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성과 타당성의 사회적 매개범주로서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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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성과 타당성의 사회적 매개범주로서 법

주체철학에 의해 파악되었던 실천이성과 그 파산

주관적 능력으로서의 실천이성이라는 개념은 근대의 산물이다. 주체철학의 근대적 기획에 따라, 실천이성은 첫째, 정치적 문화적 삶의 형식과 분리되었다. 둘째, 실천이성은 개인의 자율성과 관계맺는 동시에 인간(일반)의 자율성과 관계맺게 되었다. 개인은 개인으로서의 역할과 세계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책임지는 주체가 되었고, 이를 통해 개인은 인간 일반과 융합되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엄청난 복잡성에 비추어볼 때,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 또는 ‘개인들로 합성된 사회’라는 단순한 구도는 더 이상 적용될 수 없게 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은 실천이성의 규범적 내용들을 의심케 만들었다. 강한 규범성을 함축했던 맑스주의 사회이론은 자신의 규범성을 상당부분 포기하게 됐고, 실천이성을 제거하려는 일관된 노력은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주체철학에 의해 파악되었던 실천이성의 내용이 파산한 상황에서, 그 규범적 내용은 역사의 목적론(역사철학) 속에서도, 유적 인간의 구성(인간학) 속에서도, 성공한 전통(미국 민주주의 법치국가의 성공)이라는 우연한 기초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당화의 과제를 포기한 채 중립적인 기술에만 만족하는 사회과학적 기능주의 또는 니체 식의 극단적인 이성 비판이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결책에 만족할 수는 없으며, 이러한 까닭에 의사소통적 이성을 제안하고자 한다.

실천이성에서 의사소통적 이성으로

과거 실천이성과 실천 사이의 관계는 너무 직접적이고 직선적이었다. 실천이성은 개인의 행동 또는 사회적 질서에 유일하게 올바른 규범적 청사진을 제시하고자 했다. 실천이성은 주체에게 직접 명령한다. 실천이성과 달리 의사소통적 이성은 개별 행위자 또는 국가나 사회같은 거대주체에 귀속되지 않는다. 의사소통적 이성의 요체는 언어적 매체이며, 언어 자체에 내장된 상호이해라는 궁극적 목적(tevlo)은 그 합리성의 토대가 된다.

그러나 그 합리성이 행위자들에게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직접) 말해주는 주관적 능력인 것은 아니다. 의사소통적 이성은 (명제적 진리, 주관적 진실성, 규범적 정당성 등에 대한) 타당성 주장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능케 할 뿐, 그 특정 내용을 스스로 제공하진 않는다. 한편, 타당성 주장의 여러 스펙트럼의 측면에서 볼 때, (구속력 있는 행동정향이라는 의미의) 규범성은 (상호이해지향적 행위의) 합리성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cf. 도덕적 통찰에 대한 정당화의 경우에만 양자가 겹침)

의사소통적 이성에 기초한 사회이론의 재구성은 법과 도덕에 대한 규범적 이론의 청사진을 제공하진 못하더라도, 법적 형식에 따라 행사되는 민주주의적 지배가 뿌리내리고 있는, 의견을 형성하고 결정을 준비하는 담론의 망을 제공하기 위한 아리아드네의 실을 제공할 것이며, 입헌국가의 불투명한 현실적 관행을 평가할 수 있는 비판적 기준도 제공할 것이다.

규범주의적 접근방법과 객관주의적 접근방법의 긴장과 협력

법과 민주주의 일반에 관한 오늘날의 이론은 (전통적인 실천이성 개념과는 거리가 있을지라도) 여전히 고전적인 개념구성체에 기초하여 규범적 담론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규범적 이론은 사회과학적 관찰자들에 의해 이미 오래전에 무너진 엄연한 객관적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규범적 이론은 의사소통적 이성 개념을 도입할 때에도 매우 협소한 의미의 의사소통만을 고려함으로써 복잡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사회적 실재와의 접촉점을 상실할 위험을 안고 있는 규범주의적 접근방법들과 모든 규범적 측면들을 제거해버리는 객관주의적 접근방법들 사이의 긴장은 하나의 경고로 간주될 수 있다. 이제는 둘의 협력과 상호보완을 꾀해야 할 시기이다. 사실 법이론은 애초부터 하나의 접근방법으로 해결될 수 없었다. (eg. 이성법과 실정법의 보완관계)

이 글의 전체구성

(1) 1,2장에서는 의사소통행위이론이 법이라는 범주를 핵심에 놓는지와 그 이론이 왜 담론적 법이론에 적합한 맥락을 제공하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학적 법이론과 철학적 정의이론이라는 두 기획을 모두 아우르는 재구성을 개진할 것이다. (2) 3,4장에서는 담론이론적인 시각에서 법체계의 규범적 내용과 법치국가의 이념을 재구성할 것이다. 특히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법적인 자기조직”이라는 오래된 약속이 어떻게 복잡한 사회에서 새롭게 개념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3) 5장은 판결의 합리성 문제를 일반적인 수준에서 다룰 것이며, 6장은 헌법재판의 정당성 문제를 다룰 것이다. (4) 7장은 경험주의적 권력개념에 기초한 민주주의 이론과의 논쟁을 통해 토의정치의 모형을 발전시킬 것이다. (5) 8장에서는 권력순환의 법치국가적 규제가 어떻게 복잡한 사회 속에서 기능할지를 탐색한다. (6) 마지막 9장에서는 담론적 법이론이 이러한 사회이론적 통찰과 결합하여 (부르주아 형식법의 사회 모형과 사회국가의 사회 모형 사이의 대립을 넘어설 수 있는) 절차론적인 법패러다임을 도입하는 데 기여할 것임을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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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대한 하버마스의 관심과 법이론은 사회이론적 문제제기에서 시작한다. 의사소통행위이론은 사실성과 타당성의 긴장을 이미 자신의 중심개념 속에 수용한다. 이를 통해, 그 이론은 사회(사회적 삶의 재생산 과정에 가해지는 제약 및 강제)와 이성(의식적인 삶의 영위) 사이의 내적 연관에 대한 고전적 견해와 연결고리를 유지한다. 또한 이 이론은 사회의 재생산이 (의사소통적 이성이 제공하는) 초월적인 타당성 주장과 같은 약한 기반 위에서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설명과제로 떠맡게 된다. 여기서 법(특히 근대적 실정법)이라는 매체가 그 설명을 제공할 수 있는 후보로 제시된다. 이러한 법규범은 합리적으로 동기화된 동의라는 가정과 외적 강제의 위협에 동시에 의존하여 통합되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법인격체들의 연합체를 가능케 한다.

의사소통적 행위 개념에 의해, 상호이해지향적으로 사용되는 언어가 행위조정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1) 언어가 이성의 보편적 매체로서 개념화될 때 사실성과 타당성에 대한 (관념론에 기반한) 고전적 견해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보이고, (2) 행위조정의 양태 자체에 내장된 사실성과 타당성의 긴장이 유발할 수 있는 사회구성의 불안정성을 생활세계, 자연발생적 제도, 법이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 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3) 근대적 경제사회의 전략적 상호행위에 대해 법이 어떻게 효과적인 규범적 규제자가 될 수 있는지를 보임으로써, 법의 구조와 타당성 의미, 그리고 법적 공동체의 이상주의적 함축을 드러낼 것이다.


1절 의미와 진리: 언어에 내재하는 사실성과 타당성의 긴장

개념형성과 판단형성의 요소적 차원에서 일차적으로 등장하는 사실성과 타당성의 관계가 ‘언어적 선회’ 이후에 어떻게 서술될 수 있는지를 간략하게 상기하고자 한다.

(1) 심리주의에 반대한 프레게의 고찰: 표상 vs 사상

칸트의 형이상적적 사변, 헤겔의 변증법적 사변이 설득력을 잃은 후, 19세기 후반에는 심리주의가 널리 유포되었다. 타당성 관계를 의식의 사실적 과정으로 환원하려는 심리주의적 시도에 반대하여, 프레게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도가 등장했다. 이들에게 사유(인식)는 주관적(심리적) 표상이 아니다.

프레게의 핵심논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우리의 표상의 운반자이지만 우리의 사상의 운반자는 아니다.” 표상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동일시 가능한 표상주체에게 귀속되는 데 반해, 사상은 개인적인 의식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표상 속에는 대상만이 주어질 뿐이지만, 사태(Sachverhalt)나 실태(Tatsache)는 사상 속에서 파악된다. 이에 의하면, 실태는 서술된 사태, 즉 문장 속에서 표현된 사태로서만 접근가능할 뿐이다.

(2) 사상이 갖는 개인초월적 지위의 기초: 언어적 형식의 이상성

사상은 명제적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사상의 구조는 문장의 구조를 통해 분석될 수 있다. 사상이 개인적인 경험적 의식의 경계를 넘어선다는 점과 사상의 내용이 개인적 체험의 흐름으로부터 독립적이라는 점을 언어적으로 따져본다면, 언어적 표현이 상이한 사용자에게서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는 명제를 통해 표현될 수 있다. 일반적인 것, 자기동일적이며 공개적으로 접근될 수 있는 것, 개인적 의식에 대해 초월적인 그 무엇으로서 서술된 사상을 특수하고, 에피소드적이며, 사적으로만 접근가능하고 따라서 의식에 내재적인 표상으로부터 구별시켜주는 것은 언어기호와 문법적 규칙의 이상성이다.

(3) 진리 타당성과 관련된 이상성의 요구

모든 사상은 사태를 자신의 내용으로 갖는다. 그러나 모든 사상은 진술내용을 넘어, 그 사상이 참인가 거짓인가에 대한 규정을 요구한다. 긍정된 사상이나 참된 문장만이 하나의 실태를 표현한다. 이에 의해 사상은 문장의 타당성과 관련된 또다른 이상성이 요구된다.

이미 (1)에서 지적했듯이, 문장은 대상의 실존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태의 존립을 지시한다.(eg. “이 공은 붉다”) 문장의 진리 타당성(사태의 존립)은 대상의 실존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그것과 혼동되어서도 안된다. 이를 혼동할 경우, 우리는 사상/명제/사태에 (등장한 대상에) 관념적인 즉자 존재성을 부여하여 그러한 관념적 존재자들로 특별한 세계(플라톤의 이데아 또는 포퍼의 제3세계)를 구성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의미와 사상이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대상들로 실체화되고 나면, 세계들 사이의 관계가 풀리기 어려운 문제로 남게 된다. 즉, 문장의 의미와 사상이 실태를 어떻게 반영하는지, 그리고 사상이 정신 속으로 어떻게 들어오고 평가되는지를 설명하기 힘든 문제로 남는 것이다. 형식적 의미론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4) 진리 타당성의 이상성: 화용론적 접근으로

사상이 갖는 이상적 지위는 의미의 일반성이 갖는 이상성과 동시에 진리 타당성의 이상성을 함축한다. 그러나 의미의 일반성이 갖는 이상성과는 달리 진리 타당성의 이상성은 문법적인 불변요소, 즉 언어 일반의 규칙구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형식적 의미론자들은 진리 타당성을 다루기 위해, 언어와 세계, 문장과 실태, 사상과 사유의 힘 사이의 존재론적 (2자) 관계에 호소했다. (그러나 세계의 실태를 재현한 문장이 ‘참’인지는 어디에 호소해야 하는가? 누구도 세계 자체를 참조할 수는 없다.)

퍼스는 이러한 2자적 구상을 대신하여 그 무엇이 가능한 해석자‘들’에게 언어적으로 재현된다는 3자적 구상을 제시한다. 가능한 실태의 총체로서의 세계는 하나의 해석공동체에 대해서만 구성된다. 그리고 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상호주관적으로 공유된 생활세계 내부에서 세계 속의 그 무엇에 관한 상호이해에 도달한다. 퍼스의 구상에서, 참된 진술 속에서 서술된 내용은 (세계 그 자체라기보다는 해석자 공동체에서 상호주관적으로 공유된 생활세계에 비추어) ‘현실적인 것’이고, ‘참이다’라는 말은 (세계 자체를 참조하여 설명되기보다는) 한 논자가 단언적 명제를 제시할 때 함께 제기하게 되는 타자를 향한 타당성 주장을 참조하여 설명되며, ‘타당성’(Gültigkeit)은 인식론적으로 ‘우리에게 입증된 타당성’(Geltung)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에 의하면, 우리와는 독립적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초월적인 그 무엇에는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가? 이는 실재성의 정의를 ‘우리에게 입증된 참된 진술 속에서 재현될 수 있는 것들의 총합’ 식으로 변형시킨다고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화자와 청자는 진리주장을 통해 (즉, 논증적 실천의 의사소통적 조건 하에서) 특수한 상호이해의 국지적 규준을 초월할 수 있다.[(5)에서 부연] 이러한 이유에서 퍼스는 ‘최종의견’ 즉 이상적 조건 속에서 도달된 합의라는 반사실적 개념을 사용하여 내재적 초월성과 같은 것을 구성한다. “그렇다면 실재적인 것은 정보와 추리가 조만간 최종적으로 귀착될 곳이며, 따라서 나와 너의 변덕으로부터 독립적인 것이다.” 퍼스에게, 진리는 사회적 공간과 역사적 시간의 측면에서 이상적으로 확장된, 판단능력을 갖춘 해석자 청중의 의사소통 조건에서 비판가능한 타당성 주장을 입증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진리는 합리적 수락가능성이다.

(5) 사실성과 타당성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고찰

진리에 대한 화용론적 설명을 매개로, 우리는 하나의 특정한 사실성과 타당성의 관계와 만나게 된다. 우리가 접한 두 가지 이상성은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개념의 일반성이 갖는 이상성은 어떻게 동일한 의미가 그 언어적 실현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유지될 수 있는지를 언어의 규칙구조에서 출발하여 설명해야 한다. 둘째, 진리 타당성의 이상성에서 우리는 상호주관적 인정과 수락을 겨냥하면서 지금 여기서 제기되는 진리주장이 어떻게 특수한 해석자공동체의 ‘예/아니오’ 입장 표명의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논증적 실천의 의사소통적 조건에서 출발하여 설명해야 한다. 오직 이 초월적 계기만이 진리주장을 지향하는 정당화의 실천을 단순히 사회적 인습에 의해 규제되는 여타의 실천들로부터 구별시켜준다.

퍼스에게 무한적 의사소통 공동체의 참조는 무제약성이 포함하는 영원성의 계기를 목표지향적인 개방적 해석과정이라는 이념으로 대체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 해석과정은 사회적 공간과 역사적 시간의 한계를 내부로부터 출발하여 그것을 초월한다. 그런데, 초월적인 타당성 주장의 무제한적 주장을 위해서는 충분하게 충족된 것으로 가정되어야 하는 전제들이 있는데, 그 전제들은 이 세계 속에서 사실로서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투사에 의해, 사실성과 타당성의 긴장은 의사소통의 전제 속으로 전이된다.

퍼스가 애초에 염두에 두었던 것은 과학자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논증이었다. 그러나 적절한 변형이 가해진다면, 이 모형은 일상적 의사소통에도 적용된다. 왜냐하면 일상적인 의사소통적 실천에서도 참여자들은 세계 속의 그 무엇에 관한 자신의 발화가 타당함을 주장함으로써 그것에 관한 상호이해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상적 의사소통적 실천의 맥락에 그 모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확장이 필요하다. 언어의 (서술기능만이 아닌) 모든 기능과 모든 세계연관이 작동하며, 따라서 타당성 주장의 스펙트럼도 (진리주장만이 아닌) 주관적 진실성과 규범적 정당성 주장으로까지 확장된다. 또한 이 확장된 타당성 스펙트럼을 생활세계적 맥락 속으로 위치시키기 위해서는 퍼스의 무제약적 의사소통 공동체 개념을 과학자들의 협동적 진리추구를 넘어서 일반화시킬 필요가 있다. 퍼스가 (과학활동에서 두드러지는) 논증적 실천의 의사소통적 조건 속에서 발견한 사실성과 타당성의 긴장을, 우리는 그 외의 다양한 의사소통적 조건 속에서도 둘의 긴장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