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Know-How to Nowhere: The Development of American Technology
- Elting E. Morison, From Know-How to Nowhere: The Development of American Technology (New York: Basic Books, 1974), ch. 2, pp. 16-39.
기술 후발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은 일단 영국 또는 프랑스로부터의 기술을 전수받아야 했다. 미국에서는 1790년대에 들어서 수로건설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는데, 그 한 예가 1793년 시작된 Charels와 Merrimack 강유역 수로개발 사업이다. 그러나 수로 공사는 작업을 착수한 첫해부터 각종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공사의 책임자였던 Laommi Baldwin은 두 명의 외국인(영국) 기술자로부터 도움을 청하였고, 그 중 William Weston으로부터 6주간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게 되었다.
Weston은 정밀한 수준기를 주고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등 각종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수로건설은 그 후 몇 해 동안이나 난항을 겪었다. 여전히 ①신속히 도랑을 파는 것(특히 나무뿌리, 바위를 만났을 때)은 힘든 일이었고, ②조언대로 만든 canal prism 구조물은 계속해서 떨어져나가거나 물에 씻겨나갔으며, ③ Weston의 수준기를 이용했음에도 측량 및 수준 맞추기는 여전히 문제였다. ④그리고, 여전히 도랑의 벽과 바닥에선 물이 샜다. 도구 또는 재료의 문제 등도 원인이었고, 미국의 인부들이 Weston의 처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점도 상당히 큰 원인이었다.
계속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인 어려움에는 이들이 이겨내야 할 ‘물의 흐름’이라는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야릇한 힘(strange force)’이 있었다. 이 야릇한 힘을 견뎌낼 수 있는 새로운 구조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을 어떠한 재료로 어느 정도의 정확성으로 어떠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야 하는지 전혀 몰랐으며, 가르쳐 주어도 이해를 못했던 것이다. 즉, 이들은 수로 건설에 필요한 체계적인 지식도 없이, 그동안 손수 집을 짓던 본능에만 의존하여 수로 건설을 시작했다. 공사를 착수하고 오랜 기간의 고생을 겪고 나서야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되었고, 이 지식은 과거의 본능을 확장 또는 대체하였다.
수로 건설 초창기에 기술은 몇몇 기술자의 머리에만 의존했다. 그리고 그 지식의 전달은 개인적, 우연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매우 불완전했다. 즉, 축적되어 전수되기가 힘들었다. 예를 들어 물에서도 풀어지지 않는 세멘트는 근대 이전에도 몇 번씩 이용되었지만, 그 재료와 비율에 대한 지식은 전수되지 않았었다. 19C에 들어서도 반복된 재발명, 반복된 실수, 정보의 유실은 계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의 극복은 Erie Canal 사업과 같은 대규모의 인원이 참가한 대규모의 장기간에 걸친 건설 사업 이후에야 가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