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standing, Explanation, and Scientific Knowledge/Understanding Without Explanation?"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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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설명적 이해는 위의 사례들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가능성들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즉 립턴의 사례들에서 제공되는 이해가 설명적 이해보다 낮은 수준의 이해가 아니라, 단지 다른 종류의 이해라고 반론한다면? (칼리파에 따르면) 그렇다 하더라도, 립턴의 사례에 등장하는 이해자가 '왜 p인지'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며, 더 나은 설명일수록 더 많은 what-if 질문들에 답변할 수 있다는 점은, 위의 이해자들이 가진 이해가 열등한 종류의 이해임을 보여준다.
만약 설명적 이해는 위의 사례들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가능성들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즉 립턴의 사례들에서 제공되는 이해가 설명적 이해보다 낮은 수준의 이해가 아니라, 단지 다른 종류의 이해라고 반론한다면? (칼리파에 따르면) 그렇다 하더라도, 립턴의 사례에 등장하는 이해자가 '왜 p인지'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며, 더 나은 설명일수록 더 많은 what-if 질문들에 답변할 수 있다는 점은, 위의 이해자들이 가진 이해가 열등한 종류의 이해임을 보여준다.


== 5.4. 갈릴레오 사례 ==
== 5.4. 갈릴레오 사례(올바른 방향 반론과 잘못된 이익 반론) ==
 
갈릴레오는 물체의 낙하가속도(a)가 물체의 질량(m)에 독립적이라는 점을 a가 m에 독립적이지 않다면 모순이 발생한다는 점을 통해 논증한다. 립턴에 따르면, 이러한 갈릴레오의 (연역적) 논증은 왜 a가 m에 독립적인지에 대한 설명이 아니지만, 필연성에 대한 지식, 즉 모종의 이해를 제공한다. 이에 대한 칼리파의 공략법은 다음과 같다. 만약 필연성에 관한 지식이 설명적 역할을 수행한다면 그것은 원시적 설명으로서 아직 이해에 못미치는 상태이고(올바른 방향 반론), 만약 그것이 설명적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경험적 현상에 대한 이해라기보다 개념적 이해에 가깝다(잘못된 이익 반론).
 
첫째, 올바른 방향 반론. 칼리파에 따르면, 갈릴레오는 "왜 물체가 가속되는가?"라는 질문에 "m 때문은 아니다."라는 간접적인 답을 제공하는 것이고, 이 답은 왜 p인지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진 않지만, 왜 p인지에 대한 가능한 답들을 과학적으로 평가하는 데 필요한 비판적 정보(critical information)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갈릴레오의 논증은 이해를 위한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중인 원시적 이해만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필연성에 관한 논점을 비판적 정보에 관한 논점으로 슬쩍 옮기고 있다고 비판한다면? (1) 립턴이 오히려 갈릴레오의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2) 갈릴레오의 논증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운동 이론의 불가능성을 보인 것이라기보다 그럴듯하지 않음을 보인 것으로 보아야 맞다.
 
둘째, 잘못된 이익 반론. 갈릴레오의 논증은 질량, 가속도 및 둘의 관계의 개념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거나 그들의 경험적 현상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런데 갈릴레오는 경험적 증거 없이 오로지 사고실험을 통해서만 선험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이것이 어떤 이해를 제공해준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경험적 현상에 대한) 이해와는 무관한 것이다.


== 5.5. 암묵적 지식을 통한 통합 ==
== 5.5. 암묵적 지식을 통한 통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