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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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방법과 의미

'기술'에 대해 정의를 하기 위해 우리는 '기술'이란 말의 일반적인 용례를 모으거나, '기술'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대상들을 모아 그 안에서 공통된 특징, 혹은 핵심적으로 보이는 특징을 뽑아내는 작업을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의자'라고 부르는 대상들은 '모두 사람이 앉기 위해 제작된 물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공통점이 바로 '의자'의 정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을 통해 얻은 정의가 꼭 만족스러우리라는 보장은 없다. '기술'의 전형적인 용례를 만족시키는 어떤 정의는 우리가 다른 경우에 '기술'이라고 지칭하는 대상을 포함하지 않을 수도 있고, 때로는 우리가 '기술'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대상도 포함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만들어진 정의는 실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의미에 비해 너무 넓거나 좁지는 않은지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재검토와 수정을 통해서도 단 하나의 정의가 도출되리란 보장은 없다. 원래부터 우리가 '기술'이란 말을 통해 지칭한 대상들이 이질적인 대상들의 단순 집합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는 복수의 정의를 통해 우리가 '기술'이란 하나의 말을 통해 지칭했던 대상들을 적절한 기준으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고안해낸 몇 가지 정의를 재분석함으로써, 기술의 함의를 경험적인 방식이 아니라 분석적인 방식으로도 고찰할 수 있게 된다. 정의 분석을 통해 얻은 통찰은 다시 경험적인 연구를 통해 점검될 수 있다.

'기술'로 간주되는 대상 및 용례들

  • 도구, 인공물로서의 기술 : 우선 강의실에 있는 각종 물건들인 컴퓨터, TV, 칠판, 분필, 빔프로젝터, 창문, 형광등, 혹은 건물 자체는 모두 '기술'에 속하는 대상으로 보인다. 또한 이 모두는 도구이자 인공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도구' 또는 '인공물'로서의 기술을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기술에 대해 가장 널리 인식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 그러나 인공물이 아닌 나무나 돌멩이와 같은 자연물도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무 자체도 기술이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나무는 도구로 사용될 때에만 기술과 관련된다.
    • 그렇다면 도구란 무엇인가? 어떤 일을 수행하는 데 도움을 주는 물건. 즉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인간의) 목적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처럼 보임.
    • 그러나 물질적인 도구가 아닌 기술도 존재하는 것처럼 보임.
  • 만들기, 행위로서의 기술 : 제조기술, 농업기술, 인쇄술. 이들의 공통점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라는 점.
    • 그렇다면 구름이 비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자연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도 기술인가?
    • 우리의 일반적인 용법상에서, 만들기가 의식적으로 수행될 때에만 기술과 연관되는 것처럼 보임.
    • 원숭이가 돌멩이나 나뭇가지를 사용하는 것은? 애매한 문제.
  • 수단, 방법, 솜씨로서의 기술 : 낚시 기술, 발표 기술, 설득 기술, 선전 기술, 연애의 기술, 국가 관리 기술, 테크닉. 이런 것들은 물질적인 도구를 지칭하진 않지만, 모두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 솜씨 등을 의미. 용례: "그는 ... 기술이 좋다"
    • 도구나 만들기 역시 이러한 추상적인 구도 속에 모두 포함될 수 있음 : 형광등은 불을 밝히기 위한 수단, 인쇄술은 인쇄물을 만들기 위한 방법, 발표 기술은 좋은 발표를 위한 솜씨...
    • 그러나 TV(수상기)는 어떤 목적? TV를 보기 위한 도구? 이런 대답은 너무 사소함. 그보다 상위의 목적이 있는가? 목적이 있으나 상술하기 어려운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상위의 목적 자체가 없는 것인가?
  • 시스템으로서의 기술 : 전기기술, 통신기술, 수송기술, 행정기술, 국가. 이런 식으로 우리는 특정한 전기제품이나 그의 제작 또는 사용 기술이 아니라 전기 일반의 기술을 지칭할 수 있다. 그리고 '전기 기술'이라는 말은 단지 전기와 관련된 것들을 통틀어서 추상화시킨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전기는 그러한 것들이 함께 있어야만 기술로서 작동한다. 예컨대, 형광등은 그것을 꽂을 수 있는 소켓과 함께 있어야 하며, 이는 또 복잡한 네트워크로 이어진 전선망과 발전소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 물질적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실제로 사용하고 유지관리하는 인간 사회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기 기술은 인공물, 사회, 경제, 제도, 법, 문화 등을 포함한 기술 시스템이다.
    • 실제로 사막에 버려진 망가진 비행기나, 조종사나 기술자가 부족한 사회에서의 비행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비행기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원래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박물관에 놓인 고대의 기술품 역시 기술로서 기능하기 보다는 관람용 예술품으로 기능할 뿐이다.

'기술'의 구분

첫째, 우리는 첫 번째로 쓰인 도구로서의 기술을 다른 기술과 구분하여 기술적 인공물이라 부르겠다. 기술에 대한 많은 논의들은 '기술적 인공물'을 가장 기본적인 분석단위로 삼고 있다.

둘째, 나는 방법으로서의 기술을 기술의 특징을 가장 잘 포착한 정의로 간주하려고 한다. 우리가 '기술'로 간주하는 거의 모든 대상들을 두루 포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에 대한 일차적인 정의로서, 우리는 기술을 "목적을 위한 유무형의 수단, 방법, 도구"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 인공물은 다른 인간적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며, 제작 기술은 인공물을 만들어내는 방법이 된다. 전기 시스템은 사회에 빛, 열, 동력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방법이 된다.

셋째, 시스템으로서의 기술은 1개의 인공물과 구별되는 의미로, 그리고 인간이 포함된 기술의 의미로서 기술 시스템이라 부르겠다. 둘째 의미의 기술과 기술시스템은 양립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술에서는, 인간이 기술의 목적을 정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위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기술 시스템에서는 그렇지 않다. 기술 시스템은 둘째 의미의 기술로서 인간이 정한 목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다시 그 기술 시스템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기술 시스템의 목적을 위해 봉사하도록 (마치 부품처럼) 배열될 수 있게 된다.

비판적 검토

목적-수단 관계에서 목적&제약-수단-결과의 관계로

목적-수단 관계를 기술의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즉 수단은 목적을 전제로 한다. 수단에는 인간의 의도가 내장되어 있으며, 그 수단을 통해서 의도한 결과가 나오게 된다. 그러나 많은 기술적 인공물의 경우, 그것은 목적을 위한 수단인 동시에 그 자체로 물질이다. 우리가 특정한 수단을 통해서 특정한 목적을 (쉽게) 이룰 수 있는 이유는 그 수단이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물질적인 조건을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적의 실현은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목적뿐 아니라 수단의 물질적 조건에도 의존한다. 즉, 목적은 결과와 수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수단의 물질적 조건은 '(자연)인과적으로' 의도한 결과 너머의 결과들도, 심지어는 의도에 반하는 결과들도 일으킬 수 있다.

기술의 핵심이 '목적-수단' 관계로 포착될 수 있다는 생각은 목적과 결과의 일치를 당연시 한다.[1] 그러나 목적과 결과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따라서 기술의 핵심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목적-수단' 관계에서 '목적-수단-결과' 관계를 보아야 한다.

  • 목적 - 수단 - 결과

또한 목적의 실현이 수단의 물질적 조건에 의존한다는 점으로부터, 우리는 설계 단계 이전부터 물질적 제약을 고려하게 된다. 그래서 위의 관계는 조금더 복잡해진다.

  • 목적&제약 - 수단 - 결과

기술의 물질성

일단 만들어진 인공물은 그 자체로 자연 법칙을 따르는 물질이다. 관념상에서, 설계상에서 인공물은 개발자의 목적과 의도에 완전히 부착되어 있었지만, 일단 만들어진 인공물에서 개발자의 목적과 의도는 인공물의 물질적 형태를 통해서만 구현된다. 원 개발자의 목적과 의도는 설명서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전달될 뿐이다. 이러한 인공물의 물질성은 이미 만들어진 인공물의 목적과 기능에 대한 개발자의 원래 의도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동시에, 그 가능성의 한계 역시 규정한다. 샤프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인공물이다. 그러나 사용자는 그 샤프의 물리적 특성을 이용해 다른 용도로도 그 샤프를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옆면을 이용해 선을 반듯하게 그리기 위한 자로 사용할 수도 있고, 뾰족한 앞을 이용해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샤프의 용도가 무한하지는 않다. 사회구성주의자들이 말하길, 인공물은 해석적 유연성을 가진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해석적 유연성은 바로 인공물의 물리적 특성이 열어주는 가능성 덕분이며, 또한 그에 의해 한계가 규정된다.

또한 기술이 물질적으로 구현되어 있다는 것은, 그 기술이 과거 누군가의 목적에 의해 만들어지고 선택되었다 하더라도, 그 선택이 오늘날 우리의 선택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 기술은 우리에게 단지 주어진 것일 뿐, 우리가 특정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선택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정의상 기술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지만, 그 목적은 나의 목적이 아닐 수 있으며, 또한 그 기술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단지 주어진 것으로서 나의 삶의 물질적 조건을 형성해버릴 수 있다.

개발자와 사용자의 분리 : 사용자의 목적을 대신 고려하는 개발자의 문제, 목적의 불일치 문제, 목적-수단의 선후 관계 문제

현대 사회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인공물들은 개발자와 사용자가 분리되어 있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기술을 정의할 때, 이 정의에 쓰인 '목적'이란 표현은 개발자의 목적이 아니라 최종 사용자의 목적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핸드폰이란 기술은 원격 통신을 위한 도구로서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개발자나 기업에게 핸드폰은 돈 벌이의 수단이다. 그렇다면 핸드폰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정의해도 될까? 이는 애초에 바랬던 방식의 기술의 정의가 아니다. 이보다는 개발자가 돈벌이의 수단으로서 핸드폰을 개발했다 하더라도, 개발자는 사용자의 목적을 대신 고려하여 핸드폰을 설계했다고 생각하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술 정의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마치 개발자와 사용자가 일심동체가 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발자-사용자의 일심동체 모형은 몇 가지 문제가 있다. ...


목적-수단 관계의 중층성

참고문헌

각주

  1. 영어의 means-end라는 표현에서 end는 목적이자 결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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