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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dgman and the Normative Independence of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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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hmoud Jalloh, “Bridgman and the Normative Independence of Science: An Individual Physicist in the Shadow of the Bomb”, Synthese 203 (2024).

발제 : 정동욱 / 2026. 1. 26.

이 논문에서 잘로는 헤더 더글러스(Douglas 2009)가 비판을 위해 다소 평면적으로 재구성했던 브리지먼의 가치중립성 이념을 “과학에 개입해도 되는 가치를 과학으로부터 온 것으로 적절히 말해질 수 있는 가치로 제한”하는 ‘규범적 가치 독립성’ 논제로서 재구성하고, 그의 논제가 더글러스 등의 비판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 도입 : 가치중립성 이념과 그에 대한 불만족

헤더 더글러스(Douglas 2009)가 비판을 위해 묘사한 브리지먼의 관점에 따르면, 과학자는 지식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어떤 제한도 없어야 한다고(“no holds barred”), 그래서 아무런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더글러스는 그러한 가치중립성 논제의 수용이 과학자들에게 “그들은 그들의 작업의 광범위한 귀결을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도덕적 책임 면제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더글러스는 과학자에게 그러한 책임 면제가 부여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과학자로서의 특별한 역할 책임도 부과된다고 생각했다.

잘로는 브리지만이 과학자로서의 책임은 과학 이론과 실험의 조사와 평가에서 특정한 종류의 가치들의 고려를 배제하는 과학관(conception of science)을 제공해준다고 논증하려고 한다. 가치중립성 이념의 일종인 브리지먼의 과학관의 기저에는 과학을 사회적 제도가 아닌 개인적 활동으로 보는 관점이 깔려 있다. 과학자가 개인적 인식적 행위자와 같은 것이라면, 그런 행위자의 핵심 인식적 덕목인 지적 정직성(intellectual integrity)은 과학에 외재적인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고려를 밀어낼 것이다.

이후 본문을 통해 잘로는 브리지먼의 독특한 과학관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러한) 과학자가 된다는 것으로부터 도출되는 과학적 가치와 책임이 무엇인지 보이고, 왜 그것이 더글러스 등이 과학자로서 과학자를 제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종류의 가치를 배제하도록 만드는지 보이겠다고 말한다.

2. 브리지먼 사례의 중요성

2.1 가치중립성 이념 회의주의에 대한 반론으로서의 브리지먼

더글러스는 브리지먼의 주장에 대한 해석으로 강한 버전과 약한 버전을 제시하고, 그중 약한 버전으로 해석한다.

  • 강한 버전 : 인식적 가치는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한다. 그래서 과학적 발견은 어떤 비용과 피해가 초래되든 가치 있다.
  • 약한 버전 : 과학적 탐구의 결과들에 도덕적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수용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학이 적절히 이루어지는 데 지나치게 큰 짐을 지우기 때문이다.

잘로가 이해하길, 강한 버전은 인식적 가치와 비인식적 가치 사이의 공약불가능성을 전제한 채 전자가 후자보다 범주적으로 앞선다고 주장하는 반면, 약한 버전은 둘 사이가 공약가능하되 (제한 없는) 과학적 탐구의 가치가 도덕적 제한에 따른 기대 비용보다 크다고 주장한다. 잘로는 브리지먼 본인의 말을 보자고 한다. 그의 말 중 일부는 문자 그대로 보면 강한 버전에 가깝지만, 더글러스는 브리지먼의 의도가 약한 버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그에 대한 반론을 제시한다. 예컨대, 과학자들은 트리니티 시험에 앞서 그 시험에 의한 실존적 위험(통제불가능한 연쇄 반응 가능성)을 고려했으며 또 고려했어야 한다.

물론 이와 같은 귀납적 위험 논증 등과 함께 인식적 가치와 비인식적 가치의 구분에 대한 여러 비판들(e.g., Longino 1990, 1996, Rooney 2017)이 있지만, 잘로는 레이시(Lacey 2017, 17)의 견해를 따라 구분 경계가 모호하다고 해서 구분 자체가 없다거나 무용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여기서 잘로는 브리지먼의 독특한 과학관이 고유하게 과학적인 가치와 비과학적인 가치를 나누기 위한 기초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가치중립성 이념은 가치가 과학의 핵심 기능에서 역할을 하는 가치의 종류로만 제한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가치중립성 이념의 옹호자들은 대체로 가치의 허용 범위가 작다.

잘로는 브리지먼의 가치중립성 논제에 대한 제3의 해석을 제시하고자 한다. 과학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유일한 가치는 “과학자로서의 과학자의 관점에 기초한(to the scientist qua scientist)” 과학의 가치들이다. 이는 과학적 가치와 비과학적 가치의 공약불가능성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강한 버전에 가깝지만, 가치의 제한이 “과학자의 관점에 제한된다”는 점에서 원래의 강한 버전과는 다르다. 과학의 독립성에 대한 브리지먼의 우려는 과학에 대한 그의 개인주의적 이해의 맥락에서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브리지먼에게 자유는 과학 프로젝트의 전제조건이고, 과학자는 그에 상응하는 과학적 책임과 지적 정직성의 덕목을 가진다. 그외의 책임과 도덕적 고려는 과학의 규범적 영역 바깥에 자리한다. 이러한 브리지먼의 내적 과학적 규범들은 더글러스의 “도덕적 현상학”을 다시 포착해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과학자는 과학을 프로젝트로서 수용함으로써 그는 어떤 규범적 책무(commitments)를 채택하는 셈이다. 그러나 그 책무는 과학적 프로젝트 그 자체의 본성에 기초한다.

2.2 사회화된 과학의 비판으로서의 브리지먼

원자폭탄과 관련하여, 브리지먼은 죄의식과 책임보다는 자유를 강조했다. 브리지먼(Bridgman 1948)에 따르면, 과학자가 발견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지적 자유를 위협하는데, 지성의 자유로운 사용은 과학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책임 요구는 과학 그 자체의 가능성을 위협한다. 브리지먼은 제1차 세계대전 시기 전쟁 연구에서도 비밀 서약, 맹세 따위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그러한 거부감이 정부 프로젝트에 대한 전면적 참여 금지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브리지먼은 2차 세계 대전 때도 (자발적으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것이 과학자의 도덕적 책임이 과학에 개입하는 사례로서 브리지먼의 견해에 반하는 사례로 보아야 할까? 브리지먼에게 전쟁 연구 참여는 사회적 의무적인 것이 아니라 “계몽된 이기심”에 기초한, “자기보존적 동기”에 기초한, 자발적 참여로서 이해됐다.

1946년 비키니 실험에 대한 브리지먼의 견해는 흥미롭다. “비키니 실험을 화끈하게 하지 않으면, 모든 과학적 자유의 억압과 과학 자체의 파괴를 초래할 수 있는 과학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생길 것이고, 이는 나에게 바다를 날려버리는 것보다 더 큰 걱정거리로 보인다.”(Bridgman to Bethe 1946) 이 사례에서 브리지먼은 과학적 탐구의 귀결에 대해 고려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이기심에 기초하여 그러한 고려를 반대한 것도 아니다. 사회가 과학 연구를 중단시키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즉 브리지먼은 과학에 대한 비자발적 사회화에 저항했지만, 개인 과학자는 기꺼이 자발적으로 정부 연구에 참여할 수 있으며, 과학 자체의 생존을 위한 정치적 조건을 지키기 위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브리지먼에게 사회화(동원)된 과학은 과학의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되었지만, 과학의 또다른 실존적 위협을 고려한다면 수용 가능했다.

2.3 맨해튼 프로젝트 자문으로서의 브리지먼

브리지먼은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100,000기압의 고압에서 우라늄 등의 물질의 행동을 결정하는 과제를 맡았다. 또한 1946년 노벨상을 받은 브리지먼의 고압 실험 종류는 내파식 폭탄 설계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사회화된 과학”에 대한 브리지먼의 참여는 과학의 규범적 독립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그에게 비일관적인 행동이 아니다. 과학의 규범적 독립성은 어떤 가치가 과학에 내재적인지에 대한 논제로서 이해되어야 할 뿐, 개인에게 전쟁 연구 같은 사회적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절에서는 브리지먼의 여러 진술들을 통해 과학의 규범적 독립성 논제에 대한 재구성을 시도한다.

3. 개인으로서의 과학자

브리지먼에게 과학적 삶은 지적 삶의 한 형태로서, 지적 삶을 산다는 것은 자신의 정신적 능력을 무제한적으로 사용하여 세계를 파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파악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이고, 따라서 과학자는 본질적으로 개인이다. 이는 사회에 대한 관심의 절연이나 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브리지먼은 사회에 대한 관심을 수차례 명시적으로 표명했다. 다만 과학자는 사회적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개인적 자유를 가져야 한다. 두 가지 측면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 개인은 과학의 인식적 활동에서 근본적이다.
  • 위의 사항은 과학자가 따라야 할 가치에 대한 주된 함축을 가진다.

3.1 인식적 논제로서의 개인적 과학자

브리지먼은 빅토리아 과학자와 현대 물리학자의 태도와 접근법을 매개하는 중간 위치에 있지만, 조작주의라는 독특한 인식론도 가진다. 그는 1939년 제5회 통일과학 국제 회의에서 “Science: Public or Private”이라는 글을 발표한다. 논리실증주의와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그 발표문에 따르면, 과학은 지속적인 이해와 평가의 과정이고, 검사, 판단, 수용, 이해는 “나에 의해 수행”될 수 있을 뿐이고 “그것들은 나의 치통만큼 사적”이라며, 과학의 사적 성격을 강조한다. 이런 관점은 당대의 통일과학 운동의 관점과도 오늘날의 공적/사회적 과학관과도 차별화된다.

공적 과학관(public notion of science)에서 과학은 개인에 따라 [경험적 검증/시험 결과 등이] 달라지지 않는 객관성을 가져야 한다. 반면 브리지먼에게 과학의 인식적 기준은 궁극적으로 내재적이다. 개인적 이해는 수용/거부의 궁극적 심판자이고, 정당화는 내적으로 주어지는 규범적 성격을 가진다. 상호주관적 일치는 인식적으로 [실용적 차원에서] 무의미한 것은 않더라도, “그 역할은 근본적이지 않다.”

3.2 과학적 가치들과 비과학적 가치들 : 엔텔레키 필터

가치는 과학 이론이나 실험에 관한 우리의 판단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브리지먼의 입장은 무엇일까? 1955년 글에서, 브리지먼은 가치와 지성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한 바 있다.

  • 가치에 관한 질문에서 지성의 역할은 중립적이다.
  • 가치는 귀결의 모든 결과를 [지성의 사용으로] 알게 되면 변경될 수 있긴 하지만, 이러한 역할을 빼면, 지성은 가치에 도전하지 않는다.
  • 그리고 이러한 중립성 덕분에, 지성은 보편성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답에서, 여전히 이론과 실험의 판단을 정당화하는 지성의 내적 작용에서 가치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브리지먼의 입장은 분명치 않다. 그렇다면 또다른 글에서는? 브리지먼에게, 과학적 프로젝트를 채택한다는 것은 이해를 최고의 책무로 여기겠다는 다짐이다. 이러한 책무는 자신을 사실과 증거에 종속시키고, 그와 함께 과학적 삶에 내재적인 가치들인 integrity, honesty, freedom을 채택하는 것을 함축한다. 그리고 셋 중에서 자유가 가장 근본적인데, 그것이 integrity와 honesty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자유의 핵심은 사회가 건드릴 수 없는 “내적 자유”이다. 이러한 자기 성찰은 내적 자기-정직성의 책임을 도출한다. 다른 것은 협상할 수 있어도 자기 정직성은 협상 불가능하다.

더글러스와 브리지먼의 차이는 어느 가치만을 과학에서 허용할 것인가에 있다. 더글러스는 과학에서 가치의 간접적 사용이 과학의 integrity를 훼손하지 않는다고 본 반면, 브리지먼은 integrity가 내적 정직성 및 자유를 요구하며, 이 자유는 타인의 가치의—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사용에 의해 훼손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브리지먼의 관점은 그 자체로 [과학의] 목적을 함축하는 가치들, 즉 엔텔레키적 가치만을 과학에 허용하는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체스 플레이어의 엔텔레키적 가치에 따르면, [자신이 생각하는] 최적의 수 외의 다른 수를 두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3.3 개인적 과학이 가능한가? 신뢰의 우려

신뢰가 과학의 전제조건이라는 점은 개인적 과학 논제 및 과학의 규범적 독립성 논제에 대한 중요한 비판을 제공한다. 신뢰에는 두 가지 측면인 의존과 (가치) 정렬이 있다. 의존은 내적 추론의 문제이고, 단순한 의존이 신뢰로 변환되려면 나와 타인의 가치 정렬이 필요하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논증이 완성된다.

만약 신뢰가 과학적 실천에 필수적(essential)이라면, 브리지먼의 견해는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실패한다.

  • 첫째, 의존은 과학적 실천에서 타인의 인지적 상태를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고, 이는 과학적 가치와 비과학적 가치를 나누는 엔텔레키 필터가 근거하는 개인적 과학의 가능성을 제거한다.
  • 둘째, 정렬은 과학적 실천에서 타인의 가치를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며, 이는 과학적 판단에서 그러한 가치를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개인주의적 견해를 무너뜨린다.

이러한 비판에 브리지먼은 자신의 조작주의적 관점에 의지할 수 있다. 동료로부터 어떤 얘기를 들으면 나는 무엇을 하겠는가? 나는 그것을 일일이 다 반복하지도,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다 수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과학에서 신뢰가 필요하다는 것은 내가 모든 추론 단계를 재생할 수 없음을 의미할 뿐, 그렇다고 내 판단을 아예 남에게 맡기겠다는 뜻이 될 수는 없다. 잘로에 따르면, “신뢰의 두 측면인 의존과 정렬은 내 판단의 결과이다.” 판단은 본질적으로 개인적 행위이고, 신뢰는 개인주의적 과학관 내에서 포섭될 수 있다. 그래서 브리지먼은 두 비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다.

  • 첫째, 의존은 과학의 개인주의적 토대를 훼손하지 않는다. 타인의 증언에 기초하여 형성되는 믿음[의존]은 내 동료의 신뢰성에 대한 (나의) 믿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과학의 목표는 내 믿음과 경험의 일치일 뿐, 나와 타인의 일치가 아니다. 타인의 얘기는 내 경험의 일부로서만 역할을 할 뿐이다.
  • 둘째, 정렬은 과학적 가치와 비과학적 가치를 구분하는 엔텔레키 필터를 훼손하지 않는다. 과학적 판단은 결국 나의 판단이며, 내 동료 또는 사회의 가치는 나 자신의 것을 대체할 수 없다. 나는 동료의 위험 수용 수준(risk tolerance)을 가치로서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진술의 진실성(truth-aptness)에 관한 증거로서 채택할 뿐이다.

브리지먼에게, 지적 정직성은 언제나 (타인을 추종할 때조차) 자기 자신의 판단에 의지함을 의미한다. 타인의 믿음과 가치는 접근불가능하고(encapsulated), 그것들의 증거적 잔여물은 과학적 판단에서 역할을 수행한다. 신뢰와 인식적 노동 분업은 브리지먼의 과학관과 대립하지 않는다.

4. 결론 : 사회를 위한 과학이 아닌 과학을 위한 사회

브리지먼이 과학자에게 어떠한 책임도 면제시켜주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브리지먼이 주장하길, 과학자는 과학적 프로젝트에 개인적으로 헌신하겠다고 다짐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연구의 사회적 결과를 고려해야 하는 의무가 없다.

자유주의자로서, 브리지먼은 사회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역할만을 담당한다고 생각했고, 반대로 개인에 대한 사회의 요구는 대체로 적법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회는 오직 개인들의 합일 뿐이고, 개인에 대한 사회의 요구란 결국 개인간의 상호 요구가 되는데, 브리지먼의 생각에, 개인들은 서로의 지나친 간섭을 막는 negative rights만 가지고, 서로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positive rights는 가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브리지먼은 원자력과 같은 과학적 발견에 대한 통제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누가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제안을 하고 있었다. 정치인 등은 과학적 탐구 결과에 비추어 연구 지원이나 산업 규제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과학자가 과학자로서 세계에 대한 파악을 스스로 제한해야 한다는 요구가 아니다.

자유주의적 관점을 넘어서, 브리지먼은 과학 그 자체를 고귀한 무언가로 상정하고, 사회가 과학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에게 과학적 가치란 내재적, 비도구적 가치의 일종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의 원천이자 삶의 목적을 제공했다. 즉 브리지먼에게, 과학은 인간 사회의 가치와 목적에 대한 깊은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개인적 인식적 프로젝트로서 과학은 사회를 위해 봉사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과학은 그 자체로 고귀한 목적이므로 사회는 이를 소중히 지켜주어야 하며, 그런 사회일수록 더 좋은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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