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적, 인지적, 사회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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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래리 라우든 지음, 정동욱 옮김, 인식적, 인지적, 사회적. 원문 : Larry Laudan, "The Epistemic, the Cognitive, and the Social", in ''Science, Values, and 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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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만약 과학철학이 응용 인식론이라는 생각을 당신이 지지한다면, 당신은 과학철학의 일이 사건 자체라기보다 사건의 합리적 (이제 인식적인 것으로 이해된) 재구성을 가지고 하는 작업이라 여기는 라이헨바흐의 생각에서 어떠한 이상한 점도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 게다가 당신은 이렇게 덧붙일지도 모른다. 인간 활동에 대한 모든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설명은 감당 가능한 분석 단위를 갖기 위해 실제 세계의 지독한, 와글와글대는 혼란을 단순화하고 이상화해야 한다고 말이다. 단순화가 유용한 목적을 제공하는 한, 나는 단순화를, 심지어 과도한 단순화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수상한 점은 과학 활동을 추동하는 대부분이, 가장 합리적으로 보이는 과학 활동에서조차, 엄격한 의미에서는 아무런 인식적 정당화를 갖지 못한 고려로서 라이헨바흐를 비롯해 과학철학을 응용 인식론으로 생각하는 다른 많은 이들이 보기에 과학의 합리적 재구성에서 배제되어야만 하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이 장의 뒷부분은 이 주장을 공략할 것이다. 나는 과학자들에 의해 사용된 많은, 거의 대부분의,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론 평가 원리들이, 그들 자신에 의하면 합리적이고 적절할지라도, 인식적 이유(rationale) 또는 토대를 전혀 갖지 못함을 보일 것이다.
자 이제, 만약 과학철학이 응용 인식론이라는 생각을 당신이 지지한다면, 당신은 과학철학의 일이 사건 자체라기보다 사건의 합리적 (이제 인식적인 것으로 이해된) 재구성을 가지고 하는 작업이라 여기는 라이헨바흐의 생각에서 어떠한 이상한 점도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 게다가 당신은 이렇게 덧붙일지도 모른다. 인간 활동에 대한 모든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설명은 감당 가능한 분석 단위를 갖기 위해 실제 세계의 지독한, 와글와글대는 혼란을 단순화하고 이상화해야 한다고 말이다. 단순화가 유용한 목적을 제공하는 한, 나는 단순화를, 심지어 과도한 단순화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수상한 점은 과학 활동을 추동하는 대부분이, 가장 합리적으로 보이는 과학 활동에서조차, 엄격한 의미에서는 아무런 인식적 정당화를 갖지 못한 고려로서 라이헨바흐를 비롯해 과학철학을 응용 인식론으로 생각하는 다른 많은 이들이 보기에 과학의 합리적 재구성에서 배제되어야만 하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이 장의 뒷부분은 이 주장을 공략할 것이다. 나는 과학자들에 의해 사용된 많은, 거의 대부분의,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론 평가 원리들이, 그들 자신에 의하면 합리적이고 적절할지라도, 인식적 이유(rationale) 또는 토대를 전혀 갖지 못함을 보일 것이다.


나는 내가 선택했을 만한 많은 사례들 중에 일군의 사례에 집중할 것이다. 나의 핵심 논증은 과학자들이 이론을 평가할 때 그것의 범위와 일반성에 대해 묻는 빈도와 지속성에 의존할 것이다. 몇몇 익숙하고 중요한 이론 평가의 어림 규칙들(rules of thumb)은 그러한 고려를 거론한다.  
나는 내가 선택했을 만한 많은 사례들 중에 일군의 사례에 집중할 것이다. 나의 핵심 논증은 과학자들이 이론을 평가할 때 그것의 범위와 일반성에 대해 묻는 빈도와 지속성에 의존할 것이다. 몇몇 익숙하고 중요한 이론 평가 규칙들(rules of thumb)은 그러한 고려들을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수용가능한 이론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만족할 것으로 기대된다. 영역 내의 알려진 사실들을 설명해야 하고("현상 구제"), 다양한 종류의 사실들을 설명해야 하고(귀납들의 통섭), 왜 경쟁 이론이 성공적이었는지 설명해야 하고(셀라스-퍼트남 규칙), 경쟁 이론을 자신의 극한으로 포섭해야 한다(보이드-퍼트남 규칙). 과학 이론을 평가하는 데 이런 종류의 규칙들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독자는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한다. 문제는 그런 규칙들이 인식론 자체에 조금이라도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혹은 가지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지에 있다.
 
이 목록의 첫 번째 규칙, 즉 영역 내의 알려진 사실들을 설명하라는 규칙을 생각해보자. 정상 상태 우주론은 1960년대에 거부되었지만, 이는 그것이 반박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벨 연구소에서 발견한 우주 배경 복사에 대해 설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허튼(Hutton), 플레이페어(Playfair), 라이엘(Lyell)의 동일과정설은 19세기 대부분의 지질학자에게 거부되었는데, 이는 그 이론이 막대한 반박에 부딪혔기 때문이 아니라, 지구가 원초적인 초기 상태로부터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상태로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시종일관 아무 얘기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판구조론은 1960년대 대륙 고정 지질학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는데, 그 주된 이유는 전자는 대륙 조각 맞추기의 친숙한 패턴들과 구대륙-신대륙 사이의 동물군과 식물군의 유사성을 설명할 수 있지만 후자는 못했기 때문이다. 갈릴레오는 목성에 왜 달이 있어야 하는지나 태양에 흑점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을 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목성의 달과 태양의 흑점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책}}에 있는 어떠한 주장도 반박하지 않았다. 이 논증의 힘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가 그러한 현상들을 이해하게 해줄 어떠한 메커니즘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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