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종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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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린네식 생물 분류 체계는 기본 단위인 종(種)에서 시작하여, 상위 분류군인 속, 과, 목, 강, 문, 계를 통해 생물을 위계적으로 분류한다. 예컨대 동물원의 한 벵골호랑이는 우선 호랑이종에 배정된 후, 차례로 표범속, 고양잇과, 식육목, 포유강, 척삭동물문, 동물계에 들어간다. 생물들이 가진 형질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이러한 분류 방식은 여러 도전을 받고 있다.

린네식 분류 체계는 종을 기본 단위로 설정하고 있지만, 때로 종은 다시 아종으로 세분화되곤 한다. 예컨대 호랑이종은 벵골호랑이, 시베리아호랑이 등의 아종으로 나뉘고, 흔히 늑대로 알려진 회색늑대종은 개, 몽골늑대 등의 여러 아종으로 나뉜다. 이는 개와 몽골늑대가 비슷하긴 하지만 차이도 분명히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에 의해 개와 몽골늑대는 별개의 종이 아닌 하나의 종으로 취급해야 하는가? 별개의 종으로 구분할 만큼의 형질적 차이에 대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는 한, 종과 아종 사이의 구분은 임의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찰스 다윈은 종, 아종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이 존재하지 않으며, 종은 편의를 위해 도입된 임의적 묶음이라고 주장했다.

에른스트 마이어는 생물들이 가진 형질에 근거한 분류가 임의적이라는 데 동의했다. 그는 하나의 종에 속한 개체들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종을 정의하는 공통된 형질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Mayr 1975, 26-29). 그럼에도 그는 생물 종이 임의적 묶음에 불과하다는 다윈의 생각을 거부했다. 그는 생식적 격리에 근거한 ‘생물학적 종 개념(Biological Species Concept, BSC)’을 제안했는데, 이에 따르면 종이란 상호 교배하여 생식 능력이 있는 자손을 낳을 수 있는 개체들의 집합을 의미한다(마이어 2002, 7장). 예를 들어 개와 몽골늑대는 교배하여 생식 능력이 있는 잡종을 낳을 수 있으므로 별개의 종이 아니라 같은 종이다. 그러나 말과 당나귀는 상호 교배하여 생식 능력이 없는 노새를 낳을 뿐이므로 둘은 생식적으로 격리된 별개의 종이다. 결국 마이어에 따르면, 종은 생물 분류의 기본 단위로서, 자연에 실재하는 생식적 경계선을 반영한다.

그림 1. 고리종. 엔사티나 도룡뇽은 인접한 개체군 사이에서는 상호 교배 가능하지만, 인접하지 않은(경우에 따라서 인접한 지역에서 서식하게 된) E.e. klauberi와 E.e. Croceater는 상호 교배 불가능하다.
생물학적 종 개념은 현대 생물학에서 널리 사용되긴 하지만, 몇 가지 한계를 가진다. 첫째, 생물학적 종 개념은 세균처럼 무성 생식을 하는 생물에 적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배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생물학적 종 개념은 생식적 격리가 불완전한 개체군의 분류에 적용되었을 때 모호성의 문제를 야기한다. ‘고리종’은 이를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그림 1). 지리적으로 인접한 환경에 서식하는 개체군 X, Y, Z에 대해, X와 Y는 상호 교배 가능하고 Y와 Z는 상호 교배 가능하지만 X와 Z는 상호 교배 가능하지 않을 경우, X-Y-Z를 고리종이라고 부른다. 생물학적 종 개념에 따르면 상호 교배 가능한 X와 Y는 같은 종이며 Y와 Z도 같은 종이다. 그렇다면 X와 Z도 같은 종으로 보인다. 그러나 X와 Z는 상호 교배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다른 종으로도 보인다. 결국 생물학적 종 개념은 X와 Z가 같은 종인지 다른 종인지 명확한 결정을 내려 주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들의 근원은 생물의 진화에 있다. 진화론에 따르면 생물의 다양성은 공통된 조상으로부터 점진적으로 분화됨으로써 나타난 것이다. 공통 조상을 이루는 개체군은 애초에 작은 차이를 가진 다양한 변이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서로 다른 환경에 적합한 다른 변이들이 선택됨에 따라 형질적·생식적으로 구별되는 별개의 개체군으로 점점 분화된다. 따라서 점진적인 분화 과정에서 형질적으로 또는 생식적으로 하나의 종으로 간주하기 애매한 상태가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진화는 생물의 다양성을 끊임없이 증가시켜 왔기에 세균부터 인간에 이르는 모든 생물들에게 단일한 방식의 종 개념이 적용되기 어려운 것 역시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림 2. 파충류와 조류의 계통수
그럼에도 생물 분류가 진화에 의한 생물의 분화 과정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생물학자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동기에서 빌리 헤니히는 계통 분류를 제안했다. 계통 분류의 핵심 발상은 단계통군만을 참된 분류군으로 인정하자는 것으로, 여기서 단계통군이란 어떤 공통 조상으로부터 진화한 모든 후손을 망라하는 개체군을 의미한다. 예컨대, 그림 2에서 A, B, C는 각각 a, b, c를 공통 조상으로 가지는 단계통군이지만, ‘파충류’는 a의 후손들 중 조류가 제외되었기 때문에 단계통군이 아니다. 헤니히에 따르면, A를 크게 두 개의 분류군으로 나눈다면 거북과 B(뱀+악어+조류)로 나누어야 한다. 린네식 분류 체계에서는 A를 우선 겉보기 형질의 차이에 따라 파충류와 조류로 나누었지만 계통 분류의 관점에서 이는 오류이다. 단계통군이 아닌 파충류는 참된 분류군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계통군만을 이용한 계통 분류 체계는 생물간의 유연관계를 반영하도록 의도되었다. 두 계통 사이의 유연관계는 둘이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화된 분기점이 위쪽에 있을수록 가까운 것으로 정의되는데, 이에 따르면 뱀은 a에서 분기된 거북보다는 b에서 분기된 악어 및 조류와 유연관계가 가깝다. 이러한 유연관계는 뱀을 거북과 묶기 전에 악어 및 조류와 먼저 묶는 계통 분류에 의해 정확히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계통분류학에 따르면 종은 다른 자연분류군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단계통군으로서 특정한 시점에 조상을 공유하는 개체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계통발생적 종 개념(Phylogenetic Species Concept, PSC)은 특이한 귀결을 가진다. 만약 화성에서 지구상의 호랑나비와 매우 비슷하며 심지어 상호 교배도 가능한 유기체를 발견했더라도, 그 화성의 유기체는 지구의 호랑나비와 같은 종으로 간주될 수 없다. 왜냐하면 두 유기체는 조상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멸종한 종인 티라노사우루스를 우리가 완전히 인공적인 방식으로 합성해낸다 하더라도 그 합성된 유기체는 티라노사우루스와 같은 종으로 간주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가 합성한 유기체는 부모가 없기에 과거에 존재했던 티라나사우루스와 조상을 공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계통발생적 종 개념의 이러한 역설적인 귀결들은 생물 종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관념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동기로부터 기셀린(Ghiselin 1974)과 헐(Hull 1978)은 “개체로서의 종 개념”을 제안한 바 있다. 그들에 따르면, 하나의 종은 원소들을 묶는 추상적인 원리인 유형이 아니라 “시공간 안에서 연장되는 개체”이다. 하나의 종은 본질적 유사성 때문이 아니라 단지 조상을 공유한다는 점 때문에 같은 집단에 속한다. 이에 따르면, 종은 하나의 개체처럼 특정 시공간에서 태어나 특정 시공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는 ‘호랑이’와 같은 생물 종이 ‘금’과 같은 화학적 종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짐을 말해준다. 금은 언제 어디서 발견되든 그 본질적인 속성(원자번호 79)에 의해 금으로 규정될 수 있지만, 호랑이로서의 규정은 부모-자식 관계의 연쇄에 의해 형성되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유기체와 종의 관계를 부분과 원소와 집합의 관계가 아닌 부분과 전체의 관계로 보도록 이끈다. 하나의 종에 속한 유기체들은 마치 하나의 개체를 구성하는 여러 부분들처럼 시공간적으로 인접해 있어야만 한다.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두 유기체는 둘 사이를 부모-자식 관계를 가진 유기체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줄 때에만 하나의 종을 구성하는 두 부분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개체로서의 종 개념은 정치적 함축도 가질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종의 본질은 없다. 한 유기체는 이성적 동물, 사회적 동물이 아니어도 인간이 될 수 있는데, 인간이 되기에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호모 사피엔스’의 계통에 속한다는 것뿐이기 때문이다(Hull 1978, 1986; Mayr 1975).

참고 문헌

  • Ereshefsky, Marc (2017), Species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Ghiselin, Michael (1974), “A Radical Solution to the Species Problem”, Systematic Zoology 23, 536–544.
  • Hull, David L. (1978), “A Matter of Individuality”, Philosophy of Science 45, 335–360.
  • Hull, David L. (1986), “On Human Nature”, PSA 1986, pp. 3-13.
  • Mayr, Ernst (1975), “Typological versus Population Thinking”, in Evolution and the Diversity of Life, Harvard University Press, pp. 26-29.
  • 마이어, 에른스트 (2002), 『이것이 생물학이다』, 서울: 몸과 마음.
  • 오카샤, 사미르 (2017),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분야의 철학적 문제들」, 『과학철학』, 파주: 교유서가,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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