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lanation v. Prediction: Which Carries More W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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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hinstein (1994), Explanation v. Prediction: Which Carries More Weight?

1. 역사적 논제

애친스타인은 다음과 같은 (넓은 의미의) '역사적 논제'를 정의한다.

역사적 논제 : 어떤 주장 e가 (만약 참이라면) 가설 h에 대한 증거인지, 또 그 증거가 얼마나 강력한지는 e 또는 h 또는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모종의 역사적 사실에 의존한다.

예측주의든 설명주의든 위의 역사적 논제에 동의할 것이다. 반면 평범한 가설연역주의를 비롯한 많은 증거 이론들은 역사적 논제와 양립불가능하다. 애친스타인에 따르면, 위의 역사적 논제는 때로 참이지만, 그것이 예측주의나 설명주의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2. 선택 절차

역사적 논제가 때로 참이라는 애친스타인의 '선택 절차' 논변 : "어떤 약 D가 증상 S에 대해 약 95%의 치료율을 가진다"는 가설 h에 대해, "S를 가진 실험군 1000명이 D를 복용하여 그중 950명이 S의 절감효과를 본 반면, D 대신 위약을 먹은 대조군 1000명은 아무도 S의 절감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증거 e를 생각해보자. 만약 e가 매우 약한 증상 S를 가진 5살짜리 여아로부터만 얻어진 것이라면 그 증거의 강도는 매우 약화될 것이며, 만약 e의 실험군에 D와 함께 D의 효과를 차단하면서 S를 똑같이 절감하는 다른 약 D'를 복용시켰다면, e는 h에 아무런 증거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즉 e가 h를 (얼마나) 입증하는지는 e를 얻는 데 사용된 '선택 과정'에 의존하며, 즉 e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의존한다.

왜? e가 h에 대해 '경험적으로 불완전하기' 때문. 즉 e가 h의 증거가 되는지 여부는 e나 h에는 담겨 있지 않은 추가적인 경험적 정보, 즉 e가 선택된 절차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다른 예로, e(수컷 까마귀가 검다)가 h(암컷 까마귀가 검다)를 뒷받침하는지는 다른 종의 새들이 일반적으로 암컷과 수컷의 색깔이 같은지, 다른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물론 여기서 필요한 추가적인 사실은 "역사적"이지 않다.

결국, 역사적 논제를 만족하는 경우는 e가 h에 대해 '경험적으로 불완전'하면서 이때 필요한 추가적인 정보가 '역사적'인 경우이며, 나머지 경우는 역사적 논제를 만족하지 않는다.

3. 예측 대 설명

그렇다면 이러한 구분을 이용하면 예측주의나 설명주의의 논쟁에서 어떤 답을 내릴 수 있을까? 애친스타인의 답은 때로는 예측이, 때로는 설명이 더 나은 증거를 제공하며, 때로는 둘이 똑같겠지만, 사실 예측이냐 설명이냐는 증거와 무관하다.

이에 대한 논변 : (i) 역사적 논제를 만족하지 않는 경우, e가 h 이전에 확인되었는지 이후에 확인되었는지는, 증거 여부와 무관하다(e.g., 공정한 동전 가설과 그 동전을 1000번 무작위로 던저 약 500번 앞면이 나왔다는 증거). (ii) 역사적 논제를 만족하는 경우(약의 치료 효과 가설에 대한 증거), e가 h의 증거가 되는지 여부와 그 강도는 예측인지 설명인지가 아니라 e가 h에 대해 좋은 선택 절차를 통해 얻어진 것인지에 의해 결정된다. 즉, e가 h의 예측이더라도 나쁜 선택 절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나쁜 증거를 제공하고, h가 e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도 좋은 선택 절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좋은 증거를 제공한다.

4. 돌아온 브러쉬

브러쉬의 주장을 확장해서 다음의 3가지 논제를 포함한 일반화된 설명주의 관점을 고려해보자.

  1. h의 대안에 대한 명시적인 고려를 하지 않는다면, h의 시험에 대한 선택 절차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2. h의 대안이 있는지 더 오래 살펴볼수록, (대안이 있다면) 대안을 찾아내기 쉽다.
  3. e가 h의 새로운 예측일 때보다 e가 h 정립 이전에 알려졌다면 과학자는 h의 대안 가설이 있는지 더 많은 시간 고민한다.

애친스타인의 비판 : 약 가설 시험을 위한 선택 절차는 그 가설에 대한 대안 가설에 대한 명시적인 고려를 요구하지 않는다. 만약 고려가 필요하더라도 그것은 설명이냐 예측이냐와 무관하다. 즉 예측에 성공한 경우라도 그에 대한 대안적 설명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좋은 증거가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이러한 대안적 설명을 배제하기 위해 새로운 실험을 설계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톰슨 v. 헤르츠

1883년 헤르츠의 증거 보고를 고려해보자.

  • e = 1883년 헤르츠의 음극선 실험에서 음극선의 전기적 휘어짐은 감지되지 않았다.
  • h = 음극선은 전하가 없다.

헤르츠는 e가 h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제공한다고 주장했지만, 나중에 톰슨은 헤르츠의 실험 세팅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관의 공기를 충분히 빼지 않았기 때문에), e가 h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애친스타인에 따르면, h를 시험하기 위한 헤르츠의 선택 절차가 부적절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브러쉬는 헤르츠가 그의 실험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대안 가설을 고려하는 데 실패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헤르츠의 e가 예측인지 설명인지는 e가 h의 증거를 제공하는지 여부의 문제와 무관하다는 점이다. 헤르츠도 톰슨도 그 실험이 가설의 예측이었는지, 또는 가설이 그 실험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는지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핵심은 헤르츠가 더 나은 선택 절차를 사용해야 했다는 것이다.

코멘트

애친스타인의 선택 절차 논변은 평범한 가설연역주의에 뒤엠식 전체론만 합치면 바로 따라나오는 것 같다.

실험 결과는 가설의 직접적 귀결이 아니라 많은 보조가설이나 초기조건의 결합에 의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애친스타인의 선택절차는 초기조건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초기조건 등의 정보가 명시되어 있지 않거나 알려져 있지 않을 경우, e를 설명할 수 있는 수많은 대안가설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실험군의 50%가 치료되었고, 대조군은 10%만 치료되었다는 실험 결과보고만 달랑 있다면, 우리는 실험군과 대조군을 어떻게 표집했는지, 둘이 애초에 다른 집단은 아니었는지 등을 의심함으로써 고려하고 있는 가설 외의 다른 설명 가능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친스타인의 역사적 논제는 사실 역사와 무관하다. 역사적 사실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는 h와 e 사이의 도출 관계나 논리적 관계가 완성되기 위해 필요한 추가적인 사실이 있기 때문일 뿐이고, 그것은 논리적 관계에 의한 것이지 역사적인 것이 아니다.

다만, 헤르츠의 사례는 고려할 가치가 있다.

헤르츠의 실험은 음극선이 전하를 띠지 않는다는 가설의 증거를 제공할까? 제공하지 않을까? 애친스타인은 톰슨의 말을 빌어, 그 실험이 증거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재적 관점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아마 톰슨의 실험 전까지, 헤르츠의 실험은 그의 가설에 대한 증거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맞다면, 어떤 실험은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사실 때문에 증거로서의 가치를 상실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이는 "e가 h의 증거이다"라는 말이 어느 시점 T1에는 참이다가 T2에는 거짓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일까? 이는 증거에 대한 다른 종류의 역사적 논제를 함축한다. 아니면, "e가 h의 증거이다"라는 말이 T2에 거짓이 되면, 처음부터 거짓인 게 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증거 주장의 진위는 최종적인 미래에만 판별할 수 있는 불확정적인 것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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