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어던/정치철학 (발췌)

PhiLoSci Wiki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홉스의 정치철학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들을 발췌 또는 요약하였습니다.

본문

제6장 보통 정념이라고 불리는 자발적 운동의 내적 발단에 대하여, 또한 그것이 표현되는 화법에 대하여

"동물에게는 동물 특유의 두 가지 '운동'이 있다. 하나는 '생명의 지탱을 위한(vital)' 운동으로...'혈액의 순환, 맥박, 호흡, 소화, 영양, 배설' 등의 운동이다. 이런 운동에는 상상력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또 하나는 '움직이는 생명체로서의 운동(animal motion)'으로서 다른 말로는 '자발적 운동(voluntary motion)'이라고도 한다. '걷고', '말하고', 사지를 '움직이는' 등 마음에 생각한대로 나타나는 운동을 말한다. 감각이란 어떤 대상의 움직임을 보거나 듣거나 할 때 그로 인해 신체기관 및 내부의 여러 부분에서 일어나는 운동이다. ... 걷거나 말하거나 때러거나 하는 등의 눈에 보이는 행동이 일어나기 전에 인체 내에서 일어나는 운동의 단서들을 보통 노력이라고 한다."

"이러한 노력이 그것을 야기하는 어떤 것을 향해 있을 때 욕구 또는 욕망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노력이 어떤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쪽으로 나타날 때 일반적으로 혐오라고 부른다. '욕구'라는 말과 '혐오'라는 말은 라틴어에서 온 것인데, 둘 다 운동을 의미한다. 하나는 다가가는 운동을, 또 하나는 멀어지는 운동을 의미한다."

"사람이 어떤 것을 욕구할 때는 그것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고, 혐오하고 있을 때는 미워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욕구와 사랑은 동일한 것이다. 다른 점은, 욕구는 대상의 부재를, 사랑은 보통 대상의 존재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뿐이다. 마찬가지로 혐오는 대상의 부재를, 미움은 대상의 존재를 나타낸다. ... 우리가 어떤 사물을 욕구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을 경우, 이를 '경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체질은 계속 변화한다. 따라서 같은 것이라 해도 어떤 인간에게 항상 같은 욕구와 혐오를 일으키지는 않으며, 같은 대상을 놓고 모든 인간이 동일한 욕구를 가지는 일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어떤 인간이 욕구 또는 의욕을 갖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 그에게는 '선(good)'이며, 증오 또는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악(evil)'이다. 그리고 경시의 대상은 '미천한 것'이나 '하찮은 것'이다. 즉 선한 것, 악한 것, 경시할 만한 것, 이런 말들은 항상 그 말을 사용하는 인간과의 관계에서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대상 자체의 성질로부터 선악의 일반적 법칙을 이끌어낼 수도 없다. 선악의 법칙은 코먼웰스(국가)가 없는 곳에서는 오직 그 사람의 인격에서 나올 뿐이며, 코먼웰스가 있는 곳에서는 이를 대표하는 인격에서 나온다. 혹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합의하여 중재자 또는 재판관을 두기로 한 경우에는 선악의 법칙이 이렇게 설립된 중재자 혹은 재판관으로부터 나온다."

'왜' 그리고 '어떻게'를 알고자 하는 '욕망'은 호기심이라고 한다. 이것은 '인간' 이외의 다른 생물에게는 없다. 따라서 인간은 이성(reason)을 가지고 있다는 점 이외에도 바로 이 정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들'과 다르다. ...

"머리로 가상하거나 이야기를 듣고 상상한,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공포'는 공공연하게 인정된 경우 종교라고 하고, 인정되지 않은 경우 미신이라고 한다. 그 힘이 진실로 우리가 상상한 그대로일 때 진정한 종교라고 한다.

'숙고'의 결과, 직접적으로 행위 또는 행위의 회피와 연결되는 최종적 욕구 또는 혐오를 의지라고 한다. 그것은 '의지가 있는(willing)' 행위이다. ... 스콜라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의지'를 '이성적 욕구'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이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만약 의지가 이성적 욕구라면, 이성에 반하는 자발적 행위는 있을 수 없다. '자발적 행위'는 어디까지나 '의지'에서 생길 뿐 그 이외의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도 생기지 않는다. ... '의지는 숙고 중 최후의 욕구'이다."

"... 어떤 것에 대한 탐욕, 야심, 욕정, 기타 욕구에서 비롯된 행위들만 '자발적 행위'가 아니라 그러한 행위의 회피가 가져올 결과들에 대한 혐오나 공포에서 비롯된 행위들 역시 '자발적 행위'이다." (공포에 기초한 사회계약이 효력이 있는 이유에 대한 근거가 되는 구절)

특정한 정념은 특정한 화법으로 표현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이 감정표현의 확실한 표시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 표현은 정념이 있고 없고를 불문하고 임의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어떤 정념이 존재하는지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은 표정, 신체의 동작, 행동이나 혹은 다른 방식으로 우리가 알게 된 그 사람의 목적 또는 목표를 통해서이다." (언어표현과 의도 사이의 불일치 가능성 강조. 언어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에 대한 불신도 어느정도 있는 듯)

제13장 인간의 자연상태, 그 복됨과 비참함에 대하여

인간은 본래 평등하다 : "자연은 인간이 육체적, 정신적 능력의 측면에서 평등하도록 창조했다. ... 인간들 사이에 능력 차이는 거의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이익을 주장할 수 있을 만큼 크지는 않다. 왜냐하면 체력이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음모를 꾸미거나, 혹은 같은 처지에 있는 약자들끼리 공모하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충분히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 능력들의 경우에는 체력보다도 오히려 더 평등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 자기보다 더 지혜롭고 더 유창하고 더 학식이 깊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남들도 다 자기 못지않게 지혜롭다는 사실은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얼마나 평등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다."

평등에서 불신이 생긴다 : "능력의 평등에서 희망의 평등이 생긴다. 즉 누구든지 동일한 수준의 기대와 희망을 품고서 목적을 설정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같은 것을 놓고 두 사람이 서로 가지려 한다면, 그 둘은 서로 적이 되고, 따라서 상대방을 파괴하거나 굴복시키려 하게 된다. 파괴와 정복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경쟁의 주된 목적은 자기보존이다."

불신에서 전쟁이 생긴다 : "이와 같이 상호간에 불신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예상되는 위협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한 합리적 조치를 강구하게 된다. 그것은 곧 폭력이나 계략을 써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오랫동안 지배하여 더 이상 자신에 대한 위협이 되지 못하도록 무력화하는 일이다. 이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을 보존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허용될 수밖에 없다.(불신 때문에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자기보존을 위해서도 허용될 만한 정당한 일이 됨) 또한 자신의 안전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서서 정복 행위 그 자체를 통하여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쾌감을 느끼려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안전만 보장된다면 일정한 범위 내에서 만족하려는 사람들조차도 자위 수준에 머무를 경우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다.(자위 수준의 정당방위만으로는 자기보존을 이룰 수 없음) 따라서 이런 선량한 사람들조차도 침략을 통한 권력의 증대를 꾀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타인에 대한 지배의 증대를 도모하는 일은 모든 인간에게 자기보존을 위한 필수적인 일이기 때문에 허용될 수밖에 없다."

"인간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는 원인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첫째는 경쟁이며, 둘째는 불신이며, 셋째는 공명심이다. 인간은 경쟁 때문에 이익확보를 위한 약탈자가 되고, 불신 때문에 안전보장을 위한 침략자가 되고, 공명심 때문에 명예수호를 위한 공격자가 되는 것이다."

자연상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상태 : "인간은 그들 모두를 위압하는 공통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전쟁상태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전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다." 전쟁이라는 것은 싸움 혹은 전투행위의 존재만이 아니라 일정 기간 전투의 의지가 존재한다면 그 기간 동안은 전쟁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의 유무이다.

전쟁상태에 따른 불편 : 만인이 서로에 대해 적인 상태이므로, 자기 자신의 힘과 노력 이외에는 어떠한 안전대책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성과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근로의 여지가 없다. ... 끊임없는 공포와 생사의 갈림길에서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험악하고, 잔인하고, 그리고 짧다."

이러한 자연상태의 현재적 증거? 여행갈 때 무장. 문단속. 금고 잠금. 결국 현재도 이웃에 대한 불신 팽배. "내가 말로써 인류를 비난하고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행동으로써 인류를 비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 본성이 문제를 탓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욕망과 여러 정념들은 그 자체로 죄가 아니다. 그에 따른 "행동들도 그것을 금지하는 법이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결코 죄가 될 수 없다."

자연상태의 역사적 증거? 아메리카의 야만족들. 어쨌든 "두려워할 만한 공통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인간의 삶이 어떠할 것인가 하는 것은 평화로운 국가 생활을 하다가 내란에 빠져들곤 했던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으로도 족할 것이다."

국가들 사이에는 여전히 자연상태. 국가는 서로 전쟁준비 태세이지만, 그 덕분에 자국의 백성은 생업을 보장받고 평화를 누릴 수 있음. "비참한 상황은 오히려 개개인이 자유를 누릴 때 발생한다."

"만인이 만인에 대하여 전쟁을 하는 상황에서는 그 어떠한 것도 부당한 것이 될 수 없다. 정과 사의 관념, 정의와 불의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통의 권력이 없는 곳에는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법이 없는 곳에는 불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 정의, 불의는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들과 관계있는 성질일 뿐, 고립적으로 존재하는 인간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또한 그러한 전쟁상태에서는 소유도, 영유도, '내 것'과 '네 것'의 구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획득 가능한 모든 것이 자기 것이며, 자기 것으로 유지 가능한 기간 동안 자기 것이다. ... 인간이 그러한 가혹한 상태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가능성의 일부는 인간의 정념에서, 일부는 인간의 이성에서 생겨난다."

"인간을 평화로 향하게 하는 정념으로는, 죽음에 대한 공포, 생활의 편의를 돕는 각종 생활용품에 대한 욕망, 그러한 생활용품을 자신의 노력으로 획득할 수 있다는 희망 등이 있다. 그리고 이성은 인간들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적절한 평화릐 규약들을 시사한다." 이것이 '자연법'이다.

제14장 제1 및 제2의 자연법과 계약에 대하여

자연권 : "'자연권'은 모든 사람이 그 자신의 본성, 즉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자기 뜻대로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 즉 그 자신의 판단과 이성에 따라 가장 적합한 조치라고 생각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자유 : "자유란 말은 정확히 말하면 외부적 방해의 부재를 의미한다."

자연법 : "자연법이란 인간의 이성이 찾아낸 계율 또는 일반적 원칙을 말한다. ... 사람들은 흔히 '권리(jus)'와 '법(lex)'을 같은 뜻으로 혼용하는데, 이 둘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권리는 어떤 일을 하거나, 혹은 하지 않을 자유를 말하는 반면, 법은 어떤 일을 하도록 지시하거나 혹은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과 권리는 의무와 자유만큼이나 다르며, 똑같은 방식으로 서로 다른 말이다."

자연상태의 자연적 권리 : "만인은 만물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심지어는 다른 사람의 신체에 대해서까지도 권리를 갖는다. 이처럼 만인이 만물에 대하여 자연적 권리를 갖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어느 누구도 천수를 안전하게 누릴 수 있는 보장이 없다." 이로부터 이성의 제1 계율이 따라나온다.

기본(제1) 자연법 : '모든 사람은, 달성될 가망이 있는 한, 평화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제1자연법). 평화를 달성하는 일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어떤 수단이라도 사용해도 좋다(자연권).'

제2 자연법 : "평화추구의 의무를 규정한 기본 자연법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제2의 자연법이 도출된다.'인간은 평화와, 그리고 자기 방어가 보장되는 한, 또한 다른 사람들도 가 같이 그렇게 할 경우, 만물에 대한 이러한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고, 자신이 타인에게 허락한 만큼의 자유를 타인에 대해 갖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권리 포기란? : "다른 사람이 그런 권리를 누리는 것을 방해할 '자유'를 자기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거나 양도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에 없던 새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새로 생길 권리가 없기 때문. 변한 것이 있다면 자기 권리 행사에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방해가 없어진 것뿐. 폐기양도든 권리를 포기하면, "그로부터 이익을 얻을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지 않을 의무를 지거나, 혹은 방해하지 않도록 속박된다. 그는 [권리를 포기한] 자신의 자발적 행동을 무효화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의 책무이다. 만일 방해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불의이며, 또한 권리침해에 해당한다. 방해할 권리를 이미 폐기했거나 양도했기 때문에 그럴 '권리가 없는'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가끔 증서를 통해 권리 폐기 또는 양도를 명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증서의 힘은 증서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탈행위에 뒤따를 해로운 결과에 대한 공포에서 오는 것이다.

양도불가능한 권리 :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은 자발적 행위인데, 모든 자발적 행위는 '자신의 이익'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므로 어떤 서약과 어떤 표시에 의해서도 결코 폐기 혹은 양도된 것으로 볼 수 없는 권리들이 존재한다." 첫째, 생명을 빼앗으려는 자들에 대해 저항할 권리는 포기될 수 없다. 둘째, 생명과 생활수단의 방어.

계약 : 권리를 상호 양도하는 것

신의계약 : 채무를 나중에 이행할 것을 계약하는 것. 이는 신뢰에 기초.

신의계약이 무효인 경우 : "신의계약이 자연상태, 즉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상태에서 체결되었다면, 어느 모로 보나 이 계약은 무효이다. 그러나 그들 쌍방에 대하여 약정된 채무를 이행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충분한 권리와 힘을 가진 공통의 권력이 존재한다면, 그 계약은 무효가 아니다. ... 이러한 보증이 없는 상태에서 채무를 먼저 이행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적에게 넘겨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은 생명과 생활수단의 방어라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권리에 반하는 것이다."

"어떤 권리가 양도되면, 그 권리를 향유할 수단[에 대한 권리]까지도 양도된다. ... 어떤 사람에게 국가의 통치권을 맡겼을 때는 군대유지에 필요한 돈을 징수하는 권리와 사법 행정에 필요한 관리를 임명하는 권리를 같이 맡긴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완전한 자연상태에서 공포에 의해 맺어진 신의계약은 지킬 의무가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내 생명을 위해 적에게 대가를 지불하기로 약조했다면, 그 계약은 구속력을 갖는다. 이것 역시 일종의 신의계약으로서, 나는 생명의 이익을 얻고 상대방은 내 생명을 빼앗는 대신 돈이나 다른 대가를 받는 쌍무적 채무관계이기 때문이다. ... 약소국의 군주가 겁에 질려 강국의 군주와 불평등한 평화조약을 체결했을 경우에도, 그 조약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전쟁을 재개할 만한 정당한 명분이 새로 생기지 않는한, 그렇게 해야 한다. ... 자유의사에 의해 어떤 일을 하기로 계약한 것이 합법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공포 때문에 어떤 일을 하기로 계약한 것도 역시 합법적인 것이다. 계약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이상, 그 계약을 위반하는 것은 합법적인 일이 아니다."

자기 방어를 포기하는 신의계약은 무효이다.

자기 자신을 고소할 의무는 없다. .... 고문에 의한 거짓 자백은 정당하며, 그러한 자백은 증거로 채택될 수 없다.

선서의 역할 : "선서가 의무에 아무것도 부가하지 않는다는 것도 명백하다. 왜냐하면 신의계약이 합법적이면, 선서가 없더라도 선서를 한 것만큼이나 신 앞에서 구속력을 지니며, 합법적이 아니라면, 아무리 엄숙한 선서가 있어도 구속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제15장 기타 자연법에 대하여

제3의 자연법 : "인간이 본래부터 가진 자연권은, 타인에게 양도하지 않고 자기가 가지고 있을 경우, 인류의 평화를 저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제1 및 제2의 자연법은 이 권리를 타인에게 양도할 것을 명하는데, 이로부터 제3의 자연법이 생겨난다. 그것은 '신의계약을 맺었으면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행의 의무가 없다면 신의계약은 아무 쓸모없는 공약(空約)에 불과학다. 만인에게 만물에 대한 권리가 남아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전쟁상태에 있게 된다.

정의 : "신의계약이 성립하기 전에는 어떠한 권리도 양도된 것이 아니며, 만인이 만물에 대한 권리를 가지기 때문에 어떤 행위도 불의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신의계약이 맺어지면 이것을 깨뜨리는 행위는 '불의'가 된다. 불의란 간단히 말해서 '신의계약의 불이행'을 말한다. 불의가 아닌 것은 무엇이든지 '정당한 것'이다.

정의와 소유권, 신의계약의 발효 시점은? "[그러나] 상호신뢰에 의한 신의계약은 쌍방계약자 중 어느 쪽에서든 불이행에 대한 공포가 있는 경우에는 무효이기 때문에, 그러한 공포의 원인이 제거되기 전까지는 실제로 불의가 존재할 수 없다. 즉 그러한 공포(불신)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신의계약을 맺어놓고 이행하지 않더라도 불의가 되지 않는다. 그러한 공포의 원인은 인간이 전쟁이라는 자연상태에 있는 한 제거될 수 없다. 그러므로 정의와 불의의 개념이 존재하기에 앞서, 먼저 어떤 강제적 힘이 존재해야 한다. 이 강제력이 하는 일은 신의계약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도 더 큰 처벌의 공포를 통하여 신의계약 당사자 쌍방이 각각의 채무를 이행하도록 평등하게 강제하고, 그들이 보편적 권리를 포기한 대가로 상호계약에 의해 소유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코먼웰스(국가)가 수립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정리하면, "정의의 본질은 유효한 계약을 지키는 데 있으며, 계약의 유효성은 그 계약의 이행을 충분히 강제할 수 있는 사회적 권력의 수립과 더불어 시작되며, 또한 그때 비로소 소유권도 발생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신의계약을 지키지 않아도 불의가 아니라는 주장(즉 자기 이익에 반하는 채무 이행은 이성에 반한다는 주장)에 대한 홉스의 답변 : 첫째, 약속이행의 보장이 없는 경우에는 이미 신의계약이 무효이므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음. 둘째, 채무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힘이 존재할 경우, 채무의 이행은 결코 이성에 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1) 결과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자신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행위는 이성적이지 않다. (물론 돌발적인 변수에 의해 전화위복이 되는 경우도 있으나 이러한 무모한 자기파괴적 행위를 이성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2) 자기보존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동료들과 신의계약을 맺어 자신의 권리를 양도하는 것인데, 이를 불이행하려는 사람은 이치상 자기 자신의 힘 이외에는 어떠한 안전보장의 수단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신의계약을 파기하면서, 그러한 계약파기 행위가 이성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사회의 구성원이 될 자격이 없다. 그는 혼자 살아가거나, 혹은 사회에서 추방될 터인 즉, 어느쪽이든 결국은 멸망하고 말 것이다. 요행히 다른 사람의 실수 덕분에 살 수 있더라도 그것은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이성적 행위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반란으로 주권을 획득하는 문제에 대한 홉스의 입장은? "그러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이성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면, 하나의 본보기가 되어 다른 일도 그런 식으로 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시도는 오히려 이성에 반하는 일이다."

요컨대, "정의는 신의계약을 준수하는 것이며, 우리 자신의 생명에 파괴적인 어떤 일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이성의 법칙이며, 따라서 자연법이다."

"동의 아래 이루어진 일은 어떠한 행위도 권리침해가 되지 않는다."

자연법을 쉽게 알 수 있는 요약 : "남이 너에게 행하기를 원치 않는 일을 너도 남에게 행하지 말라."

"자연법은 '내면의 법정에서' 구속력을 지닌다. 다시 말하면 그 자연법대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의욕을 갖도록 구속한다. 그러나 '외부의 법정에서'는, 즉 행동할 때에는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겸손하고 유순하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 시대와 장소에서 혼자서만 그렇게 한다면, 그는 다른 사람의 먹이가 되고 말 것이고, 자기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고 말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같은 법을 지킬 것이라는 충분한 보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구하는 것이며, 따라서 폭력에 의해 자기의 자연이 파괴되는 결과를 자초하는 것이다."

"자연법은 불변하고 영원한 것이다." "자연법은 지키기 쉽다."

"선과 악은 우리들의 욕구 또는 혐오를 나타내는 이름인데, 기질이나 습관 및 주의에 따라 다르다. ... 개인적 욕구가 선악의 척도가 되는 한, 인간은 자연상태, 즉 전쟁상태에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평화'가 선이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따라서 평화에 이르는 길 또는 수단도 선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바로 이러한 길 또는 수단이... 자연법이자 '덕'이며, 그 반대는 '악덕', 즉 악이다."

"이러한 이성의 명령을 사람들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 적당한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 명령은 무엇이 인간의 자기보존과 방어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에 관한 결론 또는 공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법이라는 것은 원래 권리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자의 말(word)이다."

(부당한) 폭력으로 획득한 권력의 경우는? 예컨대 왕위 찬탈은? 혹시 정의 아닐까? 이를 종합해서 "인간의 자발적 행위는 모두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며, 이 목적에 가장 도움이 되는 행위가 가장 이성적인 행위이다"라고 하는 입장에 대해 홉스는 잘못된 추론이라고 주장한다.

제16장 인격, 본인 및 인격화된 것에 대하여

"군중은 한 사람 또는 하나의 인격에 의해서 대표될 때, 만약 그것이 그 군중 개개인 전부의 동의에 의해 그렇게 된 경우, 하나의 인격이 된다." 중요한 것은 대표자의 단일성.

"군중은 본래 '한 사람'이 아니고 '다수'이기 때문에, 그들의 대표자가 그들의 이름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한 사람이 아니라 다수의 본인의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만일 대표자가 여러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다수의 의견을 그들 모두의 의견으로 간주해야 한다."

"'본인'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순수하게 그렇게 불리는 자인데, 앞에서 타인의 행위를 무조건 자기의 행위로 승인하는 자로 정의했다. 둘째는, 타인의 행위나 신의계약을 조건부로 자기의 것으로 승인하는 자(즉 보증인)이다.

제17장 코먼웰스의 원인, 생성 및 정의에 대하여

코먼웰스의 목적 : "천성적으로 자유를 사랑하고 타인을 지배하기를 좋아하는 인간이 코먼웰스 속에서의 구속을 스스로 부과하는 궁극적 원인과 목적과 의도는 자기보존과 그로 인한 만족된 삶에 대한 통찰에 있다. 다시 말하면, 비참한 전쟁상태로부터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전쟁은 인간 본래의 정념들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있어서 인간이 그 힘을 두려워하고, 처벌에 대한 공포 때문에 각자가 체결한 신의계약을 이행하고, 여러 자연법들을 준수하지 않는 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코먼웰스의 불가피성 : "'정의', '공평', '겸손', '자비' 등, 요컨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자연법 그 자체는 어던 힘에 대한 공포 없이는 지켜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연적 정념은 그 반대의 방향, 즉 불공평, 자부심, 복수심으로 우리를 이끌기 때문이다. 또한 칼 없는 신의계약은 빈 말에 불과하며, 인간을 보호할 힘이 전혀 없다. 자연법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어떤 권력이 확립되어 있지 않으면, 혹은 확립되어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기에 족할 정도로 강력하지 않으면, 모든 인간은 타인에 대한 경계심을 품게 되고, 따라서 자기 자신의 힘과 기량에 의지하려 들 것이다. 이것은 합법적인 일이다."

"소수자 또는 소수 가족의 단결로도 안전보장은 얻을 수 없다." "다수라 하더라도 단일한 판단에 의해 지도되지 않는 한 안전보장은 얻을 수 없다." "또한 단일한 판단이 계속되지 않는 한 안전보장은 없다." 왜냐하면 분열에 의해 내전에 돌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코먼웰스의 생성 : "공통의 권력은 외적의 침입과 상호간의 권리침해를 방지하고, 또한 스스로의 노동과 대지의 열매로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여 쾌적한 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 권력을 확립하는 유일한 길은 모든 사람의 의지를 다수결에 의해 하나의 의지로 결집하는 것, 즉 그들이 지닌 모든 권력과 힘을 '한 사람' 혹은 '하나의 합의체'에 양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들 모두의 인격을 지니는 한 사람 혹은 합의체를 임명하여, 그가 공공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어떤 행위를 하든, 혹은 [백성에게] 어떤 행위를 하게 하든, 각자가 그 모든 행위의 본인이 되고, 또한 본인임을 인정함으로써, 개개인의 의지를 그의 의지에 종속시키고, 개개인의 다양한 판단들을 그의 단 하나의 판단에 위임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의 혹은 화합 이상의 것이며, 만인이 만인과 상호 신의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모든 인간이 단 하나의 동일 인격으로 결합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다음과 같은 선언 : 나는 스스로를 다스리는 권리를 이 사람 혹은 이 합의체에 완전히 양도할 것을 승인한다. 단 그대도 그대의 권리를 양도하여 그의 활동을 승인하다는 조건 아래. 이것이 달성되어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인격으로 결합되어 통일되었을 때 그것을 코먼웰스라고 부른다. 이리하여 저 위대한 리바이어던이 탄생한다. 아니 좀더 경건하게 말하자면 '영원한 불멸의 하느님'의 가호 아래, 인간에게 평화와 방위를 보장하는 '지상의 신(mortal god)'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 지상의 신은 코먼웰스에 살고 있는 모든 개인이 부여한 권한으로, 강대한 권력과 힘을 사용하여 국내의 평화를 유지하고, 단결된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사람들을 위협함으로써, 모든 개인의 의지를 하나의 의지로 만들어 낸다. 바로 여기에 코먼웰스의 본질이 있다. 코먼웰스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다수 사람들이 상호 신의계약을 체결하여 세운 하나의 인격으로서, 그들 각자가 그 인격이 한 행위의 본인이 됨으로써, 그들의 평화와 공동방위를 위해 모든 사람의 힘과 수단을 그가 임의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인격을 지닌 자가 주권자이며, 나머지는 그의 백성이다.

주권을 얻는 두 가지 방법 : '설립'에 의한 것, '획득'에 의한 것.

제18장 설립에 의한 주권자의 권리에 대하여

주권을 가진 하나의 인간 또는 합의체의 모든 '권리'와 '권능'은 사람들이 그의 행위와 판단을 자기 자신의 행위와 판단으로 승인하기로 '신의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즉 코먼웰스를 설립함으로써 생겨난다.

이로써, 첫째, 백성은 통치형태를 변경할 수 없다. 코먼웰스를 설립한 이상, 주권자의 행위와 판단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인정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그의 허가 없이는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자에게 복종하는 새로운 신의계약을 합법적으로 체결할 수 없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그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그 사람과 체결한 신의계약을 파기해야 하는데, 이것은 불의이다. 또한 만인이 자신의 인격을 지니고 있는 자에게 주권을 부여하였으므로, 그를 폐위하는 것은 그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 되고, 따라서 이 역시 불의가 된다. 주권자에 대한 불복종의 근거로 하느님과의 새로운 신의계약을 내세우는 것도 불법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인격을 대리하는 자의 중개에 의하지 않는 한, 하느님과의 신의계약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주권을 갖고 있는 하느님의 대리인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둘째, 주권은 박탈될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의 인격을 지니는 권리가 주권자에게 부여된 것은 주권자와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만인 상호의 신의계약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주권자 측에서 신의계약을 파기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백성들 중 누구도 복종의 의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주권자가 된 자는 사전에 그의 백성들과 어떤 신의계약도 체결하지 않았음이 명백하다. 그가 다수 전체를 일방의 당사자로 하여 신의계약을 맺었을리도 없고(왜냐하면 다수 전체는 아직 하나의 인격이 아니므로), 만일 다수와 각각 신의계약을 체결했다면, 그러한 신의계약은 그가 주권을 가진 후에는 무효가 된다. 왜냐하면 그들 중 누군가가, 주권자의 어떤 행위를 신의계약 위반이라고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주권자의 행위는 나머지 모든 사람의 행위이며, 나머지 모든 사람과 각자의 인격과, 그리고 각자의 권리에 의해 그러한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주권자와 백성 사이의 신의계약 위반 다툼이 벌어진다면 재판관이 없고 다시 전쟁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주권자와의 신의계약에 의해 주권이 부여되었다고 설명하려는 시도는 헛된 것이다. 또한 군주의 권력이 조건부 권력이라는 견해는 다음과 같은 단순한 진리를 간과하고 있다. 공공의 칼이 없으면, 신의계약은 말과 숨에 불과할 뿐, 아무에게도 의무를 부과할 수 없고, 아무도 억제하거나 강제할 수 없고, 아무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을. 그 공공의 칼은 주권을 지닌 한 사람 혹은 합의체의 손을 속박하지 않을 때 생긴다는 것을. 주권자의 행위는 모든 사람이 승인한 것이고, 모든 사람의 힘이 단결된 형태로 그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러한 사실은 군주정이나 민주정이나 동일하다. 어떤 통치형태에서도 주권자의 권리는 절대적이다.

셋째, 다수에 의해 선포된 주권의 설립에 항의하는 것은 불의이다. 그것은 스스로 체결한 신의계약에 반하는 것이며, 따라서 불법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명령에 복종하든지, 아니면 이전의 전쟁상태에 그대로 있든지 해야 한다.

넷째, 주권자의 행위를 백성이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주권의 설립에 의해, 모든 백성은 주권자의 모든 행위와 모든 판단의 본인이 되었기 때문에, 주권자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백성 중 어느 누구에게도 권리침해가 되지 않으며, 또한 백성들로부터 불의를 저질렀다는 비난을 받을 이유도 없다. 이미 백성은 주권자에게 자신의 모든 권한을 위임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권리침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권자로부터 권리침해를 당했다고 불평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본인으로 한 행위에 대해 불평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자기가 자기를 권리침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권자가 불공평한 행위를 할 수는 있을지언정, 불의나 권리침해를 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섯째, 백성은 주권자의 어떤 행위도 처벌할 수 없다. 그것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타인을 처벌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여섯째, 코먼웰스를 설립한 목적은 백성들의 평화와 방위에 있기 때문에 이 목적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는 자는 누구나 그 수단에 대한 권리도 갖는다. 따라서 그는 평화와 방위의 수단, 그에 방해가 되는 것에 대한 판단, 예방 대책을 강구하는 일 등을 모두 판단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주권자는 검열권도 가진다. 주권자는 평화에 반하는지 기여하는지 판단하여 검열할 수 있다. 행위는 사상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그 의견부터 잘 다스릴 필요가 있다. (물론 평화를 위해 사상을 규제하는 일과 진리를 존중하는 일이 서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평화와 화합이 자연법에 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평화에 반하는 사상이 진리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곱째, 주권자는 백성 각자가 동료 백성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누릴 수 있는 재산이 무엇이며, 할 수 있는 활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는 전권을 가지고 있다. 그 규칙이 바로 '소유권'이다. (주권이 설립되기 이전에는 소유권이 없다.) 소유권에 대한 규칙, 백성들의 행동에서 선과 악, 합법과 불법에 대한 규칙 등이 바로 시민법이다. 모든 코먼웰스는 각각의 시민법을 가지고 있다.

여덟째, 주권자는 사법권을 갖는다. 분쟁을 해결해주지 않고서는 백성 상호간의 권리침해를 막을 수 없고 법률도 소용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아홉째, 주권자는 전쟁을 하거나 강화를 할 권리가 있다. 이 목적을 위해 전력을 결집 및 무장하는 방법과 소요 예산을 판단하는 권리와, 이를 위해 징세하는 권리도 따라온다. 인민을 지키는 힘은 군대에 있고, 군대의 힘은 단일한 지휘권 아래 힘을 결집하는 데 있다. 이 지휘권을 설립한 자는 주권자이며, 따라서 주권자가 이 지휘권을 갖는다.

열째, 주권자는 모든 고문관, 장관, 행정관, 관리를 선입할 권리가 있다. 코먼웰스의 설립 목적(공공의 평화와 방위)을 달성하기 위해 주권자느 ㄴ최적으로 판단되는 수단을 사용할 권리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열할 번째, 주권자는 법을 제정하여 보상과 처벌을 할 권리가 있다.

끝으로, 작위를 주고 공적을 평가할 권리가 있다.

주권자의 권리들은 분할할 수 없다. 예컨대 주권자가 '군권'을 양도한다면 법을 집행할 수 없기 때문에 사법권을 보유하고 있어도 소용이 없다. 또한 만약 그가 징세의 권한을 양도하게 되면 '군권'은 무용지물이 된다. 또한 한설에 대한 규제를 포기하면 반란을 허용하는 꼴이다. 즉 주권자의 권리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아무리 나머지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어도 코먼웰스의 설립목적인 평화와 정의의 유지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주권자가 주권을 직접 포기하지 않는 한, 권리는 결코 양도되지 않는다.

주권자의 권력 앞에서는 백성의 권력이나 명예는 소멸한다. 백성의 전체 권력이란 곧 주권자의 권력과 동일한 것이다. 주권이 인민의 합의체에 있는 경우에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가능한 반론 : 혹시 그렇게 무제한적인 권력을 가진 자의 정욕과 변덕스런 정념에 백성들이 좌지우지된다면 백성들의 상태가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하고. 하지만 통치형태가 무엇이든 간에 백성을 보호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기만 하면, 권력은 모두 같은 것이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불편이 전혀 없는 상태에 있을 수는 없다. 또한 통치형태를 불문하고 인간이 겪는 그 어떠한 극심한 불편도 내란에 따르는 비참과 공포의 재난에 비하면, 또한 법에 대한 복종도 없고, 약탈과 복수를 못하도록 그들의 손을 묶는 강제력도 없이, 즉 지배자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분열상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과연? 전제정에서의 비참함보다 전쟁상태에 있는 게 낫다고 선택하는 사람에게는 더이상 무슨 말을 할까?) 주권자가 강압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백성들의 반항적인 태도 때문이고, 최대한의 징세를 하는 것은 위급한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약간의 희생은 엄청난 비참한 상태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필요악(?)이다.

제19장 설립에 의한 코먼웰스의 종류와 주권의 승계에 대하여

코먼웰스는 세 종류밖에 없다.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 이들 사이의 차이는?

첫째, 주권자는 인민의 인격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자연인격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사익을 선택하여 통치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익과 사익이 긴밀히 결부되어 있는 주권자일수록 공익도 크게 증진된다. 군주정의 경우에는 사익과 공익이 일치한다. 군주의 재산, 권력, 명예는 백성들이 힘과 명성을 지녔을 때 비로소 생겨난다. ... 한편 민주정이나 귀족정에서는 공공의 번영이 부패한 야심가들의 개인 재산을 늘려주지는 않는다.

둘째, 군주는 누구든, 언제든 조언을 들을 수 있고 문제를 비밀에도 부칠 수 있다. 그러나 합의체의 경우는 장시간의 토론이 필요하고 비밀에 부치기도 어렵다.

셋째, 결단력의 차이. 군주정은 인간 본성 이외에 어떠한 불안정성도 없지만, 합의체의 경우 수에서 오는 불안정성이 있다.

넷째, 군주는 시기심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자기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합의체에서는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

다섯째, 군주정에도 약간의 불편이 있다. 자신의 총신이나 아첨꾼에게 주려고 여느 백성의 소유물을 마음대로 빼앗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합의체 주권의 경우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오히려 "군주가 총애하는 자는 수가 적고, 왕의 친족 이외에는 달리 승진시킬 자가 없지만, 합의체가 총애하는 자는 수가 많고, 친족의 수도 군주의 경우보다 훨씬 많다."

여섯째, 군주정의 또다른 불편으로 유아에게 주권이 계승될 수 있는 문제. 위임시에 혼란이 생길거라며 이것이 군주정의 불편한 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정부의 불안정한 상태에 대해서도 불편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위임 통치시의 혼란은 군주정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야심과 부정 때문이다. 오히려 합의체의 경우는 이러한 문제가 항시 발생한다. 미성년자가 인격과 권한을 유지하기 위해 후견인이나 보호자가 필요하듯, 합의체도 중대한 위기나 분란이 있을 때에는 항상 독재관 또는 권한 보호자를 필요로 한다. 이는 임시 군주와 같이 일정한 기간 동안 모든 권력을 위임 받아 행사한다. 그런데 그 기간이 끝났을 때 합의체가 그에게 권력을 빼앗기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이것은 미성년의 군주가 보호자나 섭정, 혹은 후견인에게 권력을 찬탈 당하는 일보다 더 자주 일어난다.

제20장 부권적 지배와 전제적 지배에 대하여

획득에 의한 코먼웰스 : '획득에 의한' 코먼웰스는 주권이 물리적 힘에 의해 획득된 코먼웰스를 말한다. 주권이 힘에 의해 획득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죽음이나 속박에 대한 공포 때문에, 개인적으로 혹은 다수결에 의해 전체적으로, 자신들의 생명이나 자유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 또는 합의체의 모든 행동을 정당한 것으로 승인하는 경우를 말한다.

설립에 의한 코먼웰스와의 차이와 본질적 공통점 : 두려움의 대상이 다를 뿐, 죽음이나 폭력에 대한 공포 때문에 수립된다는 점은 동일하며, 공포에 의한 신의계약은 유효하다.

주권의 권리도 양쪽 모두 동일하다. 즉 주권자의 권리는 그의 동의 없이는 타인에게 양도될 수 없으며, 또한 박탈되지도 않는다. 그는 그 어떤 백성에 의해서도 권리침해(자기 자신을 권리침해할 수 없다)를 이유로 고소되지 않으며(자기자신을 고소할 수 없다), 처벌되지 않는다(자기 자신을 처벌할 수 없다). 그는 평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심판관이며, 동시에 학설의 심판관이며, 유일한 입법자이며, 전쟁과 평화의 시기 및 기회를 판단하는 최고심판관이다. 행정관, 자문관, 사령관을 비롯한 모든 관리와 대행자를 선임하는 것, 상벌, 영예, 서열을 결정하는 것도 그의 권리이다.

지배권은 '출생'(부권적)이나 '정복'(전제적)에 의해 얻어지지만, 둘 모두 피지배자의 '동의'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여러 나라의 군주인 자가,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합의에 의해 설립된 주권을 지니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복에 의해 주권을 지니게 된 경우, 후자의 인민들에게 정복자의 이름으로 전자의 인민들에게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주권자의 권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행위이다. 주권자는 어느 쪽에 대해서건 똑같이 절대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주권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과 왕국의 차이 : 가족은 하나의 소왕국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가족은, 그 가족원의 수나 다른 여러 조건들로 인해, 전쟁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정복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힘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올바른 의미에서의 코먼웰스는 아니다. 그 집단의 방어력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코먼웰스라면 보호받기에 충분한 힘이 있어야 한다.

주권자의 절대성 : "주권자의 힘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대의 권력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것은 주권이 군주정처럼 한 사람의 손에 있건, 민주정 혹은 귀족정처럼 합의체에 있건 다르지 않다. 이처럼 무제한적 권력이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걱정할 수 있겠지만, 권력의 부재로 인해 생기는 전쟁상태보다는 더 낫다. 어떤 코먼웰스에서도 백성의 불복종과 코먼웰스 설립의 기초가 되는 신의계약 파기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보다 더 큰 불편은 없다. 주권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여 이를 약화시키려 하는 자는 그것을 제한할 수 있는 권력, 즉 그보다 더 큰 권력에 스스로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최대의 반론 : 실제로 그러한 권력이 백성에 의해 인정되었느냐? 경험적인 논증이 중요하지 않다. 홉스 자신은 자신의 추론이 현재처럼 내란이 빈번히 일어나는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성적 추론이라고 반박하는 듯.

즉 "코먼웰스를 만들고 유지하는 기술은, 산술이나 기하학과 같이, 확실한 법칙을 따를 것이지 테니스 경기처럼 실지 경험에만 기댈 일이 아니다."

제21장 백성의 자유에 대하여

공포와 자유는 양립한다. 배가 침몰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재산을 바다에 버리기로 한 경우, 이는 극히 자발적인 행위이다. 감옥에 가는 것이 ‘두려워서’ 빚을 갚는 경우에 그것도 ‘자유’를 가진 인간의 행위이다. 일반적으로 코먼웰스 내에서 법에 대한 ‘공포’ 때문에 이루어지는 행위는 전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포함한 행위이다.

자유와 필연은 양립한다.

인간은 평화를 획득하고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코먼웰스라는 인공인간을 만들었으며, 또한 ‘시민법’이라는 인공적 사슬도 만들었다. 이 족쇄는 그 자체로는 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지되는 이유는 끊기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사슬을 끊었을 때 생기는] 위험 때문이다.

백성의 자유는 신의계약에서 생긴 자유이다. 법률이 불문에 부친 모든 종류의 행위에 대하여 인간은 자신의 이성이 가장 유리하다고 시사하는 것을 행할 자유가 있다. 만일 자유라는 말을 본래의 뜻대로 해석하면, 그것은 육체의 자유, 즉 사슬이나 감옥으로부터의 자유가 된다. 그러나 그 자유는 이미 우리가 누리고 있기 때문에, 이미 누리고 있는 “자유를 달라”고 외치는 것은 불합리하다. 만일 자유라는 말을 법의 면제로 이해한다면, 이 역시 불합리한 일이다. 이런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생명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자유를 요구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의 자유는 주권자가 그들의 행위를 규제하면서 불문에 부친 일들에 대하여만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가 있다고 해서, 이로 인해 주권자의 생사여탈권이 폐지되거나 제한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주권자의 어떤 행동도 백성에게 권리침해가 되지 않으며 불의가 될 수 없다. 즉 백성의 자유는 주권자의 무제한적 권력과 양립한다.

코먼웰스는 완전하고 절대적인 자유를 누린다. 그것은, 시민법이나 국가가 존재하지 않을 때에, 즉 자연상태에 각 개인이 가지고 있던 자유와 동일한 것이다. 예컨대 국가들 사이에서 각 국가는 자기에게 가장 유익하다고 판단되는 대로 행동할 절대적 자유를 가지고 있다. 국가들은 다른 나라를 침략할 자유를 가지고 있다.

군주정 하의 백성은 노예고, 민주정 하의 백성은 자유인이라고 하는 얘기는 성립하지 않는다. 군주정을 혐오하는 방식으로 자유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이들은 자유라는 그릇된 이름 아래 걸핏하면 소요를 일으키고, 주권자의 행위를 함부로 규체하고, 그 다음에는 많은 피를 흘리면서 그 규제자들을 또다시 규제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백성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주권자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백성이 정당하게 거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백성의 자유와 의무는 주권설립의 목적(백성들 상호간의 평화와 공동의 적에 대한 방위)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서 첫째, 주권은 신의계약에 의해 존재하게 된 것이므로, 어떠한 신의계약으로도 그 권리를 양도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자유를 가진다. 예컨대 자신의 신체를 방위하지 않기로 하는 계약은 무효이며, 따라서 자살하라거나 자해하라고 하는 명령에 대해서는 복종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또 백성은 사면의 보증이 없는 한 자백할 의무가 없다. 왜냐하면 그 어떤 신의계약으로도 자신을 고소할 의무가 생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한 주권자의 직무 집행을 명령 받았을 때 그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 주권설립의 목적에 맞을 때에는 거부할 자유가 있다.

기타의 자유들은 모두 법의 침묵에 달려있다. 즉 주권자가 그에 관한 별도의 법을 제정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백성은 자기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거나 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백성은 법에 근거한 문제의 경우에는 주권자를 상대로 소송을 걸고 법에 따른 판결을 요구할 자유가 있지만, 주권자가 자신의 권력으로 요구하거나 취한 일에 대해서는 백성은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만약 군주 또는 주권을 지닌 합의체가 백성의 전체 또는 일부에게 어떤 자유를 허락하고, 그 자유를 계속 인정하였는데, 그로 말미암아 백성의 안전을 지킬 수 없게 된 경우에는 앞서 허락한 자유는 무효이다. 주권자가 주권을 포기한다면 인정될 수도 있겠지만, 주권자가 주권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그 자유는 무효이다.

주권자에 대한 백성의 의무는, 백성을 보호할 수 있는 권력이 주권자의 손에서 지속되는 한, 그리고 오직 지속되고 있는 동안에만 계속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주권은 국가의 혼이다. 혼이 일단 육체로부터 분리되고 나면, 육체의 각 부분은 더 이상 혼으로부터 운동을 받을 수 없다. 복종의 목적은 보호를 얻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