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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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uld & Lewontin, "The Spandrels of San Marco and the Panglossian Paradigm: A Critique of the Adaptationist Programme", From Proc. R. Soc. London 205 (1978), 581-598.

성당의 공복(Spandrel)이나 부채살 둥근아치 천장을 장식을 위해 적응(최적화)된 산물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 공간들은 오히려 건축구조상의 제약(eg. 둥근 아치에 돔을 얹기 위해)에 따라 발생한 필연적인 산물에 불과하다. 아즈텍의 인간제물 문화를 식량 부족에 따른 적응으로 볼 수 있는가? 두 저자는 이러한 비생물학적 유비로부터 출발하여, 진화생물학계에 만연해 있는 적응주의적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둘은 진화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특성을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또는 최적화)으로 볼 수 없으며, 비적응적 제약들(구조적 제약, 발생적 제약 등)이 진화에서 매우 중요한(자연선택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두 저자는 진화에 대한 자신들의 다원적 접근이 진화의 풍부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단언한다.

적응주의 프로그램

적응주의에 의하면, ⓛ각 형질은 분해가능하며, 그 형질은 자연선택에 의한 최적화된 구조로 설명된다. ②부분별 최적화 설명이 실패할 경우, 부분의 준최적화 상태는 전체에 대한 최적화된 협상(trade-off)으로 설명된다. 적응주의는 그 본성상 낙천주의(Panglossian)이다. 이런 식의 태도는 다음과 같은 시도를 허용한다. ①하나의 설명이 실패하면 다른 설명을 시도하고, ②그러한 설명이 꼭 있다고 가정하며, ③좋은 적응적 설명을 찾지 못할 경우, 불충분한 정보 탓으로 돌린다. ④그리고 이들은 항상 현재의 기능(유용성)을 강조하여, 어떠한 형질이 존재하게 된 진짜 이유와 그것의 기능을 혼동한다. (eg. 티라노사루스의 작은 앞발)[1]

이야기 꾸며내기

적응주의적 설명은 반박불가능하다. 왜냐하면, ①새로운 적응적 이야기는 얼마든지 꾸며낼 수 있으며(wide), ②그 수용기준은 너무 느슨하기 때문이다(loose). 즉, 적응적 이야기는 일관성만 있으면 족하기 때문이다. (eg. 산새 수컷의 행동에 대한 설명)

다윈에 대한 재검토

다윈의 입장을 잘 살펴보면, 그는 극단적인 자연선택주의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윈은 자연의 복잡성을 설명하기 위해 자연선택 외의 요인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다윈은 다원주의자이다.

적응주의 프로그램에 대한 대안: 불완전한 그림

  1. 적응도 아니고 선택도 아닌 경우 : 유전적 표류와 진화의 확률적 성격의 영향은 무시될 수 없다. 어떤 형질은 ①선택압 없이도 단지 무작위의 유전적 표류(genetic drift)에 의해 정착할 수 있으며, ②자연선택에도 불구하고 정착할 수도 있다. 한편, 어떤 좋은 변이일지라도 ③확률적 성격 때문에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2. 적응은 아니지만 (다른 곳에서의) 선택인 경우 : 유기체는 각 부분으로 분해되기 힘든 전체로 보아야 한다. 예컨대, 어떤 상대성장 패턴은 그 자체의 적응으로 설명되기 어려우며, 오히려 발생적, 구조적 제약으로 간단히 설명 가능하다. (eg. 척추동물의 뇌크기의 상대성장, 온혈동물의 종내 상대성장, 성숙시기 변화 등 [잘 이해 안됨])
  3. 선택과 적응의 분리 : ①적응 없는 선택도 가능하며(eg. 두배의 생산력), ②선택 없는 적응(eg. 유전형질 상 차이가 없는 개체의 환경 적응)도 가능하다.[2]
  4. 적응이자 선택이지만, 선택이 여러 적응지 중 하나를 고를 수 없는 경우 : 같은 문제에 대한 여러 해결책이 가능하지만, 종종 선택압은 여러 해결책 중에 하나를 고르지 못한다. (eg. 서부지역 달팽이)
  5. 적응이자 선택이지만, 적응은 2차적 결과인 경우 : 예컨대, 얼굴 붉히기가 성선택의 산물로 밝혀진다고 해서, 이것이 ‘피가 붉은 이유’를 설명해주진 않는다.

진화에 대한 또다른 접근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대륙학계에서는,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 경로와 방식에서 강한 제약을 받기에, 제약 그 자체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계통적 제약이나 발생적 제약은 매우 완고하여, 이러한 제약을 뚫고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적응주의는 Bauplan 상의 발생 프로그램 변경을 설명할 수 없으며, 다원적 접근이야말로 진화의 완전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1. 적응주의가 유전적 표류(genetic drift), 상대성장 등의 비적응적 요인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역할을 극히 한정하여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2. ‘적응’이란 용어의 세 가지 용법은 구분되어야 한다. ① 심리학자의 용법. ② 문화적 적응. ③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 ①은 환경에 탄력적인 능력에 의한 결과로 되물림되지 않지만, ②와 ③은 되물림된다. ②는 학습에 의해, ③은 유전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