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와 과학
은유는 비유법의 하나로, 행동, 개념, 물체 등을 그와 유사한 성질을 지닌 다른 말로 대체하는 문학적 기법을 뜻한다. 직유가 “A는 B와 같다”와 같은 형식을 통해 원관념 A를 다른 보조관념 B에 비유하는 것이라면, 은유는 “A는 B이다”와 같이 원관념 A를 보조관념 B로 대치해 버리는 비유법이다. 그래서 “철수는 천사와 같다”라는 표현은 직유이지만, “철수는 천사다”라는 표현은 은유이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견해에서 은유는 직유의 생략형으로 간주되었다. 즉 직유의 형식에서 “같다”, “처럼”, “듯하다” 등과 같은 비교어가 생략, 발전된 것이 은유라는 것인데, 이러한 견해를 은유의 비교 이론이라고 한다.
은유의 치환 이론은 비교 이론으로부터 비롯된 이론으로, 이 견해에서는 은유적 표현이 그와 동등한 글자 그대로의 표현 대신에 쓰이는 것이라고 본다. 이 이론에 따르면, “A는 B다”와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는 “철수는 천사다”라는 표현은 “A는 C다”와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는 “철수는 착하다”라는 문자 그대로의 표현 대신에 쓰인 것일 뿐이기에, 그렇게 치환되어도 의미의 손실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막스 블랙은 은유의 비교 이론과 치환 이론에 반대한다. 그의 상호작용 이론에 따르면, “A는 B다”라는 은유를 “A는 B와 같다” 또는 “A는 C다”로 바꾸면 의미가 손실된다. 왜냐하면 은유의 의미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상호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세기 “빈민은 유럽의 흑인”이라는 발언은 당시 유럽의 빈민을 모욕하는 맥락에서 사용되었던 악명 높은 발언인데, 이 발언을 들은 사람들은 유럽의 빈민과 다른 대륙의 흑인에 대한 별개의 생각을 결합하여 제 3의 의미를 창조하게 된다. 그 결과 ‘흑인’에게나 연상되던 “별개의 인종” 또는 “야만인”이라는 특성이 유럽의 ‘빈민’에게 투사되는 동시에, ‘빈민’에게 연상되던 “무능”과 “게으름”이라는 특성이 ‘흑인’에게 투사된다. 즉 은유를 구성하는 각 부분의 의미는 상호작용을 통해 함께 변화하며, 이때 둘 사이의 유사성은 그 상호작용을 위한 출발점일 뿐이다.
조지 레이코프와 마크 존슨은 은유의 쌍방향적 성격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에 따르면 은유는 일방향적이다. 예를 들어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은유를 생각해보자. 상호작용 이론을 따른다면, ‘인생’의 의미가 ‘나그네길’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그네길’의 의미도 ‘인생’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후자의 이해는 불가능하다. 또한 은유적 표현의 순서를 바꾸는 것이 가능한 경우에도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예컨대, “외과의사는 도살자이다”라는 은유와 “도살자는 외과의사이다”라는 은유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첫 번째 문장에서 도살자 은유는 ‘무자비함’이라는 함의를 ‘외과의사’에 전달하는 반면, 두 번째 문장에서 외과의사 은유는 ‘정확성’이라는 함의를 ‘도살자’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만약 은유가 쌍방향이라면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할 수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은유가 새로운 개념의 창조 과정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는 데는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제럴드 홀튼은 “은유는 미지의 세계로 가는 유일한 다리”라고 말한 바 있다. 즉 우리에게 새로운 현상을 서술하는 데 적당한 개념이 없다면, 우리는 일단 다른 현상을 서술하는 데 사용되던 개념을 은유적으로 사용해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때 직유가 아니라 은유여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미지의 대상 A에 대해 직유적으로 표현하려면 A의 특성 a가 B의 특성 b와 비슷하다고 명확히 말할 수 있어야 하지만, A는 미지의 대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A가 지칭하는 것조차 B의 도움 없이는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열과 관련된 현상을 이해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어떤 물체를 가열하면 뜨거워진다. 그런데 동일한 불의 세기로 동일한 시간 동안 가열하더라도, 물체의 종류나 양이 달라지면 뜨거움의 정도, 즉 온도도 달라진다.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자는 “물체마다 열을 담을 수 있는 용량이 다르다”라는 은유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과학자는 물체에 열을 가하는 과정을 그릇에 액체를 붓는 익숙한 과정처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릇에 동일한 양의 액체를 담더라도, 그릇의 용량이 클수록, 즉 단면적이 클수록, 그 액체의 높이는 낮아진다. 즉 (액체의 높이)=(액체의 양)÷(그릇의 용량)이다. 마찬가지로 같은 양의 열을 가하더라도, 물체의 열용량이 커지면, 그 물체의 온도는 낮아진다. 즉 (온도)=(열량)÷(열용량)이다. 은유를 통해 얻은 이러한 가정은 과학자들에게 열량과 열용량이라는 물리량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다.
한편 은유의 성공은 과학자에게 탐구의 방향을 제시하곤 한다. 즉 은유의 한쪽에는 잘 알려져 있지만 다른 한쪽에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은 사항들이 있다면, 과학자는 그것을 확인하려 할 것이다. 예컨대 서로 다른 높이의 액체가 담긴 두 그릇 A와 B의 아랫부분을 서로 연결하면, 액체의 양과 상관없이 액체는 높이가 같아질 때까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이동하며, 각 액체의 높이 변화는 다음의 계산을 통해 결정된다.
(A의 높이 변화)×(A의 용량)=(B의 높이 변화)×(B의 용량)
이와 비슷한 일이 열 현상에서도 나타날 것인가는 과학자의 중요한 탐구 과제가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열 연구 초기에 다수의 과학자들은 이러한 은유의 안내를 받아 서로 다른 온도를 가진 물체의 혼합에 따른 온도 변화를 측정했는데,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으며, 이를 통해 각 물체의 열용량도 정밀하게 비교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