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standing, Explanation, and Scientific Knowledge/Understanding Without Explanation?"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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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잘못된 이익 반론. 갈릴레오의 논증은 질량, 가속도 및 둘의 관계의 개념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거나 그들의 경험적 현상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런데 갈릴레오는 경험적 증거 없이 오로지 사고실험을 통해서만 선험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이것이 어떤 이해를 제공해준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경험적 현상에 대한) 이해와는 무관한 것이다.
둘째, 잘못된 이익 반론. 갈릴레오의 논증은 질량, 가속도 및 둘의 관계의 개념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거나 그들의 경험적 현상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런데 갈릴레오는 경험적 증거 없이 오로지 사고실험을 통해서만 선험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이것이 어떤 이해를 제공해준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경험적 현상에 대한) 이해와는 무관한 것이다.


== 5.5. 암묵적 지식을 통한 통합 ==
== 5.5. 암묵적 유비를 통한 통합 ==
립턴은 과학자들의 문제 선별과 풀이가 이론의 명시적인 내용에 의존하기보다 암묵적인 유사성에 의존한다는 쿤의 언급을 이용해 설명이 아닌 암묵적 유비가 통합에 관한 지식(이해)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비적 통합은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가진다.
* 행위자는 다음의 범례를 안다 : B는 문제 A의 풀이이다.
* 그 행위자는 C가 A와 유사한 문제이고 C가 B와 유사한 풀이 D를 가진다는 것도 안다.
* 따라서 그 행위자는 A, B, C, D가 통합된다는 것을 안다.
 
(1) 설명적 반론 : 이에 대한 칼리파의 첫 번째 공략법은 립턴의 암묵적 유비를 통한 이해가 사실 설명적 이해에 해당한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칼리파는 키처의 통합적 설명 이론을 가져오는데, 이에 따르면 통합적 설명이란 별개의 설명 사례들이 보다 일반적인 설명 도식의 사례임을 알게 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런데 립턴이 제시하는 유비적 통합은 이러한 일반적인 설명 도식에 의존하는 통합적 설명의 조건을 거의 그대로 만족한다. 따라서 립턴의 유비적 통합은 설명 없는 이해가 아니라 설명적 이해를 제공한다.
 
설명적 반론을 피하려면, 암묵적 유비는 도식에 대한 지식을 활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회피 전략은 잘못된 이익 반론이나 올바른 방향 반론에 부딪히게 된다.
 
(2) 잘못된 이익 반론 : 문제 선별과 풀이에 유비가 활용된다는 쿤의 얘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보자. 어떤 문제와 어떤 풀이는 설명과 뚜렷한 관련이 없다. 이 경우, 부연 설명이 없는 한, 그때 사용되는 유비가 '왜-이해'에 해당하는지 분명치 않다. 어쩌면 그 과학자는 어떤 문제를 푸는 법에 대한 이해만을 가졌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립턴은 실천적/절차적 이해와 왜-이해를 뒤섞고 있는 것이다.
 
(3) 올바른 방향 반론 : 암묵적 통합의 사례들에서, 행위자는 비슷한 문제가 비슷한 풀이를 가진다는 것만 알 뿐, 왜 그런지 아직 모를 수 있다. 이는 진정한 통합적 설명을 통해 개선될 여지가 있는 원시적 이해의 형태라 할 수 있다.


== 5.6. 원인에 대한 암묵적 이해 ==
== 5.6. 원인에 대한 암묵적 이해 ==


== 5.7. 결론 ==
== 5.7. 결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