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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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래프의 유래: Optical Telegraph

Optical Telegraph의 구조
Optical Telegraph의 코드표
Optical Telegraph Tower 옆에서 쉬는 병사들

텔레그래프(telegraph)의 본래 의미가 "먼 곳으로 부호화된 정보를 보내기 위한 도구나 시스템"임을 고려할 때, 연기나 불꽃, 혹은 북소리를 이용한 신호 전달 체계를 텔레그래프의 가장 오래된 형태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단어 자체는 프랑스의 플로드 샤프(Claude Shappe, 1763-185)가 자신이 고안한 독특한 통신장치에 텔레그래프라는 이름을 붙였던 1792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French Telegraph Lines
애초에 샤프는 전기현상을 이용한 신호시스템 구축에 큰 관심을 보였지만, 이에 별 성과가 없자 훨씬 더 간단하고 직관적인 방식에 주목하였다. 그가 고안했던 텔레그래프는 일종의 수기 신호장치로서, 그 구조는 가운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긴 막대와 그것의 양끝에 달려서 회전 팔 역할을 하는 짧은 막대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또한 이 텔레그래프는 도르래를 이용해서 길고 짧은 막대를 다양하게 조합해 모양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데, 샤프는 그것들 각각에 문자와 숫자를 할당하고 이에 대한 코드표를 마련하면 훌륭한 통신 장비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1973년에 샤프는 이러한 구상을 국민의회에 제안해서 승인을 받았고, 정부의 지원 아래 20마일에 걸친 세 지역에 시범적인 텔레그래프 타워를 건설했으며, 첫 번째 시연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프랑스 정부 관료들은 이같은 텔레그래프가 지방정부를 확실히 장악해 중앙정부의 힘을 확고히 하는 데 유용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텔레그래프 라인의 복격적인 구축에 힘썼다. 1794년 5월 프랑스와 릴 사이에 15개의 타워가 세워져 130마일에 달하는 최초의 국설 텔레그래프 라인이 개통되었고, 나폴레옹 집권 시기에도 이런 라인이 꾸준히 구축되어 '파리=스트라스부르-던커크' 라인, '파리-디종-리오-튜링-밀라노' 라인 등이 연이어 개통되었으며, 1852년까지도 이같은 작업이 계속되었다.

애당초 샤프는 이러한 텔레그래프 라인을 상업을 원할하게 하는 데 이용하려 계획했지만, 그것의 실제 용도는 복권 당첨 번호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사용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군사, 행정적인 이용에 국한되었다. 이러한 텔레그래프 네트워크는 프랑스 사회에 성공적으로 이식되었고, 이와 유사한 통신 체계가 1830년대를 거쳐 영국과 서유럽 대부분의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 Optical Telegraph의 단점이 있다면? 정보 노출의 문제. 암호화를 통해 해결?

전신(Electric Telegraph)의 발명과 전신 네트워크의 확장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몇몇 사람들은 전기를 이용한 텔레그래프에 대한 아이디어와 이를 구현한 각종 장치들을 내놓았지만, 당대의 이론적 기술적 제약 때문에 온전한 전신기를 개발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를 위해서는 전자기 현상에 대한 이해와 전지, 검류계, 전자석과 같은 장치들이 우선 마련되어야 했는데, 이런 조건들이 어느 정도 충족된 1820년대에도 '실용적인' 전신기의 개발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용적인' 전신기의 개발을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는데, 장거리 저항을 극복하는 방법과 많은 수의 문자들에 대응될 수 있는 효율적인 부호화 체계를 구현하는 방법이 그것이었다.

첫 번째 난점은 미국의 물리학자 조셉 헨리(Joseph Henry, 1797-1878)가 어느 정도 해결하였다. 그는 1830년에 전기신호를 멀리까지 보내려면 그에 상응하는 배터리의 사용이 중요함을 밝혔는데, 하나의 큰 배터리보다는 여러 작은 배터리들을 직렬로 연결하는 것이 효과적임을 실험을 통해 밝혔다 두 번째 난점은 영국의 윌리엄 쿠크(William Fothergill Cooke, 1806-1879)와 미국의 새뮤얼 모스(Samuel F. B. Morse, 1791-1872)에 의해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해결되었는데, 이것에 헨리의 아이디어가 더해져서 서로 다른 유형의 전신기 발명으로 이어졌다.

1837년 쿠크가 찰스 휘트스톤(Charles Wheatstone, 1802-1875)과 함께 개발한 전신기는 문자들이 새겨진 마름모꼴 회로판 위에 5개의 검류 바늘이 배치된 구조였는데, 이 전신기는 스위치를 조작하여 5개의 바늘 중 2개의 바늘을 움직여 그 바늘 2개가 하나의 문자를 가리키게끔 한 것이었다. 이 전신기를 개량된 2 바늘 전신기는 철도회사에 의해 먼저 채택된 이후 영국 내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고,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영국의 독특한 전신 방식을 규정짓는 요소가 되었다.

반면 1837년에 모스가 고안했던 장치는 송신 측에서 회전하는 톱니바퀴에 의해 온-오프 형식으로 전기 신호를 보내면, 수신 측에서는 길고 짧은 전기 신호가 전자석 연필에 의해 기록되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이때 수신된 신호는 종이테이프 위에 지그재그로 된 선을 남겼고, 이 선의 의미는 모스 코드표를 통해 문자 메시지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초기 모형은 레오나드 게일과 알프레드 베일이 모스의 연구에 동참하면서 좀더 간단한 형태로 개량되었는데, 손으로 키를 직접 두드리는 송신 장치를 개발함으로써 톱니바퀴 부품이 제거되었고, 지그재그 궤적을 그렸던 연필은 점과 선을 기록할 수 있는 잉크 펜으로 대체되었다.

처음 전신은 신기한 볼거리 이상으로 여겨지지 않았지만, 그것의 유용성이 인지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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