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ileo and the Scientific Revolution of the 17th century

PhiLoSci Wiki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A. Koyre, “Galileo and the Scientific Revolution of the 17th century”, Metaphysics and Measurement: Essays in the Scientific Revolution (London: 1968), 1장.

하늘: 현대 물리학의 프롤로그이자 에필로그

중세의 코스모스(닫힌 세계, 두 세계로 나뉘어짐) -> 현대의 유니버스(열린 세계, 통일)

현대 물리학, 갈릴레오에서 시작. 관성의 법칙. number, figure, motion으로 모든 것 설명. 이 뜻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갈릴레오가 아니라 데카르트. 마지막 단계 못 밟은 것은 갈릴레오의 망설임 탓.

관성 개념의 ‘증거’, ‘자연스러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음. 중세까지 그 개념 불합리. 전혀 간단치 않은 문제.

갈릴레오의 “실제를 불가능한 것을 통해 설명”하겠다는 역설적인 결정이 결정적.

현대 과학에서의 관성 개념에 의하면

운동은 상대적. 운동은 합성과 분해 가능. 운동과 정지는 모두 ‘상태’. 상태의 변화에는 힘이 필요. 운동의 지속에는 힘, 원인 필요하지 않음. 즉, 운동의 지속은 설명 대상이 아님. 관성 개념은 다음의 세 가지 함축 가짐. (a)환경으로부터 물체 분리 가능 (b)균질적 무한 공간 (c)상태로서의 운동(정지) 개념. 운동에 ‘존재’와 같은 존재론적 지위 부여.

그러나 이러한 개념 획득하는 것은 전혀 쉬운 문제가 아님. 상식은 여전히 중세적 또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개념

운동은 변화 과정. 변화는 정지의 대립물. 목적-종착지로서의 정지상태로 가는 중간과정으로서만 운동 생각. 정지만 ‘상태’가 될 수 있음. 운동 중의 물체는 다른 물체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신도 변화. 두 개의 운동은 서로 간섭. 즉, 조화롭게 합성될 수 없으며 때로는 모순되기도. 공간은 그 자체로 identify될 수 없음. 물체와 환경은 구분되지 않음. 운동에 대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세계의 질서’, ‘자연스러운 장소’ 개념 도입해야 함. 그리고 각 장소별로 다른 법칙 적용. 운동은 순간적이거나 자동적일 수 없음. 운동에는 mover나 cause 필요. 따라서 관성 개념 불가능 & 모순적.

코페르니쿠스 천문학 vs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

지구의 운동 불합리: ①회전에 의한 원심력 ②회전에 의한 뒤쳐짐.

아리스토텔레스 관점에서 지구의 정지는 반박불가능. 따라서, 체계 전체를 변화시켜야 & 새로운 운동 개념 발전시켜야.

아리스토토렐레스 관점에서 운동은 초기조건에 영향 안받음(현대의 빛처럼). 당연히도 움직이는 배 위에서 떨어뜨린 공 뒤쳐질 것.

코페르니쿠스: 지구상의 공기, 구름 등도 지구에 속해 있음. 따라서 지구와 함께 돌 것임.

코페르니쿠스의 논증은 매우 천박한 논증이나 새로운 개념의 씨앗이 됨.

하늘과 지상 함축적으로 연결: 자연의 community between the earth and the earthern things에 의존

이런 개념 이후 물리학 체계로 대체해야. ‘관측상의 상대성’ 넘어서는 ‘물리적 상대성’ 필요.

지오다노 브루노

새 천문학 위해서는 열린 무한 우주 필요 역설.

이는 ‘비자연스런-강제된’에 대비되는 ‘자연스러운’ 장소&운동 개념 포기 의미.

space as envelope -> space as receptacle(용기)

natural과 violent 동화시킴.

“지구의 운동이 지구 위에서의 운동에 미치는 영향은 배의 운동이 배 위에서의 운동에 미치는 영향과 같음”

origin의 장소는 아무 역할 안함. 중요한 것은 그 장소와 역학 시스템의 연결.

한 장소는 둘 이상의 시스템에 속할 수 있음. (eg. 다리 위에서의 돌의 낙하 vs 배 위에서의 돌의 낙하)

임페투스 이론에 의존. 몇몇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논증 반박. but 모든 문제 해결한 것은 아님.

티코 브라헤

배 위에서 떨어뜨린 물체 그 아래에 떨어질 것이란 생각 부정. 배 점점 빨라질수록 뒤쳐질 것.

동서 방향으로 쏘아올린 대포는 낙하거리 다를 것임.

브루노의 난점: ①의인화된 해석에 의한 반론:총알이 과거의 association을 기억하고 있다? ②두 운동의 간섭 개념을 통한 반론: 빠르게 날아가는 총알은 아래로의 낙하운동을 방해할 것(즉, 성분별 운동의 독립성 인정 안함)이란 생각. -> 갈릴레오에 와서야 해결.

요하네스 케플러

iner alia 용어 도입. & 수학적 정밀함.

그러나, 그의 세계는 여전히 코스모스. 또한 운동은 정지의 대립물.

즉, 그의 관성은 운동에 저항하는 성향일 뿐 정지에 저항하는 성향 아님. 즉, ‘운동의 원인’ 여전히 필요.

따라서, 지구의 운동과 함께 도는 지구 상의 물체에 대해, 그 물체들의 운동을 위해서는 그것을 끌어당겨주는 ‘힘’같은 것 필요. mutual attraction. 그에 따르면, 지구 상의 물체들은 상호 연결.

그에 따르면, 물체의 낙하 운동은 두 가지로 분해. (a)그것 자신의 운동 (b)지구(가 끄는) 운동. 분명 to east와 to west는 실제적으로 다름. 물론 지구상에서 보면 정확히 똑같겠지만.

케플러에게, 움직이는 배와 움직이는 지구는 다름. 지구는 물체를 당겨주는 실체적인 원인이지만, 배는 그럴 수 없음.

따라서, 그의 물리학은 현대 물리학의 토대가 되지 못함.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 논증 정리, 적에게 마지막 일격 준비.

그의 적: authority, tradition, & "common sense"

그의 논증은 step by step이어야. 수많은 예 필요. 무수한 예를 통해 “운동은 그 자체로 유지된다. 원인이 필요없다”는 주장 반복적으로 얘기.

think vs imagine. 갈릴레오처럼 생각하거나, 상식처럼 상상하거나.

“새로운 과학”의 토대를 제공한 것은 ‘순수한 생각’ not 경험.

운동의 물리적 상대성 without any experience

필연성은 실재를 결정. 이론이 사실에 선행. 자연(운동) 법칙은 자연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라 생각 속에서 발견. (플라톤처럼) 경험 전에 우리가 참아야 할 지식을 이미 갖고 있기 때문에 경험은 필요 없음.

“자연이란 책은 기하학의 언어로 쓰여졌다”

갈릴레오의 물리학은 ‘운동의 기하학’. 아르키메데스의 물리학이 ‘정지의 기하학’이듯.

그러나 여전히 ‘수’에는 ‘질’이 없음. 숫자엔 운동이 없음. 어떻게 물리학이 될 수 있는가?

‘숫자엔 운동이 없지만, 균질적인 무한 공간 하에서의 물체의 운동은 수의 지배를 받는다’

즉, ‘질’을 폐기함으로써! 그(들)은 세계(cosmos)를 색깔없는 추상적 세계(universe)로 대체시킴.

결론

당시 그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구분 명백했음. 즉, 수학의 역할과 지위에 대한 의견 차이.

갈릴레오의 과학: 플라톤의 부활...

관련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