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정념이라고 불리는 자발적 운동의 내적 발단에 대하여, 또한 그것이 표현되는 화법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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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머스 홉스 지음, 진석용 옮김, "6장. 보통 정념이라고 불리는 자발적 운동의 내적 발단에 대하여, 또한 그것이 표현되는 화법에 대하여", 리바이어던: 교회국가 및 시민국가의 재료와 형태 및 권력 (나남, 2008). 원문 : Thomas Hobbes, Leviathan or the Matter, Form, and Power of a Commonwealth Ecclesiatical and Civil (London, 1651).

동물의 두 가지 운동, 그리고 노력

"동물에게는 동물 특유의 두 가지 '운동'이 있다. 하나는 '생명의 지탱을 위한(vital)' 운동으로...'혈액의 순환, 백박, 호흡, 소화, 영양, 배설' 등의 운동이다. 이런 운동에는 상상력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또 하나는 '움직이는 생명체로서의 운동(animal motion)'으로서 다른 말로는 '자발적 운동(voluntary motion)'이라고도 한다. '걷고', '말하고', 사지를 '움직이는' 등 마음에 생각한대로 나타나는 운동을 말한다. 감각이란 어떤 대상의 움직임을 보거나 듣거나 할 때 그로 인해 신체기관 및 내부의 여러 부분에서 일어나는 운동이다. ... 걷거나 말하거나 때러거나 하는 등의 눈에 보이는 행동이 일어나기 전에 인체 내에서 일어나는 운동의 단서들을 보통 노력이라고 한다."

욕구, 욕망과 혐오, 사랑과 미움, 경시, 선과 악

"이러한 노력이 그것을 야기하는 어떤 것을 향해 있을 때 욕구 또는 욕망이라고 부른다. ... 그리고 노력이 어떤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쪽으로 나타날 때 일반적으로 혐오라고 부른다. '욕구'라는 말과 '혐오'라는 말은 라틴어에서 온 것인데, 둘 다 운동을 의미한다. 하나는 다가가는 운동을, 또 하나는 멀어지는 운동을 의미한다."

"사람이 어떤 것을 욕구할 때는 그것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고, 혐오하고 있을 때는 미워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욕구와 사랑은 동일한 것이다. 다른 점은, 욕구는 대상의 부재를, 사랑은 보통 대상의 존재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뿐이다. 마찬가지로 혐오는 대상의 부재를, 미움은 대상의 존재를 나타낸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욕구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을 경우, 이를 '경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체질은 계속 변화한다. 따라서 같은 것이라 해도 어떤 인간에게 항상 같은 욕구와 혐오를 일으키지는 않으며, 같은 대상을 놓고 모든 인간이 동일한 욕구를 가지는 일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어떤 인간이 욕구 또는 의욕을 갖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 그에게는 '선(good)'이며, 증오 또는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악(evil)'이다. 그리고 경시의 대상은 '미천한 것'이나 '하찮은 것'이다. 즉 선한 것, 악한 것, 경시할 만한 것, 이런 말들은 항상 그 말을 사용하는 인간과의 관계에서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대상 자체의 성질로부터 선악의 일반적 법칙을 이끌어낼 수도 없다. 선악의 법칙은 코먼웰스(국가)가 없는 곳에서는 오직 그 사람의 인격에서 나올 뿐이며, 코먼웰스가 있는 곳에서는 이를 대표하는 인격에서 나온다. 혹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합의하여 중재자 또는 재판관을 두기로 한 경우에는 선악의 법칙이 이렇게 설립된 중재자 혹은 재판관으로부터 나온다."

호기심

'왜' 그리고 '어떻게'를 알고자 하는 '욕망'은 호기심이라고 한다. 이것은 '인간' 이외의 다른 생물에게는 없다. 따라서 인간은 이성(reason)을 가지고 있다는 점 이외에도 바로 이 정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들'과 다르다. ...

종교와 미신

"머리로 가상하거나 이야기를 듣고 상상한,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공포'는 공공연하게 인정된 경우 종교라고 하고, 인정되지 않은 경우 미신이라고 한다. 그 힘이 진실로 우리가 상상한 그대로일 때 진정한 종교라고 한다.

의지

'숙고'의 결과, 직접적으로 행위 또는 행위의 회피와 연결되는 최종적 욕구 또는 혐오를 의지라고 한다. 그것은 '의지가 있는(willing)' 행위이다. ... 스콜라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의지'를 '이성적 욕구'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이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만약 의지가 이성적 욕구라면, 이성에 반하는 자발적 행위는 있을 수 없다. '자발적 행위'는 어디까지나 '의지'에서 생길 뿐 그 이외의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도 생기지 않는다. ... '의지는 숙고 중 최후의 욕구'이다."

자발적 행위

"... 어떤 것에 대한 탐욕, 야심, 욕정, 기타 욕구에서 비롯된 행위들만 '자발적 행위'가 아니라 그러한 행위의 회피가 가져올 결과들에 대한 혐오나 공포에서 비롯된 행위들 역시 '자발적 행위'이다."

정념과 화법의 관계

특정한 정념은 특정한 화법으로 표현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이 감정표현의 확실한 표시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 표현은 정념이 있고 없고를 불문하고 임의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어떤 정념이 존재하는지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은 표정, 신체의 동작, 행동이나 혹은 다른 방식으로 우리가 알게 된 그 사람의 목적 또는 목표를 통해서이다." (언어표현과 의도 사이의 불일치 가능성 강조. 언어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에 대한 불신도 어느정도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