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tancing science from religion in 17th-century Eng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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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튼의 제도적 분화 가설의 오류: 분화가 아닌 구성! 이는 수사적 성취

17세기 당시 과학과 종교와의 일치를 강조하는 수사학뿐 아니라 분리를 강조하는 수사학도 공존했음

  • Thomas F. Gieryn, "Distancing Science from Religion in 17th England"

기어린은 머튼 명제가 표현된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의 외적 접근과 근래 머튼의 내적 접근을 관통하는 제도적 분화 가설을 지목한다. 그는 이 머튼 명제가 17세기 과학과 종교적 가치를 연결하는 수사에만 초첨을 맞춤으로써 당시 거리두기의 수사적 노력이 공존했음을 간과했다고 지적한다.

제도적 분화 가설은 사회가 (과학, 종교, 정치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분석될 수 있고, 이 제도들이 각기 자율성을 얻어가면서 분화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므로 머튼의 외적 접근과 내적 접근의 차이는 단지 제도화의 초기단계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아니면 상당히 자율성을 획득한 후기 단계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반면, 구성주의를 과학에 적용한 '제도적 구성 가설'이 대안이 될 수 있는데, 이는 제도를 하나의 사회적 구성물로서 파악한다. 제도적 분화는 근대화 과정의 필요요소나 부산물이 아닌 수사적 성취이다.

17세기 자연철학자들은 과학과 종교를 포갬으로써 신과 신앙을 사회질서의 중심에 놓는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있었고, 다른 한편 과학을 종교와 분리시킴으로써 분파주의나 광신을 꺼려하는 사람들로부터도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17세기 과학의 지위와 실천이 증가한 것은 과학과 종교가 공유하는 가치를 통해 두 제도를 연결하려는 수사적 노력만큼이나 두 제도를 분리하려는 수사적 노력 덕분이다. 그러므로 일치의 레퍼토리만을 강조하고 분리의 레퍼토리를 무시한 머튼의 논제는 불완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