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감싸 안은 전기와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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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와 자기의 관계에 대한 패러데이의 이미지이자 맥스웰의 '서로 감싸 안은 곡선'
노턴 와이즈 지음, 정동욱 옮김, “서로 감싸 안은 전기와 자기”. 원문 : M. Norton Wise, “The Mutual Embrace of Electricity and Magnetism”, Science 203 (1979), 1310-1318. 이 글의 어느 정도 완성도 있는 버전의 번역은 2020년 7월에 완성되었다.

이 글에서 노턴 와이즈(M. Norton Wise)는 전기와 자기가 서로를 감싸 안고 있는 패러데이의 이미지가 맥스웰의 전자기장 이론의 개발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분석한다. 와이즈에 따르면, 맥스웰은 그 이미지가 함축하는 전기와 자기의 대칭성과 양/강도 구분에 구분에 주목했으나, 처음부터 현대적인 형태의 대칭성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그에 따르면, 맥스웰의 초기 해법(하나의 양이 다른 하나의 강도를 결정)은 비전도성 공간을 통한 전자기 효과의 전파 메커니즘과 같은 새로운 문제를 낳았고, 그 문제의 풀이 과정에서 고안한 '변위 전류' 개념 덕분에 맥스웰은 전기와 자기가 서로를 산출하는 현대적인 형태의 대칭성(하나의 양의 변화가 다른 하나의 강도를 결정)을 완성할 수 있었다. 와이즈가 강조하기를, 맥스웰의 악명 높은 '변위 전류'는 대칭성에 대한 요구로부터 도출된 것이 아니라, 전기와 자기의 대칭성이 '변위 전류' 덕분에 완성된 것이다.

본문

서로 감싸 안은 전기와 자기

전자기장 이론의 개발 과정에서 맥스웰은 이 함축적인 이미지에 아주 많이 의존했다.


노턴 와이즈(M. Norton Wise)
정동욱 옮김


과학적 상상은 종종 시각적 이미지의 안내를 받았다. 그림이나 이미지 또는 형상화된 수학을 가지고 생각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중 물리 과학에서 유명한 사람들로는 보어, 아인슈타인, 맥스웰을 들 수 있다. 시각적 이미지의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를 통한 개념 형성 과정의 비밀은 종종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 글이 염두에 둔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왜냐하면 맥스웰의 이미지가 수행한 창조적 역할은 일단 밝혀내기만 하면 상대적으로 투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은 그의 전자기 이론의 출현 과정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예를 들어, 그의 아이디어는 패러데이의 아이디어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 전기장과 자기장의 유명한 상호 대칭성은 어떻게 처음 출현하게 되었는지와 같은 질문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전자기학으로 들어가기 전에, 일단 이미지의 일반적 기능에 대해 살짝 얘기를 하는 것이 맥스웰의 연구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측면들을 환기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시각적 이미지, 물리적 유비, 모형을 날카롭게 구분하지 않은 채, 나는 시각적 이미지라는 말을 — 일차적으로는 상징으로 기능하면서 보통은 은유적 함축을 가진 — 자연 현상에 대한 그림 형태의 표상을 가리키는 데 사용할 것이다. 태양 중심의 구를 통해 우주를 나타낸 케플러의 표상은 중심에 성부가 있는 구로서 기독교적 삼위일체를 은유하는 그러한 상징이었다. 한정된 궤도들을 통해 전자의 정상 상태를 나타낸 보어의 “형식적 표상”도 — 특히 각 상태들 사이에서 천이하는 전자의 “자유의지”에 대한 그의 은유와 결합될 때 — 그러한 상징이었다. 상징 또는 상형문자로서의 시각적 이미지는 핵심적으로 보이는 현상의 특징들을 다소 추상적으로 묘사하면서, [명시적으로] 묘사되지 않은 많은 특징들을 암시만 하거나 나타낼 수 있다. 때로는 물리적 모형이나 유비도, 때로는 수학적 구조도 그렇다. 한편 시각적 이미지의 은유적 함축들은 종종 강한 (심리적, 종교적, 철학적) 신념(commitments)을 드러내는데, 이는 개념 형성에서 이미지가 발휘하는 힘과 한 사람의 연구 과정에서 특정한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재등장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부분적으로는 이 상징적, 은유적 측면 때문에, 강력한 이미지들은 그들을 통해 나타내려고 했던 경험적 내용을 넘어서는 관계와 개념들을 암시한다. 구체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이미지는 모형과 유비만큼 발견적 장치로 많이 이용된다. 즉 이미지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상징으로 기능할 뿐 아니라, 우리가 발견하길 희망하는 것에 대한 길잡이로서도 기능한다. 이러한 발견적 장치들은 모두 특정한 성격의 문제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공통된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이 만들어내는 문제들의 답은 언제나 그들이 유래한 표상을 재구성하도록 이끈다. 그러나 분명히 상징으로 간주된 이미지는 모형과 유비에는 적용되지 않는 특별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물리적 실재에 대한 상징은 그것이 나타내는 내용이 극적으로 변하더라도 동일하게 유지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시각적 이미지의 역할은 낱말이나 수학적 기호의 역할과 비슷하다. 즉 이들은 지각(perception)을 형성하는 동시에 그들이 산출한 지각에 의해 의미가 변경된다. 그러나 시각적 이미지는 낱말에 비해 상징으로 이해하기 쉬우며, 추상적인 수학적 기호에 비해 더 즉각적인 지각적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강력한 개념의 형성에서 이미지가 수행한 역할에 대한 역사적 검토는 내용의 형성과 변경의 과정을 아주 날카롭게 보여줄 수 있다.

이와 같은 목표를 염두에 두고서 나는 여기서 아주 인상적인 사례에 대한 분석을 제시하려고 한다. 이 사례는 대략 1855년부터 1870년까지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이 형성되던 매 단계에 걸쳐 존재했던 서로 감싸 안은 곡선의 이미지를 다룬다. 두 개의 맞물린 고리로 상징되는 감싸 안기의 은유를 통해 맥스웰은 전류와 자기력의 상호 동역학을 처음으로 상상해냈다. 그의 원래 생각은 물리적으로나 수학적으로나 불완전했지만, 그것은 완성을 위한 동기이자 길잡이로 기능했다. 그 즉각적인 결과는 정적 상태의 전류와 자기력 사이의 대칭적인 관계들로 이루어진 집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처음의 성공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문제를 만들어냈고, 결국 우리가 현재 맥스웰 방정식으로 얘기하는 전면적인 재정식화를 이끌어냈다. 이 과정을 분명하게 보기 위해, 우선은 전기와 자기가 맥스웰에 의해 탈바꿈되기 전인 19세기의 서막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라플라스주의 이미지의 교체

뉴턴의 물질 입자간 보편 중력의 사례들과 그의 빛의 입자 이론을 따라, 물리학의 모든 것을 위한 정합적이면서도 생산적인 프로그램이 19세기 초 프랑스에서 탄생했다. 그것의 가장 걸출한 주창자를 기념하여 라플라스주의(Laplacian)라 불린 이 프로그램은 중력, 전기, 자기, 열과 같은 물리적 현상의 분야들을 각각 별개의 “물질”을 이용해 묘사하려고 했으며, 이때 각 물질의 작용은 그 구성 입자들의 독립적인 작용들의 총합이었다.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작용이 가능했는데, 입자들은 중력과 같은 힘을 원거리의 지점에 발휘하거나, 아니면 입자들 스스로가 빛 입자처럼 원거리의 지점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각 입자들 사이에 역제곱 힘이 작용하는 전기적 “유체들”과 자기적 “유체들”이 존재했다. 열 역시 유체 — 자기-반발적인 열소(caloric) 유체 — 로 간주되었지만, 일반 물체를 통한 열 전도는 물질 분자들 사이에서의 열소 입자의 확산을 통해 일어났다. 결국 각 영역의 지배적인 이미지는 독립적인 입자들 사이의 원거리 직접 작용 ― 힘을 통한 작용이든 이차적인 입자 전달을 통한 작용이든 ―의 이미지이다. 많은 현상에서 이 단일한 이미지는 물리학의 정합적인 설명 프로그램을 대표했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다양한 분과들을 공통된 물리적 기초 위에 통합시키지 못했다. 이러한 요구는 곧 폭넓게 인식되었으며, 맥스웰의 이론은 부분적으로 이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라플라스주의 유형의 역학적 환원은 그 지지자들에게 단지 연구를 가이드하는 발견법적 장치로만 인식된 것이 아니었다. 포아송(Poisson), 비오(Biot), 라플라스(Laplace) 등은 그것이 유일하게 수용 가능한 설명 방식이라고 주장했다.[1][2] 따라서 라플라스 프로그램은 수학적으로 정교하면서 매우 성공적인 프로그램으로서, 그것의 이미지가 교체될 수 있으려면 그 전에 그만큼의 강력한 저항이 필요했다. 가장 진지한 도전들은 1815년 이후 고도로 명료화된 수학적인 대안의 형태로 찾아왔는데, 프레넬은 빛의 파동 이론을, 푸리에는 열전도를 유동 과정(flow process)으로 다룬 거시적 서술을 제시했다. 그들의 수학적 서술 이면에는 새로우면서도 매우 단순한 이미지가 놓여 있었다. 프레넬과 푸리에는 모두 입자나 힘의 원거리 직접 전달을 여러 면에서 불분명한 매질을 통한 전파에 의해 효과가 간접 전달되는 그림으로 대체했다. 특히 푸리에는 자신의 열전도 분석의 실증적(positive), 기술적(descriptive) 성격을 강조했는데, 이로 인해 그의 분석은 열의 진정한 본성에 대한 어떠한 가설과도 차별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새로운 모형도 새로운 유비도 (직접적으로는) 제시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분석 기법과 새로운 이미지를 제시했다. 등온면들을 가로지르는 흐름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에서, 그는 단위 시간당 임의의 단위 면적을 가로지는 열의 양(유량[flux])과 면을 가로지르는 온도의 변화율(온도 경사도[gradient]) 사이의 단순한 선형 관계를 강조했다. 벡터 표기법을 사용하면, 이는 [math]{\bf Q} = k {\bf I}[/math]로, 단 [math]\bf Q[/math]는 열의 유량(패러데이와 맥스웰의 언어에서는 “양(quantity)”), [math]\bf I[/math]는 온도 경사도(“강도(intensity)”), [math]k[/math]는 매질의 상대 전도도이다.

푸리에의 서술에서 온도 경사도는 사실상 매질을 통한 열 흐름의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 경사도 개념은 나중에 ― 산의 가파름과 유비되는 ― 독립적이고 근본적인 지위로 끌어올려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라플라스주의 그림에서 그 경사도는 이차적인, 순전히 수학적인, 표현에 불과했다. 이와 비슷하게, 빛의 파동 이론은 과거 입자들의 흐름으로 서술되었던 것을 매질에서의 변위(displacement)와 긴장(tension)이라는 두 개념으로 대체했다. 사후적 관점에서 보면, 두 가지[푸리에와 프레넬의] 새로운 전파 도식은 모두 전파(propagation)를 ― 하나는 양, 다른 하나는 강도를 나타내는 ― 두 개의 매개변수로 특성화한 셈이었다.

열에 대한 푸리에의 서술은 원거리 직접 전달이라는 라플라스주의 그림을 간접적인 전파의 관점으로 변모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화된 진술은 푸리에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함의를 가지고 있다. 이전의 그림은 열소와 같은 물질 입자들의 이동뿐 아니라 비물질적인 원거리 전기력이나 자기력에도 적용되었기 때문에, [푸리에의] 변형된 그림은 잠재적으로는 열전도뿐 아니라 힘의 전달에도 적용될 수 있었다. 이러한 잠재력은 그린(Green), 가우스(Gauss), 휴얼(Whewell), 그리고 특히 윌리엄 톰슨(William Thomson, 후에 켈빈 경이 됨)과 같이 수학적으로 경도된 물리학자들에게 다양한 수준으로 인식되었다. 톰슨은 1840년대에 이 유비를 명시적으로 광범위하게 발전시키기 시작했지만, 그의 유비는 주로 수학적 유비였다. 그는 양-강도의 구분과 관련될 수도 있었던 물리적 유비 바로 앞에서 멈췄다. 그러나 1850년대 초 맥스웰이 톰슨으로부터 이 수학을 배웠을 때, 맥스웰은 물리적 기하학이라 불릴 만한 것으로서 그것을 배웠다. 그는 수학적 형식 그 자체에 모종의 실재성을 부여했다. 따라서 양-강도 구분이 나타난 완전한 유동 그림(flow picture)은 전기와 자기에 대한 그의 새로운 종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었다. 양-강도 구분은 전기력과 자기력 각각에 대해 두 개의 장(현대적 표기법으로는 [math]\bf {E, D}[/math][math]\bf {H, B}[/math])을 가진 그의 이원적 장 서술 방식을 위한 기본 원천 중 하나였음이 아래에서 드러날 것이다.

상호 변환 가능성과 패러데이의 이미지

푸리에와 프레넬은 라플라스주의 물리학의 정합성을 깨뜨리긴 했지만, 치명적인 위협을 주진 못했다. 그러한 위협은 자연에서 나타나는 힘(powers or forces)의 상호 변환의 몇몇 발견으로부터 유래했다. 볼타 전지에서 나타나는 화학적 힘에서 전기적 힘으로의 변환(볼타, 1800), 전자기 작용에서 나타나는 전기적 힘에서 자기적 힘으로의 변환(외르스테드, 1820), 전자기 유도에서 나타나는 자기적 힘에서 전기적 힘으로의 변환(패러데이, 1831)이 그에 해당한다. 이러한 상호 변환들은 독립적으로 보존되는 유체들 사이에서는 일어날 수 없었다. 최소한 전기와 자기의 모든 측면들은 공통의 토대로 환원되어야 했다. 오늘날 우리는 그러한 통합의 필요성을 에너지 보존을 통해 인식하고 있는데, 이는 1840년대에야 하나의 원리로 출현했다.[3]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통합은 적어도 세 가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추구됐다. 첫 번째 대안은 많은 현상을 오직 전기 입자들 사이의 복잡한 힘으로 환원함으로써 원거리 작용의 관점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대륙의 분석가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접근이 널리 채택되었으며,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힘이 [입자의] 속도와 가속도에 의존하는 빌헬름 베버(Wilhelm Weber)의 법칙은 1840년대 최고의 성취였다. 비교적 많은 노력에 비해 처음에는 별 성과가 없었던 두 번째 대안은 열과 빛처럼 전기와 자기를 빛의 파동 이론에서 전제하는 빛 에테르의 역학적 과정으로 환원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품은 에테르는 원래 휴얼(Whewell), 허셜(Herschel), 챌리스(Challis)와 같은 영국의 자연철학자들 사이에서 많이 유행했다. 이것은 곧바로 톰슨과 맥스웰의 수학적 작업으로 이어졌는데, 이 작업은 세 번째 대안의 영향도 강하게 받았다.

세 번째 대안은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에 의해 추구되었다. 무게 없는 유체(subtle fluid)와 에테르 대신, 패러데이는 자연의 힘들(powers and forces)을 얘기하면서 그것들을 실험적으로 조사했다. 그는 상호 변환되는 힘들 사이의 분명한 관계들에 집중하면서 모든 자연적 힘들의 통일성을 밝혀내고 싶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모형을 만들지 않으면서 힘들 사이의 관계를 기술하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닌데, 패러데이의 연구에서 이미지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기와 자기 현상에 대한 패러데이의 서술과 분석들은 모두 힘의 선(lines of force)이라는 그림 이미지로 표현되었는데, 그 힘의 선은 ― 표면상 편견 없이 ―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작용을 나타낼 수 있었다. 우리가 이 그림들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그 그림들은 맥스웰이 그로부터 추출한 이론적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기나긴 길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19세기 전자기의 이미지는 그림 1에 그려져 있듯이 전류의 자기력이 도선을 둘러싼 (그리고 도선과 수직인) 원의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외르스테드의 발견에서 유래했다. 전류 곡선과 자기 곡선으로 이루어진 이 두 “힘의 축”은 ― 각각 다른 중요한 표상을 가지긴 했지만 ― 패러데이의 근본적인 힘의 선이 되었다. 보다 복잡한 그림 또는 모형들은 모든 자기력이 전류에서 나온다는 앙페르(Ampère)의 제안으로부터 출현했다. 예를 들어 천연 자석은 작은 전류 회로가 둘러싼 철 분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와 유사하게, 어떠한 작은 자석도 전류 회로로 대체될 수 있었으며, 잘 알려진 자석의 인력과 척력은 전류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었다. 그림 2는 그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라플라스주의 전통에서 연구한 앙페르는 이러한 상호작용들을 전류의 미소 부분 또는 요소들 사이의 힘에 대한 원거리 작용 법칙으로 환원시켰다. 단순화된 형태에서, 인접한 평행 전류 요소들은 언제나 끌어당기며, 인접한 역평행 전류 요소들은 반발한다.

패러데이는 원거리 작용의 실재성도 자의적으로 정의된 전류 요소의 적절성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는 평행한 두 전류를 나타내는 두 인접한 전기적 힘의 선[전류 곡선]이 (전체로서 간주될 경우) 횡적으로 끌어당긴다는 점에는 정말로 동의했다. 더 나아가, 마치 회로의 서로 마주보는 역평행 요소들이 서로를 밀어내듯, 폐회로 형태의 모든 [전류] 곡선은 늘어나려는 경향이 있다. 패러데이는 그림 3에서 묘사된 것과 같은 힘의 선들의 횡적·종적 관계를 전기적 힘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서술적 기초(descriptive basis)로 채택했는데, 이는 전류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전류 곡선들은 횡적으로는 끌어당기며 종적으로는 늘어난다.

이와 밀접하게 연관된 자기력선에 대해, 패러데이는 이를 꼬리에 꼬리를 문 형태로 배치된 아주 작은 자석들의 연쇄로 생각함으로써, 결국 자기 곡선들이 종적으로는 수축하고 횡적으로는 반발하는 효과를 가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는 그림 4a에서 막대 자석의 [자기] 곡선들에 묘사되어 있다. 즉 자기 곡선과 전류 곡선은 각자의 횡적 종적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만약 그림 4b에 그려진 것처럼 막대 자석이 전류 회로들의 집합으로 대체된다면, 이러한 두 관계 집합은 상호적(reciprocal)으로 보인다. 전류 곡선들 사이의 횡적인 끌어당김은 자기 곡선의 종적 수축과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고, 전류 곡선의 종적 팽창은 자기 곡선들 사이의 횡적 반발과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다. 패러데이는 두 ‘힘의 축’의 이러한 상호 관계를 서로 수직으로 맞물린 — 그리고 상호성의 측면에서 통합된 — 두 개의 연결된 고리로 상징화했는데, 그 그림은 그 단순성 때문에 곧 맥스웰의 지속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 그 그림은 그림 5에 복제되어 있다.

패러데이가 말하길, 수직으로 맞물린 전기와 자기의 고리는 어떤 통일성을 보여주는데, 즉 “겉보기에 전기와 자기라는 두 개의 힘 또는 두 가지 형태의 힘으로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단일한 상태(oneness of condition)”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4] 이 문장은 패러데이가 힘의 선의 본성을 알아내기 위해 20년이 넘는 싸움을 벌인 뒤인 1851년의 논문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 무렵 그는 다수의 관련 개념들을 발전시켰는데, 그중 맥스웰에게 곧바로 중요했던 것은 힘의 선들의 전도(conduction)라는 개념과 그 선들에 의해 표상되는 힘(power)의 (푸리에의 구분과 비슷한) 양과 강도의 구분이었다.

이 모든 아이디어들은 원래 볼타 전지와 같은 전기화학적 과정에 대한 패러데이의 분석으로부터 발전된 것이다. 그는 볼타 전지의 두 금속판[전극] 사이의 전기적 긴장을 상상했는데, 그에 따르면 그 전기적 긴장은 물의 산소와 수소에 대한 두 금속판의 친화력 차이에 의해 분극된(polarized) 물 분자들의 사슬들 속에 내재했다. 그러한 사슬은 각각 하나의 전기력선을 나타냈다. 만약 두 금속판이 도체 — 전기적 긴장을 유지할 수 없는 물질 — 와 연결되[어 회로를 이루]면, 전체 사슬이 순간적으로 끊어지면서 도체 양단의 전기적 긴장이 해소되었다가, 곧이어 금방 재결합했다 다시 와해된다.이 과정이 계속되면 회로를 통해 전기의 흐름[즉, 전류]이 만들어진다.

이 그림에서는 전류의 양이 와해와 재결합을 반복 중인 긴장의 선(lines of tension)의 개수, 즉 금속판의 크기 또는 선들의 임의의 횡단면을 관통하는 선의 개수에 의존한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와 유사하게, 연결된 회로에서 전도를 방해하는 임의의 저항을 극복하기 위한 전류의 힘, 즉 전류의 강도는 힘의 선의 종적 긴장을 만들어내는 전지의 힘 또는 그 구성요소들 사이의 상대적 친화력에 의존할 것이다. 이제 모든 전류는 양과 강도라는 두 가지 요소를 가지게 되었는데, 전자는 힘의 횡적 척도이고 후자는 힘의 종적 척도가 된다. 임의의 저항을 가진 회로에서, 전류의 실제 양은 그 강도와 회로의 전도 역량에 비례하게 되는데, 이는 [비록 패러데이에게 그 의미는 매우 달랐을지라도][2], pp. 142-148 앞에서 본 푸리에의 [열]전도 방정식과 매우 유사한 묘사이다. 따라서 수학적으로 경도된 맥스웰이, 특히 옴(Ohm)과 키르히호프(Kirchhoff)의 전기 전도 방정식을 배웠을 때, 그 두 가지[푸리에의 열 전도와 패러데이의 전기 전도]를 하나, 즉 [math]\mathbf Q = k \mathbf I[/math]로 읽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패러데이는 인접한 입자들 사이의 힘의 선의 전도에 대한 그의 도식을 정전기와 자기에 차례로 적용하여, 1950년 무렵에는 자성 물질들과 공간을 통해 전도되는 자기력선에 대한 고도로 정식화된 버전의 도식을 발전시켰다. 한 점에 작용하는 힘이 그와 멀리 떨어진 지점에 있는 점 입자들의 작용에 기인하는 대륙적인 힘(force) 개념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으로, 그는 매질 또는 공간을 통한 힘(power)의 전도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그의 추론에 따르면, 물체에 작용하는 역학적 힘(pondermotive force)은 전도 과정 또는 힘의 장에 그 물체가 동참한 결과일 뿐이었다. 1854년 맥스웰이 패러데이의 연구를 접했을 때, 전도의 양과 강도라는 횡적 속성과 종적 속성은 전기력선과 자기력선의 상호적인 횡적/종적 동역학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어 있었다. 다만 패러데이는 그 정확한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불완전하게만 이해하고 있었음을 인정했다. 나는 이것이 맥스웰의 첫 번째 전자기 연구에서 그가 풀고자 했던 핵심 문제였음을 보일 것이다.

맥스웰의 초기 개념

1854년 맥스웰은 패러데이의 힘의 장 개념에 기초하여 전류와 자기력 사이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일에 착수했다. 그는 톰슨(Thomson)에게 그의 초기 아이디어를 알려주었다.[5]

나는 당신이 “자기력선”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패러데이는 그것을 엄청나게 사용하는 것 같으나, 다른 사람들은 [앙페르처럼] 전류 요소들의 직접적인 인력이란 개념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이를 모든 전류가 자기력선을 산출하는 한편 그것이 가로지른 자기력선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또한 “자기 분극(magnetic polarization)”을 “자기장” 또는 공간의 속성으로 간주하고 이러한 관점을 따라 기하학적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면 뭔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맥스웰은 이제 전류와 자기장의 관계에 대한 기하학적 서술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전체적인 착상을 기본적인 정리들로 구성된 간단한 집합으로 추출해 냈는데, 이는 곧 그의 전형적인 작업 방식이 된다. 아래에 제시된 두 개의 정리는 맞물린 고리의 패러데이식 상호 동역학을 양과 강도의 언어로 표현하고자 한 직접적인 시도였다.

여기서부터 나는 수학에 익숙한 독자들을 위해 대괄호 속에 현대적인 방정식을 추가했다. 표 1은 이 방정식의 발전 단계를 보여주며 그 방정식들을 현대적인 맥스웰 방정식과 비교하고 있다. 수식을 번역하면서 나는 전기와 자기에 대한 묘사 사이의 대칭성(과 숨은 대칭성)을 강조하기 위해 양과 강도라는 용어를 항상 [math]\bf Q[/math][math]\bf I[/math]라는 기호와 함께 사용했다. 이는 맥스웰의 맨 처음 이미지와 대응되며 그가 다양한 기호로 가리키고자 했던 장 변수들의 일관된 기하학적 의미와도 대응되는데, 그의 장 변수들은 궁극적으로는 유동량(양)과 힘(강도)으로 분류되었었다.[6][7] 맥스웰 방정식의 진화 과정을 편리하게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더라도, 현재의 논의에서는 그 어떤 것도 대괄호 속의 방정식에 의존하지 않으며, 그 방정식들로 인해 맥스웰의 이미지가 지닌 우선적인 힘이 가려져서는 안 될 것이다. 톰슨에게 보낸 처음의 편지에서 맥스웰은 자신의 정리들에 관한 어떠한 방정식도 제시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바로 이 이야기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내 생각에, 이것이 핵심적이라는 것은 맥스웰이 자신의 이후 논증을 발전시킨 방식에 대한 일반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이를 마음에 품고서, 우리는 전류 곡선과 자기력선의 초기 동역학으로 돌아갈 것이다.

자기력선의 횡적 팽창에 대한 자연스러운 척도는 단위 면적을 통과하는 선의 양 또는 개수 [math]{\bf Q}_{\rm m}[/math]였으며, 선의 종적 수축 총 경향의 자연스러운 척도는 선을 따른 강도 [math]{\bf I}_{\rm m}[/math]의 총합이었다. 이러한 번역을 통해, 나는 자기력선의 종적 수축과 그 선을 통과하는 전류 곡선들의 횡적 수축 [math]{\bf Q}_{\rm e}[/math] 사이의 패러데이식 동일성이 맥스웰의 첫 번째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나는 이를 약간 단순화되고 회고적인 형태로 표현할 것이다.

1) 폐곡선 한 바퀴를 따라 적분된 자기 강도는 그 폐곡선 내부를 통과하는 전류의 총량에 의해 측정된다.[8]

[math]\left[ \oint {\bf I}_{\rm m} \cdot d {\bf λ} \propto \iint {\bf Q}_{\rm e} \cdot d {\bf σ} \right][/math]

단, 여기서 [math]d \bf λ[/math]는 선 요소이고 [math]d \bf σ[/math]는 면적 요소이다.

이 정도는 단지 전류와 자기력의 관계에 대한 앙페르(Ampère)의 연구 결과로 보일지도 모른다. 현재 앙페르의 법칙이라 불리는 이 관계는 맥스웰에 앞서 이미 가우스와 톰슨 모두에 의해 활용되고 확장되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정리 하나만 이용했는데, 그들에게 힘은 단 하나의 측면만을 가졌기 때문이다. 맥스웰에 의해 사용된 정리 2는 패러데이를 제외하면 어떠한 연구에서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내가 옳다면, 정리 2는 정리 1의 암시를 따라 패러데이의 맞물린 고리의 대칭성을 완성하려는 느슨한 시도로서, 임의의 면적을 통과하는 자기력선들의 횡적 인력과 그 영역을 둘러싼 전류의 종적 팽창 사이의 동일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를 또 단순화된 형태로 표현하면)

2) 임의의 면적을 통과하는 자기의 총량은 그 주위를 따라 한 바퀴를 도는 전류에 의해 측정된다.

[math]\left[ \oint (전류?) \cdot d {\bf λ} \propto \iint {\bf Q}_{\rm m} \cdot d {\bf σ} \right][/math]

이 두 정리가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의 토대였다고 한다면(매우 그렇다), 그의 가장 심오한 통찰은 애초에 하나였던 법칙으로부터 두 개의 법칙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진전은 열 전도에 대한 푸리에의 변환을 연상시킨다는 점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거의 똑같은 변환이었지만, 여기서는 전기력과 자기력에 대한 톰슨의 수학적 열 유비에 패러데이의 양-강도 물리학을 다시 끼워 넣음으로써 도달할 수 있었다.

이제 정리 2와 관련하여 다음의 두 가지 관찰을 손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그 정리는 적힌 대로라면 잘못된 정리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양은 전류뿐 아니라 회로의 크기와 모양에도 의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 주위를 따라 한 바퀴를 도는 전류”의 의미는 (정리 1과의 대칭성을 고려할 경우 그래야 할) “주위를 따라 한 바퀴 적분된 전류의 강도 [math]{\bf I}_{\rm e}[/math]”도 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자기의 양은 전류의 강도 또는 긴장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맥스웰은 패러데이식 동역학적 상호성을 따르지 않았거나, 아니면 그것의 정확한 수학적 표현에 관하여 모종의 곤경에 처해 있었다. 모든 증거는 후자의 설명을 가리킨다. 내 생각에, 우리는 여기서, 즉 그 정리의 느슨한 언어적 진술 속에서, 만약 정확하게 진술됐다면 맥스웰이 곧장 틀렸다고 보았을 이미지의 일차적인 은유적 의미를 목격한 셈이다. 그러나 일단 느슨하게 사용되고 나면, 이미지는 복잡한 물리적 상황을 시각화하는 방법으로서 오래된 문제를 다루는 창의적인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다.

표 1. 1854년 톰슨에게 보낸 그의 첫 편지에서부터 1868년 "빛의 전자기장 이론"에 이르기까지 맥스웰 방정식(의 축약된 집합)의 진화 과정에서 등장한 형태들. 에너지의 문제와 그것과 역학적 힘이 맺는 관계는 생략되었다. 가장 오른편의 열은 양과 강도를 현대적 기호로 번역하였다.
1854년
(언어적 서술의 재구성)
1855년
(여기서는 미분 형태만)
1868년
(전하 없는 공간의 경우)
현재
(전하가 포함된 경우)
[math]{\bf Q}_{\rm e}^\prime = k_{\rm e}^\prime {\bf I}_{\rm e}[/math] [math]{\bf D}=\epsilon {\bf E}[/math]
[math]{\bf Q}_{\rm m}[/math], [math]{\bf I}_{\rm m}[/math] (기하학적으로 구분됨) 법칙 2 [math]{\bf Q}_{\rm m} = k_{\rm m} {\bf I}_{\rm m}[/math] [math]{\bf Q}_{\rm m} = k_{\rm m} {\bf I}_{\rm m}[/math] [math]{\bf B}=\mu {\bf H}[/math]
[math]{\bf Q}_{\rm e}=k_{\rm e} {\bf I}_{\rm m}[/math] (단순화됨) 법칙 4 [math]{\bf Q}_{\rm e} = k_{\rm e} {\bf I}_{\rm e}[/math] [math]{\bf J}=\sigma {\bf E}[/math]
[math]\nabla \cdot {\bf Q}_{\rm m}=0[/math] (암묵적) [math]\nabla \cdot {\bf Q}_{\rm m}=0[/math] [math]\nabla \cdot {\bf Q}_{\rm m}=0[/math] [math]\nabla \cdot {\bf B}=0[/math]
[math]\nabla \cdot {\bf Q}_{\rm e}=0[/math] (닫힌 회로에서) [math]\nabla \cdot {\bf Q}_{\rm e}=0[/math] [math]\nabla \cdot {\bf Q}_{\rm e}^\prime=0[/math] [math]\nabla \cdot {\bf D}=4 \pi e[/math]
[math]\oint {\bf I}_{\rm m} \cdot d {\bf λ} = \iint {\bf Q}_{\rm e} \cdot d {\bf σ}[/math] 법칙 3 [math]\nabla \times {\bf I}_{\rm m}={\bf Q}_{\rm e}[/math] [math]\nabla \times {\bf I}_{\rm m}=4 \pi \frac{\partial {\bf Q}_{\rm e}^\prime}{\partial t}[/math] [math]\nabla \times {\bf H}=4 \pi {\bf j} + 4 \pi \frac{\partial {\bf D}}{\partial t}[/math]
[math]\oint (전류?) \cdot d {\bf λ} = \iint {\bf Q}_{\rm m} \cdot d {\bf σ}[/math] 법칙 1 [math]\nabla \times {\bf I}_{\rm o}={\bf Q}_{\rm m}[/math] [math]\nabla \times {\bf A}={\bf B}[/math]
[math]\oint {\bf I}_{\rm e} \cdot d {\bf λ} = - \frac{\partial}{\partial t}\iint {\bf Q}_{\rm m} \cdot d {\bf σ}[/math] 법칙 6 [math]{\bf I}_{\rm e}=- \frac{\partial {\bf I}_{\rm o}}{\partial t}[/math] [math]\nabla \times {\bf I}_{\rm e}=- \frac{\partial {\bf Q}_{\rm m}}{\partial t}[/math] [math]\nabla \times {\bf E}=- \frac{\partial {\bf B}}{\partial t}[/math]

'상호 감싸 안기'의 정식화

이론적 밑그림 이후 고작 1년 조금 지났을 무렵, 맥스웰은 전기와 자기에 대한 자신의 첫 논문을 통해 새로운 구조를 탄생시켰다. 그는 이를 위해 패러데이의 맞물린 고리의 통일적 이미지에 부합하는 새로운 수학적 묘사를 발명했다. 사실, 그는 이제 맞물린 힘의 축이라는 패러데이의 매혹적이지만 다소 건조한 묘사를 “서로 감싸 안은 곡선”이라는 용어와 함께 완전히 새로운 수준의 은유적 호소력으로 끌어올렸다.[9][10] 맥스웰의 창조 과정은 과학사에서 중요한 관심 거리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순수한 상력(imagination)의 중요성을 간단하고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 시점의 맥스웰은 (재능은 대단했지만) 정교한 수학자도 아니었고, 실험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숙련된 전기학자도 아니었다. 그가 사용한 수학은 전적으로 전기와 자기에 대한 톰슨의 최근 연구에서 온 것이었다. 실제로 "엉성한 논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아이디어 전부가" 마땅히 톰슨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맥스웰은 자신의 연구를 계속하길 주저했을 정도였다.[11]

서로 감싸 안은 곡선의 그림이 곡선 사이의 두 가지 관계를 상징했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그 하나는 각 힘의 횡적 양과 종적 강도를 관련짓는 전도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횡적 힘과 종적 힘을 연관짓는 동적 상호성이다. 맥스웰의 중대한 논문 “패러데이의 힘의 선에 관하여(On Faraday's lines of force)”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분은 이 두 가지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1부에서 그는 힘의 선을 저항이 있는 매질을 통한 유체의 흐름에 빗대는 유비를 길게 발전시켜, 힘에 대한 전도 그림을 전통적인 원격 작용 그림만큼 직관적으로 명쾌한 그림으로 만들었다. 2부에서 그는 전류와 자기력선 사이의 상호성을 다시 발전시켰다. 그리고 여기서, 즉 앞서 살펴봤던 그의 정리 2가 부적절했던 결정적인 지점에서, 그는 어떻게 연속적인 흐름의 수학과 일관된 새로운 강도가 정의될 수 있는지 보임으로써, 앞의 두 정리의 숨겨진 대칭성을 완성할 수 있었다.

정리 1(앙페르의 법칙)은 임의의 면적을 관통하는 전류 양의 합은 그 주위를 감싼 자기 강도의 합과 같다고 말했다. 이제 맥스웰은 수학적으로 이 관계가 연속된 닫힌 회로를 형성하는 전류에만 의존한다[[math]\nabla \cdot {\mathbf Q}_{\rm e} =0[/math]]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리 2는 임의의 면적을 관통하는 자기 양에 관한 역의 방정식으로 의도되었는데, 그 자기 양은 그 주위를 감싼 전류의 종적 속성과 관련되어 있어야 했지만, 그것은 보통의 전류 강도일 수 없었다. 맥스웰은 요구되는 종류의 강도가 존재한다고 그냥 가정했는데, 그것을 위한 유일한 수학적 조건은 자기 양이 마치 연속적인 흐름처럼 행동한다는 것[[math]\nabla \cdot {\mathbf Q}_{\rm m} =0[/math]]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1부의 유비적인 힘 전도 그림은 자기력과 전류 모두의 닫힌 흐름 회로[[math]\nabla \cdot {\mathbf Q}_{\rm m} =0; \nabla \cdot {\mathbf Q}_{\rm e} =0[/math]]에 적용된 그림으로서, 2부의 서로 감싸 안은 곡선들 사이의 상호성이 가능함을 보장했다. 물질의 가정된 전자기적 상태에 대한 패러데이의 오래된 이름, 전기적-긴장 상태(electrotonic state)를 가져옴으로써, 맥스웰은 그의 새로운 발명을 전기적-긴장 강도라고 불렀다. 그것은 아직 물리적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적으로 상상 가능했다.[9], p. 205:

우리는 공간 내 임의의 지점의 전기적-긴장 상태를 크기와 방향이 있는 양으로 상상할 수 있으며, 공간 내 일부 영역의 전기적-긴장 조건은 [그 안의] 모든 지점마다 가정된 전기적-긴장 상태와 대응되는 방향과 크기를 가진 모종의 양—그것이 속도든 변위든 힘이든—이 있는 임의의 역학적 시스템을 통해 표상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표상은 어떠한 물리적 이론도 필요로 하지 않는데, 그것은 일종의 인공적인 기호 체계일 뿐이다.

이 새로운 강도의 추가는 겉보기에 작은 변화지만, 이를 통해 맥스웰은 전자기적 공간 내 전류 곡선과 자기력선 사이의 상호적인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애초의 기획을 수학적으로 완성했다. (오늘날 우리는 그가 — 맥스웰 본인이 나중에 전기적-긴장 상태를 부른 것처럼 — 벡터 포텐셜을 발명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 성취를 움켜쥐기 위해, 그는 단순한 법칙들의 집합으로 다시 돌아갔는데, 두 개의 법칙은 전도 대칭성을 위한 것이었고, 다른 두 개는 상호성을 위한 것이었다.[9], p. 206

법칙 1. [임의의] 면적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총 전기적-긴장 강도[[math]{\mathbf I}_{\rm o}[/math]]는 그 면적을 관통하는 자기 유도의 양, 즉 그 면적을 관통하는 자기력선의 수와 같다. [앞의 정리 2와 비교해볼 것.]

[math]\left[ \oint {\mathbf I}_{\rm o} \cdot d {\bf λ} = \iint {\mathbf Q}_{\rm m} \cdot d {\bf σ} \text{ 또는 }\nabla \times {\mathbf I}_{\rm o} = {\mathbf Q}_{\rm m} \right][/math]

법칙 2. 임의의 점의 자기 강도는 전도 방정식이라 불리는 선형 방정식에 의해 자기 유도 양과 연결되어 있다. 그 방정식은 다음과 같다.

[math]\left[ {\mathbf Q}_{\rm m} = k_{\rm m} {\mathbf I}_{\rm m} \right][/math]

법칙 3. 임의의 면적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전체 자기 강도는 그 면적을 통과하는 전류 양과 같다. [앞의 정리 1과 비교해볼 것.]

[math]\left[ \oint {\mathbf I}_{\rm m} \cdot d {\bf λ} = \iint {\mathbf Q}_{\rm e} \cdot d {\bf σ} \text{ 또는 } \nabla \times {\mathbf I}_{\rm m} = {\mathbf Q}_{\rm e} \right][/math]

법칙 4. 전류의 양과 강도는 전도 방정식 체계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그 방정식은 다음과 같다.

[math]\left[ {\mathbf Q}_{\rm e} = k_{\rm e} {\mathbf I}_{\rm e} \right][/math]

이 네 개의 법칙은 서로 감싸 안은 곡선들을 표현하고 있지만, 이들은 완전히 일반적이며 닫힌 고리 주변의 잇따른 힘의 선들 자체에는 의존하지 않는다. 공간 속에서 상상된 임의의 전류와 자기력선의 서로 감싸 안은 고리들은 실제의 전류 회로와 분명한 자기력선 사이의 관계와 동일한 관계를 산출할 것이다. 이 정리들은 어떠한 영역에서든, 그 영역이 얼마나 작든 상관없이, 한결같은 전자기장의 구조를 표상하고 있다.

전도 방정식과 상호 방정식이 두 가지 종류의 대칭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전기적-긴장 강도는 다른 전도 방정식과 연결되지 않은 채 법칙 1에 홀로 등장한다. 그 점에서 전기 곡선과 자기 곡선에 대한 묘사는 완전히 대칭적이진 않다. 전자기 이론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여기서 표현된 대칭성들이 오늘날의 맥스웰 방정식과 전혀 닮지 않았다는 점과, 이 법칙들이 정적-상태(steady-state, 전류가 일정한 상태)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전자기 유도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12] 전자기 유도는 이후의 발전 단계에서만 맥스웰 이론의 중심 항목이 되었다. 물론 그것은 여기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데, 단 대칭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닫힌 회로를 통과하는 자기의 양이 변화할 때 회로에 전류가 생성되는 현상 — 전자기 유도 — 은 패러데이의 첫 번째 주요 발견이었으며, 언제나 그의 가장 유명한 발견이었다. 1850년 경의 어떠한 신뢰할 만한 전기 이론도 이를 포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맥스웰은 1854년의 연구 초창기부터 전기 곡선과 자기 곡선의 일반적인 관계를 통해 전류의 유도를 기술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패러데이를 느슨하게 따름으로써, 그는 그 효과를 원래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13]

임의의 선을 따른 기전력[선을 따라 전류를 생산하려는 추진 강도]은 단위 시간당 그 선이 자르는 [자기력]선의 수와 같다. 따라서 주어진 회로의 총 기전력은 단위 시간당 그것을 통과하는 [자기력]선수의 감소량에 의존한다.

[math]\left[ \oint {\mathbf I}_{\rm e} \cdot d \mathbf {\lambda} \propto - \frac{\partial}{\partial t} \iint {\mathbf Q}_{\rm m} \cdot d {\bf σ} \right][/math]

그러나 이러한 묘사에는 문제가 있었는데, 이는 맥스웰보다 훨씬 전에 패러데이에 의해 인식된 것이었다. 어떻게 회로를 단지 통과만 하는 자기 양이 회로에 기전력을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그것은 또 다시 원거리 작용 아닌가? 1885년의 맥스웰은 “선의 수의 변화에 의존하는 이러한 종류의 힘이 이러한 선의 수의 변화에 의해서만 측정되는 모종의 상태의 변화 때문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9], 187쪽 그것은 패러데이가 원래 전기적 긴장 상태를 제안할 때의 추론이었다. 자기장 속의 도선은 아마도 독특한 상태에 있었을 것이고, 장이 제거될 때 그 상태의 붕괴가 유도 전류로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다. 전기적 긴장 상태에 대한 맥스웰의 새로운 수학적 표현은 그 조건을 정확히 만족시킨다. 이는 “회로를 통과하는 자기 유도의 양에 대한 고려를 피하는 방법”을 제공했다.[9], 203쪽 법칙 6은 위에서 인용한 내용을 따라 관련된 관계를 표현했다.[14]

법칙 6. 도선의 임의의 부분에 대한 기전력은 그 부분의 전기적-긴장 강도의 순간 변화율에 의해 그 크기와 방향이 결정된다.

[math]\left[ {\mathbf I}_{\rm e} = - \frac{\partial {\mathbf I}_{\rm o}}{\partial t} \right][/math]

닫힌 회로에 적용될 경우, 이는 “닫힌 회로의 기전력이 회로를 따라 한 바퀴 도는 총 전기적-긴장 강도의 단위 시간 당 변화율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했다.[9], 207쪽

[math]\left[ \oint {\mathbf I}_{\rm e} \cdot d {\bf λ} = - \frac{\partial}{\partial t} \oint {\mathbf I}_{\rm o} \cdot d {\bf λ} \right][/math]

이제는 회로의 전기적-긴장 강도 자체만 간접 작용이었다.

전자기파와 빛

전기적-긴장 상태의 도입을 통해, 맥스웰은 전자기에 대한 통합적인 기하학적 또는 구조적 묘사로 보이는 무언가를 성취했는데, 거기서 구조적으로 강조된 것은 전류와 자기력의 정적-상태(steady-state) 관계였다. 그러나 그 성취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새로운 문제들을 낳았다. 전기적-긴장 상태의 물리적 본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떻게 자석이나 전류 속의 원천으로부터 비전도성 공간을 통해 전파되는가? 그것이 이차 회로에 도달했을 때, 그것은 어떻게 거기서 전류를 유도하는가? 영국의 수학적 자연철학의 유행을 따르고 있었던 맥스웰에게, 이 문제들은 빛 에테르의 역학적 모형에 기초한 답을 제안했다. 이러한 새로운 초점은 그의 사고의 방향을 극적으로 변화시켰을 것이며, 결국에는 서로 감싸 안은 곡선이라는 상징이 의미했던 내용까지도 변화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미지 자체는 그것의 상징적 형태와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유지했을 것이다.

맥스웰이 그 문제에 접근한 방식들 중 하나를 통해,[15][16] 그 문제를 조금 더 분명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두 개의 회로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전지에 연결되어 있다. 사고 실험이 시작하면서 스위치가 닫힐 예정이라고 생각해보자. 위에서 소개한 맥스웰의 1855년 분석에 따르면, 전류의 증가는 주위 공간 전역에서 전기적-긴장 상태의 증가를 산출할 것이며, 그것이 이차 회로에 도달하면 유도 전류로 나타날 것이다. 이 과정은 거시적으로 두 회로를 관통하는 자기 곡선 고리의 증가에 따른 결과로 묘사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전기적-긴장 상태의 물리적 본성에 대해서도 두 회로 사이의 비전도성 공간을 통한 그것의 전달 방식에 대해서도 아무런, 심지어 구조적인, 이해도 제공하지 않았다. 더구나 고리의 이미지는 열린 회로에서의 유도라는 특이한 사례에는 적용되지 않았는데, 거기서 그 효과는 도체의 열린 양끝 사이의 정전기적 긴장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정전기력과 전기적-긴장 강도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맥스웰은 자신의 1855년 논문에서 이 문제들에 대해 고민했었는데, 거기서 그는 나중에 전기적-긴장 상태에 대한 역학적 표상을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었다. 그는 열린 회로에 적용 가능한 모종의 형식적 수학들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명시적으로는 “우리는 닫혀 있지 않은 전류의 자기 효과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며 그것의 적용을 닫힌 회로에만 한정했었다. 열린 회로와 닫힌 회로의 구분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그는 패러데이를 따라 정전기 유도(긴장)와 전류 전도가 매질의 저항의 정도에 따라서만 달라지는 동일한 현상으로 믿었었다. “정전기와 유체 운동 사이의 유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완벽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정전기 유도는 전류와 마찬가지로 전도에 의해 작동하지만, 전도되는 양은 유전체의 엄청난 저항 때문에 극히 미미하다”.[17] 그렇다면 설마 정전기 유도가 닫힌 회로에서 일어나는 걸까? 전류의 입장에서 불완전한 회로는 사실은 열린 공간에서 정전기 유도에 의해 닫혀 있는 것 아닐까? 맥스웰은 1855년 버전의 명시적 형태에서 그 문제를 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게 아니라면 그 문제를 좀더 품고 있는 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개념의 많은 요소들은 새로운 전망의 폭발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분명 그것의 최종적 출현에 강력한 동기를 제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선 그는 전기 회로 사이의 자기의 전파 문제를 정전기 작용과 연결시켜야 했을 것이며, 또한 전류 전도를 정전기 유도와 분리하는 동시에 그들의 자기 효과를 동등하게 다루어야 했을 것이다. 이러한 관계의 복잡성은 '서로 감싸 안은 곡선'을 이번에는 전파 자체의 물리적 과정에 대한 구조적 이미지로 해석하기 위한 새로운 기초를 형성했을 것이다.

그림 6. 전류가 흐르는 도선 내부와 외부의 전자기 에테르에 대한 (살짝 수정된) 맥스웰의 표상. 이 단면은 소용돌이 분자들의 회전축과 수직이지만 전류와는 같은 평면 상에 있으며, 여기서 전류는 유동바퀴 입자들의 실제 이동으로서 A에서 B 방향으로 흐른다. 전류와 인접한 소용돌이 분자들은 접선 방향의 힘을 받아 회전하게 되고, 이는 다시 다음의 인접한 유동바퀴 입자들에 접선 방향의 힘을 가한다. 만약 이동이 가능하다면, 힘을 받은 유동바퀴 입자들은 소용돌이 분자의 두 행 사이를 따라 구르게 되어 유도 전류를 만들어낼 것이다. 만약 이동할 수 없다면, 그것은 제자리 회전을 하며 다음 인접한 소용돌이 분자들에 접선 방향의 힘을 가해 회전하게 만들 것이다. 즉 자기력선들(일련의 소용돌이들)이 공간상으로 전파될 것이다.
1861년 맥스웰에게는 신선한 통찰들이 마구 떠올랐고, 비로소 그는 자기 곡선, 전류, 전기적-긴장 상태에 대해 그가 바라던 역학적 표상을 훌륭하게 만들어냈다. “물리적 힘의 선에 대하여(On physical lines of force)”[18]에서, 그는 그림 6에 그려진 다이어그램을 사용하여 자기 에테르를 나타내는 악명 높은 소용돌이 모형을 제시했다. 각 힘의 선[자기력선]은 소용돌이 분자의 축으로 표현됐다. 이웃한 소용돌이들이 그들의 축에 대해 동일한 회전 방향을 갖기 위해, 즉 동일한 방향의 힘의 선이 나타나기 위해, 그들은 소용돌이 셀들과 접촉하여 회전 중인 “유동바퀴” 입자들에 의해 각자 분리된 셀 영역에 있을 것으로 가정되었다. 이 유동바퀴 입자들은 전기를 구성했다. 모든 물질 속에서 그들은 회전하는 셀들 사이에서 제자리 회전할 수 있지만, 도체 속에서는 셀들 사이에서 다소간의 저항을 받으며 병진 운동[위치 이동]도 할 수 있다. 그들의 흐름은 전류를 구성할 것이며, 이 전류는 인접한 셀들에 접선 방향의 작용을 발휘하기 때문에, 전류 주위의 소용돌이 또는 자기 곡선과 보조를 맞추며 돌 것이다. 그 다음의 인접한 유동바퀴 입자들은 그 첫째 소용돌이 셀들의 접선 방향의 (기전력을 구성하는) 작용에 의해 회전하게 될 것이며, 만약 그 입자들이 (부도체에 놓여) 병진 운동이 불가능할 때에는 다음 인접한 셀이 회전하도록 만들 것이며, 이는 처음의 전류 부근의 공간으로 계속 퍼져나갈 것이다. 따라서 자기력선은 전류 주위로 점점 더 큰 반경으로 형성될 것이다. 그 전파 효과가 닫힌 도체에 도달하게 될 때면, 유동바퀴 입자들은 다음 인접한 셀에 대해 구르면서 병진 운동을 하게 될 것이며, 결국 일차 회로와 반대 방향의 유도 전류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병진 운동에 대한 저항[마찰]으로 인해 결국 다음 인접한 셀들도 회전하면서 유도 전류는 멈출 것이다. 이로써 관찰된 전자기 유도 현상이 재현되었다.

이 이상한 기계 장치를 역학적 이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치있는 발견법적 모형으로 사용하여, 맥스웰은 그것이 전류, 자기력, 전기적-긴장 상태 사이에서 요구되는 관계들을 정확하게 재현한다는 점을 보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전기적-긴장 상태는 이제 소용돌이들의 회전 운동량이라는 간단한 역학적 해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의 묘사에는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유동바퀴 입자로부터 셀로, 그리고 셀의 외부로부터 내부를 통해, 회전을 전달하는 접선 방향 작용의 메커니즘은 정확히 무엇인가? 소용돌이는 자기 곡선의 올바른 동역학적 행동을 산출하기 위해 유체여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완벽히 유체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유체라면 그들의 내부에서 접선 방향의 작용이 나타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평범한 비전동성 공간에서 유동바퀴 입자들과 셀 표면의 접촉도 완전히 딱딱하면 안 됐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그러한 시스템을 통한 일반 물질의 운동은 물론이고, 유도 전류의 시작과 중단도 순간적인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점성이 있는 매질에서의 에너지 소실도 피하기 위해서, 맥스웰은 논문의 다음 호에서 셀들이 탄성을 가지고 유동바퀴 입자들과 탄성적으로 상호작용한다고 제안했다.[19] 그러한 메커니즘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의 에테르를 통한 전파를 편리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더 많은 일을 해냈는데, 그것은 곧이어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해온 이미지의 변형을 위한 기초가 되었다. 그것은 부도체와 열린 회로에서의 정전기 효과에 대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었다.

맥스웰은 이제 정전기 유도가 단지 약한 전도가 아닐 수 있음을 깨달았는데, 이는 동일하게 좋은 절연체가 매우 다양한 정전기 유도 용량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정전기적 전하가 단지 유동바퀴 입자들의 탄성 변위이고 전류가 병진 운동을 함축한다면, 그 문제는 해결될 수 있었다. 변위 [math]{\mathbf Q}_{\rm e}^\prime[/math]가 형성되는 동안, 그것은 짧은 전류, 즉 변위 전류 [math]\partial {\mathbf Q}_{\rm e}^\prime / \partial t[/math]를 구성한다. 그리고 변화하는 자기장의 효과가 닫힌 도체에 전파되었을 때 유도 전류를 낳는 것처럼, 전파 과정 자체도 변위 전류의 연속된 유도에 의해 일어날 수 있었다. 자기 소용돌이에 의한 그러한 각각의 유도는 다시 다음 소용돌이[의 탄성 변형과 그에 따른 변위 전류]를 유도할 것이고, 이는 공간을 통해 계속 전파될 것이다. 이 놀라운 발명은 당대의 모든 전기와 자기 현상에 대한 맥스웰의 놀라운 종합을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완성해 주었다. 그 마침표를 찍기 위해, 그는 전기 변위에 의한 자기장의 전파가 알려진 빛의 속도와 똑같은 속도로 일어날 것임을 보였다. 빛에 대한 그의 전자기 이론은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 “우리는 빛이 전기와 자기 현상의 원인이 되는 동일한 매질의 횡파로 구성되어 있다고 추론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16], 500쪽

'상호 감싸 안기'의 재정식화

그림 7. 전자기 효과 전파의 기초로서 재정식화된 '서로 감싸 안은' 곡선들. 곡선 Qe는 그 세기가 증가중인 실제 전류 곡선을 나타내고, 곡선 Qm는 그 세기가 증가중인 실제 자기 곡선을 나타낸다. 나머지 곡선들은 각각 전기 강도와 자기 강도의 적분을 위한 상상의 선[경로]들이다.
우리는 서로 감싸 안은 곡선을 도입한 맥스웰의 원래 목적이 (정적-상태에 있는) 자기장과 전류 사이의 거시적 서술이었음을 살펴 보았다. 전자기 유도는 단지 부차적인 고려였다. 만약 일정-자기장을 통한 묘사로부터 전류 유도에 대한 설명이 자연스럽게 나왔다면, 그것은 그 분석 수준에서는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닫힌 연결 고리의 이미지는 그 기준에 아름답게 부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하는 장 및 그 효과의 전달에 대해 기계적 소용돌이 그림을 제공한 문제는 맥스웰의 관심을 돌려 (전자기) 유도를 장 기술의 근본적 측면으로 보게 만들었다. 자기장에서의 변화는, 그것이 어떤 변화이든, 변위 전류와 자기 곡선의 연쇄적이면서 상호적인 유도를 통해 전파될 것이었다.

상호적이란 용어의 사용은 맥스웰의 분석의 다음의 마지막 단계를 보여준다. 동적 상호성은 언제나 패러데이와 맥스웰 모두에게 서로 감싸 안은 전류 곡선과 자기 곡선의 토대였지만, 이제는 새로운 의미의 상호성이 맥스웰에게 나타나 그 이후로는 그의 체계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자기 양의 어떠한 변화도 그것을 둘러싼 어느 곡선에나 (전기 강도의 합인) 알짜 기전력을 유도할 것이다. 매질의 각 지점에서는 전기 강도에 대한 반응으로 변위 전류전기 변위, 즉 전기 양이 산출될 것이고[[math]{\bf Q}'_{\rm e} = k'_{\rm e} {\bf I}_{\rm e}[/math]], 이는 흐름의 연속성을 만족할 것이다[[math]\nabla \cdot {\bf Q}'_{\rm e} = 0[/math]]. 이와 유사하게, 전기 양의 변화[변위 전류]는 그것을 둘러싼 어느 곡선에나 알짜 자기 강도를 유도할 것이며, 매질의 각 지점에서는 이에 대한 반응으로 다시 자기 양의 연속적인 흐름을 산출할 것이다[[math]{\bf Q}_{\rm m} = k_{\rm m} {\bf I}_{\rm m}[/math]; [math]\nabla \cdot {\bf Q}_{\rm m} =0[/math]]. 이 과정이 저절로 반복됨에 따라 처음의 요동은 모든 방향으로 전파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폐곡선에 대한 전기와 자기의 적분이 맺는 상호 관계는 보존될 것이다. 즉 상호 감싸 안기의 수학적 관계는 스스로 공간을 통해 전파될 것이다. 이는 그림 7의 사슬을 통해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슬의 연결들이 오직 매우 특별한 조건에서만 실제 힘의 선을 표현할 수 있다는 데 주의해야 한다. 연결된 두 곡선은 원한다면 얼마든지 작게 상상될 수 있기 때문에, 상호 감싸 안기는 한 점에서 다른 점까지의 장을 통한 총체적인 전파 과정에 대한 구조적 표상을 제공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역학적 모형은 곧장 덜 중요해졌다. 기하학적 수준에서 매질의 메커니즘이 장에 구조를 부여했고, 그에 따라 전기적-긴장 상태는 변위 전류에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그의 스타일대로, 맥스웰은 자신의 새로운 생각을 한 벌의 단순한 정리들로 압축했고, 그것은 전기와 자기 작용의 상호성을 또 재정의했다. 그들은 1868년의 「빛의 전자기 정리에 대한 노트」[20]에서 서로 감싸 안은 곡선의 형태로 가장 분명하게 제시되었다. 내용상의 변화를 알기 위해 이 새로운 정리들은 위에서 언급한 법칙들과 직접 비교될 필요가 있다. 법칙 3은 "감싸 안은(embracing)"이라는 명시적인 용어만 빼면 거의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정리 A. 만약 어떤 폐곡선이 전류를 감싸 안도록 그려지면, 그 폐곡선 한 바퀴를 따라 취해진 자기 강도의 적분은 그 전류와 [math]4 \pi[/math]의 곱과 같다

[math]\left[ \oint {\mathbf I}_{\rm m} \cdot d {\bf λ} = 4 \pi \iint {\mathbf Q}_{\rm e } \cdot d {\bf σ} \right][/math]

그러나 옛 정리의 함의는 완전히 바뀌었는데, 맥스웰은 지금 전류보다 변위 전류에 주목하고 있다.

정리 D. 전기 변위가 증가하거나 감소할 때, 그 효과는 순방향 또는 역방향의 전류의 효과와 같다.

[math]\left[ \frac{\partial {\mathbf Q}_{\rm e}^\prime} {\partial t} \text{은 } {\mathbf Q}_{\rm e} \text{와 같은 역할을 한다.} \right][/math]

다시 말해, 만약 임의의 폐곡선을 통과하는 총 전기 변위가 변화한다면, 그 변화율은 그 폐곡선을 감싸는 총 자기 강도와 같을 것이다.

[math]\left[ \oint {\bf I}_{\rm m} \cdot d {\bf λ} = 4 \pi \frac{\partial}{\partial t} \iint {\bf Q}_{\rm e}^\prime \cdot d {\bf σ} \right][/math]

이에 대한 상호적인 관계는 더 이상 정적 상태에서의 자기 양과 전기적-긴장 강도를 연결짓는 옛 법칙 1이 아니라, 유도에 대한 법칙 4로, 부차적이었던 회로적인 형태로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정리 B. 만약 전류 회로[정리 D를 따르면, 유전체에서의 임의의 폐곡선]가 일정 개수의 자기력선[자기 양]을 감싸 안고, 만약 어떤 일에 의해서든 그 선의 수가 감소하면, 회로를 따라 기전력이 발생하며, 그 총량은 자기력선 수의 단위 시간당 감소량과 같을 것이다.

[math]\left[ \oint {\bf I}_{\rm e} \cdot d {\bf λ} = - \frac{\partial}{\partial t} \iint {\bf Q}_{\rm m} \cdot d {\bf σ} \right][/math]

여기서 서로 감싸 안은 곡선은 자기와 전기 변위의 상호 유도 곡선으로서 재편되었다. 첨가된 두 개의 전도(conduction) 방정식은 자기 양과 자기 강도, 전기 변위(양)와 기전력(강도)의 관계를 말해준다. 즉 새로운 곡선의 상호성은 처음의 이미지가 그렸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완성되는데, 이제 전도 관계에서 양과 강도는 유도 관계에서 대응되는 양과 강도와 같아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전하도 전류도 없는 조건에서의 현대적인 맥스웰 방정식에서 익숙하게 확인되는 엄격한 대칭성인 것이다(표 2 참고).

표 2. 전하가 없는 조건에서 1868년 맥스웰 방정식과 현대적 맥스웰 방정식의 비교
1868년 현대
[math]{\bf Q}^\prime_{\rm e } = k^\prime_{\rm e} {\bf I}_{\rm e} [/math] [math]{\bf D} = \epsilon {\bf E} [/math]
[math]{\bf Q}_{\rm m } = k_{\rm m} {\bf I}_{\rm m} [/math] [math]{\bf B} = \mu {\bf H} [/math]
[math]\oint {\bf I}_{\rm e} \cdot d {\bf λ} = - \frac{\partial}{\partial t} \iint {\bf Q}_{\rm m} \cdot d {\bf σ}[/math]

[math]~~~[/math]or [math]\nabla \times {\bf I}_{\rm e} = - \frac{\partial {\bf Q}_{\rm m}}{\partial t}[/math]

[math]\oint {\bf E} \cdot d {\bf λ} = - \frac{\partial}{\partial t} \iint {\bf B} \cdot d {\bf σ}[/math]

[math]~~~[/math]or [math]\nabla \times {\bf E} = - \frac{\partial {\bf B}}{\partial t}[/math]

[math]\oint {\bf I}_{\rm m} \cdot d {\bf λ} = 4 \pi \frac{\partial}{\partial t} \iint {\bf Q}^\prime_{\rm e} \cdot d {\bf σ}[/math]

[math]~~~[/math]or [math]\nabla \times {\bf I}_{\rm m} = -4 \pi \frac{\partial {\bf Q}^\prime_{\rm e}}{\partial t}[/math]

[math]\oint {\bf H} \cdot d {\bf λ} = 4 \pi \frac{\partial}{\partial t} \iint {\bf D} \cdot d {\bf σ}[/math]

[math]~~~[/math]or [math]\nabla \times {\bf H} = 4 \pi \frac{\partial {\bf D}}{\partial t}[/math]

[math]\nabla \cdot {\bf Q}^\prime_{\rm e} = 0[/math] [math]\nabla \cdot {\bf D} =0[/math]
[math]\nabla \cdot {\bf Q}_{\rm m} =0[/math] [math]\nabla \cdot {\bf B} =0[/math]

결론

우리는 맥스웰이 전자기장 개념을 만들어가는 여러 단계에 걸쳐 나타나는 하나의 이미지의 진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서로 감싸 안은 곡선은 그의 생각을 (모든 사변을 묶을 수 있는) 기하학적으로 견고한 틀에 — 처음부터 끝까지 — 고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동시에 그 구조 자체는 — 예컨대, 유체 유비나 상호 동역학을 통해 — 탐구의 새로운 경로들을 제안했다. 그것의 첫 번째 성과는 전기적-긴장 상태에 대한 일관된 수학적 정식화로, 이는 앞으로 얻을 더 많은 성과에 대한 강력한 힌트를 제공했다. 이는 변위 전류와 매질을 통한 전자기 효과 전파의 동반 모델(concomitant picture)로 확장됐고, 둘다 빛의 전자기 이론의 단단한 토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관점에 따르면 오래된 이미지는 재고되어 재편될 필요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전파의 경우, 전기와 자기의 상호 감싸 안기는 상호 유도로 재편되었다. 즉 그것은 여전히 상호 감싸 안기이긴 하지만, 이제는 서로를 낳는 감싸 안기가 되었다.

맥스웰의 작업에 대한 조금 다른 방식의 요약도 있는데, 이는 그의 통찰에 대한 통상적인 재구성을 반영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전자기 이론에 대한 맥스웰의 기여는 근본적으로 앙페르의 법칙[[math]\nabla \times {\bf H} = 4 \pi {\bf j} [/math]]에 변위 전류[[math]4 \pi \partial {\bf D}/ \partial t[/math]]를 추가한 일에 있으며, 그의 동기는 열린 회로(open circuit)에서의 전하량 보존을 위해서 또는 패러데이의 유도 법칙[[math]\nabla \times {\bf E} = - \partial {\bf B}/\partial t[/math]]과의 대칭성을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주장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위의 분석은 그러한 주장들이 맥스웰의 사고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핵심을 완전히 놓쳤음을 보여준다. 그는 정말로 변위 전류를 추가했지만,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은 양-강도 구분이 장착된 앙페르의 법칙의 표현이었다. 그는 열린 회로에서의 전하량 보존에 관심을 가졌지만, 그 문제가 명시적으로 드러나려면 그는 전도와 정전기적 유도를 구분할 수 있어야 했다. 그는 전기와 자기의 대칭성에 깊은 관심을 가졌지만, 그가 원래 생각했던 대칭성은 전자기 유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대신 그는 일정한 전류와 그와 연관된 일정한 자기력 사이에 나타나는 패러데이의 동적 상호성을 추구했었다. 이러한 서로 감싸 안은 곡선의 대칭성의 완성은 앙페르의 법칙과 전기적-긴장 상태[수학적으로는 우리의 벡터 포텐셜 [math]\nabla \times {\bf A} = {\bf B}[/math]]에 대한 두 번째 형태를 낳았다. 변위 전류는 대칭성에 대한 고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전기적-긴장 상태의 — 특히 열린 회로와 전류를 유도하는 자기 효과의 전파에서의 — 역학적 의미를 발전시키고자 했던 맥스웰의 노력에서 나온 것이었다. 완전한 모습의 변위 전류를 얻은 후에야, 맥스웰은 정적 상태의 전류가 아닌 전자기 유도를 토대로 상호 감싸 안기의 개념을 재정식화할 수 있었다. 즉 맥스웰 방정식의 현대적 대칭성이 변위 전류의 역할에서 도출된 것이지, 변위 전류가 대칭성에서 도출된 것이 아니다.[21]

참고문헌과 주

  1. 라플라스주의자들의 비타협적 태도에 대한 논의로는 J. Herivel, Joseph Fourier: The Man and the Physicist (Clarendon, Oxford, 1975), 특히 pp. 153-159를 보라.
  2. 2.0 2.1 여기서 직접적으로 관련된 맥락은 M. N. Wise, thesis, Princeton University (1977); University Microfilms 77-14, 252, pp. 25-32에서 논의되고 있다.
  3. T. S. Kuhn의 "Energy Conservation as an Example of Simultaneous Discovery"[M. Clagett, ed., Critical Problems in the History of Science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Madison, 1969), pp. 321-356; 『역사 속의 과학』(창비, 1982)에 「동시발견의 예로서의 에너지 보존원리」로 번역 수록됨]은 상호 변환 및 에너지 보존의 제안과 관련된 다른 문제들에 대한 명료한 개관을 제공한다.
  4. M. Faraday, Experimental Researches in Electricity (3 volumes, London, 1834, 1844, 1855), vol. 3, paragraph 3268; 이 다이어그램은 paragraph 3265과 연계되어 있다.
  5. 1854년 11월 13일의 편지에서 가져온 것으로, "The origins of Clerk Maxwell's electric ideas, as described in familiar letters to William Thomson," Proc. Cambridge Philos. Soc. 32, 702 (1936)에 재수록됨.
  6. J. C. Maxwell, "On the mathematical classification of physical quantities," Proc. London Math. Soc. 3 (1870); [7], vol. 2, pp. 257-266에 재수록됨. p. 261을 보라.
  7. J. C. Maxwell, The Scientific Papers of James Clerk Maxwell (Cambridge University Press, Cambridge, 1890).
  8. 맥스웰의 정리에 대한 이 단순화된 버전은 그의 사고가 시간적으로 진화하는 복잡성을 무시한다. 이 단계에서 그는 양과 강도를 물리적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분극이라는 공간의 상태로서 인식된 자기력의 두 가지 기하학적 측면인 면과 선을 구분했을 뿐이다. 물리적 대상들을 바라보는 이러한 기하학적 방식은 맥스웰의 이해 방식 전반에서 매우 깊게 나타난다.
  9. 9.0 9.1 9.2 9.3 9.4 9.5 J. C. Maxwell, "On Faraday's lines of force: Part I and II,", Trans. Cambridge Philos. Soc. 10 (1856).
  10. [7], vol. 1, pp. 184, 194, 그리고 194n을 보라. 그곳에서 "감싸 안은(embracing)"은 두 번 이탤릭으로 강조되어 있다. 이 논문뿐 아니라 나중의 논문에서도 맥스웰은 "감싸 안기"의 은유를 사용했다.
  11. 1855년 9월 13일의 편지, [5], p. 712
  12. 상당히 동일한 얘기가 Dictionary of Scientific Biography (Scribner's, New York, 1974), vol. 9, pp. 206-207에 수록된 맥스웰에 대한 C. W. F. Everitt의 훌륭한 글에도 지적되어 있다. 이 글은 James Clerk Maxwell: Physicist and Natural Philosopher (Scribner's, New York, 1975), pp. 90-93에 보완되어 재수록되었다.
  13. 1854년 11월 13일의 편지. [5], p. 712에 수록.
  14. 나는 맥스웰의 에너지 고찰에 대한 확장된 논의를 피하기 위해 (전류들 사이의 힘에 대한) 법칙 5를 생략했다. 맥스웰의 에너지 고찰은 감싸 안은 곡선의 이미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15. J. C. Maxwell, "On physical lines of force: Part I and II", Philos. Mag. 21 (1861), figure 3; [7], vol. 1, p. 488 및 p. 477의 첫 부분을 보라.
  16. 16.0 16.1 "On physical lines of force: Part III", Philos. Mag. 23 (1862); [7], vol. 1, pp. 489-491을 보라.
  17. 이 문장은 [9], p. 181의 1부에서 가져왔는데, 거기서는 별로 검토되지 않고 있다. 바로 앞의 문장은 [9], p. 196의 2부에서 가져왔는데, 이 부분은 몇 달 후에 적성되었다. 즉 맥스웰은 2부에서 그의 이전 생각의 어떤 난점을 알아차리기 시작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전류 전도와 정전기적 유도의 동일시는 그로 하여금 [전류 곡선과 자기력선 사이의 상호적인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애초의 기획을 완성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을 훨씬 수월하게 발명하게 해주었을 것이다.
  18. [15], pp. 451-488; 소용돌이 묘사는 p. 477에 있다. 맥스웰의 다이어그램은 Everitt의 책 [12], pp. 95-96에서 지적된 대로 살짝 수정될 필요가 있다.
  19. [16], pp. 489-502. 이 작업은 4부에서 마무리된다.
  20. “On a method of making a direct comparison of electrostatic with electromagnetic force,” Philos. Trans. R. Soc. London 158 (1868)의 부록; [7], vol. 2, pp. 125-143 중에서 정리들은 pp. 138-139에서 인용됨.
  21. 유익한 논평을 제공한 J. G. Burke와 E. S. Abers에게, 그리고 중요하고 상세한 비평을 제공한 C. W. F. Everitt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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