, 라부아지에가 보았던 것을 보기 위해서 패러다임의 대폭 수정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프리스틀리가 그 긴 생애 동안 어째서 그것을 볼 없었던가를 설명하는 주된 이유임에 틀림없다.
과학에서 다원주의는 지식을 탐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여러 가지 실천 체계를 허용한다. 이는 하나의 체계만 허용하는 일원주의와 대비되며, 사고방식의 다양성을 증가시키고 패러다임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유연한 대처를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다원주의는 여러 체계를 허용한다는 점에서 상대주의로 빠질 우려가 있다. 상대주의는 어떤 체계든 모두 허용하기 때문에 과학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과학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으면서 자신의 주장만 고집하거나, 지식의 탐구가 아닌 다른 목적을 추구하는 체계가 난립할 있기 때문이다.  


... 이러한 똑같은 특성이 지각 과정 자체의 성격에 내재한다는 증거도 있다. 심리학 이외의 분야에서 훨씬 잘 알려질 만한 이유가 충분한 심리학의 실험에서, 브루너와 포스트먼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트럼프 한 벌을 잠시 조정해서 보여주고 가려내게 했다. 대부분의 카드는 정상적인 것이었으나, 몇 장은 이상스럽게 만들어서, 예컨대 스페이드의 6을 빨강으로, 하트의 4를 검정색으로 만들었다. 한 차례 실험은 한 사람에게 카드 한 장씩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점차로 횟수를 늘려서 보여주었다. 매번 패를 보여줄 때마다 실험 대상자에게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고, 연달아 두 번을 옳게 맞추는 경우 한 차례가 종료되는 식이었다.
다원주의가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을 만족하는 체계를 선별할 필요가 있다. 과학적으로 바람직한 체계를 구별하는 절대적인 기준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부적절한 체계가 난립하는 것을 방지하고 과학 탐구에 대략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기준의 후보를 생각해 볼 수는 있다. 그러한 기준으로는 반증 가능성, 이론적 정합성, 이론과 실험의 정합성, 예측의 정확성, 간결성, 활용성과 생산성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이 있다면 채택 가능하다.  


아주 잠깐 보는 것으로도 대부분의 피실험자들은 거의 모든 카드를 알아보았고, 좀더 시간을 늘린 결과 피실험자들은 카드를 모두 알아보았다. 이 과정에서 정상적인 카드에 대해서는 보통 옳게 맞추었으나, 이상한 카드는 거의 예외 없이 외관적인 망설임이나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정상적인 카드로 알아보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검정색 하트 4는 스페이드 4 또는 하트 4라고 대답했다.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그것은 기존의 경험이 마련해준 개념적 범주 중 하나에 즉각적으로 들어맞았던 것이다. 피실험자들은 자기들이 대답했던 것과 다른 카드를 보았다고는 아무도 말하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이상스런 카드를 점점 자주 보여줌에 따라서, 피실험자는 망설이기 시작했고 이상의 감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빨강 스페이드 6을 여러 번 보여주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건 스페이드 6인데,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한걸, 검정색에 붉은 테두리를 둘렀나.” 더 자주 보여주는 것은 보다 오랜 망설임과 혼돈을 초래하다가 드디어 어느 시점에서, 때로는 아주 갑자기, 대부분의 피실험자가 망설이지 않고 제대로 맞추게 되었다. 더욱이 이상스런 카드를 두세 개 써서 이런 실험을 후에는, 그들은 다른 이상한 카드에 대해서 더 이상 별 어려움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몇몇 사람은 그 범주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
어떤 기준이 더 중요한지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다원주의에서 허용하는 체계를 어떤 사람은 거부할 수도 있고, 비주류인 체계를 어떤 사람은 높이 평가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절대적인 하나의 기준으로 과학적 체계를 판별하기보다는, 일반적으로 과학적이라고 받아들여지고 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합의된 여러 가지 기준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정확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체계와 단순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체계가 있다고 할 때, 다원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정확성을 중시하는 패러다임과 단순성을 중시하는 패러다임 중 어느 한 쪽이 패배하여 사라질 때까지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다원주의는 두 패러다임 모두 정확성 또는 단순성이라는, 일반적으로 과학적 체계가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조건을 일정 부분 갖추고 있으므로 둘 다 허용할 수 있다. 당장 모든 기준을 완벽하게 충족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아직 미흡한 부분을 보완해나가는 것이 정상과학의 목표인 것이다. 이는 다원주의가 너무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 나머지 일원주의, 혹은 권위주의로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보완책이기도 하다.


하나의 은유로서 또는 그것이 정신의 본질을 반영한다는 이유 때문에 이러한 심리학의 실험은 과학적 발견의 과정에 대해서 신통하리만큼 간단하고 수긍이 가는 도식적 설명을 제공한다. 트럼프 실험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에서는 신기한 새로움은 예측되었던 바에 거스르는 저항에 의한 엄청난 난관을 뚫고 비로소 출현하게 된다. (끝)
또한, 서로 다른 실천 체계끼리의 소통과 교류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바람직한 체계를 선별하는 기준을 개선해나갈 수 있으며, 여러 체계가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거나 혼란에 빠질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또한, 과학혁명의 시기에도 경쟁 또는 협력을 통해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수월해진다.  


== 책의 목차 ==
(by *동*)
{{TOC of SSR}}
 
=== (2) ===
* 장하석은 비주류의 과학 연구에 대한 국가적 지원의 필요성을 암시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지원 대상에 대한 적절한 선정 방법을 그 근거와 함께 제시하라. 만약 이러한 국가적 지원에 대해 반대한다면 반대 근거를 제시하라.
 
연구자들의 전문성에 대한 존중을 기초로 하여 비주류 과학에 대한 지원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우선 플로지스톤 패러다임에 대한 이 책의 견해와 반대되는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나는 플로지스톤 패러다임이 사장된 이유가 라부아지에의 ‘플로지스톤 박멸 운동’ 때문이라는 장하석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플로지스톤 패러다임의 패배 원인은 이 이론이 화학반응에 대한 정성적 설명에 머물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라부아지에의 정량적 분석은 화학의 새로운 분야를 여는 데 이르렀고 화학 반응의 진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기 때문에 당대의 수많은 화학자들이 라부아지에의 이론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플로지스톤과 산화-환원 반응을 연관 지어 설명하는 내용도 비주류 과학에 대한 투자를 반대하는 입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플로지스톤 패러다임은 사장되어 없어졌지만 화학의 발전은 계속되었고 결국 플로지스톤 이론이 잘 설명하는 부분을 전자 패러다임을 도입하여 설명하는데 성공했다. 이 내용이 보여주는 것은 비주류 과학이 사장되더라도 과학 발전은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장하석은 플로지스톤 이론이 사장되지 않았다면 화학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식의 가정법은 받아들일 수 없다.
 
세상에 완벽한 이론은 없으므로 연구자들은 각자의 전문 지식을 총 동원해 최선의 연구 분야를 정할 것이며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비주류 과학이라도 실재를 잘 설명한다는 증거가 검증된다면 (1)에서 설명한 빛의 파동설처럼 사장되지 않고 남아 과학의 한 분야를 차지할 수 있다. 따라서 비주류 과학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불필요하다.
 
(by *윤*)
 
== 2번 ==
*교재 8장 “물은 H2O인가?”의 논증 방식을 참고하여, 그동안 자신이 배웠던 기초적인 지식 중 하나를 골라 그것이 현재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또는 어떻게 정당화되었는지 검토하라. (A4 2장 이내, 20점)
 
수는 자연수를 시작으로 탄생되기 시작했다. 사람은 필요에 따라 새로운 수들을 하나씩 발명했다. 음수, 유리수, 실수, 그리고 마지막 발명은 복소수였다. 복소수는 실수와 허수라는 두 수의 결합이다. 하지만 허수는 안타깝게도 오랜 시간 환영받지 못했다. 19세기 수학자이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앨리스 시리즈의 저자인 루이스 캐럴은 매우 창의적인 방법으로 허수를 조롱했다. 웃음만 남겨두고 사라지는 체셔고양이는 결과만 남겨두고 사라져버리는 허수를 풍자한 것이다. 그렇다면 허수는 대체 언제 발명되고 어떤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못했으며 어떻게 우리 삶의 한 요소로 자리잡게 된 걸까?
 
허수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16세기 이탈리아 수학자 카르디노였다. 카르디노는 3차 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과정에서 제곱하면 음수가 나오는 이상한 수를 발견한다. 음수든 양수든 제곱하면 무조건 양수가 나온다는 것이 바로 수학의 규칙이었기 때문에 그는 규칙에 어긋나는 이 수를 무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사실, 이 이상한 수를 발견한 것은 카르디노뿐만이 아니었다. 카르디노 이전의 시대에서도 수학자들은 2차 방정식을 푸는 과정에서 허수를 발견했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허수를 방정식의 답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허수를 해로 포함하는, 예를 들어 과 같은 방정식의 그 당시 답은 “해가 없다”였다. 그러나 카르디노는 허수가 수학의 규칙에 어긋나긴 하지만, 허수를 이용하면 결과적으로 실수근을 도출해낼 수 있다는 점을 알아낸다. 허수는 “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수처럼 생각한다는 점에서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것을 감수하면 3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통해 쉽게 실수근을 찾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카르디노는 허수를 “쓸모없는 수”라고 칭했지만 결국 허수를 사용하면 3차 방정식의 풀이가 간단해진다는 점 때문에 허수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허수를 “수처럼 생각하면” 공식을 사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허수는 수로 인정받지 못했다. 문제는 허수가 수학의 규칙에 어긋나다는 점뿐만이 아니었다. 수들은 언제나 수직선 위에 자리잡아야만 했다. 그러나 수직선 위에는 허수를 위한 자리가 없었다. 대수학의 급속한 발전, 음수의 인정과 함께 수는 기하에서 벗어났긴 하지만 수에는 여전히 기하학적 전통이 남아있었고 허수는 여전히 세상의 어떤 것에도 자리잡을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수학자들이 허수를 수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 데카르트는 허수를 기하학적으로 나타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 수에 ‘상상의(imaginary)' 수, 즉 ’허수‘라는 이름을 붙여 조롱하였다. 그런데 15세기 중반에 이 문제에 답을 내놓은 한 수학자가 등장한다. 영국의 수학자 존 월리스(John Wallis)였다. 허수를 기하학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평면에서 수직 방향의 움직임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낸 존 윌리스는 오직 수평으로만 수를 나타내던 전통에서 벗어난 사고의 전환을 꾀했지만 이러한 생각이 불러올 파장을 의식해 직접적으로 이를 발표하지 않았다. 따라서, 허수를 기하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만 프랑스의 수학자였던 아르강이 수직선 두 개를 이용해 간단히 복소수를 표현하는 법을 생각해낸다. 한 젊은 수학자의 기발한 생각은 프랑스의 뛰어난 수학자였던 르장드르에게 전달되어 당시 저명한 저널인 [수학연감] 1813호에 실리게 된다. 복소수를 기하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 발표는 많은 수학자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때부터 복소수를 수로 인정하자는 움직임이 커지게된다.
 
수학의 ‘복소수화’는 마침내 가우스 대에 이르러 이루어지게 된다. 가우스는 허수를 이용하면 방정식의 해에 관한 일관된 규칙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가우스는 이 발견을 통해 n차 방정식은 n개의 해를 갖는다는 대수학의 기본정리를 확립한다.(!!) 과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학의 단순성과 우아함을 유지시켜 주는 주장이라면 수학의 세계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기 마련이다. 결국 어떤 수든 제곱하면 양수가 나온다는 수학의 규칙 탓에 수의 개념에서 배제되었던 허수는 가우스에 의해 정립된 n차 방정식은 n개의 해를 갖는다는 우아한 규칙에 의해 수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처럼 허수를 인정하자는 수학자의 수는 점점 늘어났지만, 수학 이외의 분야에서는 허상의 수인 복소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 양자역학에 의한 혁명이 이루어지고 물리학이 양자역학의 토대 위에서 세워지자 허수에 대한 다른 접근 방식이 등장한다. 양자의 세계에는 뉴턴의 역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함 움직임이 존재했다. 관측 가능한 세계는 실수로 표현했지만 관측이 불가능한 세계는 실수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슈뢰딩거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복소수를 통해 찾는다. 슈뢰딩거는 허수를 이용해서 관측할 수 없는 세계를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허수를 이용하면 일반 상대성 이론 안에서 우주의 기원을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결국, 20세기 이후 양자역학에 의해 물리학의 패러다임이 변화했기 때문에 물리학은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허수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허수는 20세기에 들어서야 우리 삶의 한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허수의 정당화 과정에서 나타난 수학계는 장하석이 나열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엿보았던 과학계의 모습과 얼핏 닮아있다. 과학계와 마찬가지로 수학계 또한, 처음에는 수학의 규칙을 위협하는 발견을 숨기고자 하고 그러한 발견을 부정하며 그것을 조롱하지만 또 다른 우아한 규칙이 그것을 필요로 할 때 그들은 이때까지의 태도와는 다른 모습으로 그 발견을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일견 비이성적이라고 느껴지지만 그러한 모습들 또한 자신이 믿고있는 체제가 진리라 믿었기에 발생했던 현상이다. 또한 반대로 이와 같이 진리에 도달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은 자신의 이론에 대한 확신을 주었을 것이며 새로운 이론의 창시자에게도 자신의 이론을 고수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진리에 대한 믿음은 새로운 지식을 거부하는 폐쇄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새로운 이론을 불러오는 혁명적인 모습으로 찾아올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정당화 과정에서 나타난 수많은 도전과 그에 대한 대응은 수학과 과학이라는 학문의 성격이 “진리”를 지향하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현상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by *진*)
 
<font color=blue>코멘트 : 허수가 수용된 이유를 과정만 봐도 깔끔하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답안입니다. 다만 결론에서 요약된 방식은 이 사례가 보여주는 풍부한 함의를 전달하는 데 미흡해 보입니다. 특히 본문에서 서술된 허수의 수용 과정을 살펴 보면, 초기 허수는 그것이 수의 (기하학적) 체계에서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이유에서 거부되었지만, 첫째, 기존 체계의 ‘자연스러운(?)’ 확장을 통해 허수의 자리가 마련됨에 따라 거부감이 사라졌고, 둘째, 결국에는 ‘우아한 규칙’과 ‘깔끔한 설명’을 얻기 위해 허수가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진리'에 대한 욕구가 두 입장 사이에서의 선택 문제를 낳았을 지라도, '선택'의 근거가 '진리'에서 나오진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즉 이 사례에서 허수 수용의 근거는 우아한 규칙을 얻을 수 있다거나 보다 깔끔한 설명을 얻을 수 있다는 미적/실용적 가치에 호소하여 이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font>
 
== 3번 ==
*장하석은 (한국의) 과학 교육에 대해 어떤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지 요약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라. (A4 1장 이내, 10점)
 
장하석이 생각하는 현재 과학 교육의 문제점은 획일적인 과학을 학생들에게 무비판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는 획일적인 과학은 창의성을 발휘하는데 제한을 가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의 새로운 발견을 위해서는 은유의 사용이 필수적인데, 다원주의적인 과학을 가르침으로서 은유를 사용하는 틀이 되는 모델 -정확히 장하석은 모델이라는 말을 한 적은 없지만- 을 이전보다 다양하게 익힐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과학교육이 학생들에게 알려진 지식을 단순히 암기하는 방식으로만 진행되고 있는 점도 문제인데, 우리가 과학을 배우는 목적은 지식의 전달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물의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물이 어떻게 HO가 아닌 H2O가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물이 H2O라는 것을 외우는 것보다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방식을 추구하자는 논의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방향성을 넓히는 다원주의는 기존에 존재하는, 다원주의와 경쟁하는 방식까지도 포함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장하석의 논의에서는 다원주의는 ‘획일적인 암기과학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라는 방식으로 기존의 교육까지도 포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비교가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 효율성에 따라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고 다원주의를 거부할 수 있는 것은, 다원주의가 옳지 못한 방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정된 시간동안 다양한 것을 지지하는 것보다 현재의 방식이 더 의미 있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첫째로 다양한 모델을 활용할 수 있기 위해서 반드시 다원주의적인 과학을 배워야하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뒤따른다. 우리는 잘 정립된 획일적인 과학 하에서도 여러 가지 모델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데, 이는 이미 분화된 여러 가지 과학-예를 들어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을 배우기 때문이다. 은유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빗대어 표현되는 모델-태양계-과 빗대어 표현하고자 하는 모델-원자-에 대해서 모두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때, 서로 상충될 수도 있는 두 가지 모델을 이해하는 것보다 서로 정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두 가지 모델을 이해하는 것이 편한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과학교육은 동일한 시간동안 서로 충돌하는 이론들보다, 지금과 같이 상호정합적인 다른 종류의 과학을 가르치는 것이 은유를 사용함에 있어 더 효율적일 것이다.
 
심지어 새로운 발견에 있어 모델이 반드시 필수적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뉴턴의 물리법칙에 따라 도출한 천왕성의 궤도가 실제 관측과 맞지 않았을 때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새로운 모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모델을 믿고 연구를 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모델은 과학혁명 당시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과학 활동에 있어 대부분의 기간은 정상과학이지 과학혁명이 아니다. 과학혁명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지만, 짧은 기간을 차지하는 혁명을 위해서 항상 다양한 모델을 준비해야하는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쿤의 필요에 따른 창의성도 이러한 맥락과 동일하다고 생각된다. 쿤은 새로운 창의성을 개발할 필요가 없다고 해석하는 것 보다는, 혁명의 준비보다 정상과학에 집중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델들을 최대한 활용해보자는 논의인 것이다.
 
둘째로 우리가 항상 과학을 ‘물은 H2O이다’식의 암기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이 H2O임을 밝히는 과정은 없지만, 그 사실을 이용하여 물의 여러 가지 성질들을 도출해 내고 있다. 예를 들어 물이 H2O라는 지식을 바탕으로 물의 결합각도는 104.5도, 얼음의 비중은 물보다 작다와 같은 지식을 도출해 낸다. 이 과정은 암기가 아니라 과학적 설명에 따라서 이루어지며, 단지 과학지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장하석은 과학교육이 무비판적이라고 비난하는데, 이 부분에는 상당부분 동감한다. 그러나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생각해보면, 마땅한 대안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 장하석이 생각하는 비판적인 교육은 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도 자신들의 의문점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에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20~30명의 학생당 1명의 교사가 배정되는 상태로는 자유로운 토론이 불가능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몇 배나 되는 선생님들이 필요할 텐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비판적인 교육은 교과서가 없거나 존재하더라도 교과서에 얽매이지 않고 학생들이 스스로 의문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교육은 교과서의 비중이 적어 교사들의 수준에 매우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모두에게 비슷한 수준의 교육이 제공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러한 점은 교육평등의 원리에 위배되며, 오히려 새로운 사회의 분란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기 때문에 장하석의 의견은 현실성이 결여된 대안이다. 그러나 장하석의 무비판성에 대한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며, 해결방안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by *무*)


== 관련 항목 ==
== 관련 항목 ==
* [[이상 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
* [[과학의 철학적 이해 : 2016년 2학기]]
* [[과학의 철학적 이해 2016년 1학기 기말고사 학생 답안]]


{{코멘트}}
[[분류:과학철학]]
[[분류:강의]]
[[분류:시험]]

2017년 3월 9일 (목) 10:13 기준 최신판

1번

(1)

  • 장하석의 다원주의는 모든 실천체계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기준을 만족하는 실천체계들만을 허용한다. 그러나 화학 혁명 또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대한 논의에서 보았듯이, 자유롭게 둘 경우 각 개인들은 서로 다른 허용 기준을 가지고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 또한 당사자들의 판단은 역사학자나 철학자의 판단과도 일치할 필요가 없다. 이 점을 고려하여, 다원주의가 상대주의나 권위주의로 빠지지 않기 위한 방법을 검토하라.

과학에서 다원주의는 지식을 탐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여러 가지 실천 체계를 허용한다. 이는 하나의 체계만 허용하는 일원주의와 대비되며, 사고방식의 다양성을 증가시키고 패러다임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유연한 대처를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다원주의는 여러 체계를 허용한다는 점에서 상대주의로 빠질 우려가 있다. 상대주의는 어떤 체계든 모두 허용하기 때문에 과학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과학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으면서 자신의 주장만 고집하거나, 지식의 탐구가 아닌 다른 목적을 추구하는 체계가 난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원주의가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을 만족하는 체계를 선별할 필요가 있다. 과학적으로 바람직한 체계를 구별하는 절대적인 기준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부적절한 체계가 난립하는 것을 방지하고 과학 탐구에 대략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기준의 후보를 생각해 볼 수는 있다. 그러한 기준으로는 반증 가능성, 이론적 정합성, 이론과 실험의 정합성, 예측의 정확성, 간결성, 활용성과 생산성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이 있다면 채택 가능하다.

어떤 기준이 더 중요한지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다원주의에서 허용하는 체계를 어떤 사람은 거부할 수도 있고, 비주류인 체계를 어떤 사람은 높이 평가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절대적인 하나의 기준으로 과학적 체계를 판별하기보다는, 일반적으로 과학적이라고 받아들여지고 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합의된 여러 가지 기준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정확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체계와 단순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체계가 있다고 할 때, 다원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정확성을 중시하는 패러다임과 단순성을 중시하는 패러다임 중 어느 한 쪽이 패배하여 사라질 때까지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다원주의는 두 패러다임 모두 정확성 또는 단순성이라는, 일반적으로 과학적 체계가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조건을 일정 부분 갖추고 있으므로 둘 다 허용할 수 있다. 당장 모든 기준을 완벽하게 충족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아직 미흡한 부분을 보완해나가는 것이 정상과학의 목표인 것이다. 이는 다원주의가 너무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 나머지 일원주의, 혹은 권위주의로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보완책이기도 하다.

또한, 서로 다른 실천 체계끼리의 소통과 교류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바람직한 체계를 선별하는 기준을 개선해나갈 수 있으며, 여러 체계가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거나 혼란에 빠질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또한, 과학혁명의 시기에도 경쟁 또는 협력을 통해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수월해진다.

(by *동*)

(2)

  • 장하석은 비주류의 과학 연구에 대한 국가적 지원의 필요성을 암시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지원 대상에 대한 적절한 선정 방법을 그 근거와 함께 제시하라. 만약 이러한 국가적 지원에 대해 반대한다면 반대 근거를 제시하라.

연구자들의 전문성에 대한 존중을 기초로 하여 비주류 과학에 대한 지원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우선 플로지스톤 패러다임에 대한 이 책의 견해와 반대되는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나는 플로지스톤 패러다임이 사장된 이유가 라부아지에의 ‘플로지스톤 박멸 운동’ 때문이라는 장하석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플로지스톤 패러다임의 패배 원인은 이 이론이 화학반응에 대한 정성적 설명에 머물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라부아지에의 정량적 분석은 화학의 새로운 분야를 여는 데 이르렀고 화학 반응의 진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기 때문에 당대의 수많은 화학자들이 라부아지에의 이론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플로지스톤과 산화-환원 반응을 연관 지어 설명하는 내용도 비주류 과학에 대한 투자를 반대하는 입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플로지스톤 패러다임은 사장되어 없어졌지만 화학의 발전은 계속되었고 결국 플로지스톤 이론이 잘 설명하는 부분을 전자 패러다임을 도입하여 설명하는데 성공했다. 이 내용이 보여주는 것은 비주류 과학이 사장되더라도 과학 발전은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장하석은 플로지스톤 이론이 사장되지 않았다면 화학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식의 가정법은 받아들일 수 없다.

세상에 완벽한 이론은 없으므로 연구자들은 각자의 전문 지식을 총 동원해 최선의 연구 분야를 정할 것이며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비주류 과학이라도 실재를 잘 설명한다는 증거가 검증된다면 (1)에서 설명한 빛의 파동설처럼 사장되지 않고 남아 과학의 한 분야를 차지할 수 있다. 따라서 비주류 과학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불필요하다.

(by *윤*)

2번

  • 교재 8장 “물은 H2O인가?”의 논증 방식을 참고하여, 그동안 자신이 배웠던 기초적인 지식 중 하나를 골라 그것이 현재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또는 어떻게 정당화되었는지 검토하라. (A4 2장 이내, 20점)

수는 자연수를 시작으로 탄생되기 시작했다. 사람은 필요에 따라 새로운 수들을 하나씩 발명했다. 음수, 유리수, 실수, 그리고 마지막 발명은 복소수였다. 복소수는 실수와 허수라는 두 수의 결합이다. 하지만 허수는 안타깝게도 오랜 시간 환영받지 못했다. 19세기 수학자이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앨리스 시리즈의 저자인 루이스 캐럴은 매우 창의적인 방법으로 허수를 조롱했다. 웃음만 남겨두고 사라지는 체셔고양이는 결과만 남겨두고 사라져버리는 허수를 풍자한 것이다. 그렇다면 허수는 대체 언제 발명되고 어떤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못했으며 어떻게 우리 삶의 한 요소로 자리잡게 된 걸까?

허수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16세기 이탈리아 수학자 카르디노였다. 카르디노는 3차 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과정에서 제곱하면 음수가 나오는 이상한 수를 발견한다. 음수든 양수든 제곱하면 무조건 양수가 나온다는 것이 바로 수학의 규칙이었기 때문에 그는 규칙에 어긋나는 이 수를 무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사실, 이 이상한 수를 발견한 것은 카르디노뿐만이 아니었다. 카르디노 이전의 시대에서도 수학자들은 2차 방정식을 푸는 과정에서 허수를 발견했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허수를 방정식의 답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허수를 해로 포함하는, 예를 들어 과 같은 방정식의 그 당시 답은 “해가 없다”였다. 그러나 카르디노는 허수가 수학의 규칙에 어긋나긴 하지만, 허수를 이용하면 결과적으로 실수근을 도출해낼 수 있다는 점을 알아낸다. 허수는 “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수처럼 생각한다는 점에서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것을 감수하면 3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통해 쉽게 실수근을 찾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카르디노는 허수를 “쓸모없는 수”라고 칭했지만 결국 허수를 사용하면 3차 방정식의 풀이가 간단해진다는 점 때문에 허수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허수를 “수처럼 생각하면” 공식을 사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허수는 수로 인정받지 못했다. 문제는 허수가 수학의 규칙에 어긋나다는 점뿐만이 아니었다. 수들은 언제나 수직선 위에 자리잡아야만 했다. 그러나 수직선 위에는 허수를 위한 자리가 없었다. 대수학의 급속한 발전, 음수의 인정과 함께 수는 기하에서 벗어났긴 하지만 수에는 여전히 기하학적 전통이 남아있었고 허수는 여전히 세상의 어떤 것에도 자리잡을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수학자들이 허수를 수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 데카르트는 허수를 기하학적으로 나타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 수에 ‘상상의(imaginary)' 수, 즉 ’허수‘라는 이름을 붙여 조롱하였다. 그런데 15세기 중반에 이 문제에 답을 내놓은 한 수학자가 등장한다. 영국의 수학자 존 월리스(John Wallis)였다. 허수를 기하학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평면에서 수직 방향의 움직임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낸 존 윌리스는 오직 수평으로만 수를 나타내던 전통에서 벗어난 사고의 전환을 꾀했지만 이러한 생각이 불러올 파장을 의식해 직접적으로 이를 발표하지 않았다. 따라서, 허수를 기하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만 프랑스의 수학자였던 아르강이 수직선 두 개를 이용해 간단히 복소수를 표현하는 법을 생각해낸다. 한 젊은 수학자의 기발한 생각은 프랑스의 뛰어난 수학자였던 르장드르에게 전달되어 당시 저명한 저널인 [수학연감] 1813호에 실리게 된다. 복소수를 기하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 발표는 많은 수학자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때부터 복소수를 수로 인정하자는 움직임이 커지게된다.

수학의 ‘복소수화’는 마침내 가우스 대에 이르러 이루어지게 된다. 가우스는 허수를 이용하면 방정식의 해에 관한 일관된 규칙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가우스는 이 발견을 통해 n차 방정식은 n개의 해를 갖는다는 대수학의 기본정리를 확립한다.(!!) 과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학의 단순성과 우아함을 유지시켜 주는 주장이라면 수학의 세계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기 마련이다. 결국 어떤 수든 제곱하면 양수가 나온다는 수학의 규칙 탓에 수의 개념에서 배제되었던 허수는 가우스에 의해 정립된 n차 방정식은 n개의 해를 갖는다는 우아한 규칙에 의해 수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처럼 허수를 인정하자는 수학자의 수는 점점 늘어났지만, 수학 이외의 분야에서는 허상의 수인 복소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 양자역학에 의한 혁명이 이루어지고 물리학이 양자역학의 토대 위에서 세워지자 허수에 대한 다른 접근 방식이 등장한다. 양자의 세계에는 뉴턴의 역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함 움직임이 존재했다. 관측 가능한 세계는 실수로 표현했지만 관측이 불가능한 세계는 실수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슈뢰딩거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복소수를 통해 찾는다. 슈뢰딩거는 허수를 이용해서 관측할 수 없는 세계를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허수를 이용하면 일반 상대성 이론 안에서 우주의 기원을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결국, 20세기 이후 양자역학에 의해 물리학의 패러다임이 변화했기 때문에 물리학은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허수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허수는 20세기에 들어서야 우리 삶의 한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허수의 정당화 과정에서 나타난 수학계는 장하석이 나열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엿보았던 과학계의 모습과 얼핏 닮아있다. 과학계와 마찬가지로 수학계 또한, 처음에는 수학의 규칙을 위협하는 발견을 숨기고자 하고 그러한 발견을 부정하며 그것을 조롱하지만 또 다른 우아한 규칙이 그것을 필요로 할 때 그들은 이때까지의 태도와는 다른 모습으로 그 발견을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일견 비이성적이라고 느껴지지만 그러한 모습들 또한 자신이 믿고있는 체제가 진리라 믿었기에 발생했던 현상이다. 또한 반대로 이와 같이 진리에 도달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은 자신의 이론에 대한 확신을 주었을 것이며 새로운 이론의 창시자에게도 자신의 이론을 고수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진리에 대한 믿음은 새로운 지식을 거부하는 폐쇄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새로운 이론을 불러오는 혁명적인 모습으로 찾아올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정당화 과정에서 나타난 수많은 도전과 그에 대한 대응은 수학과 과학이라는 학문의 성격이 “진리”를 지향하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현상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by *진*)

코멘트 : 허수가 수용된 이유를 과정만 봐도 깔끔하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답안입니다. 다만 결론에서 요약된 방식은 이 사례가 보여주는 풍부한 함의를 전달하는 데 미흡해 보입니다. 특히 본문에서 서술된 허수의 수용 과정을 살펴 보면, 초기 허수는 그것이 수의 (기하학적) 체계에서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이유에서 거부되었지만, 첫째, 기존 체계의 ‘자연스러운(?)’ 확장을 통해 허수의 자리가 마련됨에 따라 거부감이 사라졌고, 둘째, 결국에는 ‘우아한 규칙’과 ‘깔끔한 설명’을 얻기 위해 허수가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진리'에 대한 욕구가 두 입장 사이에서의 선택 문제를 낳았을 지라도, '선택'의 근거가 '진리'에서 나오진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즉 이 사례에서 허수 수용의 근거는 우아한 규칙을 얻을 수 있다거나 보다 깔끔한 설명을 얻을 수 있다는 미적/실용적 가치에 호소하여 이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3번

  • 장하석은 (한국의) 과학 교육에 대해 어떤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지 요약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라. (A4 1장 이내, 10점)

장하석이 생각하는 현재 과학 교육의 문제점은 획일적인 과학을 학생들에게 무비판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는 획일적인 과학은 창의성을 발휘하는데 제한을 가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의 새로운 발견을 위해서는 은유의 사용이 필수적인데, 다원주의적인 과학을 가르침으로서 은유를 사용하는 틀이 되는 모델 -정확히 장하석은 모델이라는 말을 한 적은 없지만- 을 이전보다 다양하게 익힐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과학교육이 학생들에게 알려진 지식을 단순히 암기하는 방식으로만 진행되고 있는 점도 문제인데, 우리가 과학을 배우는 목적은 지식의 전달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물의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물이 어떻게 HO가 아닌 H2O가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물이 H2O라는 것을 외우는 것보다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방식을 추구하자는 논의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방향성을 넓히는 다원주의는 기존에 존재하는, 다원주의와 경쟁하는 방식까지도 포함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장하석의 논의에서는 다원주의는 ‘획일적인 암기과학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라는 방식으로 기존의 교육까지도 포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비교가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 효율성에 따라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고 다원주의를 거부할 수 있는 것은, 다원주의가 옳지 못한 방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정된 시간동안 다양한 것을 지지하는 것보다 현재의 방식이 더 의미 있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첫째로 다양한 모델을 활용할 수 있기 위해서 반드시 다원주의적인 과학을 배워야하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뒤따른다. 우리는 잘 정립된 획일적인 과학 하에서도 여러 가지 모델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데, 이는 이미 분화된 여러 가지 과학-예를 들어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을 배우기 때문이다. 은유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빗대어 표현되는 모델-태양계-과 빗대어 표현하고자 하는 모델-원자-에 대해서 모두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때, 서로 상충될 수도 있는 두 가지 모델을 이해하는 것보다 서로 정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두 가지 모델을 이해하는 것이 편한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과학교육은 동일한 시간동안 서로 충돌하는 이론들보다, 지금과 같이 상호정합적인 다른 종류의 과학을 가르치는 것이 은유를 사용함에 있어 더 효율적일 것이다.

심지어 새로운 발견에 있어 모델이 반드시 필수적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뉴턴의 물리법칙에 따라 도출한 천왕성의 궤도가 실제 관측과 맞지 않았을 때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새로운 모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모델을 믿고 연구를 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모델은 과학혁명 당시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과학 활동에 있어 대부분의 기간은 정상과학이지 과학혁명이 아니다. 과학혁명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지만, 짧은 기간을 차지하는 혁명을 위해서 항상 다양한 모델을 준비해야하는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쿤의 필요에 따른 창의성도 이러한 맥락과 동일하다고 생각된다. 쿤은 새로운 창의성을 개발할 필요가 없다고 해석하는 것 보다는, 혁명의 준비보다 정상과학에 집중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델들을 최대한 활용해보자는 논의인 것이다.

둘째로 우리가 항상 과학을 ‘물은 H2O이다’식의 암기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이 H2O임을 밝히는 과정은 없지만, 그 사실을 이용하여 물의 여러 가지 성질들을 도출해 내고 있다. 예를 들어 물이 H2O라는 지식을 바탕으로 물의 결합각도는 104.5도, 얼음의 비중은 물보다 작다와 같은 지식을 도출해 낸다. 이 과정은 암기가 아니라 과학적 설명에 따라서 이루어지며, 단지 과학지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장하석은 과학교육이 무비판적이라고 비난하는데, 이 부분에는 상당부분 동감한다. 그러나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생각해보면, 마땅한 대안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 장하석이 생각하는 비판적인 교육은 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도 자신들의 의문점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에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20~30명의 학생당 1명의 교사가 배정되는 상태로는 자유로운 토론이 불가능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몇 배나 되는 선생님들이 필요할 텐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비판적인 교육은 교과서가 없거나 존재하더라도 교과서에 얽매이지 않고 학생들이 스스로 의문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교육은 교과서의 비중이 적어 교사들의 수준에 매우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모두에게 비슷한 수준의 교육이 제공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러한 점은 교육평등의 원리에 위배되며, 오히려 새로운 사회의 분란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기 때문에 장하석의 의견은 현실성이 결여된 대안이다. 그러나 장하석의 무비판성에 대한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며, 해결방안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by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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