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hematical versus Experimental Tradition in the Development of Physical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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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omas S. Kuhn, “Mathematical versus Experimental Tradition in the Development of Physical Science,” Journal of Interdisciplinary History 7 (1976): 1-31. 김영식 편역, 역사 속의 과학에 번역되어 수록.

고전물리과학

고대부터 <천문학, 정역학, 광학>은 모두 수학적 개념, 용어를 사용했으며, 수학적 논증 구조에 의존했다. 이들 과학이 수학적이라고 해서 비경험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분명 경험적이었다. 다만 정교한 관찰이나 실험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즉 그들의 경험이란 일상적 관찰이었다.

헬레니즘, 이슬람, 중세 시대를 거치면서 위의 분야는 6개 분야 <운동, 수학, 천문학, 정역학, 광학, 화성학>으로 정립되었는데, 이 분야들은 모두 수학이란 분과에 묶여 있었다. 또한 이 분야들은 18세기까지도 실험이나 정교한 관찰에 의존하지 않았다. (의문: 천문학 등의 경우 정교한 관찰은 하지 않았던가?)

중세를 거쳐 정립해 있던 이들 분야는 과학혁명기에 커다란 개념적 변형이 이루어진다.

베이컨과학 분야의 출현 (열, 전기, 자기, 기체, 화학)

과학혁명기에 감각경험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었다는 말은 과장되었다. 이전에도 경험은 강조되었으며, 실험도 존재했다. 다만, 지금까지 과학사학자들은 이전의 실험과 새롭게 나타난 실험 사이의 질적 차이를 간과했다. 한동안 새로운 종류의 실험적 전통은 이전의 경험적 전통을 밀어내지 않고 병존했다.

고전과학 속에서의 관찰과 실험은 중세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① 대부분 사고 실험이었으며, ② 실제 실험을 수행했더라도 그 목적은 알려진 결론을 다른 방법으로 증명하거나(e.g., 갈릴레오) 이론에 의해 제기된 문제의 구체적인 해답을 구하는 것(e.g., 데카르트, 뉴턴의 광학실험)에 있었다.

반면 새로운 방법은 이론이 미약했던 새로운 분야에서 수행되었다. 새로운 방법의 주창자들은 이전에 관찰되지 않았거나 존재하지 않았던 상황에서의 자연의 작동방식 알아내는 데 주목하기 시작했다.(e.g., 보일, 후크) 물론 새로운 방법의 주창자들에게도 형이상학적 입장은 있었다. 그러나 형이상학과 관찰 사이에는 간극이 컸고, 따라서 실험은 높이 평가받는 반면, 이론은 종종 비난받았다.

인위적인 환경 하에서 자연의 작동방식을 보는 것(e.g., 진공펌프)이 권장되었고, 새로운 현상을 창조하는 일도 각광받았다. 이런 작업을 위해 새로운 기구들이 필요했는데, 이때부터 장인, 연금술사의 은밀한 장치들이 자연 연구에 쓰이게 되었다. 한편 실험 수행에 대한 진위 문제는 종종 논란이 되기도 했다.(e.g., 보일의 파스칼 비난: 직접 수행했을 리가 없다.)

고전과학 분야들의 개념적 변혁에 대해서는 베이컨주의의 공헌이 매우 작았다. 실험은 대부분 이미 예측된 것들로, “해보면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라는 갈릴레오의 진술은 그에게 실험이 어떤 위상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뉴턴의 프리즘 실험도 새로운 전통에 있다고 보긴 어려운데, 그의 실험은 분명 17세기 간섭․회절․편광 실험(새로운 현상을 보여주는 실험)과 확연히 달랐다.

즉 과학혁명을 순수한 관념상의 혁명으로 본 코아레의 견해는 일견 맞지만, 베이컨 과학의 출현을 고려할 때 문제가 있다. 과학은 하나가 아니었다. 베이컨주의는 분명 과학혁명에 공헌을 했는데, 즉 그것은 새로운 과학 분야의 형성에 공헌했다.

나침반과 같은 실제 기술은 자기 연구를 낳았고, 자석이 쇠를 끌어당기는 현상과 유사한 마찰전기 현상은 전기 연구를 추동했다. 온도계는 열에 대한 연구를 낳았다. 연금술사, 장인, 약제사들이 쓰던 (화학) 기구들은 자연에 대한 지식 추구에 이용되기 시작했다. 이들 분야들은 모두 17세기에 새로이 형성된 분야들이다. 처음 이들은 새로운 (실험적) 사실의 발견 이상이 아니었다. 즉 이들에게는 정교한 예측 & 일관된 이론 체계가 결여되었다.

18세기 들어 각 분야마다 점차 몇 가지 현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화학은 치환반응과 포화상태에, 전기는 전도 현상과 라이덴병에, 열은 혼합물의 온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들 분야의 각 개념들이 정교화되면서, 이들의 실험도 정성적 실험 위주에서 점차 정밀 실험으로 변화하였고, 18세기말 무렵 이들 분야들은 고대 고전과학의 지위 정도에 오르게 되었다.

두 세기의 성숙기 동안, 고전과학과 베이컨과학은 서로 거의 영향을 주고받지 않았다. 둘은 이름표도 달랐다. 하나는 ‘수학’으로 불렸고, 다른 하나는 ‘실험철학’ 또는 ‘실험물리학’으로 불렸다. 다만 베이컨 과학은 새로운 기구 도입 또는 데이터 보고․평가 기준 변화 등, 고전과학의 (경험적) 정교화에 일정정도 영향을 주긴 했다. 그럼에도 18세기까지 고전과학의 종사자들은 실험을 거의 하지 않았다. 예외로 보이는 갈릴레오도 사실은 기구 제작 외에는 실험 분야에 그다지 기여한 바가 없다. 한편, 뉴턴은 두 분야 모두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Principia vs. Optics) 사실 Optics의 질문들(Queries)은 “베이컨적 실험의 비-베이컨적 사용”이라고 볼 수 있다.

18c, 19c초까지도,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두 전통 모두에 깊이 몸담은 사람은 없었다. 둘은 교육 및 제도적으로도 분리되어 있었다.(대학의 정규교과, 전문학자 vs 아마추어) (예외. 영국) 프랑스 아카데미는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아몽똥, 뽈리니, 뒤페이, 놀레, 브레케 등의 베이컨과학 종사자들은 아카데미에 속하지 못하거나 속하더라도 사후에 인정받거나 낮은 지위에 머물렀다.

근대과학의 기원

근대과학의 형성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면, 같은 원인이라도 분야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준 것을 알 수 있다. 중세 스콜라주의는 고전물리과학에는 일정 정도 영향을 주었지만, 베이컨과학에는 영향을 줄 수 없었다.(당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 헤르메티시즘[또는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으로, 고전물리과학에서는 자연의 수학화, 인력․척력 개념을 얻을 수 있었던 반면, 베이컨 과학에서는 전기, 자기에 대해 관심이 증대하고, 기발한 장치와 기구로 자연을 조작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을 얻을 수 있었다.

르네상스 시기 사회적 변화도 근대과학의 형성에 기여한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중세대학 지위 하락, 부의 새로운 축적 방식, 상업, 수공업, 장인의 발달, 인쇄술, 새로운 후원제도, 그 하에서 성장한 예술가 겸 엔지니어 집단, 인문주의자와의 교류, 새로운 문헌의 발굴 등등.

그 중 특히 예술가 겸 엔지니어 그룹의 영향에 주목하곤 하는데, 그러나 그들의 영향은 대부분 고전과학에 한정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전통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티코 브라헤나 갈릴레오는 여전히 수학적 추상에 관심 있는 그룹이다.

만약 기술분야를 기계적 분과와 비기계적 분과로 나누어 생각한다면, 전자는 대부분 고전과학과만 연관된다. 베이컨 과학과 연관된 기술분야는 염색, 직조, 유리, 선박 등 비기계적, 비수학적 분야이다. 비기계적 기술 분야는 17세기 전까지 후원을 받지 못했다. 이들은 고대적 문헌적 권위를 얻지 못했으며, 헤르메티시즘 문헌이나 마구스적 인물에 의존하곤 했다.

실용성의 면에서, 예술가 겸 엔지니어는 실제적 실용성에 무관심한 반면, 베이컨과학은 실제적 실용성을 강조했다. 국가적 스타일에서 대륙(프랑스)은 전자에, 영국은 후자에 치중했다. 뉴턴 이후 고전물리과학의 인물들이 모두 대륙에서 나왔다는 점은 이를 반영한다. 이렇게 볼 때, 머튼 명제의 적용 범위는 영국의 베이컨 과학에 한정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대물리학의 탄생

18세기말부터 베이컨과학의 분야들은 다른 분야와의 유대를 끊고 각기 독립적인 전문 분야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18c 중반 화학이 열, 전기 분야와 독립하여 화학이라는 전문분야로 정립했다. 또한 (19세기 초부터) 순수 수학과 응용 수학이 나누어지면서 수학과 물리학이 분화되기 시작했다. 19세기 초에 이르면, 베이컨과학 분야들은 완전히 수학화된다.

고전물리과학과 베이컨과학이 합쳐지기 위해서는, 둘 사이의 개념적, 제도적 장벽 낮춰질 필요가 있었다.

  • 개념적 요인: 각 분야의 내용적 발전.. 현상의 축적.. 수학화(1800-1845). 에너지보존법칙
  • 제도적 요인: 프랑스 공병대 학교. 이후 Ecole Polytechnique
  • 사실, 각 분야 최초로 수학화한 사람들 모두 프랑스 공병대 학교의 교수 또는 학생!
  • 수학적용의 확장: 라플라스의 권위. 1830년대 이후 프랑스의 물리학 쇠퇴 원인은? 그것도 수학?
  • 과학의 발전에 수학과 실험 모두 중요! 둘 사이의 대화 장벽은 역사적이기도 하지만, 정신상의 본성일수도..