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관찰할 수 없는 것
- 루돌프 카르납, "이론과 관찰할 수 없는 것", 과학 철학 입문, 23장, 291-299쪽.
- 원문 : media:이론과 관찰할 수 없는 것.pdf
요약
법칙의 두 가지 종류와 역할
과학의 법칙은 크게 경험적 법칙과 이론적 법칙으로 나뉜다. “관찰할 수 있는(observable)”이라는 용어는 흔히 직접적으로 관찰될 수 있는 현상들에 대해서 쓰이는데, 이에 따르면 경험적 법칙은 관찰할 수 있는 것에 관한 법칙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이론적 법칙이란 관찰할 수 없는 것에 관한 법칙이라 할 수 있다. 경험적 법칙은 이미 관찰한 사실을 설명하고 아직 관찰되지 않은 사실을 예측해준다. 이와 유사하게, 이론적 법칙은 이미 구성된 경험적 법칙을 설명하고 새로운 경험적 법칙을 유도해 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관찰할 수 있는(observable)”의 경계선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은 “관찰할 수 있는”이라는 용어를 서로 다르게 쓴다. 보통 철학자들은 감각에 의해 직접 지각될 수 있는 속성들(e.g., “파란”, “뜨거운” 등)을 나타내는 데 “관찰할 수 있는”이란 말을 쓰는 데 반해, 과학자들은 온도, 무게, 질량, 전류의 세기과 같이 직접 지각할 수는 없지만 간단한 방식으로 측정할 수 있는 물리량에까지 “관찰할 수 있는”이라는 말을 적용하곤 한다. 그러나 철학적 엄밀함에 의거해 보자면, 전류의 세기는 관찰되지 않으며 “관찰된 것으로부터 추론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이 보기에, 그 추론이라고 하는 것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전류 따위의 간단한 물리량들은 “관찰할 수 있는” 것으로 포함시켜도 무방하다고 말할 것이다.
카르납이 보기에, “관찰할 수 있는”의 경계선은 명확하지 않다. 감각을 통한 직접 관찰에서부터 시작해서 상당히 복잡하고 간접적인 관찰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연속이 있을 뿐이다. 즉 그 구분은 단지 정도의 문제이다. “관찰할 수 있는” 것과 “관찰할 수 없는” 것이 연속선상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 두 개념을 딱 부러지게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 차이가 일반적으로 매우 크기 때문에 논쟁이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모든 물리학자들은 기체의 압력, 부피, 온도 등과 관련된 법칙은 경험적 법칙이라는 데 동의하며, 개별적인 분자들의 운동에 관한 법칙은 이론적인 법칙이라는 데 동의한다.[1]
이론적 법칙의 발견 : 가설 not 귀납적 일반화
(보통) 이론적 법칙들은 경험적 법칙들보다 더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론적 법칙들은 단순히 경험적 법칙들을 취해서, 그보다 약간 더 일반화시킨다고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돌, 나무, 꽃들을 관찰해서 다양한 규칙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경험적 법칙으로 기술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아무리 오랫동안 관찰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의 분자를 관찰할 수는 없다. “분자”라는 용어는 관찰에 의해서는 결코 생겨나지 않는다.[2] 따라서 관찰로부터 무한히 많은 일반화를 한다 하더라도 분자적 과정들의 이론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러한 이론은 사실들의 일반화로 진술되지 않고 “가설”로 진술된다.
이론적 법칙의 입증 : 간접적 입증
가설(이론적 법칙)로부터 특정한 경험적 법칙들이 파생되고, 그렇게 파생된 경험적 법칙들은 다시 사실들을 관찰함으로써 시험된다. 이렇게 파생된 경험 법칙들에 대한 입증은 그 이론적 법칙에 대한 “간접적인 입증”이 된다. 물론 경험적 법칙이든 이론적 법칙이든, 법칙에 대한 어떠한 입증도 단지 “부분적” 입증일 뿐 결코 완전하지도 절대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경험적 법칙의 경우 좀더 “직접적인” 입증인 데 반해, 이론적 법칙에 대한 입증은 간접적이다. 왜냐하면 이론적 법칙에 대한 입증은 그 이론으로부터 파생된 경험적 법칙들에 대한 입증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좋은 이론이 지녀야 할 가치
“이론에서 파생되는 경험적 법칙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들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그리고 서로간의 관련성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것들을 설명하는 이론은 더 설득력이 있게 될 것이다.”
“새로운 이론의 궁극적인 가치는 새로운 경험적 법칙을 예측하는 힘에 있다.” 새로운 이론은 이미 알려진 법칙들을 설명하는 데도 가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가치이다. 물리학에서 커다란 진보를 가져왔던 새로운 이론들은 새로운 경험적 법칙들을 유도해낼 수 있었던 이론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좋은 이론은 정밀하면서(정확성) 이미 알려진 법칙들을 하나로 통일하기도 하며(일반성), 이미 알려진 법칙들을 모두 모아 놓은 것보다 더 간단하기도 하다(단순성). 그러나 그 이론이 얼마나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것은 경험적 수단을 통해서 입증될 수 있는 새로운 법칙들을 제안하는 힘이 얼마나 크냐(예측력)에 달려 있다.
즉 카르납은 이론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정확성, 일반성, 단순성보다 예측력을 더 중요한 가치로 취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석
- ↑ 그럼에도 카르납은 논의를 위해 일단 다음과 같이 경험적 법칙을 정의한다.(이는 어디까지나 카르납의 구분법이지, 자신의 구분법이 특권을 가진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경험적 법칙이란 감각에 의해서 직접 관찰할 수 있거나 비교적 간단한 기술로 측정될 수 있는 용어들이 들어있는 법칙이다. 이에 따르면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거나, 옴의 법칙 등은 경험적 법칙에 속하게 된다.
- ↑ 이에 대해서는 좀더 세밀한 고찰이 필요하다. 아무리 돌, 나무, 꽃들을 관찰한다고 해서 분자를 관찰할 수 없다는 말은 타당하다. 그러나 "분자"라는 용어가 관찰에 의해서 결코 생겨나지 않는 것처럼, "돌", "나무", "꽃" 등의 용어 또한 그것들을 관찰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말은 아니다. 이런 고찰에 따르면, 모든 용어들은 모두 이론적 용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세한 논의는 Putnam을 볼 것.
더 읽을거리
- 루돌프 카르납, "대응 규칙", 과학철학입문, 24장, 300-308쪽.
- 루돌프 카르납, "어떻게 새로운 경험적 법칙이 이론적 법칙으로부터 유도되는가", 과학철학입문, 25장, 309-3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