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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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olaus Copernicus,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1543)

번역 : 정동욱 (영역본을 번역함. 주된 소스는 토머스 쿤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수록된 Occasional Notes of the Royal Astronomical Society, vol. 2, no. 10 (London: Royal Astronomical Society, 1947), translated by John F. Dobson and Selig Brodetsky이나, 웹에서 접근 가능한 다른 번역본들도 참고했음. 대괄호 []에 수록된 내용은 토머스 쿤의 코멘트임.)

오시앤더의 서문

코페르니쿠스의 서문

바오로 3세 교황님께

[천구의] 회전에 관한 책에 대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서문


교황님, 천구의 회전에 관한 이 책에서 저는 지구에 운동을 부여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 얘기를 듣자마자 그런 생각을 품은 저를 끌어내려야 한다고 항의하리라는 걸 충분히 예상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저 자신의 연구가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해 내릴 판단에 대해서 큰 무게를 두지 않으려 합니다. 또한 (철학자의 목표는 신이 인간 이성에 허락한 범위 안에서 모든 것들에 대한 진리를 찾는 것이므로) 저는 철학자의 사유가 대중의 판단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들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반대되는 생각, 즉 지구가 우주 한복판의 중심으로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견해가 옳다는 점을 오랜 세월 동안 인정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지구에 운동을 부여하는 것이 실로 저의 터무니없는 행동으로 보일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저는 지구의 운동을 증명하기 위해 쓴 이 논평을 공개해야 할지, 아니면 리시스(Lysis)가 히파르코스에게 보낸 편지에 나타난 것처럼, 글이 아니라 말로써 동료와 친구들에게만 철학적 신비를 전수했던 피타고라스주의자들과 같은 사람들의 선례를 따르는 게 나을지 오랫동안 고심했습니다. [이 편지는 코페르니쿠스가 한때 ≪회전에 관하여≫에 포함시키려고도 했던 것으로, 신비주의 추종 집단의 일원이 아닌 사람들에게 자연의 신비를 드러내지 말라는 피타고라스주의와 신플라톤주의의 엄명을 담고 있다. 그에 대한 이 언급은 바로 앞 장에서 살펴본 르네상스 시기 신플라톤주의의 재유행에 코페르니쿠스가 동참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제 판단에, 그들이 그랬던 것은 일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들의 학설을 공유하기 아까워서가 아니라, 대학자가 힘겹게 이룬 무척이나 고귀한 이 발견들이 사람들로부터 모욕당하는 것이 두려워서였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어떤 것도 공부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격려와 모범으로 자유로운 철학적 탐구를 하게 되더라도 아둔한 머리 때문에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벌들 사이의 수벌[1]과 같은 신세일 뿐인 사람들에게 모욕당하는 것을 말입니다. 이를 고려한 저는 제 견해의 새로움과 부조화로 인해 받게 될 경멸을 염려해 프로젝트를 거의 포기할 뻔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걱정과 저의 거부 의사를 극복하게 된 것은 제 친구들 덕분입니다. … [그중 한 명은] 제가 9년[2]도 아닌 그 4배나 되는 기간 동안이나 간직해 왔던 이 책을 … 출판하라며 자주 설득하고 때로는 들들 볶기까지 했습니다. … 그들은 수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공동 이익을 위해 저의 연구 성과를 내놓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움 때문에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습니다. 그들은 지구의 운동에 대한 제 이론이 처음에는 이상해 보이겠지만, 제 해명이 담긴 논고가 출판되어 불합리함의 안개가 걷히고 나면 감탄하며 수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그들의 설득에 못 이겨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제 연구의 출판을 허락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전부터 저는 이 연구를 완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지구의 운동에 관한 제 생각을 글로 적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기에, 교황님께서는 제가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로 마음먹은 것에 대해 그렇게 놀라지 않으실 겁니다. [≪회전에 관하여≫가 출판되기 몇 년 전, 코페르니쿠스는 그의 태양 중심 천문학의 초기 버전을 담고 있는 ≪코멘타리오루스(Commentariolus)≫라는 짧은 원고를 친구들 사이에 돌렸다. 코페르니쿠스의 주요 연구 성과에 대한 또 하나의 사전 보고서는 그의 제자인 레티쿠스(Rheticus)가 작성한 ≪나라티오 프리마(Narratio Prima)≫로, 1540년에 나왔고 1541년에도 다시 나왔다.] 교황님께서는 제가 무슨 생각으로 수학자들의 통념에 반할 뿐 아니라 상식에도 완전히 반하는 지구의 운동이라는 것을 감히 상상하게 되었는지를 더 궁금해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천구들의 운동을 계산하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에 대한 수학자들의 연구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깨달음 때문이었음을 교황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로, 수학자들은 태양과 달의 운동에 대해 너무나 확신이 없어서 1년(계절년)의 일정한 길이를 설명하지도 관측하지도 못합니다. 둘째로, 태양과 달뿐 아니라 다섯 행성의 운동을 결정하는 데서 그들은 겉보기 운동과 회전에 대한 동일한 원리와 가정도, 동일한 증명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동심원만을 사용하고[아리스토텔레스적 체계. 에우독소스와 칼리포스로부터 시작되어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전해진 체계로, 코페르니쿠스가 죽기 직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프라카스토로(Fracastoro)와 아미치(Amici)에 의해 유럽에서 유행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심원과 주전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도 그들은 목표를 완전히 달성하지 못합니다. 동심원을 믿은 이들은 몇몇 다른 운동들이 그것들로 합성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긴 했지만, 그것을 가지고 현상과 일치하는 체계를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이심원 체계를 고안했던 이들은 그들의 가정에 부합하는 계산을 통해 겉보기 운동을 거의 완벽하게 만들어 낸 것처럼 보이지만, 운동의 균일성이라는 제1원리를 위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퀀트의 사용과 같은] 많은 것들도 동시에 허용했습니다. 또한 그것 때문에 그들은 우주의 형태나 그 부분들의 불변의 대칭성과 같은 중요한 사항은 이해하거나 도출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한 화가가 각각 다른 모델로부터 각각 아주 잘 그려진 손, 발, 머리 등을 모아 자신의 그림을 완성하나 그것이 한 사람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과 같으며, 여기서 그 조각들은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그 결과물은 사람이라기보다는 괴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학자들이 ‘방법’이라고도 부르는 그들의 증명 과정에서, … 우리는 그들이 꼭 필요한 세부 사항을 빠트린다든지, 이질적일 뿐 아니라 완전히 무관한 것을 도입하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확고한 원리를 따랐다면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도입한 가설들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로부터 따라 나오는 모든 귀결도 반드시 참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 말이 지금은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것은 적절한 때가 되면 분명해질 것입니다.

(중략)

저는 천구들의 체계의 운동을 정립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수학적 전통에 이러한 불확실성이 있다는 것에 대해 오랫동안 숙고했습니다. 결국 저는 이 세상의 다른 면들에 대해서는 극도로 사소한 점들까지 그렇게 면밀하게 탐구했던 철학자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질서 정연한 창조자가 창조한 우주의 작동에 대해서는 어떠한 확실한 이론에도 전혀 이르지 못했다는 것에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코페르니쿠스가 “질서 정연한”을 “수학적으로 정돈된”과 등치시키는지에 주목하라. 이는 멀쩡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라면 누구라도 거세게 반대했을 신플라톤주의의 한 측면이다. 다른 종류의 질서 정연함도 존재한다.] 그래서 저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천구의 운동을 제안한 사람이 과연 있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제가 구할 수 있는 모든 철학자들의 책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저는 키케로(Cicero)의 저작에서 [시라쿠사의] 히케타스(Hicetas, 기원전 5세기)가 지구는 움직인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플루타르코스(Plutarch)의 저작에서 그와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좀 더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플루타르코스 본인의 말을 여기에 옮겨 적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구가 정지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피타고라스주의자인 필롤라오스(Philolaus, 기원전 5세기)는 지구가 태양과 달처럼 [중심의] 불 주위를 비스듬한 원을 따라 돈다고 말한다. 폰토스의 헤라클레이데스와 피타고라스주의자인 에크판토스(Ecphantus, 기원전 4세기)도 지구가 움직인다고 말하지만, 공간 사이를 지나다니는 것은 아니고 축을 중심으로 도는 바퀴처럼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기 자신의 중심을 돌 뿐이라고 한다.

이를 이용해 저도 지구의 운동 가능성에 대해 숙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견해가 불합리하게 보일지라도, 저보다 앞선 사람들이 천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어떠한 원이든 상상해 보는 자유를 누렸다는 것을 알고 나니 제가 지구의 어떤 운동을 가정해 천구들의 회전에 대해 그들보다 나은 설명을 만들 수 있을지 시도해 보는 것 역시 분명히 용납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책에서 지구에 부여한 운동들을 가정하고서 오랫동안 많은 관측을 한 결과, 다른 행성들의 운동을 지구의 회전과 관련지은 후 각 행성의 공전에 맞춰 계산해 본다면 행성들의 모든 현상이 그로부터 곧장 따라 나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행성들과 천구들, 또는 하늘 그 자체의 순서와 크기가 서로 너무도 밀접하게 묶여 있어서, 그것의 어떤 부분도 다른 모든 부분과 우주 전체를 교란하지 않고선 변경될 수 없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 [코페르니쿠스는 여기서 자신의 체계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지적하고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체계에서는 더 이상 다른 행성들을 고정시켜 둔 채 한 행성의 궤도만 마음대로 줄이거나 늘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처음으로 관측은 공간을 채우고 있는 천구들에 대한 가설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모든 행성 궤도의 순서와 상대적인 크기를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코페르니쿠스의 체계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를 비교할 때 더 완전하게 논의할 것이다.]

제 판단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한 추론에 대해 재능 있고 학식 있는 수학자들이 이 분야에서 특히 요구되는 수준의 피상적이지 않은 철저한 이해와 검토를 한다면, 그들도 제 의견에 동의할 것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떤 사람의 비판도 피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학자들뿐만 아니라 교육받지 못한 자들에게도 보이기 위해, 저는 이 연구들을 다른 누구보다도 교황님께 헌정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사는 지구의 이 외딴 구석에서까지 교황님께서는 교황청의 위엄뿐 아니라 글과 학문에 대한 당신의 애정으로 인해 최고의 권위를 누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뒤에서 하는 비방에는 약이 없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교황님께서는 당신의 영향력과 판단을 통해 비방가들의 험담을 막아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수학에는 무지한 게으른 떠버리들은 그들의 목적에 맞게 비열하게 왜곡된 특정한 성서 구절을 가지고서 제 연구에 대한 판단을 내리려 할지 모릅니다. 그들이 아무리 제 연구에 대해 비난하고 트집을 잡더라도 저는 개의치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들의 무모한 비판을 경멸할 것입니다. 저명한 작가이기는 하지만 절대 수학자라고는 할 수 없는 락탄티우스가 지구가 구형이라고 말한 사람들을 비웃으면서 지구의 모양에 대해 너무나도 유치한 얘기를 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제 지지자들은 그런 유의 사람들이 저를 비웃는다 해도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수학은 수학자들을 위한 것이며, 제가 완전히 틀린 것이 아니라면, 수학자들은 저의 이러한 노력이 지금 교황님께서 수장으로 계신 기독교 왕국에도 무언가 기여를 하는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몇 해 전 교황 레오 10세 때 라테란 공회의에서 교회력을 개정하는 문제가 논의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단지 한 해와 한 달의 길이 및 태양과 달의 운동이 아직 충분히 정확하게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당시 이 달력 문제를 담당했던 저명한 포솜브로네의 파울 주교(Paul, Lord Bishop of Fossombrone)의 부탁을 받고, 저는 이들을 더욱 정확하게 관측하기 위해 정성을 쏟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연구에서 성취한 것이 무엇인지는 학식 있는 모든 수학자들과 특히 교황님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이 책의 유용성을 두고서 교황님께 제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약속드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제 제 연구의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1권

1장. 우주는 구형이다

먼저 우리는 우주가 구형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 이유는 그 형태가 접합부 없이 그 자체로 완전한 전체를 이루는 가장 완벽한 형태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가장 큰 용적량을 가져서 모든 것을 담고 보존하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표면적이 주어졌을 때 모든 입체 중에서 구가 가장 큰 부피를 가진다]. 또는 우주의 완벽한 부분들인 태양, 달, 별이 모두 이러한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물방울이나 다른 액체 방울이 홀로 있을 때 보이는 모습처럼 세상 모든 것들이 이러한 모양으로 형성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누구도 천상의 물체[천구]들이 그러한 형태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2장. 땅도 역시 구형이다

땅도 역시 구형인데, 왜냐하면 땅은 모든 방향에서 그 중심을 향해 움직이려 하기 [또는 떨어지기] 때문이다. … 임의의 지점에서 북쪽으로 이동할수록, 일주 운동의 중심축인 [하늘의] 북극은 점차 높아지는 반면 반대편 극은 그만큼 낮아진다. 그리고 [지상의] 북극 근처에서는 지지 않는 별들이 더 많이 보이게 되는 반면, 남쪽의 어떤 별들은 뜨지 않게 된다. … 게다가 극의 고도 변화는 항상 지상에서 움직인 거리에 비례하는데, 이는 구형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땅은 유한한 크기의 구가 분명하다. …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구형임을 뒷받침하기 위해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던 고전적인 자료들에서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몇 가지 추가적인 논증들로 이 장을 마무리한다.]

3장. 땅은 그 위의 물과 함께 어떻게 하나의 구체를 형성하는가

땅을 둘러싼 물은 바다를 형성하며 땅의 깊고 우묵한 곳들을 메운다. 물의 양은 땅의 양보다 적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땅과 물 모두 자신들의 무게로 인해 동일한 중심을 향해 움직이려 하므로) 물이 땅을 완전히 삼켜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 덕분에 생명체들이 살아남고, 땅의 일부 구역들이 침수되지 않고, 또 수많은 섬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것이다. 사실 대륙 그 전체가 거대한 섬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이 장에서,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주로 땅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지구가 구형이 되기 위해 물과 땅이 함께 필요하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 한다. 아마도 그는 앞을 내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움직일 때 땅은 물보다 쉽게 부서지지 않으며, 고체 형태의 지구가 움직이는 것은 액체 형태의 지구가 움직이는 것보다 그럴듯하다. 또, 코페르니쿠스는 궁극적으로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자연스레 원형으로 움직인다고 말할 예정이다(아래의 제1권 8장을 보라). 따라서 땅과 물 모두가 함께 지구의 자연스러운 운동에 동참할 수 있으려면, 그는 땅과 물 모두가 구체를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것을 보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코페르니쿠스가 지구의 구조에 대한 견해를 적으면서 최근의 항해를 통한 발견들과 그로 인해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 저술들에 가해야 할 수정 사항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특히 흥미롭다. 예를 들어, 그의 말에 따르면,

만약 지구가 주로 물로 이루어졌다면,] 해안으로부터 바깥으로 갈수록 바다는 끝없이 깊어져서, 뱃사람은 아무리 멀리 탐험하더라도 섬이나 암초와 같은 땅의 흔적을 전혀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대 대륙의 거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지중해와 홍해 사이의 거리가 기껏해야 15스타드[약 2.7km]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반면, 프톨레마이오스는 ≪세계지(Cosmography)≫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을 반원[즉, 카나리아 제도부터 동쪽으로 180°에 이르는 반구에 걸친 땅]까지 확대시켰고, 그가 미지의 땅으로 남겨 둔 그 너머에서 현대인은 중국을 비롯해 경도 60°에 달하는 매우 광대한 지역을 발견했다. 그래서 현재 우리는 지구상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이 바다를 위해 남겨진 부분보다 더 넓은 범위의 경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아메리카−이를 발견한 선장의 이름을 딴 육지−를 비롯해 오늘날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발견한 섬들을 더한다면 이는 더욱 명백해질 것이다. 아메리카는 그 미지의 크기로 인해 또 하나의 대륙으로 생각되며, 그 밖에도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다른 섬들이 많이 남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정반대편에 대륙이 있고 그곳에 사람들이 거주한다 할지라도 그리 놀라지 않을 것이다. 기하학적 추론에 따르면 아메리카는 인도 갠지스 강 유역의 바로 정반대쪽에 위치한다. …

4장. 천체들의 운동은 영원한 등속 원운동이거나 원운동의 합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 천체들의 운동이 원형이라는 점을 얘기할 것이다. 회전은 구의 자연스러운 운동이며, 그 운동을 통해 자신의 모습, 즉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형태가 나타난다. 그 형태에서는 시작도 끝도 찾아낼 수 없고, 같은 장소를 계속 돌고 있다면, 처음과 끝을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천구가 존재하기 때문에, 많은 운동이 나타난다. 가장 명백한 것으로는 낮과 밤을 관장하는 … 일주 운동이 있다. 이 일주 운동에 의해 지구를 제외한 온 우주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여 간다고 생각되었다. 시간 그 자체가 날의 수로 세어지기 때문에, 이 운동은 모든 운동의 공통된 척도로 간주된다. 다음으로 우리는 이 일주 운동과 반대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도는 다른 회전들도 보게 된다. 태양과 달, 그리고 다섯 행성이 그러한 반대되는 운동을 한다. …

그러나 이 천체들의 운동은 여러 면에서 다른 특성을 보인다. 첫째, 그들은 일주 운동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지 않고 황도를 따라 비스듬하게 회전한다. 둘째, 그들은 자신의 궤도를 규칙적으로 이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태양과 달은 어떤 때는 느려지고 어떤 때는 빨라지는 것이 관찰되지 않는가? 게다가 다섯 행성은 때때로 멈추고 심지어 뒤로 가기도 한다. … 게다가, 때때로 이들은 지구에 가까워지는데 이때를 ‘근지점(近地點, Perigee)’에 있다고 하고, 또 어떤 때는 멀어지기도 하는데 이때를 ‘원지점(遠地點, Apogee)’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규칙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천체들의 운동이 원형 또는 여러 원의 합성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불규칙성들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주기적으로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이는 원운동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데, 원운동만이 물체를 원래의 장소로 다시 데려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태양은 원운동의 조합으로 낮과 밤의 길이 변화와 사계절의 변화를 반복해서 만들어 낸다. 이 불규칙한 운동에는 여러 운동이 결합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하나의 단순한 천체가 하나의 원 위에서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러한 불규칙성은 (내적인 원인 때문이든 외적인 원인 때문이든) 원동력이 일정하지 않았거나 회전하는 물체의 형태가 변화했기 때문에 나타났을 것이다. 그러나 둘 중 어느 것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으며,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질서로 구성된 것들에게 그러한 결함을 상상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태양과 달과 행성들의 운동이 불규칙해 보이는 것은 그들이 회전하는 축의 방향이 다양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지구가 그들이 회전하는 원의 중심이 아니어서 지구상에 있는 우리에게 [그들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이 천체들의 위치 변화가 [광학(또는 일상적인 관찰. 배나 마차는 언제나 더 가까이 있을수록 점점 더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으로 증명되었듯이] 지구에서 멀 때보다 가까울 때 더 크게 보이기 때문일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의 천구의 동일한 [각] 운동들이 다른 거리에서 볼 때는 같은 시간에 다른 거리를 움직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천상의 물체들을 탐구하면서, 우리 바로 곁에 있는 것들을 알아채지 못하고 지구에 속한 것을 천체에 돌리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늘과 지구의 관계를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5장. 땅은 원운동을 하는가? 그리고 그 위치는?

앞에서 지구가 구형이라는 것을 보였으므로, 이제 우리는 지구 역시 그 형태에 걸맞은 운동을 하는지와 지구가 우주에서 어떤 장소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를 모르고서는 천체 현상에 대한 적절한 이론을 만들어 낼 수 없다. 현재 권위자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정지해 있다는 데 동의하고 있으며, 그에 반대되는 견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심지어는 말도 안 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더 면밀하게 살펴본다면, 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며 더 폭넓은 고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물체의 위치 변화가 보이는 것은 관찰 대상이나 관찰자 중 하나가 운동을 하거나 혹은 둘의 운동이 차이가 있을 때다(왜냐하면 같은 방향으로 동일하게 움직이는 물체 사이에는 아무런 운동도 지각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상의 반복된 회전을 보고 있는 곳은 지구다. 만약 지구가 어떤 운동을 한다면, 그 운동은 지구 바깥의 모든 물체들에게 나타날 것이고, 그들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먼저 일주 운동부터 살펴보자. 일주 운동에 의해 지구와 그 부속물들을 제외한 온 우주는 매우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만약 하늘 대신 지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진지하게 숙고한다면, 태양, 달, 별, 행성이 뜨고 지는 것이 실제로는 이런 경우라는 것을, 즉 나의 결론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늘은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며 모든 것에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담은 것 대신 담긴 것이 움직이면 왜 안 되며, 장소를 제공하는 것 대신 장소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움직이면 왜 안 되는가? (키케로에 따르면) 이는 바로 피타고라스주의자인 헤라클레이데스와 에크판토스, 그리고 시라쿠사의 히케타스의 생각이었다. 그들 모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서 회전한다고 생각했으며, 별들이 지는 것은 땅이 가로막기 때문이고, 가로막던 땅이 비키면 별들이 다시 뜬다고 믿었다.

만약 이것[지구의 운동 가능성]이 받아들여진다면, 역시 중요한 문제인 지구의 위치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물론 거의 모든 사람은 지금까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해 왔다. [사실, 지구가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면, 어쩌면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서 도는 단순한 축 회전 이상의 운동을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지구는 아예 중심에서 떨어진 곳에서 움직일 수도 있으며, 정말로 그렇다고 가정할 만한 좋은 천문학적 이유들이 몇 가지 있다.] 지구가 정확한 중심이 아니라 중심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고, 중심에서 지구까지의 거리가 항성 천구[와의 거리]에 비해서는 무시할 정도로 작지만 태양과 다른 행성들의 천구[까지의 거리]에는 비할 만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그들[의 운동]이 정말로 균일하고 지구의 중심이 아닌 어떤 다른 중심 주위로 돈다고 가정하고서, 그들의 겉보기 운동에서 나타나게 될 변화들을 계산해 보자. 그러면 우리는 어쩌면 이 변화무쌍한 운동들의 불규칙성에 대한 합당한 원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행성들이 어떤 때는 지구에 더 가까워 보이고 또 어떤 때는 더 멀어 보인다는 사실로부터, 지구의 중심이 행성 궤도의 중심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진다. 행성이 지구에 접근했다 멀어지는 것인지, 지구가 행성에 접근했다 멀어지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므로 지구가 일주 운동 말고도 또 다른 운동을 한다고 주장해도 이는 불합리하지 않을 것이다. 플라톤이 그를 보기 위해 이탈리아까지 찾아갔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로 대단한 수학자였던 피타고라스주의자 필롤라오스는 지구가 자전 말고도 여러 운동을 하며 떠도는 하나의 행성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6장. 지구의 크기에 비해 하늘이 광대하다는 점에 대해

이렇게 거대한 지구의 크기도 하늘의 크기에 대해서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는 것은 지평선이 전체 천구를 이등분한다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다. 이런 일은 지구가 하늘의 크기와 비교될 정도의 크기를 가진다면 일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구를 이등분하는 원은 구의 중심을 통과하며, 이런 원은 구를 자르는 원 중 가장 큰 원이기 때문이다.

그림 1. 지평선에 의한 천구의 이등분
원 ABCD를 지평선이라 하고, 우리의 시점이 있는 E를 지구라고 하자. 이 점은 또한 [지평선 위의] 보이는 별과 [지평선 아래의] 보이지 않는 별을 나누는 지평선의 중심이다(그림 1). 디옵트라나 점성용 별자리표, 또는 수준기가 E에 놓여 있을 때 게자리의 첫 번째 별이 점 C에서 뜨는 것이 보인다면, 동시에 염소자리의 첫 번째 별이 점 A에서 지는 것이 보일 것이다. 그런데 AEC는 디옵트라와 직선상에 있으므로 이 직선이 황도의 지름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황도십이궁 중 여섯 별자리는 반원을 만드는데 이 반원의 중심은 지평선의 중심과 마찬가지로 E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전이 일어나 염소자리의 첫 번째 별이 점 B에서 뜰 때에는 게자리가 점 D에서 지는 것이 보일 것이다. 이때에도 BED는 직선이자 황도의 지름이 된다. 그러나 직선 AEC가 황도의 지름이라는 것은 이미 증명하였으므로, 그들의 중심은 두 직선의 교점 E가 될 것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이에 의해 지평선은 구의 대원인 황도를 언제나 이등분한다.

그러나 천구의 대원을 이등분하는 원도 대원이므로, 지평선이 대원이고 그 중심이 황도의 중심이라는 것도 명백하다. [그런데 지평선은 지구 중심을 관통하는 면과 천구가 만나서 만들어진 선이 아니라, 일정한 크기를 가진 지구 표면의 접면과 천구가 만나서 만들어진 선이다.] 지구의 중심을 지나는 선과 지구의 표면을 지나는 선은 다르지만, 그들은 지구에 비해 너무나 길기 때문에 마치 평행선이나 하나의 직선처럼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두 선의 길이가 그들의 간격에 비해 매우 클 경우, 광학에서 증명되었듯이 그 두 선은 하나의 선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논의에 의해 하늘은 지구에 비해 막대하게 크며 무한대의 양상을 보인다는 것과, 지구는 하늘에 비하면 하나의 점 또는 무한대에 대한 유한대의 물체에 불과하다는 것이 충분히 명백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이상은 알 수 없으며 이상의 논의로부터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정지해 있다는 것도 증명할 수 없다. [여기서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항성 천구의 중심에 놓여 있다는 고전적 논증의 약한 고리를 활용하고 있다. 코페르니쿠스에 따르면, 지평선이 천구를 정확히 이등분하는 듯한 관찰은 우리에게 지구가 항성 천구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 근처에 있다는 것만을 알려 줄 뿐이다. 중심 근처에서 지구는 관찰에 영향을 주지 않은 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특히, 지구는 중심 혹은 중심의 태양 주위로 궤도 운동을 할 수도 있다. 그 궤도가 지구를 중심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게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너무 멀리”는 “바깥 천구의 반지름에 비해 너무 멀리”라는 뜻일 뿐이다.]

7장. 고대인들은 왜 땅이 우주 한가운데에 중심처럼 정지해 있다고 믿었는가

고대의 철학자들은 갖가지 … 방법으로 땅[지구]이 우주 한가운데에 정지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장 강력한 논증은 무거움과 가벼움의 원리로부터 나왔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흙[땅]은 가장 무거운 원소이고, 무게를 가진 모든 것은 그것의 중심을 향해 움직이려는 경향 때문에 땅을 향해 움직인다. 땅[지구]은 구형이고, 무거운 물체들은 (모든 방향에서) 땅을 향해 수직으로 움직이므로, 그들 모두는 지표면에서 멈추지 않았다면 중심에 함께 모여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중심을 향해 움직이는 물체들은 그곳에 도달하면 거기에 정지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전체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더욱 더 정지해 있을 것이다. 또한 지구는 떨어지는 물체들을 모두 받기 때문에, 그 무게로 인해 지구는 계속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논증은 운동의 본성에 대한 가정에 기초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하나의 단순한 물체는 단순한 운동을 한다. 단순한 운동에는 직선운동과 원운동이 있고, 다시 직선운동에는 위로 향하는 운동과 아래로 향하는 운동이 있다. 그 결과 모든 단순한 운동은 중심에 가까워지는, 즉 아래로 향하는 운동이나,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는, 즉 위로 향하는 운동이나, 중심 주위를 도는, 즉 원운동 중 하나여야만 한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스콜라주의 물리학에 따르면, 자연스러운 운동, 다시 말해 외부의 밀침 없이 일어날 수 있는 운동은 운동 중인 물체의 본성에 의해 야기된다. 단순한 물체(다섯 원소−흙, 물, 공기, 불, 에테르) 각각의 자연스러운 운동은 그 자체로 단순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혹은 기초적인 본성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형 우주 안에는 오직 세 가지 (기하학적으로) 단순한 운동만 존재한다. 중심을 기준으로 한 상향 운동, 하향 운동, 원형 운동이 그것이다.] 아래로, 즉 중심을 향해 움직이는 것은 무거운 원소인 흙과 물만의 성질이다. 반대로 가벼운 원소인 공기와 불은 중심에서 멀어져 위로 움직인다. 따라서 이 네 원소에는 직선운동이 부여되어야 한다. 그러나 천체들에는 원운동이 부여된다. 지금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얘기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만약 지구가 움직인다면 일주 운동만 한다 하더라도 위에서 말한 것과 반대의 결과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24시간 만에 지구를 한 바퀴 회전시키려면 그 운동은 엄청나게 맹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우 빠르게 회전하는 물체는 결합하기 어려우며, 결합해 있더라도 서로 단단히 붙어 있지 않는 한 산산조각으로 흩어지기 쉽다. 그래서 프톨레마이오스에 따르면, 지구는 오래전에 산산이 부서져 (완전히 터무니없긴 하지만) 하늘에서 아예 사라졌을 것이다. 모든 생명체를 비롯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다른 무거운 물체들 역시 지구 표면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어야 한다. 또한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체들은 그 아래의 예정된 장소에 도달하지 못할 텐데, 왜냐하면 그 사이에 그 아래에 있는 땅도 빠르게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름과 같이 공기 중에 떠 있는 모든 것은 항상 서쪽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코페르니쿠스가 프톨레마이오스의 원래 논증을 상당히 정교하게 발전시켰다는 점에 주의할 것. 프톨레마이오스가 이 정도까지 밀고 나갔을지는 전혀 분명치 않다.]

8장. 이 논증들의 불충분함과 그에 대한 반박

이를 비롯해 그와 유사한 이유들로, 그들은 지구가 분명히 우주의 중심에 정지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지구가 움직인다고 말한다면, 동시에 그는 그 운동이 강제된 운동[혹은 외부의 밀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운동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은 강제로 일어나는 일과 반대되는 결과를 산출한다. 어떤 힘이나 강제력을 서서히든 순간적으로든 받는 것들은 반드시 부서지게 되어 있어 오래 유지될 수 없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본성에 의해 존재하는 것들은 질서 잡힌 최선의 상태로 유지될 수 있다. [즉, 만약 지구가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지구가 그런 운동을 하는 것은 지구의 자연스러운 본성 때문일 것이고, 자연스러운 운동은 파괴적일 수 없다.]

따라서 인위적인 작용과는 차원이 다른 운동인 자연스러운 회전 때문에 지구와 그 위의 모든 것이 산산이 흩어질 것이라는 프톨레마이오스의 걱정은 기우다. 그렇다면 우주에 대해서는 더 많이 걱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늘은 지구보다 크기 때문에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격렬한 운동 때문에 하늘은 그렇게 커져 버린 것일까? 그래서 만약 정지한다면 하늘은 붕괴하게 될까? 만약 그렇다면, 하늘의 크기는 무한대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운동에 의해 하늘이 더욱 확대될수록, 24시간 내에 돌아야 할 거리가 점점 늘어나게 되므로 운동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고, 운동 속도가 빨라지면 다시 하늘의 크기도 커져야 하기 때문이다. 즉 속도와 크기는 서로를 무한히 증가시킬 것이다. …

그들은 또 하늘 너머에는 어떠한 물체도, 공간도, 심지어는 진공도 없다고, 즉 완전히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하늘이 늘어날 공간도 없다. 그러나 무언가가 무(無)에 의해 지탱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만약 하늘이 무한하면서 그 안의 둥근 하늘 부분만 유한할 뿐이라고 한다면, 하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어쩌면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얘기가 될 것이다. 이 경우 어떤 크기의 것이든 모든 것이 하늘 안에 있게 되지만, 하늘은 움직이지 않는다. …

그러면 우주가 유한한지 무한한지에 대한 질문은 자연철학자들에게 맡겨 두자. 대신 지구가 유한한 구체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그 한계를 알지 못하고 또 알 수도 없는 우주 대신 지구에 그것의 [구] 형태에 자연스러운 운동을 부여하는 것을 왜 주저해야 하는가? 또한 일주 운동이 겉보기에는 하늘에 속하지만 실제로는 지구에 속한다는 것을 왜 받아들이지 않는가? 이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Aeneas)>에서 “항구를 떠나 항해를 시작하자, 육지와 도시들이 후퇴한다”라고 말한 것과 매우 유사하다. 배가 고요하게 떠서 움직일 때, 선원들에게 바깥의 모든 것들은 배의 운동을 대신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자신과 선상의 모든 물건은 정지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지구의 운동도 분명 전 우주가 회전하는 느낌을 낼 수 있다.

구름을 비롯해 공기 중에 떠 있거나 공기 중에서 가라앉거나 떠오르는 물체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분명 땅과 그 위의 물뿐 아니라 상당량의 공기와 그처럼 땅에 결부된 것들은 모두 위에서 말한 대로 움직일 것이다. 어쩌면 땅 부근의 공기는 흙성 물질이나 물성 물질의 혼합물을 함유하고 있어서 흙과 동일한 자연 법칙을 따를지도 모르며, 아니면 공기는 땅에 근접해 있어서 영원히 회전하는 땅으로부터 저항 없이 운동을 전달받았을 수도 있다. …

우리는 떨어지거나 올라가는 물체가 우주적 틀에서 보면 이중의 운동이라는 점을, 즉 직선운동과 원운동의 합성 결과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일찍이 오렘이 얘기했던 분석이다.] 자신의 무게 때문에 아래로 떨어지는 물체들, 즉 주로 흙 성분으로 이루어진 물체들은, 틀림없이 그들이 속해 있던 전체와 같은 본성을 계속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 [따라서 예를 들어 돌은 땅에서 분리되더라도 계속 땅과 함께 원으로 돌면서 동시에 지표면을 향해 직선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 알짜 운동은 회전 중인 돌림판의 중심을 향해 직선으로 기어가는 벌레의 운동처럼 일종의 나선 모양이 될 것이다.]

따라서 단순한 물체가 단순한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원운동에서만 참이며, 이마저도 그 단순한 물체가 자신의 자연스러운 장소와 상태에 있을 때에만 성립한다. 그 상태에서는 원운동 말고는 어떠한 운동도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러한 원운동은 정지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자기 자신 안에서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직선운동은 물체가 자연스러운 장소에서 멀어지거나 밀려났을 때 부가된다. 그런데 어떤 물체가 자신의 적절한 장소에서 벗어나 있다면 이는 우주의 전체적인 질서와 형태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다. 따라서 직선운동은 자기 자신의 적절한 장소에 있지 않거나 자신의 본성에 완벽하게 합치되어 있지 않을 때, 즉 물체가 자신의 전체로부터 분리되어 그 통일성을 잃었을 때에만 나타난다. …

[코페르니쿠스의 논증은 지구가 행성이 될 때 지상계와 천상계 사이의 전통적인 구분이 얼마나 빨리 사라져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왜냐하면 그는 여기서 천체들에 관한 전통적인 논증을 지구에 적용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원운동은, 단순하든 합성된 것이든, 정지해 있는 것에 가장 가깝다. 여태껏 하늘의 자연스러운 운동이었듯이, 원운동은 지구에도 자연스러울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운동은 우주의 관찰된 통일성과 규칙성을 파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직선운동은 자신의 장소에 도달한 어떤 물체에게도 자연스러울 수 없다. 왜냐하면 선형운동은 파괴적이며, 우주를 파괴하는 자연스러운 운동이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동의 상태는 변화와 불안정한 상태보다 고귀하고 신성하다고 생각되므로, 후자의 상태는 우주보다 지구에 적합하다. 또한 담겨 있으면서 장소를 차지하고 있는 것, 즉 지구 대신, 그것들을 담고 있으면서 그것들에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 운동을 한다는 것은 정말 불합리해 보이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행성은 지구에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기 때문에, 이에 따르면 하나의 물체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의 생각에] 지구가 차지하고 있는 중심 주위를 도는 운동뿐 아니라 안팎으로 오가는 운동도 하게 된다. [이는 지구의 중심적 위치를 끌어내는 데 사용된 바로 그 법칙들을 위반한다. 왜냐하면 이 법칙들에 따르면 행성들은 오직 단 하나의 운동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심 주위를 도는 이 운동은 더 일반적인 방식으로 재해석될 필요가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모든 운동이 모종의 중심을 가진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지구는 정지해 있기보다 움직이는 것이 더 그럴듯하다. 특히 일주 운동은 바로 그런 경우로, 그 운동은 지구의 속성으로 간주될 수 있다.

9장. 하나보다 많은 운동이 지구에 부여될 수 있는가와 우주의 중심에 대해

지구가 운동을 하면 안 될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지구가 하나보다 많은 운동을 가지는지, 그래서 하나의 행성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지구가 모든 [행성] 회전의 중심이 아니라는 점은 행성들의 불규칙한 운동과 지구로부터의 거리 변화를 통해 증명된다. 만약 그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한 동심원을 돈다면 이는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주에는 하나보다 많은 중심이 있으며[즉, 모든 궤도 운동의 중심, 지구 자체의 중심, 그리고 어쩌면 그 밖의 다른 중심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중심이 지구의 무게중심인지 아닌지를 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제 나는, 무거움이라는 것이 창조자에 의해 각 부분들이 구의 형태로 결합해 통일성과 전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부분들에 부여된 자연스러운 경향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성질이 태양, 달, 다른 행성들에도 존재하고, 그 덕분에 그들이 저마다 다양한 경로에도 불구하고 구 형태를 유지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만약 지구가 자신의 중심에서 회전하는 것 말고도 다른 운동을 한다면, 그 운동은 [지구는 지금 상당히 많은 측면에서 행성처럼 보이기 때문에] 연주 운동을 하는 바깥의 많은 [행성] 운동들과 비슷해야 할 것이다. 만약 태양을 정지시키는 대신 태양의 운동을 지구에 넘긴다면, 별들이 아침저녁으로 뜨고 지는 것은 변하지 않겠지만, 행성들의 정지점과 역행과 순행은 그들의 운동 때문이 아니라 지구의 운동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간주될 것이며, 그들의 겉보기 운동은 이를 반영할 뿐인 것이 된다. 결국 우리는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 놓아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행성들의 체계적인 운행 원리와 온 우주의 조화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단, 그것은 우리가 이른바 “두 눈을 뜨고서” 사실을 직시할 때에만 보일 것이다.

10장. 천체들의 순서에 대해

항성 천구가 눈에 보이는 것들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아무도 없다. 고대의 철학자들은 행성들의 순서를 그 회전 주기에 따라 정하고 싶어 했다. 그 근거로 그들은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는 멀리 있을수록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유클리드의 ≪광학≫에서 증명된) 사실을 제시한다. 그들은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가장 작은 원을 돌기 때문에 가장 짧은 시간에 궤도를 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긴 시간 동안 가장 큰 원을 도는 토성을 가장 높은 곳에 둔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목성을, 또 그 아래에는 화성을 둔다.

금성과 수성에 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데, 이 행성들은 다른 행성들과 달리 태양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플라톤이 ≪티마이오스≫에서 얘기한 것처럼 금성과 수성을 태양 위에 두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프톨레마이오스와 현대의 많은 이들처럼 그것들을 태양 아래에 두었다. 알페트라지우스[Alpetragius/Al-Bitruji(알-비트루지, 12세기 이슬람 천문학자)]는 금성은 태양 위에, 수성은 태양 아래에 두었다. 플라톤의 추종자들에 따르면, 모든 행성은 원래는 어두운 물체이지만 햇빛을 받아 빛나게 된다. 이것이 맞을 경우, 만약 어떤 행성들이 태양 아래 있다면, 그 행성들은 태양과의 각이 크게 벌어지지 않기 때문에 반원이나 일정 정도 이지러진 원형으로 보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초승달이나 그믐달 때처럼 그들이 위에서 받는 빛의 대부분은 태양 쪽으로 반사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장의 금성의 위상에 대한 논의를 보라. 이 효과도, 다음 효과도 망원경 없이는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태양은 이따금씩 이 행성들에 의해 가려져 그 크기만큼이라도 햇빛이 차단되는 일이 발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한 번도 관찰된 적이 없기 때문에, 플라톤의 추종자들은 그 행성들이 결코 우리와 태양 사이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이후로 코페르니쿠스는 태양과 내행성들의 상대적인 순서를 정하는 데 흔히 사용된 논증들의 많은 난점들을 계속 지적한다. 그다음 이렇게 이어 나간다.]

태양이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질 수 있는 행성들과 그렇지 않은 행성들 사이에서[즉, 모든 이각을 가질 수 있는 외행성과 최대 이각이 제한된 내행성 사이에서] 돌고 있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증명 역시 설득력이 없다. 그것의 오류는 달도 태양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명백하게 드러난다. 또한 태양 아래 금성을 두고 그 아래 수성을 두는 사람들이든 모종의 다른 순서로 두는 사람들이든, 수성과 금성이 [자신의 주원이 태양의 주원과 묶여 있지 않은] 다른 행성들처럼 태양의 궤도와 독립된 궤도를 돌지 않는 것에 대해 무슨 이유를 내세울 수 있겠는가? 그들은 행성들의 상대 속도에 따라 그 순서가 결정된다는 원리를 위반하지 않고서는 그에 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대안은 두 가지뿐이다. 우리는 지구가 행성들의 정렬 기준이 되는 중심이 아니란 것을 인정하거나, 아니면 그 행성들의 정렬 순서도 전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왜 가장 높은 곳에 목성이나 다른 어떤 행성이 아닌 토성이 배치되어야 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 마르티아누스 카펠라[Martianus Capella, 헤라클레이데스에 의해 아마도 처음 제안된 내행성 이론을 기록한 5세기의 로마 백과사전 집필자]와 몇몇 다른 라틴어 책의 저자들의 기발한 견해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 따르면, 금성과 수성은 다른 행성들과 달리 지구를 돌지 않고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때문에, 이 행성들은 자신들의 천구 반지름이 허용하는 범위 이상으로 태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게 된다. … 이 말은 이 천구들의 중심이 태양에 가깝다는 뜻이 아니면 무엇이 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수성 천구는 분명 금성 천구 안에 들어 있어야 할 텐데, 모두가 동의하는 바에 따르면, 금성 천구는 수성 천구의 2배 이상으로 크다.

이제 우리는 이 가설을 토성, 목성, 화성에까지도 확장해서, 그들의 천구가 금성, 수성, 지구의 천구를 모두 포함할 만큼 크다는 전제 아래 그들도 같은 중심을 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 이 외행성들은 저녁에 뜰 때, 다시 말해 행성이 태양의 반대편에 있고 지구가 태양과 행성 사이에 있을 때마다 지구에 가까워진다. 반대로 행성이 저녁에 질 때, 즉 행성이 태양에 가려 보이지 않고 태양이 행성과 지구 사이에 있을 때는 지구에서 멀어진다.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그들의 중심은 지구가 아닌 태양에 있으며 그들이 금성과 수성의 회전 중심과 똑같은 중심을 돈다는 것이 충분히 증명된다.

[코페르니쿠스의 얘기는 사실 ‘증명’이 아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도 이 현상들을 코페르니쿠스 체계만큼 완전하게 설명해 주지만, 또다시 코페르니쿠스의 설명이 더 자연스러울 뿐이다. 왜냐하면 내행성들의 최대 이각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의 설명처럼, 그 설명은 태양 중심의 천문학 체계의 기하학적 구조에만 의존할 뿐, 그 행성들의 특정한 공전 주기에는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외행성은 지구가 그 행성을 따라잡을 때 역행하고, 이 조건에서 그 행성은 동시에 지구에 가장 가까워져야 하고 태양과 황도 반대편에 있어야 한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역행 중인 외행성은 반드시 지구와 가장 가까워져야 하고, 태양과 하늘 반대편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행성이 태양과 하늘 반대편에 있는 것은 단지 그 주전원이 행성을 중심에 있는 지구에 가까이 데려다줄 때마다 행성이 태양 맞은편에 있게 되는 특별한 회전 속도로 그 행성의 주원과 주전원을 돌게 했기 때문일 뿐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는 주전원이나 주원의 주기가 소량만 달라져도 역행 중인 외행성이 태양과 하늘 반대편에 놓이는 정성적인 규칙성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코페르니쿠스 체계에서는 이 현상이 행성의 공전 속도와 무관하게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이 천구들은 모두 하나의 중심을 가지므로, 금성 천구의 바깥 면과 화성 천구의 안쪽 면 사이의 공간 역시 두 천구와 같은 중심을 가진 천구로 간주해야 하며, 이 천구는 지구와 그 위성인 달, 그리고 달 천구에 포함된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의심할 바 없이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달을 지구에서 떼어 낼 수 없는 데다, 그 공간은 달이 들어갈 정도로 충분히 넓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구의 중심이 달의 궤도와 함께 태양을 중심으로 1년에 한 바퀴씩 다른 행성들 사이에 있는 커다란 원을 돈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주의 중심은 태양 근처에 있고, 태양은 정지해 있기에 태양의 모든 겉보기 운동은 지구의 운동으로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다른 행성 천구들의 크기에 비해 무시할 만한 크기가 아니지만, 우주의 크기가 너무나 광대하기 때문에, 항성 천구의 크기에 비해서는 무시할 만하다.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놓게 되면 수많은 천구가 필요해져 문제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밖에 없는데, 그보다는 이것을 믿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쓸모없거나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도 만들어 내지 않으면서 여러 작용에 하나의 원인을 부여하길 좋아하는 자연의 지혜를 따르는 것이 낫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어렵고, 상상하기도 어려우며, 많은 사람들의 믿음과 분명 상충한다. 그러나 다음의 논의를 통해, 별 문제가 없는 한 적어도 수학자들은 이를 아주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림 2.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체계
천구의 크기가 그 주기에 따라 결정된다는 위의 견해가 유지된다면(그보다 나은 원리가 없으므로), 천구들의 순서는 가장 높이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다음과 같을 것이다. 가장 높이 있는 것은 항성 천구로, 이 천구는 모든 것을 포함하며 따라서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 이 천구는 다른 모든 천체의 운동과 위치의 기준이 되는 천구다. … 그다음은 행성인 토성으로, 30년에 한 바퀴를 회전한다. 다음으로는 목성이 12년에 한 바퀴를 돌고, 그다음에는 화성이 2년에 한 바퀴를 돈다. 넷째 자리[의 천구]는 1년에 한 바퀴를 도는데, 이곳에는 지구와 그 주전원인 달 천구가 들어 있다. 다섯째 자리에는 9달마다 한 바퀴를 도는 금성이 있고, 마지막 여섯째 자리에는 80일 주기로 회전하는 수성이 있다.

모든 것의 한가운데에 태양이 왕좌 위에 앉아 있다. 이 가장 아름다운 사원에서 이 빛나는 옥체가 전체를 한꺼번에 밝힐 수 있는 곳이 이곳 말고 어디에 있겠는가? 그는 우주의 등불, 우주의 정신, 우주의 통치자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상당히 적절한 이름이다.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는 그에게 ‘보이는 신’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는 그를 ‘모든 것을 보는 자’라고 불렀다. 따라서 태양은 그 주위를 돌고 있는 그의 자식들, 즉 행성들을 통치하는 왕좌에 ‘앉아 있다’. 지구는 언제나 달의 시중을 받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동물[의 발생]에 관하여(On [the Generation] of Animals)≫에서 말했듯이, 달은 지구와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다. 그러는 사이 지구는 태양과 관계를 맺으며, 해마다 새 생명을 잉태한다.

이로써 우리는 이러한 천체들의 배열 아래 놓여 있는 우주의 놀라운 대칭성과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천구의 운동과 크기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덕분에 우리는 왜 목성의 순행과 역행은 토성보다는 크고 화성보다는 작게 보이는지, 어째서 금성의 순행과 역행이 수성보다 크게 보이는지[그림 32를 보면 행성의 궤도가 지구에 가까울수록 그 행성의 겉보기 역행 운동이 더 커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또 다른 조화다], 어째서 이런 방향 전환이 목성보다 토성에서 더 자주 일어나지만 수성에 비해 화성과 금성에서는 덜 자주 일어나는지[지구는 빠르게 도는 외행성보다 느리게 도는 외행성을 더 자주 따라잡을 것이고, 내행성의 경우엔 그 반대일 것이다], 또한 어째서 토성, 목성, 화성이 태양에 가려지거나 낮에 뜰 때보다 태양 반대편에 있을 때 지구에 더 가까운지, 또 특히나 화성이 밤새 빛날 때[즉 태양 반대편에 있을 때]는 그 크기가 목성과 비슷해서 목성과 화성을 단지 화성의 붉은색으로만 구분할 수 있지만, 다른 때에는 어째서 이등성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아 주의 깊게 그 운동 궤적을 쫓아야만 겨우 알아볼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현상은 동일한 원인에 의해 일어나는 것들로, 그 원인은 바로 지구의 운동이다.

이와 반대로 항성에는 이런 현상이 없다는 것은 그들이 한없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증명하며, 바깥 천구의 [겉보기] 연주 운동 또는 그것의 흔적[연주 시차]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왜냐하면 광학에서 증명된 바와 같이, 어떤 물체든 어떤 거리 이상 멀어지면 눈에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별들의 반짝거림에 의해서도 우리는 행성 중 가장 높이 있는 토성과 항성 천구 사이에 매우 큰 간격이 있음을 알 수 있으며[왜냐하면 만약 별들이 토성과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면, 그들도 토성만큼 빛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항성을 행성과 구별해주는 것은 주로 이러한 특징이다. 왜냐하면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 사이에는 매우 커다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장 위대한 고귀한 창조자의 이 신성한 작품은 얼마나 광대한가!

역자주

  1. (역자주) 수벌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무리에서 무시당하는 존재이다.
  2. (역자주) 기원전 1세기의 로마 시인 Horace는 Ars Poetica에서 작가는 새 원고를 출판하기 전까지 9년 동안 묵혀두어야 충분한 객관성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었는데, 코페르니쿠스는 이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번역들

영역

  • Nicholas Copernicus, On the Revolutions, translation and commentary by Edward Rosen (Baltimore and London: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2). (현재 가장 권위있는 영역본임)
  • Occasional Notes of the Royal Astronomical Society, vol. 2, no. 10 (London: Royal Astronomical Society, 1947), translated by John F. Dobson and Selig Brodetsky. 토머스 쿤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에서 주되게 인용된 버전이나, 다른 번역본에 비해 질이 좋다고 보기 어려움.

국역

  • 니콜라이 코페르니쿠스 저,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 한국과학문화재단 시리즈04, 민영기, 최영재 공역 (1998).
  • 1권 발췌 번역 : 홍성욱 편역, ≪과학고전선집≫ (서울대학교출판부) : 민영기, 최영재 번역본을 참고하여 옮겼으나 거의 차이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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