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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설명을 이해에 되돌려놓기 ==
== 5.2. 설명을 이해에 되돌려놓기 ==
이 소절에서 칼리파는 UWE에 대한 세 가지 공략법을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이 소절에서 칼리파는 UWE에 대한 세 가지 공략법을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 올바른 방향 반론(Right Track Objection) : 립턴의 사례들 중 일부는 '왜-이해'에 못 미치는 인지적 성취, 즉 원시적 이해(proto-understanding)만을 제공한다. 이때 p에 대한 원시적 이해란 왜 p인지에 대한 이해는 아니지만, p에 대해 모종의 설명적 역할을 수행하는 명제 q를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원시적 이해'는 설명을 통한 이해로 가는 길에 있을 뿐, 아직 그에 도달하진 못한 상태이다.  
# 올바른 방향 반론(Right Track Objection) : 립턴의 사례들 중 일부는 '왜-이해'에 못 미치는 인지적 성취, 즉 원시적 이해(proto-understanding)만을 제공한다. 이때 p에 대한 원시적 이해란 왜 p인지에 대한 이해는 아니지만, 왜 p인지에 대한 (이후의) 과학적 지식에 포함되어야 할 요소들중 일부인 "q가 p와 관련하여 수행하는 설명적 역할"을 알아차렸다는 점에서 최소 이해의 구성요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원시적 이해'는 설명을 통한 이해로 가는 길에 있을 뿐, 아직 그에 도달하진 못한 상태이다.  
# 잘못된 이익 반론(Wrong Benefit Objection) : 립턴의 사례들이 설명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종류의 이해를 제공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사실 그러한 이해는 '왜-이해'와는 다른 종류의 이해이다. 따라서 그 사례들은 '왜-이해'에 설명이 필요하다는 견해의 반례가 될 수 없다.  
# 잘못된 이익 반론(Wrong Benefit Objection) : 립턴의 사례들이 설명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종류의 이해를 제공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사실 그러한 이해는 '왜-이해'와는 다른 종류의 이해이다. 따라서 그 사례들은 '왜-이해'에 설명이 필요하다는 견해의 반례가 될 수 없다.  
# 설명적 반론(Explanatory Objection) : 립턴의 사례들 중 일부는 사실 옳은 설명에 기반하여 이해를 제공하고 있는 사례들이다. 따라서 그 사례들은 설명 없는 이해의 사례가 아니다.
# 설명적 반론(Explanatory Objection) : 립턴의 사례들 중 일부는 사실 옳은 설명에 기반하여 이해를 제공하고 있는 사례들이다. 따라서 그 사례들은 설명 없는 이해의 사례가 아니다.


== 5.3. 잠재적 이해의 사례들 ==
== 5.3. 잠재적 이해의 사례들 (올바른 방향 반론) ==
립턴은 아래와 같은 잠재적 설명들이 이해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립턴은 아래와 같은 잠재적 설명들이 이해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 존은 경력 때문에 채용됐다. 그런데 이를 모르는 어떤 사람은 학력이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면 존이 채용되지 않았을 것임을 안다. 이 경우, 이 사람은 옳은 설명 없이도 왜 존이 채용됐는지에 대한 모종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
# 존은 경력 때문에 채용됐다. 그런데 이를 모르는 어떤 사람은 학력이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면 존이 채용되지 않았을 것임을 안다. 이 경우, 이 사람은 옳은 설명 없이도 왜 존이 채용됐는지에 대한 모종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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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설명적 이해는 위의 사례들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가능성들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즉 립턴의 사례들에서 제공되는 이해가 설명적 이해보다 낮은 수준의 이해가 아니라, 단지 다른 종류의 이해라고 반론한다면? (칼리파에 따르면) 그렇다 하더라도, 립턴의 사례에 등장하는 이해자가 '왜 p인지'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며, 더 나은 설명일수록 더 많은 what-if 질문들에 답변할 수 있다는 점은, 위의 이해자들이 가진 이해가 열등한 종류의 이해임을 보여준다.
만약 설명적 이해는 위의 사례들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가능성들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즉 립턴의 사례들에서 제공되는 이해가 설명적 이해보다 낮은 수준의 이해가 아니라, 단지 다른 종류의 이해라고 반론한다면? (칼리파에 따르면) 그렇다 하더라도, 립턴의 사례에 등장하는 이해자가 '왜 p인지'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며, 더 나은 설명일수록 더 많은 what-if 질문들에 답변할 수 있다는 점은, 위의 이해자들이 가진 이해가 열등한 종류의 이해임을 보여준다.


== 5.4. 갈릴레오 사례 ==
== 5.4. 갈릴레오 사례(올바른 방향 반론과 잘못된 이익 반론) ==


== 5.5. 암묵적 지식을 통한 통합 ==
갈릴레오는 물체의 낙하가속도(a)가 물체의 질량(m)에 독립적이라는 점을 a가 m에 독립적이지 않다면 모순이 발생한다는 점을 통해 논증한다. 립턴에 따르면, 이러한 갈릴레오의 (연역적) 논증은 왜 a가 m에 독립적인지에 대한 설명이 아니지만, 필연성에 대한 지식, 즉 모종의 이해를 제공한다. 이에 대한 칼리파의 공략법은 다음과 같다. 만약 필연성에 관한 지식이 설명적 역할을 수행한다면 그것은 원시적 설명으로서 아직 이해에 못미치는 상태이고(올바른 방향 반론), 만약 그것이 설명적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경험적 현상에 대한 이해라기보다 개념적 이해에 가깝다(잘못된 이익 반론).
 
첫째, 올바른 방향 반론. 칼리파에 따르면, 갈릴레오는 "왜 물체가 가속되는가?"라는 질문에 "m 때문은 아니다."라는 간접적인 답을 제공하는 것이고, 이 답은 왜 p인지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진 않지만, 왜 p인지에 대한 가능한 답들을 과학적으로 평가하는 데 필요한 비판적 정보(critical information)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갈릴레오의 논증은 이해를 위한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중인 원시적 이해만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필연성에 관한 논점을 비판적 정보에 관한 논점으로 슬쩍 옮기고 있다고 비판한다면? (1) 립턴이 오히려 갈릴레오의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2) 갈릴레오의 논증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운동 이론의 불가능성을 보인 것이라기보다 그럴듯하지 않음을 보인 것으로 보아야 맞다.
 
둘째, 잘못된 이익 반론. 갈릴레오의 논증은 질량, 가속도 및 둘의 관계의 개념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거나 그들의 경험적 현상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런데 갈릴레오는 경험적 증거 없이 오로지 사고실험을 통해서만 선험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이것이 어떤 이해를 제공해준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경험적 현상에 대한) 이해와는 무관한 것이다.
 
== 5.5. 암묵적 유비를 통한 통합 ==
립턴은 과학자들의 문제 선별과 풀이가 이론의 명시적인 내용에 의존하기보다 암묵적인 유사성에 의존한다는 쿤의 언급을 이용해 설명이 아닌 암묵적 유비가 통합에 관한 지식(이해)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비적 통합은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가진다.
* 행위자는 다음의 범례를 안다 : B는 문제 A의 풀이이다.
* 그 행위자는 C가 A와 유사한 문제이고 C가 B와 유사한 풀이 D를 가진다는 것도 안다.
* 따라서 그 행위자는 A, B, C, D가 통합된다는 것을 안다.
 
(1) 설명적 반론 : 이에 대한 칼리파의 첫 번째 공략법은 립턴의 암묵적 유비를 통한 이해가 사실 설명적 이해에 해당한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칼리파는 키처의 통합적 설명 이론을 가져오는데, 이에 따르면 통합적 설명이란 별개의 설명 사례들이 보다 일반적인 설명 도식의 사례임을 알게 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런데 립턴이 제시하는 유비적 통합은 이러한 일반적인 설명 도식에 의존하는 통합적 설명의 조건을 거의 그대로 만족한다. 따라서 립턴의 유비적 통합은 설명 없는 이해가 아니라 설명적 이해를 제공한다.
 
설명적 반론을 피하려면, 암묵적 유비는 도식에 대한 지식을 활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회피 전략은 잘못된 이익 반론이나 올바른 방향 반론에 부딪히게 된다.
 
(2) 잘못된 이익 반론 : 문제 선별과 풀이에 유비가 활용된다는 쿤의 얘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보자. 어떤 문제와 어떤 풀이는 설명과 뚜렷한 관련이 없다. 이 경우, 부연 설명이 없는 한, 그때 사용되는 유비가 '왜-이해'에 해당하는지 분명치 않다. 어쩌면 그 과학자는 어떤 문제를 푸는 법에 대한 이해만을 가졌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립턴은 실천적/절차적 이해와 왜-이해를 뒤섞고 있는 것이다.
 
(3) 올바른 방향 반론 : 암묵적 통합의 사례들에서, 행위자는 비슷한 문제가 비슷한 풀이를 가진다는 것만 알 뿐, 왜 그런지 아직 모를 수 있다. 이는 진정한 통합적 설명을 통해 개선될 여지가 있는 원시적 이해의 형태라 할 수 있다.


== 5.6. 원인에 대한 암묵적 이해 ==
== 5.6. 원인에 대한 암묵적 이해 ==
립턴은 시각적 모형이나 조작을 통해 암묵적 이해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태양계의 시각적 모형을 통해 역행 운동의 원인을 이해하거나 기계 조작을 통해 기계 작동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 즉 그들은 설명은 못하면서도, 인과적 지식(이해)을 가지고 있다. 립턴에 따르면, 설명은 명시적 표상을 필요로 하기에 암묵적 설명이라는 것은 없다. 따라서 그들은 암묵적 설명을 통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설명 없이 암묵적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칼리파의 공략법은 (1) 위의 사례들이 암묵적 설명에 해당한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설명 있는 이해임을 보이거나 (2) 진정한 이해에 필요한 요소인 의미론적 지식이 빠진 원시적 이해라는 점을 보이는 것이다.
(1) 암묵적 설명 : 설명이 반드시 언어적 설명일 필요는 없다. 명시적인 비언어적 설명이 가능하다. 예컨대 우리는 Fred가 말을 못해 수화를 통해 설명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언어는 수많은 기호 중 하나일 뿐이므로, 언어 대신 다른 기호를 통해 인과적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번에는 좀더 암묵적인 방법을 생각해보자. Dan은 어떻게 휠이 돌거나 멈추는지 보여주기 위해, 즉 인과적 구조를 전달하려는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기계의 레버를 밀고 있다. 그렇다면 Dan은 암묵적 이해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암묵적 설명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Dan은 설명 없는 이해가 아닌 설명 있는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2) 의미론적 지식 : 이번에는 설명에 언어가 필요하다고 해보자. 이 경우에는 비언어적 이해가 언어적 이해보다 무언가를 결여하고 있음을 보일 수 있다.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가? 바로 의미론적 지식이며, 의미론적 지식을 얻으면 이해는 더 개선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두 가지 반론이 가능하다. 첫째, 암묵적 지식은 보통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을 지칭한다. 그런데 어떻게 의미론적 지식을 통한 명시적 설명이 암묵적 이해보다 나을 수 있는가? 칼리파의 답변 : Dan이 단지 기계를 움직이는 동작을 통해서만 인과적 정보를 전달하는 반면, Emily는 거기에 코멘트도 추가적으로 제공해줄 수 있다. 누가 더 나은가? 둘째, 의미론적 지식이 이해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과학의 발전에서 더 나은 이해를 위해 의미론적 명료화 작업이 선행되는 경우 많음. 따라서 의미론적 지식을 이해의 차원으로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 5.7. 결론 : 화해의 길 ==
칼리파는 립턴의 설명 없는 이해 견해에 대해 세 가지 반론의 조합으로 대응했고, 립턴의 사례들이 이해가 설명에 대한 지식이라는 생각에 위협이 되지 않음을 보였다. 이제 립턴의 가정을 재검토함으로써 화해의 길을 모색한다. 립턴의 가정(L1)에 따르면, "p에 대한 설명이 p에 대한 모종의 지식을 제공하는 경우, 그러한 종류의 지식이 왜 p인지에 대한 이해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가정에서 설명은 이해에서 특권적인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왜 그래야 하는가? 바로 EKS 모델에 따르면, 현상의 전체 설명적 넥서스에 대한 풍부한 과학적 지식을 가지는 것이 이상적 종류의 이해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이상적인 이해이므로, 그에 못미치는 비설명적 원시적 이해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립턴의 가정이 EKS의 귀결이므로, 립턴의 비설명적 이해 사례들의 개선 방향도 따라나온다. 바로 설명을 통한 개선이다.


== 5.7. 결론 ==
[[분류:과학적 설명]]
[[분류:과학적 이해]]
[[분류: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