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적, 인지적, 사회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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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바이트 추가됨 ,  2021년 7월 26일 (월)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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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일반적으로, 한 이론이 경쟁 이론에 의해서는 설명될 수 없는 세계에 관한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예측할 수 있다면 전자자 후자보다 우수하다는 주장을 과학자들이 자주 한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단언컨대, 이를 허울만 그럴듯한 논증 형식으로 간주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외에 모든 점들이 같을 때, 다른 영역의 사실들을 설명하거나 예측하면, 혹은 경쟁 이론을 자신의 극한적 경우로 보일 수 있다면, 그 이론이 더 낫다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아무런 인식적 토대를 가지지 않은, 그리고 가질 수 없는, 논증 형식이다. 이론의 범위에 관한 우리이 다른 세 가지 규칙도 똑같이 인식론과 단절되어 있다.  
보다 일반적으로, 한 이론이 경쟁 이론에 의해서는 설명될 수 없는 세계에 관한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예측할 수 있다면 전자자 후자보다 우수하다는 주장을 과학자들이 자주 한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단언컨대, 이를 허울만 그럴듯한 논증 형식으로 간주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외에 모든 점들이 같을 때, 다른 영역의 사실들을 설명하거나 예측하면, 혹은 경쟁 이론을 자신의 극한적 경우로 보일 수 있다면, 그 이론이 더 낫다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아무런 인식적 토대를 가지지 않은, 그리고 가질 수 없는, 논증 형식이다. 이론의 범위에 관한 우리이 다른 세 가지 규칙도 똑같이 인식론과 단절되어 있다.  


이 규칙들 중 어떤 것도 인식적 근거를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한 진술이 그 속성들 가운데 무언가를 가진다는 것이 그 진술의 참에 대한 필요 조건도 충분 조건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 진술이 그와 분명히 양립가능한 어떤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은 그 진술이 참임을 반대하는 논증이 될 수 없다. 실제로, 대부분의 참된 진술들은 이러한 덕목을 가지지 않는다. 이와 비슷하게, 한 진술이 여럿이 아닌 한 종류의 사실들만 설명한다는 점은 그 진술이 거짓임을 믿을 이유가 될 수 없다. 실제로, 대부분의 참된 진술들은 다양한 종류의 사실들ㅇ르 설명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진술이 왜 그의 반대 진술들이 왜 그렇게 잘 작동했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그것의 참을 반대하는 논증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참된 진술들은 그들의 반대 진술들이 {{--}} 만약 성공적이었다면 {{--}} 왜 성공적이었는지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참된 진술들이 그들의 반대 진술들의 일부가 그들의 극한적인 경우로 보여질 수 있을 거라 일반적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이 규칙들 중 어떤 것도 인식적 근거를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한 진술이 그 속성들 가운데 무엇을 가지든, 그것은 그 진술의 참에 대한 필요 조건도 충분 조건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 진술이 그와 분명히 양립가능한 어떤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은 그 진술이 참임을 반대하는 논증이 될 수 없다. 실제로, 대부분의 참된 진술들은 이러한 덕목을 가지지 않는다. 이와 비슷하게, 한 진술이 여럿이 아닌 한 종류의 사실들만 설명한다는 점은 그 진술이 거짓임을 믿을 이유가 될 수 없다. 실제로, 대부분의 참된 진술들은 다양한 종류의 사실들ㅇ르 설명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진술이 왜 그의 반대 진술들이 왜 그렇게 잘 작동했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그것의 참을 반대하는 논증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참된 진술들은 그들의 반대 진술들이 {{--}} 만약 성공적이었다면 {{--}} 왜 성공적이었는지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참된 진술들이 그들의 반대 진술들의 일부가 그들의 극한적인 경우로 보여질 수 있을 거라 일반적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범위와 일반성에 관한 이러한 속성들이 좋은 덕목일지라도, {{--}} 그리고 나는 그렇다고 믿는데 {{--}} 그것들은 인식적 덕목이 아니다. 그것들은 이론의 폭과 범위에 관한 질문들을 다룰 뿐, 그들의 참이나 확률에 관한 질문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철학자들이 때로 범위에 관한 이러한 덕목들을 인식적 덕목으로 묘사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은 사실이다. 예를 든다면, 통섭-성취적 귀납이 참에 가깝다는 것을 보이려고 했던 윌리엄 휴얼의 공을 들였으나 성공적이진 못했던 시도를 들 수 있다. 또한 보이드와 퍼트넘은 선행 이론을 현행 이론의 극한적 경우로 포착하는 것이 그 이론의 참의 증거임을 보이고자 노력했다.) 내가 다른 곳에서 이미 논증했듯이(Laudun 1981), 이 규칙들 중 어느 하나라도 그것이 거짓인 이론보다 참된 이론을 더 잘 선별한다는 것을 보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에 따르면 이 규칙들 중 어떤 것도 인식적 성격을 가지지 않는다.
(추후 완성 예정)
(추후 완성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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