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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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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의 세계에서 진화는 다음과 같은 자연선택의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생물들은 자신과 닮았지만 조금씩 다른 다양한 변이들을 낳으며, 다양한 변이들 중 주어진 자연 환경에 보다 적합한 것들이 살아남는다. 이때 서로 다른 환경마다 그에 적합한 변이가 다르기 때문에, 생물의 진화는 단선적인 형태를 보이기보다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분기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조지 바살라는 이러한 생물 진화론을 기술의 세계에 적용한 기술 진화론을 제안한다.

그러나 생물의 진화를 기술의 세계에 적용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걸림돌이 있다. 첫째, 생물의 세계에서 각 생물은 그 부모에 해당하는 생물에 의해 생산되지만, 기술의 세계에서 각 기술적 인공물은 그 설계자인 인간에 의해 생산된다. 즉 기술적 인공물들 사이에는 생물들 사이에서 정의되는 부모-자식 관계가 정의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둘째, 생물의 세계에서 변이는 무작위적으로 발생하지만, 기술의 세계에서 변이는 의도적으로 설계된다. 즉 생물학적 변이는 필요와 무관하게 출현하는 반면, 기술적 변이는 필요에 의해 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살라는 이러한 차이가 기술에 진화론을 적용하는 데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가령 19세기 중엽 영국의 한 도시에서는 500가지 형태의 망치가 있었는데, 바살라가 보기에 이러한 지나친 다양성은 우리가 필요 이상의 기술적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증거였다. 또한 바살라가 보기에 대부분의 새로운 기술은 기존 기술의 작은 변형이나 조합을 통해 출현한다. 즉 새로운 기술은 기존 기술이 제공하는 제약과 가능성의 울타리 안에 얽매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은 그에 대한 요구가 있다고 해서 뚝딱 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때로는 그에 대한 요구가 없음에도 기존 기술이 제공하는 가능성의 울타리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출현하기도 한다. 즉 기술적 변이는 자신의 간접적인 부모가 제공하는 울타리 내에서 필요 이상으로 다양하게 출현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생물학적 변이의 출현 과정과 닮아 있다.

이렇게 출현한 다양한 기술적 변이들은 사회적 환경에 의해 선택되거나 도태된다. 즉 처음에는 필요와 무관하게 출현한 기술이라도 그것이 사회적 환경에 적합하다면 널리 보급되어 사용되는 반면, 그렇지 않다면 금방 사라진다. 이러한 기술에 대한 환경의 선택압에는 인간의 생존이나 경제적 요구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태도, 기술적 유행 등의 다양한 요인이 포함되며, 시대와 문화에 따라 중시되는 기술 선택의 기준은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수차와 증기기관은 주로 경제적 요인에 의해 선택되었고, 원자력은 1940-60년대 냉전 시기라는 특수한 국제 환경에서 주로 군사적, 외교적 요인에 의해 선택되었다. 바퀴는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를 제공한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바퀴 달린 수송 수단과 바퀴 없는 수송 수단 중 바퀴 달린 수송 수단이 선택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중앙아메리카인들은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바퀴를 이용한 수송 수단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3~7세기 중동 지역과 북아프리카에서는 낙타가 바퀴를 대체하기도 했다. 이는 기술 발전의 지체 또는 기술의 역행을 보여주는 사례일까? 바살라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산악 지형이 많은 중앙아메리카나 사막이 많은 북아프리카에서 바퀴를 이용한 수송 수단은 다른 수송 수단에 비해 오히려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바퀴가 어느 시대 어느 환경에서나 요구되는 기술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늘날의 착각일 뿐이다.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중앙아메리카인들 역시 오래 전부터 바퀴의 작동 원리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4세기부터 바퀴 달린 장난감을 만들어 왔지만, 수송용으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새로운 기술이 필요와 무관하게 발명될 수 있음과 함께 그것의 선택이 사회마다 달라질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바살라의 기술 진화론은 기술이 끊임없이 진보한다는 통념을 비판한다. 많은 사람들은 현대의 교통수단이 과거의 교통수단보다 훨씬 빠르며, 현대의 농경 방법이 과거보다 훨씬 많은 수확량을 거두어들인다는 점에서 기술이 진보하고 있다는 직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바살라가 보기에, 기술의 진보에 대한 이러한 “객관적” 측정법은 의미를 갖기 어렵다. 우선 교통수단의 최대 속도를 통해 교통수단의 진보를 측정하려는 시도는 빠른 속도에 대한 요구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항상 존재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기원전 1000년에 살던 사람들도 시속 100km의 속도로 300km의 거리를 여행하고 싶어 했거나 그러한 필요를 느꼈을까? 바살라에 따르면, 기술적 요구는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그들의 요구가 현대인과 같았을 것이라고 함부로 가정하면 안 된다. 또한 경작지 면적당 수확량이라는 측정 기준 대신에 투입 에너지당 수확량이라는 측정 기준을 사용하면 현대의 농경 방법은 과거보다 비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느 기준이 기술의 진보를 측정하는 적절한 기준일까? 최선의 답은 무엇이 적절한 기준인지는 우리의 목표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비판적 분석들을 통해 바살라는 기술의 진보를 매우 제한된 방식으로만 얘기할 것을 제안한다. 즉 우리는 구체적으로 설정된 목표 하에서만 기술의 진보를 얘기할 수 있다. 기술 진화론의 관점에서, 그러한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채 기술의 진보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퀴즈

A. 바살라의 견해를 추론한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1. 현대의 농경 방법이 과거보다 진보했다고 말할 수 없다.
  2. 빠르기라는 목표 하에서 비행기는 배보다 진보한 기술이다.
  3. 과거의 사람들은 현재처럼 빠른 속도의 장거리 여행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수 있다.
  4. 교통수단의 최대 속도는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 없기에 기술 진보의 기준이 될 수 없다.
  5. 투입 에너지당 생산량이 중요해진 사회라면 현대의 농경 방법은 도태될 가능성이 있다.


B. 윗글과 <보기>의 관계를 이해한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가솔린 엔진에 의해 구동되는 자동차는 어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까? 그 당시 유럽 사회에는 자동차를 발명하도록 재촉한 어떠한 요구도 없었다. 국제적으로 심각한 말 부족 사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며, 누군가 말을 대체할 운송수단의 필요성을 역설한 적도 없었다. 실제로 자동차가 등장한 후 처음 10년간인 1895-1905년 사이에 자동차의 지위는 사치스런 장난감과 같았다.

  1. <보기>는 기술적 변이의 출현이 무작위적으로 발생한다는 바살라의 주장을 약화한다.
  2. <보기>는 기술적 변이들이 사회적 환경에 의해 선택된다는 바살라의 주장을 반박한다.
  3. <보기>는 우리가 필요 이상의 기술적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바살라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4. <보기>는 새로운 기술이 기존 기술의 작은 변형이나 조합에 의해 출현한다는 바살라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5. <보기>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요구가 있더라도 그것이 뚝딱 출현할 수 없다는 바살라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C. 생물의 세계(㉠)와 기술의 세계(㉡)를 비교한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1. ㉠과 ㉡ 모두 출현한 변이들 중 환경에 적합한 일부만 선택된다.
  2. ㉠에서 진화는 분기적인 형태를 띠지만, ㉡에서 진화는 단선적인 형태를 띤다.
  3. ㉠에서는 변이가 무작위적으로 출현하는 반면, ㉡에서는 변이가 의도적으로 설계될 수 있다.
  4. ㉠에서는 부모-자식 관계가 직접적으로 정의되는 반면, ㉡에서는 부모-자식 관계가 간접적으로 정의된다.
  5. ㉠에서 적합한 변이를 선택하는 환경은 자연인 반면, ㉡에서 적합한 기술을 선택하는 환경은 인간 사회이다.


D. <보기>에 대한 바살라의 반응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오늘날 영국 런던에서 미국 뉴욕까지 비행기를 타면 7시간 이상 걸린다. 그런데 40년 전에는 3시간 반 만에 갈 수 있었다. 최대 마하 2의 속도로 날 수 있는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콩코드는 1969년에 첫 비행에 성공하고 1976년부터 상업 비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콩코드는 다른 비행기에 비해 연료비가 훨씬 많이 들었기 때문에 모든 좌석의 요금을 1등석 수준으로 비싸게 받았다. 또한 초음속 비행 중에는 ‘소닉 붐’이라는 충격파가 발생하고, 이 충격파가 지상에 도달하면 엄청난 굉음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초음속 노선은 한정될 수밖에 없었는데, 취항 노선이 적었던 콩코드는 20대라는 극히 적은 수만 유지되었고, 그렇다보니 비행기의 단가와 유지보수 비용도 비쌀 수밖에 없었다. 결국 빠른 속도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콩코드는 2000년대 항공 산업 전반에 닥친 불황을 버티지 못하고 2003년 상업 비행을 종료했다.

  1. 사회의 진보가 기술의 진보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례군.
  2. 모든 기술은 궁극적으로 경제적 요인에 선택되기 마련이군.
  3. 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기술이 역행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군.
  4. 기술에 대한 환경의 선택 요인은 하나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군.
  5. 필요와 무관하게 출현한 기술은 결국 도태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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