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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잠재적 이해의 사례들 ==
== 5.3. 잠재적 이해의 사례들 ==
립턴은 아래와 같은 잠재적 설명들이 이해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 존은 경력 때문에 채용됐다. 그런데 이를 모르는 어떤 사람은 학력이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면 존이 채용되지 않았을 것임을 안다. 이 경우, 이 사람은 옳은 설명 없이도 왜 존이 채용됐는지에 대한 모종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
# 에이블(Able)과 베이커(Baker)의 권투 시합에서 베이커가 10회에 일부러 쓰러지기로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5회에 에이블의 어퍼컷이 운 좋게 잘 들어가면서 에이블이 이겼다. 뒤의 사실을 모른 채, 베이커가 10회에 쓰러지기로 한 것을 아는 사람은 에이블이 왜 시합에서 이겼는지에 대한 옳은 설명을 알진 못하지만, 에이블이 왜 이겼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잠재적 설명을 가지고 있다(잠재적 설명은 안전장치가 되어있는 중첩결정을 드러냄으로써 필연성을 보여줄 수 있다).
칼리파는 위의 사례들이 이해에 미치지 못하는 원시적 이해이며, 이 원시적 이해가 설명적 이해를 통해 개선 가능함을 주장한다. 설명적 이해자는 왜-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답변 가능하지만, 원시적 이해자는 왜-질문에 간접적인 답변만 할 수 있고, 그의 답변은 p에 대한 what-if 질문에 답합으로써 왜-질문에 대한 간접적 설명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좋은 것은 what-if 질문들과 why 질문 모두에 답하는 것이고, 바로 설명을 둘다 제공한다.
만약 설명적 이해는 위의 사례들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가능성들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즉 립턴의 사례들에서 제공되는 이해가 설명적 이해보다 낮은 수준의 이해가 아니라, 단지 다른 종류의 이해라고 반론한다면? (칼리파에 따르면) 그렇다 하더라도, 립턴의 사례에 등장하는 이해자가 '왜 p인지'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며, 더 나은 설명일수록 더 많은 what-if 질문들에 답변할 수 있다는 점은, 위의 이해자들이 가진 이해가 열등한 종류의 이해임을 보여준다.

2023년 11월 29일 (수) 13:10 판

Kareem Khalifa, Understanding, Explanation, and Scientific Knowle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7), Ch. 5.

이해에 대한 표준적인 견해 및 칼리파의 견해에 따르면, 설명의 이해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립턴(Lipton 2009)을 비롯한 학자들은 설명 없는 이해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칼리파는 설명 없는 이해가 가능하다는 립턴의 논증과 사례들을 소개한 후, 립턴의 사례들이 (1) Right Track Objection (2) Wrong Benefit Objection (3) Explanatory Objection 중 적어도 하나에 부딪히게 됨을 보인다. 그리고는 결국 설명에 대한 지식이 이해의 이상적인 조건을 구성한다는 점이 애초에 립턴이 이해를 설명과 연관지어 정의하고자 했던 직관과 함께 그 둘을 분리할 때 생기는 약점까지 설명해준다고 강조한다.

5.1. 립턴의 틀

칼리파는 우선 립턴의 두 가지 가정을 소개한다.

  1. 립턴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왜-이해'(understanding why)만을 다루고 있다.
  2. 이해를 설명과 분리시키는 립턴의 핵심 전략 : "이해를 설명 자체보다 설명이 제공하는 인지적 이익으로 규정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칼리파는 위의 2번째 가정을 '립턴의 가정'이라고 명명하고 다음과 같이 정식화한다.

p에 대한 설명이 p에 대한 모종의 지식을 제공한다면, 그런 종류의 지식이 바로 p에 대한 이해에 해당한다. (칼리파에 따르면, 이 가정은 설명에 특권적 지위 부여)

왜 이런 정식화가 립턴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는가? 칼리파에 따르면 그렇다. 립턴의 글에 따르면, 설명이 제공하는 인지적 이익은 4가지 지식으로 (1) 원인에 대한 지식 (2) 필연성에 대한 지식 (3) 가능성에 대한 지식 (4) 통합에 대한 지식이기 때문이다.

립턴은 어떻게 이해를 설명과 분리시키는가? 이해는 설명 자체가 아니라 설명이 제공하는 인지적 이익으로 정의되므로, 설명 외의 활동을 통해서도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옹호하는 립턴의 논증은 아래와 같이 정식화된다.

  • L1. 립턴의 가정 : p에 대한 설명이 p에 대한 모종의 지식을 제공한다면, 그런 종류의 지식이 바로 p에 대한 이해에 해당한다.
  • L2. 설명은 원인, 또는 필연성, 가능성, 통합에 대한 지식을 제공한다.
  • L3. 어떤 사람은 어떤 현상에 대한 원인, 또는 필연성, 가능성, 통합에 대한 지식을 가지지만, 그 현상에 대한 어떠한 옳은 설명도 파악하지 않고 있다.
  • ∴ 설명 없는 이해(UWE) : 어떤 p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왜 p인지에 대한 어떠한 옳은 설명을 파악하지 않고도 왜 p인지 이해한다. (L1-L3)

립턴은 아래와 같은 사례들을 설명 없는 이해의 사례로 제시한다.

  • 시각적 모형과 조작은 원인에 대한 암묵적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
  • 비설명적 연역 추론은 필연성에 대한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
  • 옳지 않거나 "단지 잠재적인" 설명은 가능성에 대한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
  • 비설명적 유비는 통합에 대한 암묵적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

5.2. 설명을 이해에 되돌려놓기

이 소절에서 칼리파는 UWE에 대한 세 가지 공략법을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1. 올바른 방향 반론(Right Track Objection) : 립턴의 사례들 중 일부는 '왜-이해'에 못 미치는 인지적 성취, 즉 원시적 이해(proto-understanding)만을 제공한다. 이때 p에 대한 원시적 이해란 왜 p인지에 대한 이해는 아니지만, p에 대해 모종의 설명적 역할을 수행하는 명제 q를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원시적 이해'는 설명을 통한 이해로 가는 길에 있을 뿐, 아직 그에 도달하진 못한 상태이다.
  2. 잘못된 이익 반론(Wrong Benefit Objection) : 립턴의 사례들이 설명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종류의 이해를 제공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사실 그러한 이해는 '왜-이해'와는 다른 종류의 이해이다. 따라서 그 사례들은 '왜-이해'에 설명이 필요하다는 견해의 반례가 될 수 없다.
  3. 설명적 반론(Explanatory Objection) : 립턴의 사례들 중 일부는 사실 옳은 설명에 기반하여 이해를 제공하고 있는 사례들이다. 따라서 그 사례들은 설명 없는 이해의 사례가 아니다.

5.3. 잠재적 이해의 사례들

립턴은 아래와 같은 잠재적 설명들이 이해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1. 존은 경력 때문에 채용됐다. 그런데 이를 모르는 어떤 사람은 학력이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면 존이 채용되지 않았을 것임을 안다. 이 경우, 이 사람은 옳은 설명 없이도 왜 존이 채용됐는지에 대한 모종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
  2. 에이블(Able)과 베이커(Baker)의 권투 시합에서 베이커가 10회에 일부러 쓰러지기로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5회에 에이블의 어퍼컷이 운 좋게 잘 들어가면서 에이블이 이겼다. 뒤의 사실을 모른 채, 베이커가 10회에 쓰러지기로 한 것을 아는 사람은 에이블이 왜 시합에서 이겼는지에 대한 옳은 설명을 알진 못하지만, 에이블이 왜 이겼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잠재적 설명을 가지고 있다(잠재적 설명은 안전장치가 되어있는 중첩결정을 드러냄으로써 필연성을 보여줄 수 있다).

칼리파는 위의 사례들이 이해에 미치지 못하는 원시적 이해이며, 이 원시적 이해가 설명적 이해를 통해 개선 가능함을 주장한다. 설명적 이해자는 왜-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답변 가능하지만, 원시적 이해자는 왜-질문에 간접적인 답변만 할 수 있고, 그의 답변은 p에 대한 what-if 질문에 답합으로써 왜-질문에 대한 간접적 설명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좋은 것은 what-if 질문들과 why 질문 모두에 답하는 것이고, 바로 설명을 둘다 제공한다.

만약 설명적 이해는 위의 사례들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가능성들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즉 립턴의 사례들에서 제공되는 이해가 설명적 이해보다 낮은 수준의 이해가 아니라, 단지 다른 종류의 이해라고 반론한다면? (칼리파에 따르면) 그렇다 하더라도, 립턴의 사례에 등장하는 이해자가 '왜 p인지'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며, 더 나은 설명일수록 더 많은 what-if 질문들에 답변할 수 있다는 점은, 위의 이해자들이 가진 이해가 열등한 종류의 이해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